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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th. May(토) 1977
또 한 주일이 갔다. 너무 오랜 느낌이다. 자질구레한 일들이 신경을 긁는다. Transformer(연료이송기)의 수리가 말썽이다. $500이상의 수리비가 나왔다. 이건 진짜 너무했다. 그나마 공사 결과를 알지고 못하는 프랑스말로 써놓고 어거지로 Sign하란다.
Agent에 가서도 한참을 싸우듯 했다. 여기는 Senegal이고 저네들은 프랑스어를 쓴단다. 맞지. 그러나 나는 아니지 않느냐.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서명하냐. 수리한 것을 다시 떼어 가겠단다. 떼어가라고 하는 C/E. 그도 딱하다. 수리 않으면 안 된다고 지랄한 것이 누구며, 떼어가도 좋다는 것은 또 뭐야? 도데체가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됀일인지. 쩝쩝하다. 입맛이 -.
Sailing Instruction이 왔다. Spain의 Algeciras라고 쓰였다. 그런데 매일의 타전보고는 Mavacasa가 아니고 다른 이름이다. 그러면 왜 C/P나 Instruction을 주지 않는가? 그저 말로만 ‘No Problem"을 연발한다. 가면 된단다. 에라 될데로 돼라지. 허나 본선의 Mistake만 분명히 없으면 된다. 18시 오늘 하역 종료. Oil Berth로 이동. 내일 아침 06시에 다시 돌아온단다. 우선 선원들에게 미안하다. 매날 Shifting해야 하고 양쪽 배 사이를 봐야 하니까. 어서 끝내고 갔으면 싶다. 오늘 아침에 간다던 남양사 Iris호가 출항치 않는다. 무슨일이 있는걸까?
아침에 뜨는 해와 마찬가지로 지는 해도 부옇다. 마치 그보다 더 둥그런 것은 다시 없다는 듯이 테두리를 분명히 하면서 그 강하게 작열하던 빛과 볕을 어디다 다 앗겼는지, 서서히 수평선너머로 사라져 간다. 저게 수평선을 넘으면 저쪽 하늘에 다시 떠오르겠지. 부산에도 제법 더울거다. 벌써 대구는 30도가 가깝다고 그제께 신문에서 봤다. 해도 무척 길어졌으리라. 외항에 기다리는 선박은 전부가 어선(스페인과 소련선적)들인 듯하다. 벌써 며칠째인가. 그저 멍하니 보내고 있는게 -.
그놈의 영어책을 들기만 하면 아침이고 낮이고 잠이 오니 영 환장한다. 소설책은 낮잠 재우기 위해 누워서 보아도 괜찮으니 확실히 병이다. 그저께부터 보는 일본책 ‘ユダヤ(유태인)상법’의 첫머리에서 잠시 본 ‘판단의 기초는 외국어’라고 했다. 또 국제상인과 돈벌이의 첫째 관문이고 조건이 영어라 했다. 아무튼 필요를 느끼면 느낄수록 더 안 된다. 책에 무슨 꽝철이가 붙었나? 굿이라도 해서 될 것 같으면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내일은 또 일찍부터 서둘러야겠고-. 전쟁이다. 단순한 생존경쟁이 아니다. 나와 나, 나와 너, 그리고 너와 너의 보다 더 절실하고 침울한 전쟁이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하루하루가 -.
29. May(일)
식전부터 그놈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다. 예상외로 Bunkering이 늦다. 10시나 되서야 끝난단다. Pilot수배를 다시 했다. Mr. Conzelez가 식식 그리며 왔다. 왜 늦느냐고? 본선에서 빨리 받기를 거절했단다. 개새끼다. C/O는 통역을 사서라도 항의를 하잔다. 넌 도데체 뭐냐? 누구편인가? 나는 이 배의 최고 책임자인 선장이다. 나는 너를 Operator 대리인으로 보고 믿고 모든 너의 지시에 협조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누굴 믿냐? 선장인 나보다 Oil회사를 더 믿나? 왜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지랄이냐? 급유가 늦은 것은 우리탓이 이나고 Oil회사 탓이다. 자세히 알아봐라. 다시 어딘가 갔다 온 것일까. 미안하단다. 어제저녁 Oil Berth에 접안하고 나서 관계자와 합의. 오늘 아침 06시에 Shifting 하기로 하고 Pilot까지 수배했다는 설명을 듣고 다시 미안하단다. 자기도 죽을 지경이란다. 이해하지-.
