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디럼 보호구역, 저리도 무심한 바람만 부는 땅에는 그저 그런 풍경들만
있으려니했다. 그러나 발디디며 걸어본 붉은 땅에는 그 땅의 주인이었던 바람과 바위가 빚어둔 잠들어 있는
풍경들이 있었다. 부르다록브리지(해발 약1400m), 페트라,
그리고 그 척박한 땅 위에서 함께 풍경을 만들었던 사람들, 알카즈네, 수천년전 붉은 마음들은 시간을 넘어 뛰어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시크(협곡),
가이드: 이곳은 숨겨진 왕국이었죠.
누구도 이런 산 가운데에 왕국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경이로운 자연과 역사가 숨쉬는 땅, 요르단을 걷는다. 요르단은 중동의 심장부에 위치한 나라다. 면적은 남한보다 조금 작지만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명과 종교가 오고갔던 신화와 역사의 땅, (암만-와디무사-자동차로 약 5시간 소요). 왕의
대로를 달려 남쪽으로 향한다. 요르단을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왕의 대로는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중요한
교통로 중 하나. 지금은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의 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국토의 약 80%가 사막인 요르단은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금새 모랫바람에
휘말리기 일쑤, 한줄기 희망 같을 도로에 의지해 사막을 달린다. 한낮
사막의 역기가 강력해질 때쯤 멀리 신기루 같은 도시 하나가 나타난다, 와디무사, 페트라 초입에 자리한 이 도시는 왕의 대로에 있는 주요 기착지 중에 하나다.
와디무사는 아랍어로 모세의 계곡이란 뜻으로 모세가 사람들을 이끌고 이곳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갔다고 전해진다. 아득한 모세의 시간을 거슬러 돌라가는 여정을 바로 이 곳에서 시작한다.
이상은/산악 사진가: 왕의
대로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길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박해를 피해 유대인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갔던 요르단의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이어지는 이 길을 예정엔 아라비아 상인들이 다녔고 지금도 우리
같은 여행자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와디무사-페트라 초입에 있는 와디무사는 여행자들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숙소가 없는 페트라를 대신해 먹거리도 쉴 곳도 내어주는 곳,
고대에는 페트라에 물을 공급한 곳도 바로 이곳, 와디무사였다고 한다. 이곳에 샘물을 수로로 이어 페트라까지 연결했다고 하는데 일년내내 마르지 않는다는 그 샘에 모세의 모세의 일화가
전한다.
가이드: 모세의 여정 중 행한 기적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만약 물을 원한다면 지팡이를 써라’ 라고 하셨던 이야기가 있는데요. 바로 이 바위가 모세가 지팡이로 쳐서 물이 솟아나게된 그 바위입니다, 모세의
샘,
그 옛날 광야의 방랑에 지친 모세 일행을 달랬을 샘물은 지금도 주민들의 중요한 식수, 자발하룬산(해발 1350m) 그와
함께 이곳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온 사람이 있다. 자발하루는 아랍어로 아론의 산이란 뜻, 이론은 모세의 형의 이름이다. 모세의 옛 자취를 따라가는 이번 여정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흔히 기독교 성경의 이야기로만 일고 있지만 사실 모세는 이곳 현지인들이 믿는 이슬람교에서도
추앙받는 성인, 그의 형 아론도 마찬가지다. 지나간 시간을
가늠해 본다. 길은 내내 잊을 수 없었을 그 이야기들을 또 얼마나 담고 있을까. (와디무사-자발하룬산 트레일 입구:
자동차로 약 2시간 소요).
자발하룬산(해발 1350m)을
오르는 트레킹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40도까지 오르내리는 한낮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고대인들이 걸었던 그날의 길처럼 여전히 흙과 바위로 뒤덮힌 길,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을 풍경을 디디며 페트라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이자 가장 높은 산인 자발하룬으로 갔다.
이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페트라에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고대의
사람들과 더욱 가까워지는 기분이에요. 당연하죠. 정말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브라함/가이드: 페트라는
기원정부터 기원후까지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에요. 우리의 조상인 나바테인들이 이렇게 광장하고 아름다운
유적을 페트라에 남긴 거죠. 그래서 우리는 페트라에 더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 겁니다.
