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5;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아포스타시온/이혼증서‘-우리가 아는 가정법원개념으로 말하면 안 된다.
647 ajpostavsion
868의 파생어에서 온 추정된 형용사의 중성형;본래적 의미로는‘분리’하는 것, 즉(특히)‘이혼’,이혼증서
<마19:7>중명. something that separates;
★자르다-카라트
3772 tr"K; karath {kaw-rath'}
기본어근;‘자르다’(베어내다, 베어 넘기다, 베어 조각내다); 함축적으로‘파괴하다’, 또는‘소멸시키다’; 특히‘언약을 맺다’(동맹과 계약을 맺다, 원래는 고기를 베어 그 조각들 사이를 지나가게 함으로서) :- 씹혀지다, 서로 연맹하다, 언약을 맺다, 베다(베어버리다, 베어내다), 파괴하다,실패하다, 찍는 자, 자유롭다,베어 넘어뜨리다, 맹약하다,(【언약을 맺다】), ×잃다, 멸망하다,×완전히, ×부족하다
자르다(cut)베리트로 발전/약속. 언약
하나님과 나 사이에 건너야 할 담/잘라버렸다.
오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이러면 안 되잖아 !
하나 되자고 준 것이 이혼증서이다.
이혼증서를 준 목적이 헤어지자고 준 것이 아니라
하나 되자고 준 것이다.
케리투투: 기본형이 카라트-자르다/이쪽저쪽
아브람이 제물을 짤랐다. 창15:10
하나님은 짤라 놓으라고 한 적이 없으시다.
이것은 희생제사이다. 경계로 해서 넘어가 버렸다.
하나님은 이쪽에 계시고 아브람은 저쪽에 있는 것.
취하라는 제물이 잘라버린 지점이 된다.
희생제사는 예수에게서 완성이 된다.
희생제사의 원리는 죽음이 거리를 만드는 담을 치는 cut이다.
이것을 극복 못하면 하나님으로 내가 넘어갈 수 없다.
우리가 못 넘어가면 예수가 우리에게는 이혼증서이다.
<이혼증서에 대한 주님의 재해석>
마19: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성경은 처음에 띄어쓰기도 없었고 모음도 없었다.
읽을 수도 없었다.
문자로 주어졌는데 제일 중요한 문자가 맨 앞에 나온다.
히)베레쉬트 헬) 엔 아르케
이것을 ‘태초에’ 라고 번역하면 안 된다.
본래‘-창1장에서는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잖아.
★남자: 자칼
2145 rk;z: zakar {zaw-kawr'}
2142에서 유래;본래 의미는‘기억된’,즉‘남성’(사람,혹은 동물의 가장 두드러진 성으로서):-×그들,남성,인류
★여자: 네케바
5347 hb;qenÒ ?n@qebah {nek-ay-baw'}
5344에서 유래;‘여성’(성의 구별에서):-여성, 여자
자칼을 그냥 남자로 네케바를 여자로 설명하면 안된다.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칼이 없으면 네케바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네케바가 아니면 자칼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이다.
하나님이 자칼이고 나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네케바라고 부른다.
네케바는 하나님과 하나가 아니면 네케바라 부르지도 않고,
그 하나님은 나와 하나가 안 되면 자칼이라고 안한다.
하나는 이미 둘에 근거한 하나이다.
이것보다 더 하나가 무엇인가?
ZERO/영/영원이다.
아담과 하와를 남자와 여자로 말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가지고 모형으로 제시하셨다.
남자 여자는 아담과 하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담도 네케바였고 하와도 네케바였다.
마19: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 사람이‘’-남자
우리말로 번역할 말이 없다. 번역한다면 표를 가졌다.
★자칼-표를 가지다/표를 가졌다.
★네케바‘- 하나님과 하나가 됐을 때의 나가 네케바.
그 표를 받았다.
부모를 떠나‘-부모를 이 아니라 ’부모로‘ 떠나가 맞다.
자칼은 부모로 온다.(부: 하나님의 성전/모: 하나님의 흘려주시는 말씀.)
하나가 될지라 이것이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이다
하나가 안 되면 멸망이다.
마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
원문에는 이제와 둘 사이에 더 이상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사람이 나누지 못해.‘
이혼증서의 1차적 메시지는 하나가 되는 것.
