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1 주일설교
저도 아빠가 있어요
로마서 8:14-18
사람이 자기 입으로는 거의 말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자주 듣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 이름입니다. 이름은 내 것이지만 주로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죠.
그런데 저는 이름 외에도 그런 단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듣기는 많이 하지만 제 입으로는 단 한 번도 말해보지 못한 단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빠’라는 단어입니다. 제가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아빠가 없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아빠 대신에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빠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엄하고 무서운 분이셨는데 제가 스무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아버지 대신 새로운 아빠가 있습니다. 저의 새 아빠는 어머니가 다시 결혼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저의 새로운 아빠는 바로 하나님 아빠입니다.
1. 아빠(Ἀββᾶ)
하나님 아버지를 갑자기 아빠라고 할 때 여러분이 조금은 의아하게 느끼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 아빠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의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원래 지옥에 갈 죄인이었는데 지금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겨우 들어갈 자격만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으로 당당히 천국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입양(入養)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養子)와 양녀(養女)가 되었습니다. 양자는 아무래도 친자보다 서먹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기서 아빠(Ἀββᾶ)는 아람어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세계 공용어는 헬라어였지만 이스라엘서는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는데 중간에 종종 아람어가 나옵니다.
아람어로 아빠(Ἀββᾶ)라는 말은 유아들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막 젖을 뗀 아기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압바, 임마라고 불렀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Ἀββᾶ라는 단어가 세 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을 일명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그 기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Πάτερ)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는 하나님을 아빠(Ἀββᾶ)라고 부르셨습니다.
(막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아버지(Πάτερ) 대신 Ἀββᾶ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도 너무 힘드실 때는 Ἀββᾶ라고 부를 수 있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처음으로 아빠라고 부르신 하나님을 사도 바울은 우리도 아빠라고 부르게 하셨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말은 로마서 8장뿐 아니라 갈라디아서에도 나옵니다.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아버지와 아빠는 같은 분이지만 같은 분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아버지는 있어도 아빠는 없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저에게도 아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아빠입니다. 친근한 아빠, 나를 사랑하는 아빠, 내 편이 되시는 아빠입니다. 아빠는 내가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아빠는 내가 실수해도 또 용서해 주십니다. 남들 눈에는 예쁘게 보이지 않아도 우리 아빠는 나를 예쁘다고 하십니다.
저뿐 아니라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은 아빠이십니다. 하나님은 엄격하시고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다정한 아빠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아빠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가장 예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는 아빠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아빠가 되시려고 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 우리가 죄의 노예, 사탄의 노예가 되어 있을 때 저와 여러분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죽게 하심으로 저와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입양하여 양자와 양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시면서 우리더러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우리 아빠는 우리는 정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누가 우리의 죄를 지적하면 하나님은 즉시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키면서 그 값을 다 치렀다고 대답하십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2. 기도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거렁뱅이도 아닙니다. 우리는 위대한 왕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거렁뱅이처럼 살면 우리 아빠가 속상해하십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고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하는 못된 원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억울하고 원한 맺힌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도 없고 돌봐주는 가족도 없었습니다. 그 여자가 원님에게 찾아가서 자기 원한을 좀 풀어달라고 사정했지만, 번번이 무시당했습니다. 그래도 그 여자는 날마다 원님을 찾아갔습니다. 결국 이 원님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저 여자 소원을 안 들어주면 귀찮아서 못 살겠구나. 그래서 그 여자를 불러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은 우리 자꾸 매달리면 하나님이 귀찮아서 응답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너희 아빠가 너희 기도를 안 들어 주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빠에게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빠로 인정하지 않고 멸시하는 것입니다.
작년에 제가 하나님이 기도 응답을 글자대로 하셨다고 간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도 그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용인의 국회의원 중에 정춘숙 의원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라는 것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의 문제는 가정의 정의를 삭제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거만 해도 가정이 됩니다. 동성결혼도 합법화됩니다. 그들은 차별금지법이 저지당하자 이런 우회전략을 사용한 것입니다.
