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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뜰 윤창환
살기 팍팍했던 지난날
뭐든지 많기만 하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초근목피 (草根木皮)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겠지만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른 봄 마을 뒷동산의 소나무는 고역을 치러야 했다.
송고라고 해서 소나무의 연한 가지를 벗겨내면 달그스름한 액체와 함께 하얗고 끈적한 속껍질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을 모아다가 찧어서 음식을 해 먹는데 보탰다.
필자가 먹어보았던 것은 송고를 찧어 연하게 만든 다음 보릿가루나 밀기울에 섞어서 만든 개떡이었다.
요즘에 이르러 어떤 목적하는 바가 잘 되지 않거나 어떤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떡 같다는 표현으로 본래의 의미를 추락시키는데 개떡은 그야말로 민초들을 살려낸 버젓한 만나(1)였다.
개떡이 그리운 사람들은 쌀가루에 쑥이나 산야초, 콩을 섞어 이와 비스름한 떡을 해 먹는데 그것은 개떡의 흉내만 냈을 뿐 이런 고급음식도 없다.
얼굴은 개떡같이 생겨가지고...
이렇게 얘기하면 개떡에 담긴 철학을 모르는 사람이다.
얘기가 옆으로 샜다.
평창의 처가 앞마당에 있는 대추나무다.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으나 동네 어르신들의 말을 빌리자면 족히 150~200년은 묵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 오랜 세월 용케도 버티고 살아남았다.
몇 해전, 대추나무에 큰 병이 돌아서 상당량의 대추나무들이 고사했다.
도시 근처에도 대추나무를 심은 집들이 많았는데 추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는 경우도 많았다.
당장 나부터 여러 해에 걸쳐 대추나무를 사다 심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다행히 겨울기온의 상승으로 그런 경우는 줄어들었지만 이번엔 대추나무의 에이즈라고 불리는 소위 "빗자루 병" 이란 게 유행해서 웬만큼 자라서 열매를 맺던 나무들이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사진의 나무는 고지대의 혹독한 겨울날씨를 잘 이겨내고 오랜 세월을 버티어 낸 토종대추나무다.
그래도 세월은 어쩔 수 없었는지 죽은 가지들이 생겨서 일부를 잘라 냈다.
봄이 돌아와 지난겨울 얼어 죽지 않고 또 잎을 틔울까 하고 기다리노라면 어김없이 새잎을 피워 올린다.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잎이 늦게 핀다.
토종대추나무라고 명명한 것은 이 나무가 고령인 데다 대추알이 잘고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개량종 대추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이다.
해거리를 하지만 어느 해에는 정말 많은 양의 대추를 내어준다.
대추알이 잘다 보니 털거나 줍기에 힘들지만 생대추맛도 유독 달고 잘 말려두면 훌륭한 약재나 먹거리가 되었다.
이 대추맛을 본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중에 넘쳐나는 게 대추지만 사람들의 입맛은 간사해서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금방 그 차이를 가려낸다.
토종 대추는 다른 대추보다 늦게 달리고 시중의 개량대추에 비하면 알이 무척 잘다.
귀가 질긴 편이라 잘 떨어지지 않지만 맛 하나는 정말 좋다.
수확한 대추를 햇볕에 꾸득하니 잘 말리면 빛 좋은 모습으로 변하는데 작은 알은 더욱 작아진다.
잘 말린 대추는 차로 우려먹는데 쓰거나 떡이나 한약재료등으로 사용한다.
한방에서는 토종대추의 약리작용이 매우 우수하다고 말한다.
해마다 슬그머니 가서 대추를 얻어온다.
다른 건 주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지만 이놈은 눈독을 들인다.
강원 내륙 깊은 곳으로 가면 아직도 돌배나무가 있다.
보통 집 모퉁이에 그 집의 문지기처럼 서있는데 살던 집이 폐가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제살길 찾아 떠나 버렸지만 배나무는 그럭저럭 버티고 살아남았다.
요즘 알이 굵고 달달한 배가 얼마나 많이 생산되는가.
하니, 저 재래종 돌배나무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홀로 외로이 세월과 타협하다가 어느 날 슬그머니 옛이야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관심을 갖는 이 있다면 돌배를 따다가 술이나 담는 사람 정도일까.
돌배나무는 6~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가을철 제법 달달한 열매를 제공하는 효자나무였다.
배알이 아주 작은 나무도 있었지만 어떤 나무는 제법 쓸만한 열매를 주었기 때문이다.
근간에 돌배의 약리작용이 밝혀지면서 잠시 관심을 받는 듯했으나 돈이 되는 게 아니다 보니 금세 잊히는 모양새다.
세월의 뒤안길에 쓸쓸히 서있는 재래종 배나무는 이 시대의 마지막 유산이 될 처지다..
마치 집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서있었던 고목의 밤나무..
어지간한 시골엔 이런 밤나무 한그루쯤은 거의 있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곳이 꽤 될것이다.
개량종 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이니 여차하면 목이 잘려 나갈 신세다.