이상은: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돌이나 바위를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도시의 일부가 바위가 아니고요. 도시 전체가 바위인 심인데 그 건물들을
다 새겨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그런 신비로운 곳입니다.
기원전 6세기 나바테아인들이 꽃피웠던 찬란한 도시 페트라, 그러나 몇차례의 대지진으로 페트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무려 천년도 넘게 지난 19세기초, 사막의 길을 떠돌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한 탐험가에 의해서였다. 신화처럼 전해오던 이야기가 어느날 문득 현실의 역사가 되어 다가오는 곳, 그리고
아직도 많은 이야기들이 길을 따라 떠도는 곳, 자발하룬산(해발
1350m)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자발하룬산 정상에는 선지자, 혹은 이스라엘 민족 최초의 제사장으로 불리는 아론의 무덤이 있다고 전한다 (아론
성지). (자발하룬산 트레일 입구-자발하룬산 정상-페트라 총 7.5km, 약7시간
소요).
이상은: 안녕하세요. 처음
만나는 트레커이군요. 페트라는 어땠나요?
랄라/프랑스: 아름다워요. 직접 이 광경을 보지 못하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엄청 거대하고 별의별 게 다 있어요. 댐도 있고 사원도 있고요.
찰리/프랑스: 나바테아인들의
문명이 남아있고 자연과 풍경이 어우러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3시간여를 걸어 산 초입에 닿는다.
이정표 하나 없는 길이라 홀로 오기엔 위험이 따르는 길, 현지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이상은: 참, 오래된 길이다.
내내 척박했던 땅은 산으로 오르는 길을 내면서 조금 더 험해진다.
이브라함: 모세의 형인 아론과 관련된 이야기가 이곳에 엮어 있어요. 약속된 땅을 찾던 중 선지자였던 아론은 이 길에서 생을 마감했죠. 그래서
사람들이 아론의 이름을 따서 이곳을 ‘아론의 성지’라고 부릅니다. Shrine of Aaron.
아론은 모세를 도와 핍박받던 이스라엘인들을 탈출시킨 인물이다. 모세의
대변인 그리고 종교적 사제로서 무리를 이끌던 그는 광야의 시련을 겪으며 세상을 떠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은 팍팍하기 짝이 없어 페트라의 여러 트레일 중에서도 제법 난이도가 있다는 길, 그래서 열정있는
여행자나 순례객이 아니면 좀처럼 오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이상은: 이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굉장히 힘들 것 같은데, 고대 사람들은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살았던 거죠?
이브라함: 과거의 사람들은 이런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어요. 여기 있는 나무처럼 사람들도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거죠. 베두인족은
이 일대의 환경을 잘 알고 있었어요. 물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고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죠. 고대부터 베두인족은 이곳에서의 삶의 방식을 익혀 온 겁니다.
일년 강수량이라 해봤자 100mm 내외 베두인족들이 처음 이곳에 자리잡았던
6세기 즈음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 후로
수백년 베두인들은 이곳에 풍경이 되었다. 혹자는 사막의 주인이라 말하지만 그들은 그저 사막과 더불어
사는 유목민으로서 여행자들의 안내자로서 오가는 바람처럼 살아왔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들의 삶의
방식은 페트라와 와디럼의 베두인 문화공간이란 이름으로 지난 2008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자갈로 뒤덮힌 돌길은 계속된다. 오를수록
가팔라지기도 험해지기도 잘하는게 산이지만 절반을 넘어 오르는 동안 한번도 쉬이 길을 내주지않는 산, 이리저리
깔린 돌들은 사막의 생명들에게만 그늘이 되어줄 뿐 뙤약볕을 걷는 여행자들에겐 제법 가혹하다.
이상은: 지평선을 따라 수많은 바위산들이 보이네요. 이곳에서는 길이 보이지 않아요.
가이드: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자주 다니던 길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길을 약속의 땅으로 이동하는 최적의 경로였죠. 이집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요르단 어디에서든 ‘약속의 땅’은 성지라고 불었어요.