하나님과 나 사이에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하나님과 내가 분리되어 있네.
하나 되는 노력을 통해서 하나가 되면 이혼증서는 생명이 된다.
마19:7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모세: 율법
마19: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누구인가?
마19:3에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이 얼마나 율법을 중시하는 사람들인가?
너희가 이혼증서를 그렇게 가정법원에서 쓰는 식으로 이해했지
그것이 바로 마음의 완악함이야
진리를 모르면 이혼증서를 주겠다.
성경의 이혼증서는 하나 되는 시작이다.
그 약속은 이혼증서로 주어진다.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음행한 연고없이‘-오역이다.
모이큐어/간음-마음의 상태/거짓된 것을 가지고 있으면 간음.
포르뉴오/음행-거짓된 그것을 입으로 말하면 음행.
성경은 절대로 행위가 아니다.
마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파레크토스-~외에는
3924 parektov" parektos {par-ek-tos'}
3844와 1622에서 유래;‘밖에’,즉 외부에 <행26:29>부. besides, apat from, except for;
로고스‘-말/소유격
포르네이아‘-음행
음행의 말을 하지 않는데/진리를 말하는데 버리면 그것이 간음이다.
이혼증서는 하나 되자는 시작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그 약속은 이혼증서로 주어진다.
하나 되자고 준 문서가 성경이다.
성경은 자꾸 하나 되자는 메시지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이혼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것을 성경은 ‘처녀’라 한다.
처녀는 신랑이 없다.
이혼증서를 갖고 있다.
신랑을 만나야 남편이 되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
처녀상태로 있는 것이 간음이다.
세상의 처녀는 음행하지 않는다는 뜻,
그러나 성경은 반대이다.
성경을 사람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실수가 있고 잘못된다.
버린 여자에게 장가 드는 자도‘-
버린 여자가 누구인가?
말의 간음이 있기에 버려진 것이다.
세상에 버려진 자들이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들이 누구인가?
버려진 자와 관계를 맺으면 간음의 시작이다.
그 진리를 말하지 않는 자들과 내가 관계를 맺으면
그는 버려진 자이다.
또 그와 관계를 맺으면 나는 간음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 누가 선지자이고 누가 거짓된 자인지.
이를 아는 자들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모르는 자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내 마음이 간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마 5: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간음을 그만두려면? 완전하게 만들려면?
간음을 안 하려면 그를/예수 그리스도를 죽여라
그를/아우투스-그 정체를 알 수 없을 때 쓰는 단어.
정반대가 ‘호’이다.
신약에서 당신을 지칭 할 때 두 가지를 쓰는데 의미가 다르다.
호‘-진리를 말하고 있는 예수를 쓸 때 사용.
간음을 너의 의지로 끝낼 수 없다.
내가 죽어야 끝낼 수 잇다.
‘나를 죽이지 않으면’이 아니라 ‘그를 죽이지 않으면 ’이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그‘라는 그를 모르면 절대로 간음을 그만둘 수 없다.
엑사이로/짤라 낼 수 없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정확히 누군지 알 수 있는가?
그 예수를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우투스로 믿고 있기 때문에
내 신앙생활에서 제거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누군지 모른다. 문자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믿고 있다고 착각한다.
예수께서 처음부터‘내가 죽으러 왔어’ 라고 나팔을 부신다.
왜일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신 죽음인가?
아니다. 여기서부터 오해가 생긴 것, 바로 잡아야 한다.
하나님은 친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신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약속 진리의 말씀이 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죽고 싶으신 것이다.
2천년전 죽음은 역사적 죽음/사실이다. 현재 내가 죽는 죽음은 아니다.
역사적 죽음이 현재의 내가 죽는 죽음이 아니다.
그 때 죽은 그 죽음은 내가 죽는 죽음이 아니면 역사적 죽음으로 끝난다.
2천년 후의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 때 죽은 그 죽음은 지금 현재에도 역사하고 있다.
믿음을 과소평가 하면 안된다. 그저 믿는다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내가 죽인 죽음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야 한다.
다들 예수를 자기 주로 고백하고 믿고 눈물 흘리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성만찬을 해도
그가 누군지 모르는 채 믿어야 되는
아우투스의 믿음은 아무 상관이 없다.
