<12월 3일>
오늘은 번지점프를 하고 주변 명소를 관광 후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아침 9시까지 버스를 타는 것이라 다른 날보다는 조금 느긋한 일정이었다. 오전에 여행일지를 정리하고 호텔근처를 산책하는 시간도 가졌다.
경상도 가이더의 구수한 안내를 들으면서 크라이스처치로 돌아가는 길.
사슴이 유명한 고향이니 만큼 사슴의 뿔을 이용한 녹용, 녹혈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녹혈을 파는 shop에 갔다. 수사슴에 있는 뿔은 하루에 보통 3cm 자라는데 이는 콩나물보다 더 빨리 자라는 것이다. 남자 뿐만 아니라 여성의 방광, 신장에도 좋다는 소리를 들으니 사고 싶었는데 180일 분량이 뉴질랜드 달러로 450불이란다. (28만원정도?) 그냥 지갑만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나왔다.
드디어 그 유명하다는 번지 점프장.
번지란 탄력이 있는 고무줄을 꼬아서 만든 끈이란 뜻인데 처음에는 원주민들의 성인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성인식에는 나무 위의 가지에 매달려 떨어졌었다.
최초로 있었던 번지점프는 1987년 에펠탑에서 떨어진 것이 시초이다.
또 뛰고 싶었으나 값이 만만치 않다. 지난번에는 DVD까지 합쳐서 10만원 돈이었으나 이번에는 번지 점프 뛰는 것만 14만원 돈이란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너무 비싸다는 느낌.
우리 일행중의 다른 사람들 몇 명이 뛰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았다.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었다.
중간에 과일가게에 들려 과일도 사고 어제 가지 못했었던 캔터베리 평원, 푸카키 호수와 데카포호수를 갔다. 선한목자의 교회 와 개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매일 매일이 멋진 풍광이 펼쳐 있어서 특별한 감흥은 있지는 않았지만 같이 간 일행들과 마치 가족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버스에서 가이드로부터 뉴질랜드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마오리가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마타고리라는 키가 작고 온순한 민족이 있었다.
쿠페라는 선장히 우연히 이 땅을 발견하고 아이테우라(희고 긴 구름띠이다.)라고 소리지르면서 섬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했다. 다시 자기땅으로 돌아가 이 땅을 발견했음을 알리고 1300년대에(700년 전)망망대해를 노를 저어 와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뉴질랜드란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뉴 질랜드라 이름을 붙였다. 이후 1642년에 네덜란드 사람인 에이델페이지만이 이 섬을 왔었는데 마오리족이 선원 두 명을 잡아 식인하는 광경을 보고 놀라서 나갔다.
그 후 영국사람인 제임스 쿡 선장이 와서 영국땅이라고 선포하고 유럽사람들에게 이 땅의 존재를 알렸다. 이때 유럽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영국사람들은 이주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국정부에서는 북섬에는 흉악범들을 남섬에는 정치범들을 보내서 살게 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는 이민 갈 평민에게는 돈을 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게 되어 마오리족과 충돌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마오리들과 싸우거나 죽일 수 없어서 1842년 와인탕기 조약을 맺게 되었다. 첫 번째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영국사람이다. 라는 조약을 보고 42부족이 모여 싸인을 했는데 사실은 두 번째가 이 땅은 영국 국가 소유의 땅이다라는 조건을 잘 보지 못한 것이었다.
마오리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가고 핍박을 받게 되면서 다시 전쟁을 일으키게 되어 12년간 전쟁을 했다. 결과적으로 마오리들이 패배하였었는데 1900년대 와이탕기 조약을 다시 부할시켜 원주민 우호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호주나 미국이 원주민 말살정책을 편데 비해 원주민과 잘 어울려 살게 된 민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와이 인디안인 경우는 정해진 한곳에 살아야만 수당을 주기 때문에 머리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뉴질랜드 원주민인 경우는 사는 곳에도 제한을 받지 않고 교육이나 재산권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현재 국회의원 121석 중 61석이 마오리족에게 우선권이 있다. 1960년 영국령에서 독립하였다.
호주는 인종차별이 심한 편인데 비해
요나마라라는 곳에서 무동력비행기 타는 것도 보았다. 기류를 타고 올라가다가 비행기에 연결된 끈을 끊으면 날라가게 되는 것이다. 한번 해보고 싶은 레저로 보였다.
가든에서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데카포 호수로 갔다. 마운틴 쿡(아오라기- 산중턱에 구름이 가려있다라는 뜻)란 산이 있고 milky 호수(햇빛이 바로 내리 쪼일 때 우유빛으로 비치는 것)가 어우려져 아름다운 풍경을 보였다.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 음료수라도 사먹으려 보았더니 뉴질랜드 달러가 하나도 없었다. 다른 선생님들 커피 시킨 것이랑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얻어 먹었다. 돈이 별로 필요 없을 줄 알고 뉴질랜드 돈 20만원, 호주돈 20만원을 환전해왔는데 번지점프에만 10만원을 쓰고 인터넷요금, 복사비 등 몇 개를 쓰고 나니 돈이 하나도 없었다. 선물은 돈을 바꿔서 쓰기는 했지만 돈이 정말 값어치 없게 다 쓰고 있었다. 여기 돈에는 에드먼드 힐러리의 얼굴이 있었는데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돈에 얼굴이 쓰이는 것은 대단한 일이란다. 이 사람은 세계 최초의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한 사람으로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더불어 뉴질랜드인들이 존경하는 사람이다.
셀파와 힐러리가 같이 세계 최고봉에 등정했을 때 텐진이라는 셀파가 힐러리에게 먼저 산을 오르게 하는 영광을 양보하였는데 등정한 당시에는 알려지지 못하다가 나중에 알려졌다고 한다.
뉴질랜드 종이돈은 15년 전에는 우리나라 조페청에서 제조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캐나다에서 만들어져 얇은 플라스틱재료를 사용하여 구겨지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조폐공사의 제조실력도 대단해서 동남아의 돈은 거의 우리나라에서 제조한다고 한다.
선한목자의 교회와 개동상은 생각보다 별로 대단하지는 않았다.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였는데 교회의 창문으로 보이는 호수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유명하다고 한다. 마타고리아라는 풀이 무성했는데 그것으로 예수의 면류관을 만들었었다고 한다.
성공회 교회는 신부님이 결혼할 수 있는 교회이다. 십자가 모양과 성호긋는 방향이 틀리기는 하지만 거의 같은 교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성공회는 영국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잉글랜드의 국교이었다. 헨리 8세는 형수인 캐서린과 결혼한 후 이혼하고, 앤공주와 재혼을 하고난 후에도 누명을 씌어 처형하였다. 그리고 나서도 4번의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아들은 얻지 못하고 캐서린의 딸인 메리가 등극하였는데 그녀는 모든 불행이 성공회로부터 나왔다는 생각에 박해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를 피의 여왕이라고 한다.
작은 교회를 본 후에 개동상을 보러 갔다. 동네는 200년 전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었는데 콜리라는 개가 양 200마리씩 몰고 다녔었다고 그를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오후에는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을 하였다. 이 호텔은 오랜만에 시내에 가까운 호텔이라 동네의 상점들이랑 근처 바나 호프집도 볼 수 있었다. 카지노장도 있어서 구경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 나라 같으면 9시면 한 낮일 대도시 거리가 상점들은 거의 다 문을 닫고 몇 개의 바만 문을 열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 것이었다
호텔방 앞에는 푸카키 호수(?)와 산이 내려다 보인다.
전망이 아름다운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