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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가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면 부부라는 인간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때 아이가 생기면 부모자식이라는 인간관계가 새롭게 형성됩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부부관계가 부모자식관계로 넘어가면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가 됩니다. 여자가 엄마가 되면 모성애라는 기본개념을 갖게 되고, 남자가 아빠가 되면 부성애라는 기본개념을 갖게 됩니다.
모성애와 부성애는 자식에게 주는 사랑입니다. 자식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보호와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이때 부모는 아이의 생리적, 심리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희생과 헌신을 하게 됩니다. 모성애와 부성애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부모의 본능적인 사랑이라고 봐야 홥니다.
남자와 여자가 미혼일 때 오로지 자신의 재미와 즐거움, 행복만을 위해서 삽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 자신의 행복보다는 함께하는 행복에 의미를 둡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줘도 늘 모자라는 것 같아서 언제나 전전긍긍합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려고 하는 것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보호하려는 마음이 혼재되어 있어서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몸과 마음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몸의 기본은 생존이고, 마음의 기본은 행복입니다.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몸이 안 좋으면 마음이 불안정해지고, 마음이 안정되면 몸도 좋아집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가정이 안정되어야 심리가 안정이 되어서 몸과 마음이 정상적으로 발달이 됩니다.
부모가 되면 아빠는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가치추구를 하고, 엄마는 아이들의 미래행복을 위해서 의미추구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수시로 발생하지만 부모는 아이의 미래행복을 위해서 힘들어도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때 인생의 희로애락이 만들어집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희로애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삶이 늘 편안하고 여유가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변화가 없는 삶은 위기가 닥쳤을 때 대응능력이 없어서 쉽게 무너집니다.
부성애와 모성애가 있는 부모는 아이에게 일방적인 사랑은 주지 않습니다. 아이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작은 문제 하나라도 아이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게 옆에서 도와줍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조건적으로 해주는 부모는 자식에 대한 희생과 헌신보다는 자신들이 편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외출할 때 아이 스스로 운동화를 신겠다고 해도 부모가 재빨리 신겨줍니다. 아이가 신발을 다 신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참지 못해서입니다. 아이가 혼자 옷을 입고 벗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아이와 보조를 맞추려면 부모가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부성애와 모성애가 있는 부모는 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답답해도 끝까지 참고 기다려줍니다. 그러나 모성애와 부성애가 없는 부모들은 자신들의 답답함을 참지 못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줍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초능력이 만들어지지 않아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무조건 부모에게 의존하려고만 합니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있다고 해서 아이가 할 일을 부모가 무턱대고 해주지는 않습니다. 아이의 문제는 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엄하게 대하면서 아이에게 문제해결의 기초능력을 만들어줍니다. 이런 마인드가 바로 모성애와 부성애입니다.
아이들에게 부성애와 모성애가 필요한 것은 아이 스스로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가 보호하고 돌봐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특히 아이의 심리가 잘 발달할 수 있도록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야 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요즘에는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맞벌이하는 부부가 많습니다. 남편보다 아내의 능력이 뛰어나면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남자가 육아를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치추구에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어서 오히려 여자보다 남자가 육아와 살림을 더 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아빠들 사이에 육아와 살림의 노하우를 책으로 펴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엄마가 회사일로 바쁘면 엄마의 빈자리를 아빠가 채워주면 되고, 아빠의 가치추구가 중단이 되면 엄마가 그 자리를 채우면 됩니다. 모성애, 부성애를 가진 부모라면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지면 아이들을 위해서 서로 의미와 가치추구를 적절히 분담하면서 갑니다.
아이들에게 의식주만 해결해주면 자신들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의식주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생존본능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즉, 부모의 의식주 해결은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보호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다릅니다. 아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린다고 해도 아이들의 심리가 안정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정상적으로 발달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되면 항상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수시로 체크해서 심리에 문제가 있으면 빨리 예전의 상태로 회복시켜 줘야 합니다.
