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구약성경 인용)
마가복음 10장 23-25절『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다. 마태복음 3장 16절『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이 성령이 예수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위에 임하시고, 그 다음에는 사탄에게로 예수를 이끌어갔다고 한다. 마태복음 4장 1절『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태복음 3장 17절에서『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라고 해도, 사탄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아들이 유보되는 것이다. 세가지 시험은 복음과 율법을 섞는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하는가,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주인인가 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세례받는 신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시험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간 후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먹을 것이 부족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고, 율법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지 못한 것이다. 결국 가나안 땅 앞에서 열두 정탐꾼이 정탐하고 돌아온 결과 들어가면 죽는다 라는 말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하게 믿지 않은 것이다. 출애굽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를 제외하고 장정만 육십만이었고, 여자를 포함하면 백만이 조금 넘는 백성들이었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땅을 주신다고 믿은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단 두 사람이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간 지내다가 다 죽은 것이다. 물론 출애굽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심판당하여 죽은 것이다. 이로 보면, 남은 자의 구원은 단 두명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로마서 9장 27-29절『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앞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의 죄로심판받지만, 그 중에서 남은 자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뒷부분에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유다 아하스 왕에게 전하는 말이다. 아하스 왕은 우상숭배와 몰렉 등 가증한 제사를 행했다. 하나님은 분노하시어 이방 나라를 동원하여 유다를 치게 하셨다. (열왕기하15장 37절).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유다를 쳐서 죄악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여 돌이키기를 원하신 것이다. 그러나 유다의 아하스 왕은 돌이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북 이스라엘과 알람의 공격을 허용하신 것이다. 백성들은 이들의 공격에 심히 떨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유다를 지켜주실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면서 징조(표적)를 구하라고 했다.
이사야 7장 14절『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는 이 말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유다는 여자를 상징한다. 유다는 온갖 우상숭배에 찌든 나라였기에 하나님이 새롭게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래서 처녀는 새로 시작하는 유다를 의미한다. 그동안 우상숭배로 오염되어 있는 나라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아하스는 다윗의 후손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마음에 맞는 자라고 인정하셨다. 하나님은 아하스가 다윗과 같은 그런 자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들로 하시겠다는 것이다. 아들은 바로 새로 태어나는 나라의 왕 아하스가 될 것이다. 이는 엄청난 징조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아하스가 비록 죄가운데 있었지만, 우상숭배를 회개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기를 바라신 것이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는 아하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이 앞에서 싸우시므로,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물리쳐 줄 것이라고 이사야가 전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하나님께서 징조를 구하라고 했는데 아하스 왕은 징조를 구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포장은 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이유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었다. 하나님은 아하스가 이렇게 말을 할 것에 대비하여 이사야에게 아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그것은 이사야의 아들이 가진 이름 때문에 그렇다. 이사야의 아들의 이름은 스알야숩인데,『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남은 자에 대해서 이사야 6장 13절에서 말한다.『그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거룩한 씨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은 자는 그루터기와 같이 살아있게 된 것이다. 모두 심판받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자는 얼마없었지만 구원받는다는 말이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하나님 백성이 되는 자는 세례받고 사탄의 세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율법을 떠나 부활생명을 믿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자, 하나님 자리에 있던 자기를 부인하는 자이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재물이 있는 부자이야기는 세상으로 돌아가는 자를 상징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재물이 없을 수 없지만, 부자는 탐욕을 가지고 재물을 모으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비유하여『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했다.
이스라엘 성문은 저녁이면 닫히는데, 성문의 아래 부분에 바늘귀라 불리는 작은 문이 있었다. 낙타가 짐을 싣고 밤에 성문에 이르러서는 도둑을 피하기 위하여 성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모든 짐을 풀고, 낙타 다리를 묶어서 겨우 성 안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다. 쉽게 그 작은 문으로 들어갈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부자는 이보다 더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표현이다. 이게 남은 자의 구원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을 하지만,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며, 부활생명을 받은 자는 율법에서 벗어나므로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었다고 해도 믿지 않는 것이다. 또한 부활이 죽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믿으므로, 현재적 부활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복음을 믿지만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영적 간음을 행하는 현실이다.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언젠가 하늘 문이 닫히면, 이삭줍기의 바늘귀처럼 남은 자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비록 극히 적은 숫자이지만, 자신들이 믿은 복음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불 같은 시험 속에서 견디어 남은 자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