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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알피니즘의 성쇠
이영준
-목차-
서론
-알피니즘을 통해 바라본 기후변화
본론
-알프스와 히말라야의 기후변화
-산을 오르는 사람과 산을 둘러싼 사람의 위기
-기후변화에 대한 산악 커뮤니티의 대응과 비판적 검토
결론
‘대자연의 시민’이라면 ‘기후시민’으로
1. 서론
알피니즘을 통해 바라본 기후변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사이 지구 평균 표면온도는 산업화 이전인 1850년부터 1900년과 비교했을 때 1.09℃ 상승했다. 이는 46억 년이라는 지구의 역사 속에서 인류가 개입하지 않던 시기 이루어졌던 자연스런 온도 변화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빠른 변화다. 이렇듯 20세기 중반 이후 산업화의 속도가 증가하는 만큼 기후변화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의 생존, 즉 인류의 의식주에 깊은 영향을 끼쳐왔으며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정치, 사회, 문화적 변화가 직간접적으로 이어졌다. 사회 문화의 영역 중 201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알피니즘(Alpinism, 등산)’은 산에서 하는 일인만큼 이 같은 기후변화에 더욱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알피니즘이란 “모든 계절에 걸쳐 높은 산의 바위나 얼음 같은 지형을 통해 벽을 오르거나 정상에 오르는 예술적 행위”를 뜻한다. 인간이 산을 오르는 것은 이미 원시 시대부터 시작되었지만, 과거의 사람들이 산을 올랐던 이유가 채집, 사냥, 종교 등 산에 오르는 행위를 통해 얻는 부수적인 목적이 있었던 반면 알피니즘은 산을 오르는 행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알피니즘이라는 개념은 과거 수천 년 동안 악마와 용이 사는 곳으로 인간의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알프스 산맥 최고봉 몽블랑(4807m)을 초등정한 178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알피니즘은 앞서 기술한 ‘높은 산의 바위나 얼음’이라는 무대가 기반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에 민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근대 알피니즘이 산업혁명 시기로부터 시작되어 산업화를 통한 자본의 발달과 제국의 확장 속에 함께 확산되어온 역사를 돌아본다면, 이후 더욱 빨라진 기후변화와 알피니즘이라는 인간 활동의 성쇠가 궤적을 함께 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알피니즘’을 통해 기후변화의 흐름을 진단해보고 나아가 산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와 문제점을 짚어본다. 또한 이러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알피니즘 행위자와 이들의 커뮤니티인 국제산악연맹(UIAA)과 같은 산악단체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본론
-알프스와 히말라야의 기후변화
2022년에도 세계 각국의 산지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7월 3일에는 알프스 산맥의 동부, 이탈리아 돌로미테 산군의 최고봉 마르몰라다(3343m) 정상부의 빙하가 녹아 무너져 내리며 아래서 등산 중이던 사람들을 덮쳐 1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8월 초에도 마터호른(4478m) 이탈리아쪽 사면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었으며, 몽블랑의 등산 코스 중 프랑스쪽을 관리하는 생 제르베 시는 빙하가 너무 녹아 위험하다는 이유로 등산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구떼 산장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40여 년간 등반해 온 현지 가이드 페랑 라토레(Ferran Latorre)는 “빙하가 이렇게 건조하고 크레바스가 녹아 벌어진 것은 그전에 본 적이 없다”며 “가장 큰 문제는 영구 동토층이 녹으며 생기는 불안정성이다. 산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 변화는 분명해졌으며, 이것은 악몽”이라고 경고했다.