★오른 눈‘-예수그리스도가 나를 실족시킨다.
대부분 아우투스의 예수는 나를 구원 못한다.
★아우투스‘- 그가 진리의 말씀을 하시는 것.
이것 때문에 진리의 오른 눈이라 한다.
이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를 ‘호’라고 쓰면 아는 것이다.
그가 하시는 말씀이 그가 누군지 내가 알았으므로
호‘라고 쓰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남녀관계의 간음을 말하지만 성경은
남녀관계의 간음을 말한 적이 없다.
성경에는 육신의 눈으로 보면 부끄러운 사건들이 많이 나온다.
이 사건들도 다 복음을 감추어 놓고 있다.
육신적인 불륜과 간음을 말함이 아니다.
★롯과 두 딸(모압 암몬) -(창19:30-38)
롯이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했다는 것은 ?
굴-메아라/벌거벗는 곳
4631 hr:[;m] m@`arah {meh-aw-raw'}
5783에서 유래;(어두움으로서)‘동굴’:-굴, 구멍, 동굴
5783 rW[ `uwr {oor}
기본어근;‘벗다’:-벌거 벗기우다
벌거벗은 사람이 굴에 들어간다.
육신이 벗겨진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굴이다.
죽은 자가 들어가는 곳이 굴이다.
온전히 육으로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함께 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아들을 낳을 수밖에 없다.
큰 딸/작은 딸-두 언약이다.
예수와 그리스도이다. 율법과 복음이다.
큰 자(율법)가 작은 자(그리스도)에게 항상 말을 먼저 한다.
그리스도로 잉태되어지면 완성되었기에 더 이상 율법이 못한다.
주님이 하신다.
아버지는 늙었다-씨가 없다./육신의 씨(내 생각)이 없다.
아버지는 하늘의 생명만 가지고 있다.
내 생각이라는 씨가 없어야(고자)구원받는다.
이 땅에 베필 될 사람이 없다-베필: 들어가다
이세상의 길(육신의 생각)을 따라서는 우리에게
들어올 남자가 없다.
그래서 이 땅에 씨를 갖지 않은 자를 찾아야 한다.
그가 롯이었다.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
두 딸-언약의 말씀이 롯의 짝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영적 아들을 낳는다.
★유다 다말사건
창38장의 유다/다말사건은 왜 기록되었나?
유다에게는 첫 번째 아내(수아의 딸-이름이 없다)와 세 아들이 있다.
수아의 딸은 행위언약 역할을 하므로
행위언약의 아내는 성경에 기록도 안한다.
두 번째 아내가 다말인데 은혜언약이다.
그러므로 수아의 딸은 겉 사람을 상징하고 다말은 속사람을 상징한다.
엘 오난 셀라중 막내 셀라만 남는다.
세 사람 중 셀라가 장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항상 차자가 장자가 된다.
이 창38장의 이야기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내가 종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종의 아들인 이스마엘처럼)
내가 아들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으로 오신 예수의 육체로는 죽는다.
즉, 육신의 생각이 죽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살아난다.
이것이 우리 안에서 똑같이 진행된다.
다말/아들의 부인
유다는 예수그리스도의 부인이다.
우리의 남편도 그리스도!
유다의 아들들/엘/오난/셀라 다 죽는다.
아들이 죽자 다말이 아버지와 하나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
약속의 대를 잇는 것이다.
아들/남편이 죽는다.
예수도 이 땅에 오셨다가 내가 죽을 것이다.
죽은 후에는 아버지께로가 아니라 ‘아버지로’ 간다.
이 땅에 오실 때는 아들/남편으로 왔고
갈 때는 아버지로 가신다.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창39장
환관/내시-씨가 없다.
씨가 없는 남편과 살고 있는 아내는 당연히 자식이 없다.
이 가정을 살리려고 씨를 가지고 온 사람이 요셉이다.
그러기에 씨가 있는 요셉에게 가는 것은 당연하다.
보디발은 애굽에 속한 씨 없는 제사장이라는 뜻이다.
제사장은 양과 소를 잡는 도살자이다.
보디발은 아들을 잡고 있는 살인자이다.