그런데 옹고집쟁이 농부의 철석 같은 믿음으로 잘 버티고 살아남았다.
지금의 5~60대는 잘 알겠지만 토종 밤나무의 밤알이 그리 신통치 못했다.
사람이나 짐승도 다 때가 있어 한창 바람일 때 생산도 왕성하 듯 밤나무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1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생각하면 대단한 유전자인 셈이다.
토종 밤나무 역시 토종대추나무와 마찬가지로 열매가 잘고 손이 많이 가지만 맛 하나만은 뛰어나다.
해마다 귀찮은 손길이지만 그 맛을 잊지 못해 부산을 떤다.
밤맛을 전혀 모르는 딸아이가 밤맛을 들이더니 해마다 부탁을 해온다.
딸아이를 핑계로 가을이면 밤나무 아래로 달려간다.
밤송이도 큰 편이 아니고 밤 알 크기도 작지만 토종밤맛을 알게되면 다른 밤은 잘 먹게되지 않는다.
요즘 맛도 좋고 크기도 큰 개량밤들이 많아졌다지만 몇 가지를 두고 맛을 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는 품종의 영향도 있겠지만 나무의 수령, 그 지방의 토질, 기후 등, 계절의 복잡한 방정식이 만들어내 결괴여서 산술적인 통계로는 설명이 되지않는 부분이다.
한때 처가를 자주 들락거렸다.
아내가 장녀이고 내가 맏사위니 이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본심은 다른 데 있었다.
처가 마당에 놓아 기르는 닭을 잡아먹는 재미를 들인 것이다.
속이 들여다 보이지만 장탉의 그 황홀한 맛(?)을 본 뒤로 처가에 가는 일이라면 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아내는 엉큼한 내속을 몰랐겠지.
고추를 따 준다거나 감자를 캐는 등의 일손 거들기 뒤에 닭을 잡아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염불보다 젯밥에 신경이 가는 경우여서 난 툭하면 처가얘기를 꺼냈다.
"한창 바쁠 텐데 좀 거들어주러 가야잖겠어?"
"어쩐 일로 먼저 가재? 당신 이제 보니 참 괜찮은 사람이야."
얼씨구.
난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처갓집에 풀어놓은 닭들이 나를 원수보 듯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속셈은 곧 탄로 나고 말았다.
처가의 비탈진 밭 정리문제로 공사가 벌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닭장을 철거하고 닭 숫자가 줄어들자 이내 발걸음이 줄어들었고, 어느 날 대화 중에 나도 모르게 속내의 본심이 나왔다.
"거길 뭐 하러 가, 닭도 없는데."
처가의 닭들이 토종이라고 장담할 수 없지만 그나마 계속 알을 낳아 그놈으로 부화를 시켜 길렀으니 토종에 가깝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요즘 토종을 접목시켜 토종닭에 가까운 (맛닭)이라는 걸 개발해서 시중에 판다기에 사다가 고아먹어 봤는데...
어림도 없었다.
마트에 나가면 토종닭이라는 상표를 떡하니 걸고 배짱 좋게 파는 닭이 있던데 먹어보면 일반 산란계보다야 낫지만 토종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막 갖다가 붙여서 팔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만큼 토종이라는 단어가 주는 믿음이 강하다는 방증이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무조건 크고 많이 생산되는 종에 밀려서 청산해야 할 유산쯤으로 도태시키더니, 알고 보니 토종이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신토불이라고 손바닥 뒤집 듯 입장이 바뀐 것이다. .
이쯤 되면 우리들의 변덕이 뺑덕어멈 뺨을 치고도 남을 일이다.
토종을 사수한다는 농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집 마당엔 검은 닭을 기르고 있었는데 혹시 오골계가 아닐까 싶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더니 오골계는 아니었다.
오골계는 덩치가 크지 않은 데다 눈으로 보기에도 모습이 달라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문가가 아니니 닭을 기르는 농가의 말을 믿을 수밖에.
덩치가 무척 큰 데다 얼마나 윤기가 흐르는지 한 마리 사다가 기르고 싶은 욕심이 들 정도였다.
그 양반 말로는 어렵게 씨를 구했고, 어느 정도의 양이 될 때까지는 판매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꽤 오래전의 일이니 지금 쯤 그 수 가 많이 불어나지 않았을까.
옥수수 수요가 폭발적이다.
한때 사료용으로 황옥재배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미각을 중시하는 풍토가 일면서 맛 중심의 종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옥수수 역시 그 중심에 서있다.
대부분의 재래종 메옥수수들이 설자리를 잃고 도태되었다,
재래종 옥수수들은 병충해에 약하고 도복이 심한 데다 생산량이 적고 대부분 메옥수수여서 식량의 역할 외에 간식으로서의 매력은 별로였다.
새로 개발된 미백이나 괴산 대학 찰옥수수등은 알이 치밀하고 부드러운 데다 찰기가 강해 간식용으로 인기를 구가 중이다.