20일이나 결렸으니. 그게 네가 계획한 것 아니냐. 나도 죽을 지경이다. 돈도 떨어지고 어서 가고 싶다. 오늘밤 늦게라도 출항시켜라. 밤일 시켜서라도-. 힘써 보겠고 자기도 원하는 바란다. 유 서기관이 다시 訪船. Iris호 때문이란다. 안내를 해주었다. 아마 전에 남양사의 어떤 배가 입항했다가 Agent Charge를 지불하지 않고 가버려 Socopao에서 그 돈 안주면 출항을 못시키겠다고 대신 잡고는 뱃장이란다. 서글픈 일이다. 누구의 잘못이던 ‘꼴뚜기 어시장 망신꼴“이다. 여러 수 백명의 외교관이 설치고 세운 국위가 이런 회사 때문에 사그리 무너져 내린다. 유 서기관 말마따나 그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남사스런 일이다. 그런 최대의 협조를 하겠단다. Las에 전화하니 연이은 휴일에 어딜갔는가 아무도 통화가 안 된단다. 잘한다. 꼴들이 -.
일단 ETD가 밤10시로 정해진다. 내일은 Catholic 관계로 전 유럽이 휴일이라 이곳도 논단다. 저녁 7시 유 서기관집에 저녁을 초대받아 이 선장과 함께 가기로 했으나 응하지 못해 서운했다. 알리긴 했다. 22시 적하 완료. Document하다. 기관실 이송펌프 때문에 다시 Clearance를 주느니 안주느니 했다. 거기다 Remain Oil(잔유량) 양 때문에 다시 한번 치부을 들어냈다. 뭘하는지 모르겠다. 맨날 먹고 놀면서 -.
Mr. Conzelez의 싱긋이 조소하는 듯한 입가의 움직임이 오랫동안 계속되겠지. 가면서 Algeciras.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Of course, I also want to see you again.’를 했다. 그 깜둥이 대리점 녀석 Mr. Giussi라던가 다시 오란다. 에이 자슥들-.
자정에야 줄을 풀고 떠났다. 모처럼의 항해다. 밤바람이 제법 싸늘하다. 외항에 예상외로 몰려오는 거센 파도가 Pitching을 일으킨다. 시원섭섭하다고 할까. 그래도 그간 정이든 탓인가 Watch men으로 와있던 그 상냥한 깜둥이 청년도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뜻은 통했다. 현장감독 녀석도 -. 보기보다 곱상하고 부지런했던 이곳 인부들이기도 했다. 차라리 흰놈들, 진한 버터와 시가 냄새에 골치가 팅 하던 그놈들 보다 정이 가고 아쉬움이 있다. 마드모아젤 Muriel. 한번 더 보고 갈걸 하는 미련조각이 남는다. 다시 이곳을 더 들릴는지 아니면 영영 못 들리고 말런지는 모른다. Dakar! 내 승선기간 동안 또다시 새롭게 거처간 서부아프리카의 한 아담한 港口였다. 몸과 마음 그리고 눈자위가 아프리만큼 피로한데도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안전항해를 위한 기원과 최선을 스스로 다짐을 해본다.
30th. May(월) 1977
07시에 잠을 깼으나 부족한 잠이다. 완전히 Course Setting 하고 다시 누운 것이 01시 반경이었고. 뒤적뒤적하다 잠든 것이 아마 03시는 됐으리라. 얼마 자지를 못했다. 그도 숙면도 아닌체 -. 德丸. 대아, 그리고 새로이 찾아갈 Algecirace의 Agent에 각각 출항과 입항을 알리는 전보를 띄웠다. 역시 예상외로 계속 거친 海上이다. 정북풍. Dakar 접안중 불던 그 계절풍인듯하다. 부족한 잠에다 멀미기운까지 겹치는가 매석하고 머리가 아프다.
