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를돌아논가외딴우물을홀로찾아가선가만히들여다봅니다. -윤동주, 자화상(自畵像) 중에서
가만가만, 제가 교사로서 살아온 15년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마음의 우물을 들여다보면, 잘하는 교사이고 싶었고, 제 것이 아닌 것도 탐냈던 삶이었음을 깨닫곤 합니다. 잘하는 선생님들을 부러워하며 따라하기도 했고,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나만의 우물에 빠져서 자주 허우적댄 것도 사실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 자신이 교사로서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에는 자신이 없어집니다. 다만, 아주 조금씩 마음속에서 자라는 희망은 그나마 잘하는 것이 기록하는 습관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록한 것들을 잘 정리하지 않으면 , 다시 보고 싶어도 쉽게 찾을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저를 위해 글을 쓰고 또 그것을 나눕니다. 많은 독자가 읽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저의 글을 읽는 여느 독자 한 명이라도 자라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 마음을 삶으로 살아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듯 싶습니다.
잘하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 찬 시절, '잘하는 사람들은 24시간이라는 동일한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그렇게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탁월한 수업을 진행하며, 눈부신 성과를 이루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덕분에 배움에 대한 깊은 열정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뛰어난 수업을 이루어내는 교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풍성함을 가진 교사와 마주하다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무언가를 잘하게 된 것은 잘 자랐던 시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 자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사로서의 탁월성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교사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가장 부러운 점 중 하나는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방학동안 보지 못했던 제자들을 만나면, 훌쩍 키도 몸도 자란 아이들을 보며 놀라곤 합니다. 가끔은 나도 자라고 싶다는 부러움과 질투심을 가지게 되는 순간입니다. 어른은 겉모습이 자라기는 쉽지 않죠. 그렇지만, 어른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성장합니다. 일상에서의 말과 행동, 사람을 대하는 자세, 가르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심한 눈길로 주변에 나만의 레이더를 펼치면, 근무하는 학교와 교무실 안에서도 눈에 띄게 잘 자라고 있는 교사들을 종종 찾을 수 있더군요.
"자라면 잘하게 된다."는 보통은 맞는 문장이지만, "잘하면 자라게 된다."는 성립하는 문장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것은 자만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성장에서 멈추게 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했습니다. '잘하고 있다'는 안주의 함정이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잘한다는 이야기보다는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 교사가 자란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력이 저보다 휠씬 적은데도 자신만의 멋진 수업을 하시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배우고, 저런 것도 닮고 싶은 마음을 계속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희 집 거실에는 파키라 한 그루가 있습니다. 아내가 그 나무를 정성스레 가꾸고 있죠. 아내가 필요할 때 물도 주고, 창을 열어 바람도 쐬어주는 정성을 들이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자라지 않고 늘 같은 모습인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그 나무도 가까이서 보면, 새로 싹을 틔우고 잎의 색깔이 바뀌어요.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 아이가 참 잘 자라고 있더라고요. 나무든 사람이든 잘 자라려면, 시간이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가끔 송곳 같은 몇 마디 말을 해주면, 그 말이 아이들을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수업과 관련된 다큐나 신문기사를 읽다보면, 교사의 부족해 보이는 수업이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고, 전문가에 수업 컨설팅을 받으면 좋은 수업으로 단 번에 변하는 것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마치 전화로 음식을 주문을 하면 원하는 메뉴가 촥촥 배달 오는 것처럼요.
바이올린은 아름다운 음색으로 듣는 이에게 감동을 주죠.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에게 방과후학교로 바이올린을 배우도록 했어요. 그런데, 제 딸은 좀 배우다 말더라고요. 처음에는 배울만 했는데, 갈수록 어렵고 재미없다고 했어요. 사실, 악기라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어제는 학교 행사에서 멋진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습니다. 연주를 듣는 동안 그 힘든 악기를 얼마나 연습했으면, 저렇게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연주는 5분이었지만, 그 연주 속에 감추어진 연주자의 삶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이 글을 보는 선생님의 배움과 가르침에는 얼마나 많은 삶의 시간이 들어 있을까요?'
이 글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가 아닌 저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책입니다. 제 자신에게 '이렇게 살아볼까?'라고 말을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김창옥 교수님께서 강의를 하실 때, "강의 들으러 왔다 생각하지 마시고, 미용실에 왔다" 이런 마음으로 편하게 들어주시라고 하면서 시작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의 선생님들께 들을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가 모두에게 맞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들을 만한 이야기를 들으시고, 아닌 것을 아낌없이 버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 생각할 것이 있다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시길요.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自畵像) 중에서
첫댓글 진묵샘~!! 반갑습니다^^ 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