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교, '조금 일찍 도착해야지'하고 7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평소면 20분이면 가는 거리니, 8시 10분이면 도착하려나 했는데 아뿔싸. 출근 시간 교통 정보를 확인하지 못했네.
차가 도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차라리 이럴거면 운전 스트레스 없이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8시 40분이 다 되어 구름산에 도착했다.
학년 선생님들께 드리려고 후리지아 꽃 11다발을 들고 낑낑 계단을 올라갔는데, 우리반 복도 앞에 몇몇 아이들이 서성인다.
'아. 제일 먼저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을 맞이하려고 했는데..'
이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웃음을 보이며 교실 문을 열어주었다.
간단히 아이들과 몇 마디. '안녕하냐, 학교는 걸어왔냐, 방학은 잘 보냈냐' 하다가
컴퓨터를 키고, 꽃병에 물을 떠와 샛노란 후리지아 꽃을 꽂고, 잔잔한 아침 클래식 음악을 틀고, 아침을 열었다.
8시 55분이 되자 모든 아이들이 책걸상에 착석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지각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다니...
먼저 시업식이라하여 교장 선생님 말씀부터 듣자하니, 아이들이 나를 궁금해하는 것 같아 교사 소개부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름은~"하고 말하는데 눈치가 빠른건지 없는건지, 한 녀석이 "김지혜요!"라고 소리친다.
첫날 아침부터 튀는 녀석은 각별히 애정을 쏟아야 하는 아이이다. "맞아요. 어떻게 알았을까?" "뒤에 적혀 있어요. 김지혜 선생님 소개서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칭찬을 바라는 아이의 눈빛.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들이 만들어주어 뒷 게시판에 붙여놓은 '노랑꽃 사용 설명서'를 아침 시간에 용케도 찾아 빠르게 읽어보았나보다. "맞아요. 선생님 이름은 김지혜예요. 혹시 선생님 아는 사람? 선생님 본 사람 없어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데 한 아이가 머뭇거리며 손을 들어 말한다. "저는 복도에서 본 것 같아요."
그래? 복도에서 봤다고? 그럴리가 나는 오늘부터 여기 처음으로 근무하는 사람인데...
처음 본 사람도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말하는 스킬은 엄청난 사회성의 발로이다. 이 아이는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2블럭에 공동체 놀이를 하고서 가장 많은 술래가 된 이 아이는 스스로 자진해서 춤추고 노래부르기를 요청하여 신나게 수행한 아이가 되었다.
3월 새 날, 아이들의 반응 하나 하나 놓칠 수 없다. 초반에 아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구름산 초등학교에 처음 왔으니 너희들보다 학교를 모른다고, 선생님을 잘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흥미로워하는 표정들이다. 약간 뿌듯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학교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나보다 선배다. 괜히 아는 척 하다가 나중에 뽀록나면 도도한 체면에 흠집이 날테니 처음부터 숙이고 도와달라고 해야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에게 이리저리 핀잔은 주더라도 측은한 마음으로 도와주려고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잘 하는 것 세가지, 못 하는 것 세가지 소개, 진진가 게임>을 했다. 첫 날에 늘 하는 것이라 이젠 별 준비도 안한다. 그냥 그 날 생각나는 걸 말하는 정도.. 얼마 전에 게임장에서 40발 총 쏴서 40발 다 맞췄다 하니 나에게 경이로운 눈빛을 보낸다. 인형도 땄다고 자랑했다.
이제 아이들이 자기 소개를 하는 차례이다. '자기소개'라는 시를 이용했다. 가운데를 비워 동그랗게 자리 잡고 앉아 감정 카드들을 보고 아이들은 자기 감정을 이야기했다.
시 그대로는 하지 않고, '나는 설레는 박진영이야', '나는 설레는 박진영 옆에 신나는 김수지야.' 이렇게 바꾸어 릴레이 말하기를 했다. 앞에 사람 것이 생각이 안 나면 자기 이름만 말해도 된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많은 아이들이 자기 이름만 말한다.
괜찮다 괜찮다. 입을 옴짝이며 자기 이름과 감정만 조그맣게 말하는 것도 괜찮다. 오늘은 처음이니까.
몇 번 반복했다. 처음에는 친구 이름까지 부른 학생이 4명 정도였는데, 두 번째는 7명, 세 번째는 9명, 점점 늘어난다.
사실 이것을 하는 와중에도 교실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야! 이름 말하라고 이름!!"하며 끊임없이 모두에게 간섭하여..(아침에 내 말을 빼앗아 내 이름을 밝힌 아이) 교사보다 더 큰 발언권을 행사하려 했다. 개학 첫날부터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결국 한소리 했다.
후에도 하루 종일 이 아이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런데 나쁜 아이 같지는 않다. 내가 몇 번 주의를 주자 조용해졌고,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것도 눈에 보였다. 게임을 할 때 빨리 호명되고 싶어서 소리를 지르는 것도, 내가 하는 설명을 끊고 자신이 선생님인 양 모두에게 말하는 것도, 내가 말하는 도중에 자기 생각을 불쑥불쑥 드러내는 것도, 다 괜찮았다. 그래도 잘하려고 애쓰는 모양이고, 나도 그 아이가 귀여웠으니 말이다. 문제는 다른 아이였다.