종일을 누어서 보내다 Noon Report에 Oil 양이 다시 틀린다. 담당 2/E를 불러 직접 Check 해 보냈다. 역시 Miss가 있다. 어제 받은 Bunker가 분명히 137.84톤인에 150톤으로 보고되었다. 개망신아닌가. C/E 확인거쳐 타전하기로 했다. 좀 정신들 차려야지 -. 미안한 듯 C/E가 Sign한 Memo가져 왔으나 다시 Log Book을 조사. 재확인했다.
‘ユダヤ(유태인)상법’, 나 같은 사람에겐 어쩌면 꼭 맞는 교본 같은 책이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경제동물 유대인. 그러나 그것이 곧 자신의 富를 위한 단순한 상술이 아닌 듯 하다. 철두철미한 商魂, 어쩌면 감정을 배재한 金의 완전한 노예 같은 처절하고 독한 면이 있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 같이 어물적하고 흐리한 놈에겐 一讀의 필요가 있다. 2천 년간 박해를 받아가며 견디어 온 그 비참한 역사적 인내심,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지키고 추구해온 낙관주의. ‘인간은 변한다. 변하면 사회도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유대인도 반드시 소생한다.’ 는데 그들의 민족정신이 숨은 듯도 하다. 78:22의 우주법칙. 그리고 돈에는 그 족보가 없다는 의식. 철저한 현금주의.
상품의 제1과 2는 여자와 입을 꼽는 상혼, 집착보다는 과감한 결단. 돈벌이라면 회사자체도 팔아먹는, 그래서 회사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고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고방식에서 느끼는 무서움이 있다. 계약을 곧 신과의 약속이라 믿는 생활화된 습성. 심지어 계약서 자체도 상품이란다. 국적마져 돈벌이라면 팔고 산단다. 미결서류는 상인의 수치며 불시에 약속 없이 찾아온 손님은 시간이란 상품을 도둑질해가는 도둑놈으로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국가에 바치는 세금은 그들의 정신만큼이나 철저하게 낸단다. 좀 더 읽어보자. 섹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의 정신이 곧 그것 아닌가. 지금 세상은 그런 사람이 되겠금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찔한 생각도 든다.
31st. May(화)
국장영감이 건강이 여의치 않는가 보다. 감기 몸살인가 긴 온도계을 노상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 38.5도란다. 혹시 마라리아는 아닌지? 영감님 자신도 말은 않지만 염려하는 눈치다. 그간 날씨관계로 모기는 거의 없었는데 -. 어저께부터 나도 그랬다. 미열이 있고 머리가 팅 했다. 계속 계절풍에 제법 파고가 있다. 본선의 선교 및 침실이 중간에 있어 크게 느끼지는 않으나 Pitching을 제법한다. 영감 왈, "이번에 교대해 달라고 연락했오." 불편하게 많으리다. 늙은 몸에-. 마음끝 해주지 못 하는게 미안하다. C/S에게 우선 죽이라도 좀 쑤게했다. 일찍 자리에 들어 쉬라고 권하고 -. 나도 이불을 죄다 덮고 내의 입은 체 누웠다. 더 악화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한다. 다소 안심은 되다만 그래도 젊은 사람과 다르고 워낙 성격이 꼼꼼하고 조심하는 사람이라 큰 탈은 없을 것 같다. 약도 주라고 했다.
자정쯤 북위22도선을 넘었다. Cabo Lorveiro를 약 19도에서 Radar로 잡아 서서히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Spanish Sahara 연안이다. 아침결에는 소련의 대형 트롤선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큰 운반선에서 양쪽으로 전재하기도 한다. 부근을 항해하는 선박도 많다. 게중에는 한국선박들이 없는가 찾아 봤으나 없는 듯하다.
