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에는 국조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향하는 진전을 서울에는 문소전(文昭殿) 한 곳, 외방에는 전주의 경기전(慶基殿), 영흥의 준원전(濬源殿), 경주의 집경전, 평양의 영숭전(永崇殿), 개성의 목청전(穆淸殿) 등 다섯 곳에 두고 유지하였다. 경상도 경주에 태조 어진이 국초부터 봉안되어 있었고, 1442년(세종 24)에 전각을 개조하고 태조 어진을 봉안한 후 준원전의 예에 의하여 속절(俗節)에 사신을 보내 제사 지냈다.
임진왜란 때 예안 청량산으로 옮겨 무사하였던 태조 어진을 강원도 강릉에 옮겨 봉안하였다. 이를 역시 집경전으로 불렀다. 1628년(인조 6) 화원 이징(李澄)을 보내 어진을 보수한 후 다시 봉안하였다. 1631년(인조 9)에 강릉 집경전에 화재가 나 어진도 불타 버렸다. 같은 해 가을에 전주 경기전과 영흥 준원전 태조 어진을 모두 살펴본 후 준원전 어진이 한 곳도 손상된 곳이 없다고 하여 이 어진을 이모한 후 다시 강릉 집경전에 봉안하게 하였으나 병자호란으로 이루지 못하였다. 전쟁 후에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1796년(정조 20)에는 경주 집경전 터에 ‘집경전구기(集慶殿舊基)’ 다섯 글자를 세운 비를 세워 태조 진전이 있던 옛 터임을 알리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