이상은: 햇볕도 강렬하고 매우 건조하군요. 우리 지금 이 길을 같이 가고 있는 아브라함(베두인족) 그리고 그의 아들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덩키를 몰고 함께 길을 걷다가
아버지가 로컬 가이드하는 것을 보면서 이 꿈을 키워가는 거죠. 고대 아라비아 사막을 누비던 부족들 중에
나바테아인들이있었는데요. 그 나바테아인들이 세웠던 도시가 바로 페트라입니다. 이곳도 황량하고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곳이 바로 여러 나라들이 교차했던 그 지점이고요. 아라비아 상인들의 무역거점이기도 해서 큰 번영을 누렸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길에서 사라져 간 시간들이 꿈틀댑니다. 단 한 걸음도
편치않았을 산악의 길을 열고 붉은 문명을 꽃피웠던 사람들, 그제야 깨어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막막하던
풍경이 제 빛을 찾는다. 정상을 앞두고 암벽 사이 좁고 가파른 계단 길이 시작된다.
이상은: 진짜 인디아나 죤스가 갔던 길을 가는 것 같은데요.
험한 바위 벽 사이에 새신이듯 내어준 계단, 이곳 사람들이 아론의
성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느끼게 한다. 실제로 순례자들이 아니면 개방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계단 길 오르기를 십여분 마침내 페트라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 자발하룬의
정상에 도착한다.
가이드: 이곳이 바로 아론의 성지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죠. 사실 아론은 시나이 반도에서 죽었는데 그의
시체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해요. (맘루크 왕조의) 술탄 ‘알 나시즈 무함마드’는 모세의 형 아론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1320년에 이 성지를 세웠고 매년 페트라에서는 축제를 엽니다. (아론의
성지내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모세와 아론 형제는 모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신의 명령에 불복했던 길지 않은 순간에 대한 벌, 여기에 자발하룬에 서면 신에 대한 경외와 자연에 대한 존귀가 동시에 느껴진다.
순례객에게도 여행자에게도 쉽게 잊히지 않을 붉은 산,
다시 광야로 내려선다. 이제 모세이후 가장 강력하게 기억된 이 땅의
역사를 만나러 갈 시간, 그 어느 날의 사람들 처럼 마르지 않을 걸음을 잇는다. 경이러운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를 만나는 요르단 두번째 이야기, 바위산이
숨겨둔 붉은 반구 페트라다. 높이 200m를 넘나드는 거대한
협곡 사이 고대인들이 남긴 신비한 불가사의,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여정은 요르단 최고봉을 향해 달려간다. 사막을 가득채운 붉은 기암들의
향연, 뜨거웠던 그 길의 이야기가 다음 시간에도 이어진다.
이상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아요. 화성이나 달 같은 곳이요. 끝. (KBS
영상앨범 산 성탄기획 “요르단 1부 모세의 길, 자발하룬산 트레일”에서 정리).
① 6년전 2013년 1월, 요르단
성지순례로 페트라를 갔었다. 시크 협곡을 걸어서 알카즈네까지, 지금
다시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때 페트라 풍경이 생각난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돌이나 바위라는 뜻, 모세와 아론이 유대인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가면서 머문 곳, 살아가는
데 모든 것을 다 갖춘 찬란한 문화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바위, 세계
7대 불가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
② 페트라 지역에서 가장
높고 신성한 자발하룬산(1350m)은 아론의 성지로 유명, 아론은
모세의 형, 출애굽 당시 대제사장, 아론은 에돔 땅 변경
호르산에서 123세로 죽다(민20:22-29, 33:39), 그의 시체를 이곳으로 옮겼다. 맘루크
왕조의 술탄은 아론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1320년에 이 산에다 성지를 세웠다고, 아론 형제는 모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신34:7).
③ 페트라는 기원전 6세기 나바테아인(베두인족)들이
세운 도시로 여러나라들과 아라비아 무역상인들의 거점으로 큰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몇차례 대지진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19세기초 페트라에
관심이 많은 한 탐험가에 의해서 발굴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자발하룬산 정상에 아론의 성지, 자발하루는 아랍어로 ‘아론의 무덤’이란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