신문학전집을 다시 바꾸다. 다섯 권 째다. 아니 여섯 권 째다. 수필집이후 두 번째니까. 먼저 번 소설은 너무 어려웠다. 이야기도 아니고 무슨 독백 같은 것도 있었고 또 내용자체도 너무나 비참하고 회의적인 것들이 있다. 왜 그런 글들을 쓰야 하는지 모르겠다. 보다 희망적이고 밝은 내용은 없을까? 통속적으로 소설이라는 것이 그저 있음직한 얘기가 아니고 이런 것도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정도만 느꼈을 뿐이다. 너무나 자학적인 것은 오히려 반감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끝까지 철저하게 인생을 부정 혹은 거절한 것은 그 작가의 본질적인 의도를 모르겠다. 누구나 쉽게, 그리고 흥미롭게 읽혀지고 그래도 그 중에 무엇인가 ‘하하 그렇구나!’하는 느낌이라도 주는 소설, 또한 있음직한 구수한 얘기, 그런 것이 좋은데 -. 밑도 끝도 없는 혼자의 생각, 비약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왔다가... ,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간다. 역시 내 스스로의 교양이나 문학에 대한 실력이 턱없이 모자라는 문외한인 모양이다. 그러나 분명히 소설로서 문학적 가치가 있으니 세상에서 전문가들이 알아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5월이 간다. 달이 무척 밝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 떠오르는 달. 그리고 그 빛이 부서지는 해면, 책상에 앉아서 뵌다. 무슨 빛이라고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닿아서 부서지는 그 조각 하나 하나가 천태만상이고 또한 각각 그 빛을 달리한다. 낭만! 이를 두고 그렇게 부를 수가 있겠지만, 나에겐 너무나 현실적이다. 우선 밝아서 좋고 더 이상 저 파도야 높아지지 않아야 한다는 -.
1st. June(수)
한결 바람이 자고 해상도 잔잔하다. 6월의 첫날. 상쾌한 아침이다. 이 한 달도 무사히 그리고 건강한 6월이 닥아 오는 初夏의 싱그러움과 함께 해주기를 빈다.
Las 그리고 Mavacasa에 타전. 제반 작업비, 주부식 등을 수배의뢰 했다. 09시경 주위의 트롤작업선에서 한국선 ‘제1대진호’를 발견. 바로 부근에서 작업중이다. SSB나 VHF로 불렀으나 응답이 없다. 그냥 손만 흔들다. 부근에 여러 척의 Trawel선이 있다. 어쩌면 정진천 군. 권척량 군 최경천 형 김해룡, 송기양 후배 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저 안쪽에서 조업중인 배는 그곳 경비정에 전신경을 곤두세우리라는 억측도 해본다. 70년인가 북양에서 동성호가 소련에 피납된 후 가졌던 경비정에 대한 노이로제 현상을 상기케 한다. 하늘이 맑다. 구름 한 점 없고 마치 우리 한국의 초가을 같다. 알맞은 바다. 그러나 쉴새 없이 작업은 계속되리라. 지난날 내 자신도 이곳에 와서 2-3년을 저렇게 헤매며 보낼거라는 생각에 잠겨도 본다. 전쟁. 역시 이것도 전쟁이다. 월남전 같은 Dirty한 것이 아닌가. 내가 살려면 남을 죽여야 하는 치열하고 급박한 전쟁이 끊임없이 전개된다. 가급적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게 우리가 피해 주랬다. 밤늦게 까지 밝은 작업등을 켠 작업선도 내 삶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역시 이 부근이 主漁場이 되고 있은 것인가.
어께가 이상하게 아프다 왼쪽 등어리쪽이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으면 몹시 아프다 전에 없던 현상이다. 담인가? 신경통인가? 보통 때는 괜찮은데 오후쯤 책상에 있으면 아파온다. 밤이면 계속이다. 영 기분이 안 좋다. 운동부족에서 오는 것인가?