<사과, 배, 바나나>게임이라고, 자리 섞기 게임이 있다. 사과를 부르면 사과들이 나와서 자리를 바꾸고 바나나를 부르면 바나나들이 나와서 자리를 바꾸고 하는... 그 게임에서 꼭 한명은 술래로 남기 마련인데, 술래가 되면 벌칙으로 마스크에 스티커를 붙이기로 했다. 즐겁게 놀이를 하다 한 조그마한 남자 아이가 자리를 옮기지 못하여 술래가 되었다. 그런데 교사가 아이의 마스크에 스티커를 붙이려고 하니 영 몸을 피하며 요리조리 도망가는 것이다. 어찌해야 하나 내가 몇 번 같이 요리조리 스티커를 붙이려고 시도하자 태권도 자세를 취한다. 표정은 신나보이는데 내 팔을 잡아 당기고 나를 밀친다.
"00아, 이건 우리 놀이의 규칙이야. 네가 술래 규칙을 안 지킨다면 놀이에서 빠져야해."
라니 자기는 빠지겠단다.
알겠다고 그럼 원 밖에 있으라고 하니 그 때부터 아이는 바닥에 쪼그려 모습을 감추었다. 보아하니 울고 있는 것 같아 아이를 따로 불렀다.
"00아, 놀이 같이 하고 싶어?"
말이 없다.
"사실 아까 00이가 우리 놀이 약속 안 지키고 싶다고, 그래 그럴 수는 있어. 그런데 선생님 팔 잡아끌고 밀어서 선생님 기분이 안 좋았었는데. 지금 보니까 00이도 기분이 안 좋아보이네. 무슨 일일까?"
말이 없다.
예전 같으면 슬슬 화가나기도 했겠지만, 너무 쪼그만한 꼬맹이라서 이렇게 삐져 있는 것도 귀엽긴하다.
"선생님은 00이가 혼자 놀이 못하는 게 속상해. 같이 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00이는 기분이 안 좋아보이네. 선생님한테 00이 마음을 이야기 해 줄래?"
"스티커 붙이기 싫어요."
"응, 스티커 붙이기 싫어서 안 붙였잖아. 스티커는 안 붙였는데 00이 기분이 나쁜 이유가 뭘까?"
"........."
"같이 하고 싶어?"
"아니요."
대답하며 아이의 눈이 시뻘개진다. 동시에 차오른 눈물은 이내 볼을 타고 흐른다. 티슈로 얼굴을 닦아 주려하니 아이는 멀리 달아나려한다.
알겠다. 이 아이는... 제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한다. 마음을 말로 하지 않으려는 원인은 여러가지인데, 학부모 상담을 해 보아야겠지만, 이 경우에는... 몸으로 표현하긴 너무 즉각적인데 말을 안 하는 건.. 이런 아이들이 있다. 몇몇 드러나는 특징이 비슷한 아이들을 많이 만나보았기에 대강의 여러 예측들을 해본다. 일단 아이가 마음을 여는 게 급선무인데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애들이 또 마음 한번 열어주면 순정파지.
이 아이하고는 제대로 이야기를 더 하지 못하고 집으로 보냈다. 나중에 집에 가기 전에 선생님하고 이야기를 더 하자고 했었는데, 수업 마칠 때 진단키트가 하나 부족해서 다른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돌아다니며 진단키트 구한다고,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었네.
오늘 했던 놀이는
1. 연결 박수 - 반 전체로 박수 박자 맞춰서 치는 것.
(유튜브랑은 다르게 했다. 빠르게 치는 게 아니라 리듬 맞춰서 박자치기를 했다. 손뼉 + 발 구르기도 하고.. 다음에는 빠르게 치기도 재밌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OAG5o6dDkUo
2. 친구 이름 부르며 공 던지고 받기 (시트지에 이름적어 배에 붙이고)
- 지선아 반가워/ 혜민아 고마워_ 시간 제한 있음. 4분까지 성공했다. 다음에는 3분 30초로 줄여봐야지.
3. 아엠그라운드 자기이름 소개하기
- 금요일에 본격 게임을 한다고 집에서 연습해 오라 그랬다.
4. 배,바나나,딸기 게임 + ~~한 사람 나와 게임
- ~~한 사람 나와 게임은 배, 바나나, 딸기를 응용한 게임이다. 이 게임 전에는 꼭! 뛰면 경고를 주고, 경고를 세 번 받으면 게임에서 5분 빠진다 라는 규칙을 합의해야 한다. 아이들이 너무 흥분하여 뛰어서 자리를 옮기다보면 안전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jts23NlxfI
이렇게 2블럭 까지 마치고
5교시에는 '배우는 몸' 설명과 이런 저런 안내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
+ 선생님들에게 후리지아 꽃을 나누어드렸다. 3월 첫날이 밝은 노랑꽃과 같았음 하는 모종의.. 기도 같은거랄까 ㅎ
교사가 되고나서 매년.. 봄에는 후리지아 꽃을 화병에 꽃아두었다. 봄의 매력은 노랑꽃이다.
다들 좋아해주셔 나도 좋았다.
+ 코로나 지침 연수와 전학공 하고 나니 퇴근시간이 지났다.
내일 수업은 오늘 밤에 집에서 준비해야겠군.. 총총총
퇴근은 하였으되 퇴근이 아닌 느낌으로 교문을 나섰는데 학년 카톡방을 보니 동학년 선생님들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교실을 지키셨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