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6월경에 아버님이 결핵에 걸려 전주 모 병원에 입원하여 그해 12월에 팥알 만한 갑상선 종양을 발견했으며 항암 주사를 지역 대학병원에서 맞았고 다음해 1983년 8월에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아버님 연세가 49세 현재 제나이보다 11년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요즘에 와서 알기로 당시에는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에서도 암을 수술만하고 항암주사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5년 무렵 어머님이 옆집 개에 물려 척추가 깨지고 살이 찢겨지고 살이 갈라져 지역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피검사만 하고 집에 누워 계셨습니다. 누워서 어머님은 돌아눕지도 못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님은 "병원에서 일주일동안 피검사만하고 약처방하나도 안해 주더라!"하셨다.
"엄마! 절간에 있는 돌부처보다는 살아있는 아들이 나으니까 기다려 보세요!"하고 말하자. "그럼! 우리아들 믿지!" 하셨다.
나는 두시간 동안 생고무줄 처럼 굳어 있는 어머님의 신경과 혈관을 녹여 풀었고, 어머님은 "아이고 이러다가 우리 아들 죽이겠네!" 말씀하시고 벌떡! 일어나셔서 커피를 끓여 타주셨다.
수년이 지난뒤에도 어머님은 "그때 네가 만져 주니까, 천근만근 무거웠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더구나!"하셨다.
나는 지난달부터 대한민국의 유일한 암환자촌, 서종면 명달리에 들어가 한달동안 무료치유를 해주었다.
나의 계획은 3년이다. "암환자는 죽는다, 단.생명의 연장만 있을뿐!"이라는 의학적 판단과 사회 통념을 깨고, 희망을 주고자 명달리에 들어섰다. 의학적으로 100프로 죽는다고 결정되었해도, 100프로 살수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은 몇년은 더 살수있고, 좀 더 가치있는 삶을 살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대체로 암환자들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주고 내가 온 곳으로 돌아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