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성찰의 시
지은경 (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
유숙희 시인의 시는 보편적 국민 정서를 지닌 대중적인 시이다. 대중성이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시라는 뜻도 된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지면 그게 바로 대중문화인 것이다. 즉 특수층이 아닌 보통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시란 가족 이야기, 고향 이야기, 생활 이야기 등 보통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인 일상이 묻어있는 시들이다.
시 창작의 바탕은 체험과 상상력에서 이루어진다. 상상하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능력이다. 이 상상력이 체험을 바탕으로 할 때 주제가 선명하고 절실함이 다가와 독자의 공감을 얻게 된다. 유숙희 시인의 시들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서 삶의 애환을 시로 차용하여 형상화하는 서정성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무난한 사상 전개가 눈길을 끌어 읽게 된다.
서랍 안에는 세월의 무게와 빛바랜 사진
잊혀진 추억이 잠들어 있었다
한쪽에 접혀져 있는 편지 봉투 안에는
까만 하트 모양의 알 수 없는 씨앗들이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빙긋이 웃고 있었다
너희들이었구나
어둠과 바위를 들어 올리는 힘을 다하여
문이 열리게 하였구나
이름도 알 수 없는 사랑스런 모습을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올 채비를 하였구나
-⌜자유를 꿈꾸는 씨앗⌟부분
위 시는 자연물인 ‘작은 씨앗’에 대한 시인의 애정 어린 시선과 내적 탐색이 깊어 시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모든 문학은 사유의 산물이다. 삶의 곤고함에서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특히 사유를 전제로 시작하는 시를 오래 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생각의 힘이
키워진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관계가 단절되어 가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시의 다양성이 수용되고 있다. 선별되지 않은 시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옳고 그름이 다름을 인정하자는 윤리의 위기 시대에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그러나 시인은 삶의 부조리를 시를 통해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줌으로 위대한 것이다.
높은 빌딩 아래
잘 생긴 꽃들과 쭉쭉 뻗은 나무들이
건물을 치장하며 어울려 서 있구나
틈새에 납작 엎드려 겨우 뿌리 내린
수년간 함께한 세월 속에
고향이 그리운 도시 생활
시멘트 길과 콘크리트 건물들이 숨을 막아
골목 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정신이 아찔하였지
비록 더부살이 같은 삶일지라도
뿌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 쓰는
네 모습이 내 모습이구나
애처롭게 닮은 우리
-⌜민들레⌟부분
문학의 존재 이유는 삶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위 시는 빌딩 틈새에 가엽게 핀 민들레의 풍경을 한 편의 시로 재구성한 시이다. 본향을 떠나온 회귀의 식과 서민의 애환을 읽게 된다. 그 애환은 고통이나 비극이 아닌 희망으로 받아들이는 생활인의 철학을 확인하게 되며 잔잔한 서정으로 빚어내고 있다. 문학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이다. ‘민들레’라는 자연물을 차용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성에 대한 가치를 일깨우고 희석되는 시대에 문학은 한 인간의 정서를 언어로 표출하여 감동을 준다면 그것으로써 유용한 것이다. 유 시인의 시들은 미려한 수사법을 시어로 사용하지 않지만 삶에 대한 애정 어린 모습을 보여주어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더욱 예뻐지기 위해
부모님이 주신 얼굴 바꿔버리고
한 번으로 부족해 여러 번 고친 얼굴
정채성 없는 허깨비 얼굴
꽃도 원래 모습이 아름다운데
자꾸만 개량해 가는 세상
사람, 식물, 동물, 나무들마저도
모든 것이 바뀌고 변해 간다
-⌜접시꽃 사연⌟부분
지금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초급속도로 변해 가는 시대이다. 식물도 개량되고 강남에 성형외과가 즐비하다. 시인은 순수를 잃어가는 시대를 비판하며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한계와 경계를 분명히 정리함으로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당위성을 확보하는 시이다. 그의 시들은 언어의 기교나 수사적이지 않아 평범해 보이지만 솔직하고 진심이 담긴 성찰의 시를 쓰고 있다. 문학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지켜준다는 점에서 순수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어 아름답다.
유숙희 시인은 조그만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자기의 일을 갖고 있으면서 가정을 지키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꾸준히 시를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양심적이고 정직한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 시집 [자유를 꿈꾸는 씨앗] 발간을 축하드린다.
일취월장 정진하길 기원하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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