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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땅의 주이신 주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 속에 내려서면 곧 요단 물은 위에서 내려오는 물부터 끊어지고 그 물은 물 무더기를 이루고 서리라.“하더라(여호수아 3;13한글킹제임스성경)
요단강의 경우에는 홍해와 다르게 지팡이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상징물이 등장합니다.바로 주의 언약궤입니다.
홍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장소인 이집트에서 분리하는 것을 말하며 영적인 교훈으로는 그리스도인의 성별된 신분을 말합니다.
요단강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약속하신 카나안 땅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적인 위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에베소서 2;6)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분적인 위치입니다. 우리의 두 발은 땅에 서 있습니다.(베드로전서 2;11)
그러나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누가복음 16;16),
그것은 성령 안에서(로마서 14:17)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것으로서(골로새서 1;27)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서 이루어졌고(누가복음 24;44~46)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로서 우리의 거처는 하늘에 있습니다.(빌립보서 3:20)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거처를 마련하시려고 셋째 하늘에 가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4;2~4)
요단강을 건너는 교훈은 로마서가 이니라 에베소서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는 하나님의 의인 칭의를 말하며 홍해를 건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정서신인 에베소서는 교정서신인 고린도전후서와 갈라디아서를 거쳐서 그리스도와 동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8~9 다음에 에베소서 10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느니라. 이 일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어 우리로 그것들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신 것이라.(에베소서 2;10)
이것은 지옥으로 부터의 구원을 얻는 칭의를 얻기 위해서 행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의 교제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지 재판장과 죄인의 관계가 아닙니다.
돌아온 탕자를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함은 너희도 우리와 교제를 갖게 하려는 것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 에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요한일서 1;3)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대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갓고 사람들에게는 은사들을 주셨다.”고 하셨느니라. 따라서 그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따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내려가셨던 그가 모든 하늘들 위로 오라가신 바로 그분이니 그가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려 함이니라.(에베소서 4;8~10)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이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줄 표적이 없도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마태복음 12;39~40)
그런데 땅의 심장은 바로 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에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흔 낮과 밤을 지옥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죄들들 담당하시고 제거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죄들을 지옥에 던져버리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29)
그때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으로부터 주 그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말하기를 “내가 나의 고통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를 들으셨나이다. 내가 지옥의 뱃속으로부터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 2;1~2한글킹제임스성경)
그가 미리 앞을 내다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한 것은,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육신도 썩어짐을 보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라.(사도행전 2;31한글킹제임스성경)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진 것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10;28)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브라함의 품에 있던(누가복음 16;22) 구약성도들이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면 많은 열매들을 맺는 것을 나타냅니다.(요한복음 12:24)
그렇다면 거듭난 그리스도인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안에서 하나님에게로 간다는(베드로전서 3:18) 확신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22)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가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더라.(마태복음 27;51)
이런 연유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베드로전서 4;6)
위로부터 내려온 물이 서서 사례탄 옆에 있는 아담 성읍으로부터 아주 머리 물 무더기를 일으키고 평원의 바다 족, 즉 염해로 흘러가는 물은 그쳐서 귾어지니 백서이 여리코 앞으로 바로 건너더라.(여호수아 3;17)
그리스도인은 죄사함을 받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침례받고 그리스도와 함게 일어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현실세게에서 어떻게 적용되나요? 우리의 신분적인 위치는 하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으로 이 땅을 딛고 서 잇습니다.
내 마음 안에는 하나늼의 나라가 잇지만 이 세상 앞에서는 어떠한 영향력을 가쳐야 하나요?
우리는 본문에서 요단가을 건넌 유대인들은 여리코 성에 다다른 것을 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세상은 세상의 신인(고린도후서 4;3~4) 공중권세자가 다스리고 있습니다.(에베소서 2;2)
그리스도인은 이미 홍해를 건넜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신분적 위치는 하늘에 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적을 세상의 땅을 딛고 서 있습니다.