한우의 주 먹거리가 외국에서 들여오는 옥수수를 이용한 사료라는 걸 알면 옥수수는 그리 간단한 종자도 아니려니와 지구인의 육식을 해결하는 슈퍼맨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옥수수를 먹은 쇠고기를 비싸게 먹으면서도 일반 찰옥수수는 간식용으로 여기고 있으니 우리의 이중 플레이가 이만하면 갑 아닌가.
재래종 찰옥수수의 한 종인 주먹찰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경험상 옥수숫대의 키가 작아 도복에 강하고 옥수수통이 굵고 짧으며 겉면이 좀 거칠지만 찰기가 강하고 맛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주먹찰옥수수는 삼십 수 년에 걸쳐 계속 씨를 받아 년년이 심어 종자를 이어왔으니 분명 여느종과는 차별이 된다.
보통 개량종은 한 두해만 씨를 받아 계속 심으면 병충해는 물론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다.
그러나 저 종은 그런 일이 없다.
하지만 아쉬운 일이 생겼다.
몇 년 전까지 명맥을 유지했는데 시골 장모님이 종자보존을 잘 못하는 바람에 내년에 심을 종자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혹시나 하여 집안을 뒤지고 있는데...
만일 없으면 아쉬운 일이다.
분명 근처 어디에 재배하는 농가가 있을 것이다.
저놈이 토종이라는 학술적인 근거는 부족하지만 대를 이어 장수했으니 그리 믿는 거다.
시골에서 심는 감자는 보통 하얀색이 주류였지만 그중엔 보라색 감자가 있었다.
감자알이 길쭉하니 투박하게 생겼지만 가마솥에 삶으면 분이 많이 나고 여느 감자보다는 단맛이 더 났다.
하지만 이 감자 역시 병충해에 약했고 수확량이 매우 적었다.
식구들 많은 집에서 수확량이 적은 자주감자는 그리 달가운 대상이 아니어서 그저 맛보기용으로 심었다.
요즘엔 컬러푸드라고 하여 여러 색깔이 나는 감자나 채소가 개발되어 시판 중이다.
보라색이나 노란색 등의 컬러푸드는 각종 영양소의 가치도 인정받거니와 눈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비주얼도 무시할 수 없어 미각과 감각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고 보면 옛 자주색 감자는 선견지명이 분명하긴 했는데 그놈의 굶지않고 먹고사는 문제가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 한 셈이다.
후미진 산골짝에 가면 통나무를 깎아 만든 원통형의 재래종 벌통이 놓인 곳이 지금도 있다.
대부분 바위 밑이나 큰 나무아래 두었는데 토종벌들이 분봉을 하면 벌을 받아다 통에 넣었다.
여름내 벌들이 물어 나른 꿀들이 벌통 안에 차면 초가을이나 가을 중순에 단 한 번 꿀을 채취했다.
보통 벌들이 먹을만한 양의 꿀을 남겨 두는게 정설인데 근간엔 설탕을 먹이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토종꿀에 대한 신뢰도가 좋지않은 편이다.
자연의 상도덕으로 따진다면 인간의 양심이나 약탈이 산적떼들과 진배없지만 자연 최상위 포식자의 입장과 약육강식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수긍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자연을 보호하는 일과 그 열매를 맛보는 일이 평행을 이루지 못하면서 요즘 토종벌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른 개체수 감소는 물론 말벌의 증가로 큰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에 가서 어렵사리 토종꿀 한 병을 얻어온다.
그나마 토종벌을 치는 지인이 있고 처가에서도 소량으로 벌을 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가의 토종벌들은 이태 전 모조리 얼어 죽었다.
혹독한 겨울날씨와 소량의 먹이가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이다.
진짜 토종꿀을 만나기 어렵다.
토종벌을 치는 농가도 만나기 어렵거니와 1년에 단 한차례 뜨는 꿀 량이 많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중엔 토종꿀이란 이름을 달고 엄청난 양의 꿀들이 활개를 치니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가 학을 띠고 갈 노릇이다.
어린 날, 높은 천장에 문종이로 주둥이를 감싸서 매달아 놓은 꿀단지를 내려 먹겠다고 갖은 꾀를 짜내던 기억이 삼삼하다.
어찌하다가 내려먹은 꿀맛도 잠시, 빗자루 몽둥이로 먼지가 나도록 매타작을 당한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요즘 아이들은 절대로 그럴 일이 없을게다.
그거 말고도 맛난 게 얼마나 많은가.
그때는 엄마가 왜 그리도 밉던지.
혹시 내가 어디서 주워온 애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는.
근간에 토종의 우수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렇게 괄시를 하던 토종이 이제 명맥이 거의 끊길 무렵이 되자 그 가치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옛말에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토종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의 땅에서 오랜 세월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식량이라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혼과 진배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그 가치를 너무 늦게 깨닫고 있다.
이제라도 토종의 우수성을 알아보고 이에 대한연구가 진행 중이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작금에 부는 한류열풍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되었으면 싶고, 그 가운데 한국의 토종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1)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 광야에서 먹었다고 하는 1종류 또는 그 이상의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