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1-3-⓵ | 采采卷耳호되 | 채채권이 | 卷耳를 뜯고 뜯되 | ||
不盈頃(傾)筐하여서 | 불영경광 | 기운 광주리에도 채우지 못하고서 | |||
嗟我懷人이라 | 차아회인 | 아 내 임을 그리워하는지라 | |||
寘彼周行호라 | 치피주항 | 저 큰길가에 버려두노라 |
賦也라 采采는 非一采也라 卷耳는 枲耳니 葉如鼠耳하고 叢生如盤이라 頃은 也라 筐은 竹器라 懷는 思也라 人은 蓋謂文王也라 寘는 舍也라 周行은 大道也라 |
賦이다. 采采는 한 번만 뜯는 것이 아니다. 卷耳는 시이(枲耳)이니, 잎이 서이(鼠耳)와 같고 총생(叢生)하여 쟁반과 같다. 경(頃)[경(傾)]은 기욺이다. 광(筐)은 대그릇이다. 회(懷)는 그리워함이다. 사람은 아마도 文王을 가리킨 듯하다. 치(寘)는 버려둠이다. 周行은 큰 길이다. |
○ 后妃以君子不在而思念之라 故로 賦此詩라 託言 方采卷耳호되 未滿頃筐하여 而心適念其君子라 故로 不能復采하여 而之大道之旁(傍)也라 |
○ 后妃가 남편[君子]이 집에 계시지 않아 그를 그리워하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 詩를 읊은 것이다. 그러므로 가탁(假託)해서 말하기를, “막 卷耳를 뜯되 기운 광주리에도 채우지 못하고서 마음에 마침 그 君子를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더 이상 뜯지 못하고 큰길가에 버려두었다.”고 한 것이다. |
Ⅰ-1-3-⓶ | 陟彼崔嵬나 | 척피최외 | 저 높은 산에 오르려 하나 | ||
我馬虺隤인댄 | 아마회퉤(회퇴) | 내 말이 鄙陋먹었으니 | |||
我姑酌彼金罍하여 | 아고작피금뢰 | 내 于先 저 금 술잔에 술을 부어 | |||
維以不永懷호리라 | 유이불영회 | 길이 그리워하지 않으리라 |
賦也라 陟은 升也라 崔嵬는 土山之戴石者라 虺隤는 馬罷(피)하여 不能升高之病이라 姑는 且也라 罍는 酒器니 刻爲雲雷之象하고 以黃金飾之라 永은 長也라 |
賦이다. 척(陟)은 오름이다. 최외(崔嵬)는 土山이 돌을 이고 있는 것이다. 훼퇴(虺隤)는 말이 파리하여 높은 데 올라가지 못하는 病이다. 고(姑)는 且=于先이다. 뇌(罍)는 술그릇인데, 구름과 우뢰의 形狀을 새기고 黃金으로 裝飾하였다. 永은 긺이다. |
○ 此又託言 欲登此崔嵬之山하여 以望所懷之人而往從之나 則馬罷病而不能進이라 於是에 且酌金之酒하여 而欲其不至於長以爲念也라 |
○ 이는 또 假託하여 말하기를, “이 최외(崔嵬)의 산에 올라가서 그리워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따라 가고자 하나, 말이 파리하고 病들어 能히 나아가지 못하니, 이에 우선 금 술잔에 술을 부어 길이 그리워함에 이르지 않고자 한다.”고 한 것이다. |
Ⅰ-1-3-⓷ | 陟彼高岡이나 | 척피고강 | 저 높은 산마루에 오르려 하나 | ||
我馬玄黃인댄 | 아마현황 | 내 검은 말이 누렇게 되었으니 | |||
我姑酌彼兕觥하여 | 아고작피시굉 | 내 우선 저 뿔잔에 술을 부어 | |||
維以不永傷호리라 | 유이불영상 | 길이 서글퍼하지 않으리라 |
賦也라 山脊曰岡이라 玄黃은 玄馬而黃이니 病極而變色也라 兕는 野牛니 一角, 靑色이요 重千斤이라 觥은 爵也니 以角爲爵也라 |
賦이다. 산등성이를 강(岡)이라 한다. 玄黃은 검은 말이 누렇게 된 것이니, 病이 甚하여 色이 變한 것이다. 시(兕)는 들소이니, 뿔이 하나이고 靑色이며, 무게가 千斤에 이른다. 굉(觥)은 술잔이니, 들소의 뿔로써 술잔을 만든 것이다. |
Ⅰ-1-3-➃ | 陟彼砠矣나 | 척피저의 | 저 石山에 오르려 하나 | ||
我馬瘏矣며 | 아마도의 | 내 말이 瘏=病들었으며 | |||
我僕痡矣니 | 아복부의 | 내 馬夫가 痡=病들었으니 | |||
云何吁矣오 | 운하우의 | 어찌 나로 하여금 한숨짓게 하는가? |
賦也라 石山戴土曰라 瘏는 馬病하여 不能進也요 痡는 人病하여 不能行也라 吁는 憂歎也라 爾雅註에 引此作하고 張目望遠也라하니 詳見何人斯篇하니라 |
賦이다 石山에 흙을 이고 있는 것을 저(砠)라 한다. 瘏는 말이 病들어 나아가지 못함이요, 痡는 사람이 病들어 길을 걷지 못하는 것이다. 吁는 근심하고 歎息함이다. 《이아(爾雅)》의 註에 이 詩를 引用하면서 盱로 되어 있고, “눈을 뜨고 멀리 바라보는 것이다.” 하였으니, 이에 대한 解說이 〈何人斯篇〉에 자세히 보인다. |
卷耳四章이니 章四句라 |
此亦后妃所自作이니 可以見其貞靜專一之至矣라 豈當文王朝會征伐之時어나 里拘幽之日而作歟아 然이나 不可考矣라 |
이 또한 后妃가 스스로 지은 것이니, 그 貞靜하고 專一함이 至極함을 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文王이 朝會가고 征伐을 나갔을 때이거나 羑里의 監獄에 拘束하여 幽閉되어 있던 때를 當하여 지은 듯하다. 그러나 詳考할 수 없다. |
* 羑里獄: 殷나라 紂王이 周나라 文王을 幽閉한 곳. |
周南 第3篇 권이4장(卷耳四章) 經文 다시 읽기 |
1章) 采采卷耳호대 不盈頃筐하야서 嗟我懷人이라 寘彼周行호라 |
2章) 陟彼崔嵬나 我馬虺隤란대 我姑酌彼金罍하야 維以不永懷호리라 |
3章) 陟彼高岡이나 我馬玄黃이란대 我姑酌彼兕觥하야 維以不永傷호리라 |
4章) 陟彼砠矣나 我馬瘏矣며 我僕痡矣니 云何吁矣오 |
* 參考 1. 詩傳 附諺解 (天卷) 學民文化史. 2. 傳統文化硏究會 DB. |
3. cafe.daum.net/well48/Um4I/10 家苑 이윤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