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은사 중지론의 목사들은 신령한 자들인가?
朴埰同 (2024.05.01.10:37)
방언 은사 중지를 주장할 때 그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바른 성경 해석이 그 근본이 돼야 한다. 그런데 나는 여태껏 ‘바른 성경 해석으로 방언 은사 중지를 주장하는 방언 은사 중지론자들’을 보지 못했다.
지난 4월 29일 월요일 점심시간 무렵에 방언 은사 중지론의 외골수 000 목사님은 {페북}에서 나를 차단한 뒤 카톡으로 ‘성결교회 오세준 목사 2024년 4월 28일 주일예배 설교 [방언 은사의 용도가 랄랄라 기도인가?]’ {유튜브} 영상을 “꼭 한번 들어보셨으면 합니다.”는 메시지와 함께 링크해 주셨다. 다음은 이 설교를 반론한 글로서, 오늘 아침에 카톡으로 000 목사님에게 보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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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해 주신 ‘오세준 목사 {유튜브} 설교’ 들어봤습니다. 다 듣지는 않았는데, 고전 14장 14절을 방언 은사 중지론에 꿰맞춰 엉뚱한 해석을 하더군요.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이 기도하거니와 내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고전 14:14)
‘고전 14장 14절은 “만일”이 쓰인 가정법 문장이다. 가정법 문장이므로 바울 사도가 방언으로 기도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방언 기도라는 말이 없다.’는 오세준 목사 해석이 왜 엉뚱한 해석일까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고전 14:8)
위 고전 14장 8절 역시 “만일”이 쓰인 가정법 문장입니다. 가정법 문장이니, ‘나팔은 항상 분명한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입니까? 아니면, ‘나팔은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할 때도 있다.’나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할 때 전투를 준비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입니까?
고전 14장 27절, 28절, 30절, 35절은 “만일”이 쓰인 가정법 문장들인데, 또 봅시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님의 명령인 줄 알라 (고전 14:37)
독립개신교회 초대 감독 고故 김홍전 목사님께서 “목사는 선지자여야 한다.” 하셨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청년으로서 “신령한 자”가 목사(감독) 직분을 사모(딤전 3:1)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께서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함에도 ‘방언 기도를 “사특한 기도”, “다른 불”로 정죄한 존 맥아더 목사’나 ‘방언 은사 중지론에 꿰맞춰 엉뚱한 성경 해석을 한 오세준 목사’는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가 아닌 상태에서 목사 직분을 취한 자들이라서, 성경을 엉뚱하게 해석해 왜곡 훼손까지 해 가면서까지, 방언 기도를 금하고 있지요? 즉, 목사의 직분을 사사로이 취한 자들이라서 고전 14장이 있는 [고린도전서]를,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을 “주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