아이를 키울 때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는 아이의 마음이 보다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모성애와 부성애입니다.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온다고 해서 가족들 앞에서 제왕처럼 굴면 아이의 심리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거울역할을 하기 때문에 말과 행동하나에도 언제나 아이들의 귀감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힘든 문제나 위기가 닥쳐도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더욱 의지를 갖고 가치추구와 의미추구를 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가치추구와 의미추구가 아이들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모성애와 부성애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아이들에게 대가를 바라는 것입니다.
모성애와 부성애의 기본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옆에 없으면 행여나 잘못될까봐 늘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이런 마음을 기본으로 하지 않고 자신이 주는 것만큼 아이에게서 돌려받으려고 한다면 더 이상 부성애와 모성애가 아닙니다.
아이의 학업성적이 좋지 않으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했는데 성적이 고작 이따위야?’ 라고 쉽게 말합니다. 이 말의 진의는 우리가 너를 위해서 이만큼 노력했으니깐 너도 우리에게 노력한 성과를 보여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성애, 모성애가 졸지에 아이와의 거래가 되어 버립니다.
모성애와 부성애라는 개념을 이야기할 때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생각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그냥 사랑을 쏟아야 그 사랑이 진가를 발휘합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자신의 희생과 헌신이 소용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아이와 마음의 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아이와 마음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탓을 하게 되고, 자책을 하게 되면서 억울함에 증오심 까지 생기게 됩니다.
아이가 자신의 헌신과 희생을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더 이상 모성애와 부성애가 아닙니다. 부모의 이런 생각이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부담을 줘서 아이의 심리를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부모자식관계에서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스트레스와 상처가 발생합니다. 이때 스트레스와 상처를 힐링하지 않고 계속 끌고 가면 그동안의 좋았던 기분과 감정이 증오심으로 전환됩니다. 그래서 아이가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도 스트레스와 상처가 올라와서 자신도 모르게 아무렇게나 표현을 하게 됩니다.
부모든 자식이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이럴 경우 갈등의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면 갈등은 쉽게 해소됩니다. 그러나 서로 안 좋은 기분과 감정에 매몰되다보니 문제의 원인을 찾을 생각은 않고 나타나는 현상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잔소리만 하는 부모가 못마땅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들의 희생과 헌신을 몰라주는 자식이 야속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안 좋은 마음이 오래 지속되면 부모는 자신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자식이 미워져서 어느 순간 사랑이 증오로 바뀌어버립니다.
생각은 본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습니다. 내가 상대에게 잘해주면 상대역시도 나에게 잘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 뿐 상대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만 매몰되어서 상대를 비난합니다.
“먹는 거, 입는 거 아낀 돈으로 네가 원하는 것 다 해줬더니 이제 와서 해 준 게 뭐가 있냐고? 그러고도 네가 인간이야?”
“누가 해달라고 했어? 일방적으로 나에게 해줘놓고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질을 내면 나더러 어떡하라고?”
이런 말싸움은 부모와 자식 간이 아니어도 친구나 형제자매간의 인간관계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과 헌신을 하면 자식은 당연히 부모의 말을 잘 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희생과 헌신이 고맙기는커녕 부담으로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생각의 차이로 인해 스트레스와 상처가 발생하면 자식에게 향하던 사랑이 증오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특히 아이가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라고 부정적으로 나오면 아이를 위해서 지금까지 희생하고 헌신한 시간들이 무참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이 증오로 바뀌면서 대뜸 “너를 위해 엄마아빠가 희생한 것 눈에 안 보여?”하면서 아이와 거래부터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아빠와 엄마를 원망하게 됩니다. 이때 모성애와 부성애를 갖고 있는 부모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를 설득해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려고 합니다.
“너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우리가 너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구나. 앞으로 엄마아빠가 너에게 더 잘해야 할 것 같아.”
아이가 부모의 희생과 헌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무조건 반항을 하게 되면 부모의 사랑이 어느 순간 증오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이 불합리적이면 스트레스와 상처가 발생해서 무조건 반항부터 합니다. 아이의 반항심을 없애려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설득을 해야 합니다.
