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생활의 시작
나는 34개월간의 군 생활을 1969년 12월에 마쳤다. 그 때 마침 총무처에서 시행하는 공무원 공개채용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그 후 직무교육을 마친 후 인맥이 짧아 밀리고 밀려 발령 받은 곳이 낯선 강원도 묵호였다. 부임한 그날 오후 시급히 월세 방을 구하러 나섰다가 세상물정 모른 채 얻은 것이 보증금도 없는 월세 천 원짜리 방이다. 5급(현9급) 공무원 첫 월급이 15,000원으로 은행원 초봉의 삼분지 일도 안 되었지만 그래도 너무 싼 월세 방이었다. 그러나 수원지 부근이라 석탄 분진 많은 시내보다 조용하고 공기도 맑아 다행이었다.
내가 살았던 방은 주인이 사는 큰 한옥 담 왼쪽 바깥에 시멘트 불럭으로 지은 작은 건물로 굵은 감나무 잎이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다. 바깥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엌이 있고, 그중 제일 오른 쪽이 나의 방이다. 방문은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 뒤쪽엔 작은 유리창, 연탄아궁이는 따로따로, 좁은 부뚜막, 사과상자 모로 놓은 찬장, 할부로 거금 들여 장만한 두꺼운 가정대백과사전, 그리고 침구 그것들이 살림의 전부였다. 그래도 그동안 노모께서 막내아들 걱정되어 와계셨다 가셨기에 그나마 깨끗하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