빙하는 겨울철 내린 눈이 빙결고도 이상의 높은 지대에 계속 쌓여 생성되는데, 올해 여름의 경우 알프스의 빙결고도는 5184m였다. 해발 4807m의 몽블랑은 프랑스어로 하얀(Blanc) 산(Mont)을 뜻하지만, 올해와 같은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2100년이 되면 알프스의 빙하 중 80%가 녹아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에서도 마찬가지다. 2022년 2월 발표한 미국 메인대 연구진의 보고서에 따르면, 2천여 년에 걸쳐 생성된 에베레스트 정상부의 빙하가 최근 25년 사이에 사라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 같은 변화는 1950년대부터 시작돼 1990년대 들어 급격히 가속화되었다. 연구진은 빙하가 빨리 사라진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으며, 습도 저하와 강풍 등 20가지가 넘는 요인이 빙하의 융해를 가속화하고 이로 인해 히말라야 주변 16억 인구의 식수와 관개, 수력발전 등 용수가 고갈되는 한편, 당장 에베레스트 등반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2019년 세계 각국의 연구자 300여 명이 참여해 발표한 『힌두쿠시 히말라야 평가(The Hindu Kush Himalaya assessment: Mountains, climate change, sustainability and people)』보고서도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고서는 파리기후협정에서 정한 목표대로 지구 온난화가 1.5℃로 제한되더라도 최소한 현재 히말라야 빙하의 30퍼센트가 녹을 것이며, 온실가스가 전혀 감축되지 않는다면 2100년에는 70%가 녹아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지난 50-60년간 힌두쿠시 히말라야 지역에서 여름철 극단적인 더위와 겨울철 극단적인 추위가 나타나는 빈도가 더욱 빈번해졌으며, 이러한 변화는 강설의 변화를 가져와 빙하 상태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중국, 인도, 미얀마, 네팔, 파키스탄 등 이 지역에서 산에 인접해 살아가는 2억 4천만 명의 인구가 이러한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이 산들에서 흘러내리는 양쯔강, 메콩강, 인더스강, 갠지스강 등지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먹고 살아가는 30억 명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기후 변화와 그 영향에 맞서 싸우기 위한 긴급 조치를 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산을 오르는 사람과 산을 둘러싼 사람의 위기
이 같은 기후변화는 단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2022년 6월부터 10월 초까지 계속된 파키스탄 지역 호우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올해 파키스탄에서는 평년의 몬순에 비해 평균 2-3배, 지역에 따라 최대 8배의 강수량을 기록하며 국토의 75퍼센트가 잠겨 1700여 명이 숨지고 3천만 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이러한 홍수의 원인으로는 기후변화와 이로 인한 히말라야 빙하의 융해가 꼽힌다. 피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재민들은 가을까지 계속된 폭우로 인해 농작물을 거두지 못해 식량난이 뒤따르고 있으며, 녹아버린 빙하로 인해 향후의 물 부족도 예상되고 있다.
기후변화로 고통을 겪는 피해자는 파키스탄의 산골마을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과연 기후변화를 초래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다.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 사용에서 비롯되는 이산화탄소 배출은 대표적인 온실가스 증가를 가져오는 물질로 꼽힌다. 결국 산업화와 함께 인류의 편의를 위해 사용되어온 화석연료가 이제 인류를 위기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2022년 11월 6일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 정상회의에서 자신들이 입은 홍수 피해의 원인이 선진국에 있다며 42조 원에 달하는 피해액을 배상해달라고 호소했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기후변화 총회는 인류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 약속을 내건 유일한 회의로 올해 총회는 인류에게 경종을 울렸다”며, “탄소 배출량이 아주 작음에도 우리는 인류가 만든 재앙의 피해자가 됐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2050년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이 2억1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으며, 경제평화연구소(IEP)는 세계 12억 명이 기후변화로 고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예측하는 등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산악 커뮤니티의 대응과 비판적 검토
세계 67개국 90개 산악단체가 각국을 대표해 활동하고 있는 국제산악연맹도 이러한 기후변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산을 무대로 펼치는 알피니즘이란 산이 사라지는 순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산악연맹은 1969년부터 조직 내에 산악보존위원회(Mountain Protection Commission)를 결성하고 환경보호 활동을 해왔지만, 기후변화 문제에 관해서는 비교적 늦어 2018년 탄소발자국 보고서 발간과 함께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2019년 키프로스에서 열린 국제산악연맹 총회에서는 기후변화가 핵심 주제로 다루어졌으며, 회의 끝에 산 환경 보호와 기후행동을 위해 지속해온 그간의 행동을 요약하고 향후 목표를 설정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는 기후행동 목표로 ▶환경에 대한 책임감 부여 및 증진을 위한 체계적인 활동 ▶기후변화에 대한 영향 감소 ▶기후행동 교육 ▶지속가능하고 책임 있는 소비 촉진 ▶소통을 통한 기후행동 조치 옹호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산을 존중하기(Respect Mountains) 캠페인’을 통해 발표한 7가지 행동 강령에서도 등산 중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회원국들과 공유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Respect Mountains 행동 강령> |