보름달이 탐스럽다 수평선 바로 위해서 한결 가깝게 보인다. 배를 돌려 조그만 가면 곧 잡힐 것도 같다. 주위에는 어제 저녁만해도 그리 많든 작업선이 한 척도 없다. 당직자들도 심심한가 보다. 그저 지난날 있었던 재미났었고 아기자기했던, 아니면 억세게 흥분했었거나 어려웠던 얘기들로 무료함을 달린다. H/Q의 큰애가 학교 앞 ‘쪽자’가 해먹고 싶은데 말리는 아버지 빨리 배타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저희들끼리의 얘기를 듣고 그놈의 쪽자쟁이를 모두 콱 때려 부셔버리고 싶었다는, 그러면서 그 ‘쪽자’보다 못한 아버지가 됐다는 자책감이 무섭게 깔려왔다는 얘기. 정화가 집에 좋은 공책을 두고 그보다 못한 것인데도 제 손으로 사고 싶어 하더라는 얘기. 정주가 그 추운데 쪽자 사러 혼자 가겠다고 나서는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아이나 어른이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의도는 마찬가진가 보다. 호기심도 있겠지. 욕망!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
모처럼 더운물에 목욕을 했다. 많은 때는 없었으나 한결 시원하고 상쾌하다. 그간 Nigeria에서 그을렀던 살결이 근 한 달 가량 동안에 원색를 되찾고 있는가 보다. 내의도 오랜만에 삶아 빨았다. 면도도 했다. 귀밑으로 혹은 귓밥에 잔털이 수북했다. 말끔히 깎고 거울을 본다. 아직은 괜찮다는 생각이다. 그놈이 자꾸 말을 걸어온다. 귀찮게 시리-. 목욕 후 한결 개운해진 기분 탓인가 여기서 어쩌란 말인가? 남은 스페인산 포도주나 그득히 한 컵을 죽 들이키고 달래는 수밖에 -.
2nd. Jun.(목)
너무 조용하고 잔잔하다. 밤새 바람이 거의 잦다. 파란하늘과 물이 맞닿은 수평선. 맑은 아침햇살이 반짝인다. 상쾌한 아침이다. 국장이 찾는다. 몸이 괜찮단다. 다행이다. 아침까지 죽을 먹었는데 이젠 밥을 먹겠단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조심을 하랬다.
08시 Cabo Botador 등대를 항과 035도로 변침하다. 21:40시에 북위 28도선을 넘으며 Spanish Sahara의 Cabo Yubi 등대를 14마일 떨어져 Pass하다. Spain령 Canaria제도와 Africa대륙사이를 지나는 중이다. 예상대로 속력이 늦다. ETA(입항예정시간)가 12시간정도 늦어진다. 내일쯤 다시 고쳐 알려야겠다. 오후 선내를 순회했다 맨 아랫층이 말끔히 소제되었다. 잘한 일이다. 마치 겨울철 낙엽 잃은 나목같이 각방의 침대가 엉켜있다. 아까운 space다. 앞 침실의 Sanitary Tank가 파열. 계속 해수가 새어 화장실 사용이 곤란하다. 아랫 통로에 고인물의 처리 및 누수원인을 찾게 하다. 식수소비가 일일 15톤. 너무 많다. 무슨 원인이 있을 거다. 규명토록 하다. 기관실에서 Heating Tank내 Pipe의 파열로 청수소비가 많다고 하나 지나치다. 낡은 배인데다 너무 관리 또한 소홀했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무엇인가 자꾸 고장이 생기고 터지고 부서질거다. 국장 왈. 선주인 德丸측에선 다시 냉동선 3-4척을 구입 운항시작했단다. 299톤형, 대아에서도 몇 척 받았을까? 우리배도 가급적이면 매선되고 새로 갈아탔으면 좋겠다니 그도 ‘그랬으면 오죽 좋겠냐’ 한다. 너무 낡았는데 장기간 원거리의 항해가 염려스럽다. 지금이야 계절이 좋지만 겨울철 지중해는 무리가 아닐는지. 우리의 안전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그게 가장 믿읍고 확실한 방법이다.
5. Jun(일)
순항을 계속한다. 아침 8시 45분 서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최서북단의 Cabo Spartel등대를 항과 Gibraltar해협으로 들어서다. 희부연 안개가 수평선을 가려 멀리 보이질 않는다. 겨우 3-4마일 정도 아스라히 아프리카쪽 높은 산이 연이어 보인다. 아마 Atlas산맥들인가 보다. 잔잔하고 맑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수십 척의 배들이 Radar에 잡힌다. 주위에도 해협을 들어서고 나가는 배들이 여나문척이 된다. 공선인 Tanker의 거대한 놈들도 있다. 왕래하는 선박의 폭주에 따라 이곳 Gibraltar해협에도 통항분리방식을 취하고 있다. 모로코 북단의 산들이 가파르고 험한데는 의외다. 사막을 연상해 온데 비해 너무나 험악한 암석 투성이의 바위산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한 북단인 Leona岬과 그를 받치고 있는 높이 2750피트의 Sidimusa산의 산세가 장관을 이룬다. 희끄므레한 것이 혹시 잔설인가 했더니 아침햇살을 받아 비치는 바위벽들이다. 12시에 겨우 수로를 지나 正北으로 지브랄탈만으로 꺾어 오르다. 조류가 강하다. 스페인 본토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하얀 객선들의 왕래가 많다. 희부연 안개 속에서 그 장쾌한 모습을 서서히 들어 내는 지브랄탈 요세가 景觀이다.