반면 부모에게 증오심이 생기는 이유는 자신의 헌신과 희생이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부정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자신들의 헌신과 희생을 아이가 인정해주기를 바랬는데 오히려 아이가 부정을 해버리니깐 억울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모르게 아이를 증오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인정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누군가가 인정해주기를 바라는데 끝까지 인정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희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억울하고 화가 나서 증오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모성애가 있는 엄마는 가족들이 편히 잠든 뒤에도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자신의 수고를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신의 수고로 인해 가족들이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런 엄마의 마음이 바로 가족을 위한 행복입니다.
이와 반대로 아빠는 집에만 들어오면 모든 스트레스를 엄마에게 풉니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엄마에게 있는 대로 폭언을 해대면서 자신의 스트레스를 제거합니다.
“집에서 하루 종일 노는 주제에 도대체 집안 꼴이 이게 뭐야?”
아이들이 볼 때 지금까지 엄마는 쉬지 않고 집안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빠는 자기기분이 안 좋다고 엄마에게 마구 짜증을 내는 바람에 아이들은 부부싸움이 날까봐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빠의 몰지각한 태도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집안일만 할 뿐입니다.
여자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내색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서입니다. 아이들만 없으면 여자도 자신의 상처표현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 상한다고 남편과 똑같이 대응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상처만 입히기 됩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줄 아는 이런 행동이 바로 모성애입니다.
여자는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아이에게 베푸는 사랑으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남편이 뭐라고 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남편이 스트레스를 푼다고 여자에게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말을 해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느끼는 행복의 감정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성애가 없으면 아이나, 남편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분 내키는 대로 자신의 감정을 처리해버립니다.
부모가 아이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아이에게 희생과 헌신의 개념이 들어가는 순간 대가를 바라게 됩니다.
아이의 앞날을 위해서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아이가 부모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자신들의 희생과 헌신이 부정당했다는 생각에서 스트레스와 상처가 발생합니다. 스트레스와 상처를 제 때에 힐링하지 않으면 아이에 대한 부정감정이 계속해서 쌓이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이가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면 쌓였던 분노와 증오심이 폭발해서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자녀에 대한 학대나 폭력에는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섞여있다고 보면 됩니다.
부성애와 모성애는 아이의 양육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신이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아무 대가없이 그냥 주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양육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생각을 하면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랑이 증오로 전환이 됩니다.
부모가 평소 아이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이 이런 생각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부모 말을 잘 들으면 키운 보람이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자신들의 뜻에 잘 따라주면 효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자신들의 헌신과 희생을 효도와 맞바꾼 것이 되기 때문에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순수한 관계가 아닌, 목적관계가 되는 셈입니다.
이런 경우 부모자식 간에 아무 문제가 없으면 서로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잘 지냅니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하면 부모의 희생과 헌신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생각에서 자식에 대한 사랑이 증오로 변합니다. 이런 마음의 변화는 양육할 때의 순수한 마음이 아닌, 희생과 헌신의 개념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모성애와 부성애는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숭고하고 순수한 사랑입니다. 이런 숭고하고 순수한 감정을 희생과 헌신이라는 미명아래 대가가 오가는 거래관계로 전환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이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생각은 대가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아이가 아무리 말을 듣지 않아도, 공부를 아무리 못해도 오로지 부성애와 모성애로 아이를 다스려야 합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아이에게 내세운다면 자식을 향한 숭고한 사랑, 순수한 사랑이 변질이 되어 버립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아이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힘들고, 답답하고,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면 그동안 누적된 스트레스와 상처를 빨리 힐링해야 합니다. 힐링이 되면 부성애와 모성애가 회복되면서 아이를 향한 증오심이 사랑으로, 행복으로 전환이 됩니다.
행복의 감정은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희생과 헌신의 개념이 들어가면 순수한 사랑이 훼손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