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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이 시리즈는 반남박씨 족보(세보)와 씨족사(氏族史)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글의 내용과 관련하여 의문이 있으면 언제라도 아래 댓글을 이용하시기 바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성심을 다해 답변할 것을 약속합니다.
반남박씨 씨족 이야기 6
반남박씨 족보 이야기 4: 병술보(1766년)
박사임(朴師任: 1682~1763)이 쓴 병술보의 서문은 영조 31년(을해: 1755년)에 지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보책(譜冊) 자체는 병술년(1766년) 여름 경성(京城: 서울)에서 판각(板刻)하여 인행(印行)하였다고 한다. 병술보는 대체로 앞의 계해보(1683년)의 예를 따라 편찬되었으나 그 구성에 있어서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병술보의 특징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반남박씨 종족(宗族) 전체에 사용될 대동(大同) 항렬(行列)을 정한 명자강정도(名字講定圖)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22세(世)에서 26세까지 항렬이 정해져 있다. 22세: 朴齊O, 23세: 朴O之, 24세: 朴後O, 25세: 朴O齡, 26세: 朴以O. (21세는 朴O壽. 이것은 병술보 명자강정도 이전에 정해진 것으로 판단됨).
2. 선조의 산소(묘소) 위치를 보여주는 분산도(墳山圖)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선조(先祖) 호장공에서 12세(世) 감정공(監正公: 휘 응천應川)에 이르기까지 주요 묘소와 그 국내(局內: 묘지의 구역 안)에 위치한 자손들의 묘소를 표시하고 있다.
3. 1世에서 9世까지의 '반남박씨세파도(潘南朴氏世派圖)가 처음 등장한다. 세파도에 오른 인물(남)은 총52분이다(참고: 병술보의 세파도는 다음 세보인 을유보(1825년)에 그대로 옮겨진다). 그러나 세보의 본체(本體)인 후손록(자손록)에 등재된 인원과는 차이가 있다. 다음 도표에서 숫자는 인원(남)을 나타낸다.
세대 | 1세 | 2세 | 3세 | 4세 | 5세 | 6세 | 7세 | 8세 | 9세 |
세파도 | 1 | 1 | 1 | 1 | 3 | 5 | 4 | 13 | 23 |
자손록 | 1 | 1 | 1 | 1 | 3 | 5 | 4 | 21 | 35 |
세파도에는 없으나 자손록에는 등재된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①8세(8인): 우(耰)ㆍ적(耤)ㆍ운(耘)ㆍ경(耕)ㆍ곤(耒+昆)ㆍ숭언(崇彦)ㆍ숭인(崇仁)ㆍ숭무(崇茂)
②9세(12인): 헌(軒)ㆍ린(轔)ㆍ전(㙉)ㆍ인정(仁亭)ㆍ팽령(彭齡)ㆍ눌(訥)ㆍ지(址)ㆍ장손(長孫)ㆍ장련(長連)ㆍ장걸(長傑)ㆍ감(堪)ㆍ증(增)
4. 자손록의 기록 방식은 대체로 계해보를 준용하였다. 다만 상대(上代) 선조를 9世까지로 하여 1세~5세와 5세~9세로 세대를 나누어 '권지일(卷之一) 총편(總編)'으로 묶어 등재하고, 9세부터 각 계파별로 한 단위로 하여 후손들을 등재하였다. 35분의 9世 중에서 후손이 단절된 8분을 제외한 27분을 각각 기점으로 하여 계파 집단을 만들었으며 세대 단위는 9世~15세, 15세~21세로 묶었다. 다만, 병술보에 마지막 세대로 등재된 22世(제齊자 항렬)는 13세 박동량(朴東亮)의 후손인데 9세 끝이 아닌 13세 박동량 후손 끝에 21세~27세 단(段)을 만들어 붙여 놓았다. 22세는 아직 그 수가 지극히 적어 멀리 9세 끝에 올리면 열람상의 불편이 예상되므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5. 병술보도 계해보와 마찬가지로 별보(別譜)를 제작하였는데, 그 등재 인물 수가 대폭 증가하였다. 먼저, 병술보에서는 별보(廣義: 넓은 의미)를 부보(附譜)와 별보(狹義: 좁은 의미)로 세분하였다. 부보에는 1세 호장공까지 후손록이 중단 없이 연접(連接)되어 있으나 객관적인 확인이 안 된 파계(派系)를 등재하고, 별보(좁)에는 후손록에 나오는 최상위 인물의 선계(先系)가 미상(未詳)인 파계를 등재하였다. 전체 별보는 부보 2권과 별보(좁) 9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부보에는 함양파(咸陽派)와 장련파(長連派)가 올라 있고, 별보(좁)에는 힐파(詰派)ㆍ지후인파(祗候仁派)ㆍ창신귀근파(彰信貴謹派)ㆍ박유광파(朴愈光派)*ㆍ학생근지파(學生根地派)ㆍ군사진창파(郡事震昌派)ㆍ동정보파(同正寶派)ㆍ상정파(尙貞派)ㆍ윤복파(潤福派)가 등록되었다. 이 가운데 병술보에 새로이 올라온 파계는 뒤의 5개 파(派)(밑줄)이다. (참고: 박유광파*는 원래 계해보에서 송도(松都)의 박창림(朴昌林)을 파조로 하였는데 병술보 단자에서 박유광을 박창림의 아버지로 첨록하였다.)
병술보는 계해보(1683년) 간행 후 80여 년만에 간행한 족보로 그 사이 태어난 후손을 비롯하여 전보(前譜)에 누락된 후손들을 찾아 등재하고, 별보에 올리는 선계 미상의 파계를 확대함으로써 계해보에 비해 그 양이 대폭 증가하였다. 병술보의 편집 체제는 그 이후의 족보 편찬에 큰 영향을 미쳤다.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