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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씨앗
교리(敎理)나 신조(信條)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지식(知識)이 많은 어른보다 진리(眞理)의 진실(眞實)을 올바로 인식(認識)할 수 있는 지혜(智慧)를 가지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가톨릭이 하느님께 가장 사랑받는 종교라는 의미로 교리를 가르칠 때, 다른 개신교(改新敎)의 종각 위에도 똑같은 십자가가 서있었던 것을 마음속에 떠올리고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무언의 의문(疑問)을 던졌다. “다 같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성당의 정원에서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의문을 푸른 눈동자를 가진 외국 신부님께 이렇게 여쭈어 보았다. “신부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느님은 인간에게 고통(苦痛)을 주십니까?”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만약 하느님이 인간에게 행복만을 주시고 고통은 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간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나라면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겠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신부님의 말씀이 너무도 이성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가슴속에는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진리의 진실에 대한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고 있었다.
‘사랑의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선(善)과 악(惡)을 행하게 하시고, 인간이 그 자유의지에 따라 행위 한 것을 끝내 심판(審判)하신다는 것이 과연 진실한 것인가! 어떻게 사랑의 하느님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실 수 있는가! 결국 나는 인간 본성(本性)의 가장 위대한 의문 ‘왜, 인간은 고통받아야 하는가?’라고 하는 근본적(根本的)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제 2장 파종
세월이 흘러 나이 40에 서서히 접어들면서 경제적 무능(無能)과 인연(因緣)의 고리에서 오는 정신적(精神的) 고통은 나를 완전히 식물인간(植物人間)처럼 만들어 버렸다.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극도의 절망감에 빠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걱정과 불안 분노와 절규의 늪을 헤맬 때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지 죽는 게 낫다!”라고 하는 음성이 슬프게도 저 깊은 내면에서 들려오기까지 했다.
나는 무언가 고통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불행히도 그 어떤 묘책(妙策)도 찾을 수 없었다. 정말 현실적으로 바늘 끝만큼의 희망조차도 없었다. 그저 희망이라면 내가 늘 해왔던 명상(瞑想)을 통해서 깊은 내면의 위안과 행복을 얻기를 바라는 길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불교 TV에서 어떤 스님의 가르침을 보게 되었다. 그 스님은 성냥불을 켜시면서 “우주(宇宙)와 인간(人間)은 원인과 조건이 갖추어 지면 이렇게 있고, 원인과 조건이 갖추어 지지 않으면 이렇게 사라집니다.”라고 하시면서 성냥불을 입김으로 훅하고 끄셨다. 그리고는 “우주와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우주와 인간은 스스로 그러합니다. 창조주(創造主)는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씀하셨다.
나의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았으나 도무지 입을 열어 말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서로 다른 물결이 소리 없이 부딪치기를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허무감에 휩싸이는 내 자신이 유일신(唯一神)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던 것에 대해 마음의 위안을 스스로에게 주려고 다독거리고 있는 기분이랄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의문의 메아리만이 텅 빈 가슴속을 배회할 뿐이었다.
“창조주는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창조주가 없다면 나는 어디서 왔는가? 창조주가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가?”
그러나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의문은 힘이 없었다. 나는 그 스님의 말씀 한 마디에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이 그저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벙어리처럼 침묵해야만 했다. 진실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 수 없을 때, 전혀 손쓸 수 없는 그런 무력감으로 유리같이 맑은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만들어내는 파문을 바라보고만 있듯이 그저 그렇게 침묵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면에 대한 그리움이 갈수록 더해가자 나는 틈만 나면 정좌(正坐)를 하고 깊은 명상(瞑想)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명상에 깊이 들어갈 때면 생각도 감정도 욕망도 모두 끊어져 버렸다. 나의 숙소 옆 8차선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 크락션 소리는 늘 시끄럽게 나고 있었지만 깊은 삼매상태(三昧狀態)에 빠져 있는 내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깊은 명상 중에 “모두가 다 나의 잘못이다!”라고 하는 이상한 내면의 음성을 들었다. 마치 누군가 내 몸속에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내 몸속에서 둥근 달이 떠올랐다가 인당 앞에서 사라지는 챠크라를 경험하기도 했고, 수백 겹의 연꽃 봉오리가 떠올랐다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生命體)처럼 움직이며 오색 찬란한 빛을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발산하는 챠크라를 경험하기도 했다. 고서(古書)에는 이런 챠크라를 경험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명시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때도 나는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깨달음을 확신할 명백한 체험(體驗)도 없었다.
