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컨버전스 아트'라는 이색적 장르는 인터넷에 찾아봐도 명확한 개념이 나와 있질 않아요.
누군가가 그걸 좀 정리해서 위키피디아 같은 곳에 올려주면 좋겠는데 말예요.
어쩌면 전시 기획사에서 지어낸 말일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이런 류의 전시회가 잘 알려진 화가를 중심으로
일년 내내 열리는 것 같아요. (당연하게도) 대상 화가의 진품은 단 한 점도 구경할 수 없어요.
하지만 영상, 음향, 조명, 입체 공간, 심지어 향기 같은 온갖 기술적+예술적 장치를 통해
화가는 새로 태어나고 관람객은 색다른 관점에서 그 화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고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돼요.
무엇보다 특별한 데이트 장소를 찾는 연인들이나 '인생 샷'을 찾는 20, 30대들에게는 즐거움을 주는 공간인 듯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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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여인의 향기>전은 서울숲을 바라보며 높이 솟은 주상복합건물 갤러리아포레 건물 지하 1층에서
열리고 있어요. 갤러리아포레에는 연예인들도 많이 살고 있다 하죠? 누가 사는지는 듣고도 잊어버렸네요. ㅋㅋ
전시실에 들어서면 말린 꽃과 함께 갖가지 향을 지닌 아로마 오일이 관람객을 맞아요.
그대가 생각하는 '여인의 향기'는 어떠한 향인가요? 마치 이렇게 묻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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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끊임없는 유희와 같다".
르누아르가 했던 말이라고 해요. 그래서일까요? 그의 그림은 유쾌하고 즐겁고 아름다워요.
인상주의 화가들이 찬란한 빛의 순간을 쫓아 그림을 그리듯
그는 작품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찰나의 작은 일상과 표정에 주목했어요.
전시장 곳곳에서 파리의 세느 강, 몽마르트 언덕, (모네의 그림에도 등장한) 생 라자르 역 등을 만날 수 있어요.
그 풍경이 그대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시장 패널과 소품, 작품 배경 등에서 수시로 접할 수 있어요.
다시금 <빛을 그린 사람들(The Impressionists)>이라는 BBC 3부작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더라구요.
그때 모네 역을 맡은 배우는 내가 좋아하는 리처드 아미티지였는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르누아르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은 물론 (그 중요한 개념인) '인상'조차 떠오르지 않네요. ㅋㅋ
너무나 당연하게도 (LED 조명을 통해서는) 그의 걸작 중의 걸작인 120호짜리 거작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여인들의 얼굴에 드러난 자연의 빛과 그늘, 무도회장을 감싸고 있는 빛의 흐름은 찾아볼 수 없어요.
(내가 컨버전스 아트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작품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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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시장 곳곳에 비스듬하게 놓인 패널에 적혀 있는 말들은 전시 기획자가 르누아르에 대해
참 많이 공부하고 고민하고 탐색했구나, 하는 느낌을 줄 만큼 성의 있었어요.
패널에 적힌 한마디.
'회화의 아름다움은 예술을 향유하는 당신을 감미롭고 로맨틱한 자리로 이동시키고
사랑의 심각한 모순에도 너그러운 감정의 모티프를 갖게 한다.'
그러니 누리라는 거예요. 향유하고 열정을 지니며 사랑을 얻으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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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 르누아르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라파엘로의 그림을 접하고
그가 추구했던 인상주의에서 다소 벗어나 고전주의의 사실적 붓 터치 방식을 인물화에 녹여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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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가난한 재봉사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던 불우했던 시절의 르누아르가
인상주의 친구들을 만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아뜰리에도 재현해 놓았어요.
전시 기획자는 관람자 역시 그 아뜰리에를 통해 불가능한 꿈을 향한 희망의 감정을 품어보라고 권해요.
이 역시 '우아한 위로'일 테지요.
어딘가에 적혀 있던 전시 기획 의도예요.'당신의 푸석해진 일상과 먹물 같은 감정, 시들해진 숨소리를 예술이라는 우아한 위로로 회복시키기 위한 사랑의 전시.'
이렇듯 <르누아르-여인의 향기>전은 일상의 따뜻함, 우아한 위로가 필요한 관람객을 위한 전시 공간이에요.
단, 혹시라도 가실 거면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가지는 마시길요. ㅎㅎ
첫댓글 우와~~~선배님 정말 좋은 정보네요..저도 시험 끝나는대로 전시회 가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