1. BOOK SMART – 스마트한 대상지를 골라라 덜 알려진 산을 비수기에 찾는 건 어떤가? 성수기에 가득한 인파가 산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이라도 줄이자. 2. TRAVEL WISE – 현명하게 여행하라 탄소배출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친구와 함께 대중교통 또는 카풀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나서보자. 3. SUPPORT – 지원하라 지속가능한 산악관광 산업을 목표로 삼는 친환경 브랜드를 지원하고 이용하자. 4. BE RESPECTFUL - 존중하라 산은 내 집의 뒷마당이 아니니 상관 없다는 생각은 결국 그곳을 찾는 당신이 현지인과 문화를 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산과 자연과 그곳을 찾는 다른 이들을 존중하라. 5. LEAVE NO TRACE – 흔적을 남기지 말라 버린 쓰레기는 식물과 야생동물에 대한 영향뿐 아니라 결국 계곡을 거쳐 당신에게 돌아온다. 6. RRR&U 영향을 줄이고(Reduce your impact), 재사용하고(Reuse items), 재활용하고(Recycle the waste you cannot reuse), 업사이클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라(Upcycle what you can to reinvent waste into something of new value). 7. SPREAD THE WORD – 그리고 이를 전파하라 산을 좋아하지 않는데 산을 찾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하라. |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국제산악연맹을 구성하는 산악단체 중 일부 서구 선진국이 주도하는 선언적인 내용으로만 펼쳐지고 있으며, 대부분은 형식적 참여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아직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각각의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2022년 10월 29일 캐나다 밴프에서 열린 국제산악연맹 총회에서는 산악지역의 기후변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발제 후 참가 단체들이 그룹별 토의를 거쳐 각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실천적 행동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나온 의견들은 산에서 불을 사용하는 화식(조리식) 지양, 산으로의 접근 방법에서 내연기관 이동수단 이용 지양, 산장에서의 난방 개선 등의 의견이 발표되었지만, 이러한 기후변화 문제의 핵심이 파키스탄의 홍수에서와 같이 결국 자본과 국가와 계급으로 연결되는 전 지구적 사회문제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뼈저리게 닿아있다는 데까지는 가닿지 않았다.
이러한 인식의 한계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1970년대 중반 사단법인 한국산악회의 이은상 회장이 국제산악연맹 산악보존위원으로 피선된 것과 함께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기 자연보호헌장 제정에 참여하는 등 환경보전에 대한 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도 당시 벌였던 산 쓰레기 줍기와 같은 캠페인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역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은 다르지 않다, 특히 최근 업사이클링을 표방한 다양한 등산아웃도어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브랜드들의 협찬을 받아야 하는 산악단체는 그린 워싱의 문제에 대해 관심 갖지 않을 뿐더러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3. 결론
‘대자연의 시민’이라면 ‘기후시민’으로
기후변화의 문제는 몇몇 사람만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우리는 모두 공감한다. 그리고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도 우리는 고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때문에 기후변화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이 세계의 모든 국가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며, 복잡다단한 이해관계 속에서 어느 한쪽의 의견만을 따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은 안다. 때문에 국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참여에 따른 정치적인 결정들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 수많은 토론을 통한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어야 한다.
알피니즘은 태생부터 산업화와 함께 흐름을 같이 해왔기에 기후변화의 속도대로라면 이제 그 소멸이 눈앞에 보이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알피니즘과 산업화의 시작과 함께 인류는 ‘용과 악마의 공간’이던 봉건사회를 벗어나 혁명과 함께 근대의 ‘시민’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1876년 미국 최초의 산악회인 애팔래치안 산악회에서 주창한 ‘대자연의 시민권(Outdoor Citizenship)’이라는 개념은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자연을 대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지켜야 하는 의무를 제시했다. 이는 곧 산을 오르는 사람으로서 기후변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맞닿는다. ‘대자연의 시민’이 ‘기후시민’으로서 다시 거듭나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 시민들의 사회를 이루는 나와 이웃들이 해야 할 일은 기후변화에 관한 고상한 덕담이나 주고받는 게 아니라, “급작스런 집중호우에 배수가 역류하는 도시의 반지하방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인지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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