요셉이 이 가정에 온 이유는 요셉을 통해서 이 가정을
고쳐 주겠다. 이들을 씨 있는 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창 39:7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눈짓하다가-눈을 들어
눈을 들어 올려 진리를 알아 차렸다는 의미이다.
위엣 눈을 떠서 요셉을 알아보았다.
진리를 남편으로 삼고 싶은 주인의 처이다.
★동침하기를 청하니-
동침을 해야 생명을 낳을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진리차원에서는 주인의 처가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창 39:12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가로되-아마르
진리로 나와 동침하자
★버려두고-아자브
5800 bz"[; `azab {aw-zab'}
기본어근;‘늦추다’,즉‘버리다’,‘허락하다’,등:-맡기다, 떨어지다, 용서하다, 강화하다, 돕다, 버리다(없이 만들어 버리다), 거절하다, ×확실히
동침은 말씀이 하나되는 것이다.
옷을 그 손에 준 것은 그와 말씀으로 동침한 것이다.
간음을 한 것이기에 그 죄로 감옥에 가는 것이다.
남편(율법)있는 나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와 간음을 하신 것이고
함께 죽으시고 살아나신다. 그것이 사랑이다.
★금소사건- 출32장
’라‘라는 신은 눈에 보이는 신이 아니다.
눈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를 아피스/소라고 한다. 금을 입혀 섬긴 것.
애굽에서 70명이 430년이 지나면서 완전 애굽화 되었다.
먹고 마시며‘- 성경에서 먹고 마신다는 의미는 만찬/말씀을 먹고 마심.
고전10: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소 섬김 사건 때문에 간음이라고 해석.
참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이 다 간음이다.
★다윗과 밧세바
하나님의 계획에 밧세바는 반드시 다윗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간음이란 너희들이 생각하는 간음과는 다르다’
삼하 11:2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다윗을 그리스도로 보면 한 여인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나)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그렇게 보신다.
택함을 받는다.
우리야-충신/율법의 모형. 밧세바의 율법남편이다.
율법은 충신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삼하 11:4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여자가 그 부정함을(투무아) 깨끗하게 하였으매
다윗-성막성전/예수의 역할 예수사역.
다윗-나의 사랑하는 자.
밧세바가 헷 사람 우리야의 짝.
우리가 이방에 속한 자였다.-우리남편<예수=우리야(하나님의 빛)의 역할>을 죽이고
우리를 당신의 짝으로(조건: 말씀으로 깨끗해야 받아들임)
예수: 내가 이 세상 빛⇒제거하심.
말씀으로 깨끗했기 때문에 그 짝의 이름 밧세바(약속의 딸)
밧세바가 예수그리스도의 짝으로 오는 것은 당연하다.(불륜이 아니고)
삼하 11:11
우리아가 다윗에게 고하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 가운데 유하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하였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치 아니하기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스스로 맹세하는 것.
자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하는 것인데 보기에는 좋아 보인다.
우리야는 다윗왕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
왕은 우리야(율법)을 죽일 수밖에 없다.
그래야 밧세바가 남편에게서 자유하게 되어야 하는 것.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 임신→부적절한 관계→ 그래서 아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
신랑을 빼앗길 때는 금식해라(막2;20)
삼하 12:19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삼하 12: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죽으니까 얼굴에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전에 들어가서 경배.
삼하 12:24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계보에 딱 올라와 있다.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가려면 내가 가지고 있던 남편이 죽어야 한다.
우리야 라고 하는 남편이 우리에게도 다 있다.
이 남편이 죽어야 한다.
이 님편은 나를 살려줄 것 같고 나를 잘 되게 할 것 같은
충신으로 보이지만 우리야는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
행위로서 얻은 의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암논과 다말
삼하 13: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
진짜 남편이 와서 간음하고 있던 나(우리는 다 동성애자였다.)
율법 남편을 빼앗아 가는 것/강간 하신 것으로 표현.
후에 압살롬이 암논을 죽여준다.
암논은 십자가의 예수를 의미한다.
암살롬은 그리스도를 의미.
★하만과 에스더
에 7: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가로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얼굴을 싸더라-죄인이 된 것.
하만이 왕후를 강간-죽었다.
★에스더-언약을 상징
에스더가 완성되려면 하만이 죽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