지난 2월 17일에 정춘숙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문제를 위해 기도하면서 저는 다니엘을 위해 사자의 입을 봉하신 것처럼 여가위 위원들의 입을 막아 달라고 했습니다.
16일 저녁에 가족 기도회에서도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17일 오전에는 영하 10도의 날씨에 여러 목사가 정순축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법안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들려온 소식은 위원회에서 그 법안을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위해 어떻게 사자들의 입을 봉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가위는 왜 그 법안을 다루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 우리 아빠께서 그들의 입을 막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빠는 저의 기도를 글자대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필요가 무엇입니까? 소원은 무엇인가요? 아빠에게 이야기하세요. 그 기도가 아빠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혼내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부드럽게 타일러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는 여러분이 자녀를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3. 가족
아버지의 자녀와 아빠의 자녀는 다릅니다. 아빠의 자녀는 아직 아빠의 품 안에 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열 명은 아버지의 아들이었지만 사랑스러운 요셉과 베냐민은 아빠의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빠의 아들, 아빠의 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한 가족입니다. 이 땅에서도 한 가족이지만 영원한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한 가족으로 살 것입니다.
한 가족은 서로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빠의 자녀는 가족의 안부를 챙기고 가족을 기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가족 하나가 아프면 다 함께 걱정합니다. 가족은 서로 잘되도록 기도하고 격려합니다. 사촌이 잘되면 배가 아프지만, 가족이 잘 되면 안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저와 제 가족은 날마다 성도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좋게 말할 때, 저와 제 목사 가족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가족에게 관심을 가지고 가족을 아끼며 기도해주는 즐거운 의무를 잊지 마시라고 요즘 우리가 천사 게임도 하고 있습니다.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복됩니다. 천사 역할을 잘 감당하여 여러분 모두가 행복을 누리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거입니다.
4. 가정
가족은 가정을 함께 세웁니다. 요즘 드물지만 8남매, 10남매 가정이 있습니다. 10남매의 맏이는 거의 부모님 역할을 합니다. 동생 공부도 봐주고 음식도 챙겨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같이 놀아줍니다. 한 아빠의 자녀는 그렇게 가정을 세워나갑니다. 한 아빠의 자녀는 형이나 언니가 취직하면 동생들 용돈도 챙겨줍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으로 안 아빠의 자녀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엄마는 나를 낳아서 기르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하나님 아빠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의 생명을 지불하셨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사랑하고 함께 세우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영적인 가정인 교회를 반듯하게 세우도록 기도하고 힘을 합치시기 바랍니다.
5. 새 규율
그런데 아빠의 자녀는 한 가지 힘든 것도 있습니다. 고아 소년이 부자 아빠의 자녀로 입양되어 저택에 들어가면 지켜야 할 규율을 배워야 합니다. 그 규율은 노숙자로 살 때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때로 그 규율은 불편합니다. 저택에서는 일어나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인사하는 방법, 말하는 방법, 걷는 방법, 먹는 방법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공부도 해야 합니다. 규율을 잘 안 지키면 아빠가 부드럽게 타이르지만 계속 어기면 정해진 벌칙이 따릅니다. 그것을 징계라고 합니다. 하나님 아빠가 우리를 징계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아빠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히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징계를 받으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은 손해가 아니라 복되고 영광스러운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입양하신 하나님 아빠는 우리가 고아처럼 살도록 두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멋진 아들과 딸로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잠시 눈을 감아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아빠라고 좀 불러보세요.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습하면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대로 눈을 감고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 아빠, 우리를 입양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빠이시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아빠에게 기도하고 의논드릴게요. 그리고 아빠가 시키는 대로 순종할게요.
아빠, 아빠의 아들과 딸인 우리 가족들을 사랑할게요. 매일 가족을 생각하고 챙기고 가족에게 좋은 일이 있도록 기도할게요.
그리고 우리 영적 가정인 교회도 함께 세워나갈게요. 또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구원해서 우리 가족이 더 늘도록 할게요.
저는 하나님 아빠의 규율을 잘 배워 순종하도록 할게요. 잘하지 못하면 잘 타일러서 아빠의 자녀답게 살게 해주세요. 멋진 아들, 멋진 딸이 되게 도와주세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