훗날 나는 큰 꿈을 안고 건강센터를 직접 운영하면서 태극권(太極拳)과 명상을 가르쳤다. 그러나 명상센터를 시작한 지 몇 해가 지나자 나는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그것도 제대로 영양을 취하지도 못하면서 기(氣: 에너지)를 방사(放射)하며 혼자 회원들을 수련(修練)시킨다는 것은 정말로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서서히 미래에 대한 나의 설계가 마음속에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죽는 날까지 태극권과 명상을 가르치면서 살다가 죽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는 갈수록 고갈되어가고 사람들에게 건강과 마음의 위안을 찾게 해주겠다는 굳은 신념은 무참하게도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기를 싫어했던 나는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틈만 나면 정좌(正坐)를 하고 깊은 명상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도복(道服)을 입고 않아서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명상을 시작한 지 얼마 후, 갑자기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더니 급기야 비 오듯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슬픈 감정이 없었는 데도 불구하고 그저 구멍이 뚫린 그릇에 담아 놓은 물이 쏟아지듯이 그렇게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어깨를 들썩이는 몸의 움직임도 흐느끼는 울음소리도 없이 나는 돌부처처럼 앉아서 마냥 침묵의 눈물을 흘렸다.
한참 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눈물이 저절로 멈추었을 때, 너무나 많은 양의 눈물이 흘러내려서 내가 입고 있던 도복은 다 적셔져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도장 바닥까지 흘러내린 눈물은 비가 온 뒤에 마당에 고여 있는 빗물처럼 흥건해 있었다. 나중에 나는 바닥에 있는 눈물을 닦아내느라고 타월을 두 번이나 짜서 훔쳐내야만 했다
제 3장 꽃
그 일이 있은 지 7개월 정도 후, 어느 무르익은 봄날, 오전 반에 수련생들이 한 명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일찍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침대 위에 잠깐 누워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감은 상태에서 침묵(沈默)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나는 그에 대한 답을 하듯이 속으로 ‘내면으로! 내면으로!’라고 하는 말을 속삭였다. 다시 침묵이 지속되더니 생각이 완전히 끊어져버렸다. 어디에도 나라고 할 것이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나 바로 섰다. 그리고는 책상으로 가서 않기 위해 한발 두발 그리고 또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멀쩡하게 있었던 명상센터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나의 몸도 땅도 하늘도, 대형거울을 비롯한 온갖 사물들도 티끌 하나도 남지 않고 한순간에 모두 사라져버렸다. 나타나 있는 것은 오직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하나의 텅 빈 광명(光明)한 허공(虛空)뿐이었다. 그리고 그 광명한 허공속 바로 거기에 명백하게 내가 바로 그것으로서 홀로 있었다.
그 순간은 잠시 계속되었다가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내 몸도 땅도 하늘도 모든 사물들도 변함없이 있었던 그대로 있었다. 깨달음의 체험은 선명하고 또렷했지만 마치 꿈처럼 오고 갔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조용히 걸어서 나의 긴 책상이 놓여있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책상 앞에 펼쳐져 있었던 불경(佛經)의 공(空)이란 문자가 이미 초점이 맞추어 진 카메라의 피사체(被寫體)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그 동안 그렇게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었던 공(空)의 실상(實相)을 나는 명백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나의 진아(眞我)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가슴속으로 희열을 느끼며 혼자 속삭였다. ‘내가 진리 바로 그것이다!’