유대인은 이미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요단강에 건너서 여리코 성과 전쟁을 준비하듯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카나안의 영적 전쟁을 거듭남과 동시에 사탄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오직 두 개의 영적인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롸 마귀의 아들들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들이(요한복음 1:12~13) 되는 순간 당신은 마귀의 자녀들과(요한복음 8;44)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우리의 신분에 걸맞은 상태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투에 임하는 자세입니다.
홍해를 건넌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부활을 말한다면 요단가을 건너다는 그리스도와 동행과 영적 전쟁입니다. 이것은 주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과 교제함을 에표하며 눈앞에 여리코 서은 마귀의 세력들과 영적전쟁을 하는 것을 예표합니다.
참된 기독교는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미 주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평안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우리 눈을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보게 해줍니다.
그러나 은사주의는 하나님을 감정이나 느낌으로 이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머리이신 그분과 셩령님으로 연결되어 잇습니다.(에베소서 3:16)
그러므로 우리 신분은 하늘에 잇고 그분 안에 연합된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제 실제적으로 감당해야 할 주요한 일은 하나님이 주신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사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함이 어떠한지를 아리고자 하셨으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게신 그리스도시요, 곧 영광의 소망이라.(골로새서 1:2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된 본향인 그 하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15:50)
그러므로 우리는 겉사람이 썩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속사람이 잇습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합니다. 그래서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4:16)
은사주의는 말씀이 아닌 감정과 느낌의 체험이기 때문에 자기 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너희는 그들에게 대답할지니 ‘요단 물이 주의 언약궤 앞에서 귾어졌나니 요단을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도다. 이 돌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하라‘ 하더라.(여호수아 3;7)
홍해에서의 지팡이는 단회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단가을 건넌 후 열 두개의 돌은 시간이 지나도 게속 기억되었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만 받으면 되엇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지만 내가 구원을 받은 그 기쁨을 가지고 잇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게 십자가에 못박혀잇다는 것을 망각하면 안됩니다.
그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입니다.
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레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레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린 것이라.(골로새서 2;11)
그리스도인은 영적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에수 안에서 죄의 몸을 벗어버린 영적 할레이며 그 근거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는 영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고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할레파임이니라.
또 그 안에서 발견되고자 함이니 나의 의는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니 곧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의라.(빌립보서3:3, :9)
유대인의 할레는 육신을 죽이는 것을 에표합니다. 믿음은 육신을 죽이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들이나 육신에게 진 것이 아니니 육신을 다라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사리라.(로마서 8;12~13)
종들아, 육신에 따른 너희 주인들에게 모든 일에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눈가림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순전한 마음으로 하라(골로새서 3;2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물론 우리는 두려워하는 종은 아닙니다.
그러나 왕에게 있어서 왕자는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신하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은 왕의 신하로서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나기 전에는 죄의 종으로 살앗습니다. 이제는 의의 종으로 사는 것이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 것일가요?
그것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아들들인 의의 종으로서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요?
형식적이 아닌 진정성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로마서 6;19)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라. 그는 몸의 구죽시니라.(에베소서 5:23)
그리스도인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에베소서 5:30) 우리는 그분과 연합된 신분입니다.
우리는 율법 앞에서 그분과 함께 죽었고 그분과 함게 일으켜졌으므로 율법 앞에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로마서 7;4) 그리스도인의 연합체인 교회는 그분의 정혼한 한명의 처녀입니다.(고린도전서 11;2)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식에 그리스도의 신부의 신분으로서 참여하는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9;7)
에스더가 왕의 혼인식을 준비하는데는 왕궁에서 일년이 걸렸습니다.(에스더 2;12)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린양의 혼인식에는 천상에서 신부단장을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예표합니다.
그러므로 환란 전 휴거를 증거합니다.
우리는 칭의 성화, 영화를 받습니다.(고린도후서 1:10)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영화의 상태에서 어린양의 혼인식을 준비하는 것으로서.(에베소서 5;26~27)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말합니다.(고린도전서 3;11~15, 고린도후서 5:10)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지만 상급이 나뉘어집니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의 신분적 위치는 하늘에 잇습니다.
비록 우리의 두 발은 땅에 있지만 우리의 마음 안에는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으며 영적전쟁에 참여한 자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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