그 이후, 걱정도 두려움도 공포도 이상하게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7년 동안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완전히 진리의 향기에 취해서 불경과 깨달은 각자들의 서책들을 하나하나 가슴으로 읽어 나갔다. 그런데 그 서책들 중에는 나와 똑 같이 깨달음을 체험한 이야기들이 명백하게 적혀있었다. 나는 속으로 속삭였다. “아! 부처님도 예수님도 깨달은 모든 사람들도 나와 똑 같은 체험을 해서 진리를 깨달았구나!” 나는 올바른 깨달음을 체험했다는 사실에 기쁨과 환희를 느끼면서 더더욱 진리를 탐구하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어갔다. 예전 같으면 경제적 빈곤 속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진리의 향기는 진리 외에 그 어떤 것에도 관심하지 않고도 풍족할 수 있는 넉넉한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
깨달음을 얻어 찾아온 기쁨과 환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멀리서 자동차 크락션소리가 들릴 때면, 예전에는 단순히 귀에서만 들렸던 소리가 갑자기 나의 가슴속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래 곤 했다. 멀리 강 건너에 있는 유채꽃밭을 바라볼 때면 예전엔 단순히 나와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의 시야에 보였던 유채꽃밭이, 거리와 상관없이 느닷없이 가까이 다가와 내 몸을 통과해 지나가 버리곤 했다. 깨달음은 이렇게 나의 본성(本性)뿐만 아니라 나의 몸을 통해서까지 만물(萬物)이 주관(主觀)과 객관(客觀) 없는 하나의 허공성(虛空性)이라는 진실을 철저하게 깨우쳐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음의 감동과 환희가 한층 더 고조되어 가자 모든 사물들과 생명체들이 마치 맑고 밝은 빛을 발산하는 수정체(水晶體)처럼 보이기도 했다. 진정 꽃이나 나무나 곤충이나 짐승들이 그토록 신성하고 소중한 것인지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느끼면 느낄수록 모든 것들이 경이롭고 황홀하기만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하더니! 부처님이 무명(無明)의 구름을 벗어버리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태양만이 빛난다고 하더니! 바로 나의 깨달음을 두고 한 말이었구나! 아! 아! 나도 모르게 저절로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깨달음의 축복 속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에 온몸이 부서짐을 느끼면서, 눈 앞에 펼쳐진 허공을 나의 본성(本性)이 광속(光速)을 넘어 끝없이 환희 비추는 연출을 지켜보면서, 커튼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햇살이 나의 세포 하나하나를 간지럽게 지져대는 기쁨에 전율하면서 나는 넉 달이 넘도록 지속되는 깨달음의 감동과 환희를 진리의 완전한 자유와 평화 속에서 마음껏 즐겼다.
제 4장 열매
시간이 가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깨달음의 감동과 환희는 서서히 진정되어 갔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나의 굳은 결심은 오히려 한층 더 고조되어 갔다. 나는 어떤 사람도 깨달음을 얻지 않고는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을 통해 명백히 알고 나서 깨달음을 전하는 길 외에 다른 어떤 길도 가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곧 극심한 고통속에서 신음했던 지난 날의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의 능력을 의심하고 깨달음의 길을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것을 재촉하는 진리의 향기가 나를 강한 힘으로 휘어 감고 다른 길로 향하고자 하는 생각의 뿌리마저 여지없이 끊어버리는 통에 다른 길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오직 내가 갈 길은 깨달음을 전하는 외길뿐 더 이상 선택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그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나와 같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름난 철학자도 아니고 영성가(靈性家)도 아니다. 수도자도 성직자도 아니다. 다만 간절한 가슴으로 진리를 그리워하고 목말라 했던 구도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은 항상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저 같이 평범한 사람도 선생님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저 같이 평범한 사람도 선생님처럼 깨달음을 얻어 영원히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만나고 있는 ‘참나를 찾아서!’는 나의 깨달음의 여정에서 많은 구도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간추려 놓은 것이다. 그대가 내게 하고 싶은 모든 질문이 그 안에 있고, 내가 그대에게 하고 싶은 모든 답변이 그 안에 있다. 그대가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얻어 고통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지 그 안에 모든 비밀이 다 들어 있다.
그대! 내가 그대에게 선물한 이 책을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진리가 목마를 때마다 그대의 심장에 손을 얹고 진실한 가슴으로 지속적으로 보고 또 보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내면에 실재하는 그대의 진아(眞我)가 그대의 진아를 스스로 드러내고 스스로 알아차리는 깨달음의 체험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진리는 절대 불가능을 절대 가능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대가 믿는 진리는 그대를 완전한 사랑과 자유와 평화로 이끕니다. 그대가 진리(眞理)를 가슴으로 간절하게 그리워하고 목말라 한다면, 그대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는 불생불멸(永遠不滅)한 그대의 절대진아(絶對眞我)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본래 진리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내면에 실재하는 그대의 본성(本性)을 믿으십시오. 그대가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입니다.” 진심으로 그대가 깨달음을 얻어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이 책을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모든 구도자들에게 바치며!
양 창 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