그 끝 Point Europe에 등대가 서 있다. 육지와 이어져 있으면서도 마치 섬 같이 우뚝 솟은 바위산. 아무리 두들겨 부수어도 꿈쩍도 않을 만큼 강직한 한 개의 덩어리다. 목적항 Algeciras! 조그마하면서도 깨끗한 포구다. 그러나 그 뒤 시가지에 늘어선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한결 시원스런 감을 준다. 묘박을 준비 중에 Pilot가 승선. 13:30시에 접안을 완료했다. Agent와 Quarantin Officer가 기다리다 올라온다. 오늘은 휴일, 내일부터 4-5일 걸릴 예정이란다. 아프리카쪽 보단 확실히 다르다. 역시 유럽인가?
입항 전 Spain Standard Time으로 한 시간 당겼는데 Summer Time 관계로 다시 한 시간 당겼으니 4시인데도 해가 중천이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땅거미가 진다. 밤12시가 초저녁이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인상이 좋다. 접안한 부두 맞은편에 객선이 닿고 뜬다. 많은 승객이 보인다.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
오후 늦게 안개가 걷히자 저쪽 아프리카 대륙의 산들이 아스라히 보인다. Moroco겠지. 한번 가보고 싶다. 영화에서도 본 용맹스런 모로코의 기병들이 생각키운다. 낙타를 타고 흰망토를 걸치고 머리가지 흰 터번을 두른 체 살같이 달려가는 그 용병. 또 하나 월급제로 고용한 외인부대가 있었지. 지금도 있을까? 카사불랑카는 이곳 모로크의 제일가는 도시란다. 많이 듣던 이름이다. 한국의 어느 맥주집 이름으로도 쓰인 기억이 있다. 그 부근의 마라키시라는 곳은 카사불랑카 다음가는 도시로 옛왕성과 더불어 알맞은 기후로 겨울철의 避寒地, 관광지 등으로 전 유럽에서도 유명하단다. 고인이 된 영국의 처칠 수상이 만년의 몇 주간을 보낸 곳이라고도 한다. 저 많이 왕래하는 객선들이 어쩌면 그곳으로 가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지도 모르겠군. 부두에 산책하는 커풀이 많다. 반드시 젊은 연인들만이 아니다. 늙은 노부부도 있고 얘들을 2-3 데린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저녁때 (그래도 밤 10시다) 국장과 함께 부근의 거리를 거닐었다. 이 달 15일 선거가 있는 모양이다. 벽보가 수도 없고 질서도 없이 붙어있다. 외관상으로 깨끗한 거리다. 특히 사진으로만 보아온 유럽풍의 뒷골목이 인상적이다. 돌 조각을 깐 비탈길, 멋지게 손질한 공원의 수목과 꽃. 그리고 그사이 벤취에 앉아 서로 꼭 목을 껴안고 앉은 남녀들이 보기 좋다. 젊은 학생들 같은데 손뼉을 치며 남녀가 돌아가며 추는 경쾌한 춤. Flamenco 라고 국장이 이야기한다. 거리엔 손잡고 산책하는 사람들로 충만하다. 영업을 하는 집은 음식점 이외는 없다. 역시 유대인이 말하는 ‘제2의 상품’이 분명하다. 특히 늙은 부인일수록 곱게 입고, 깨끗이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것이 보지 못하던 일이다. 처녀와 부인의 구별이 곧 화장이 아닌가 싶은 정도다. 그냥 같이 가는 사람은 없다. 어께를 감싸지 않았으면 두 손을 꼭 잡고 간다. 잡아도 아주 꼭, 야무지게 잡았다. 남녀가 같이 가면서 손을 잡지 않으면 오히려 실례가 되는 것 같이 -. 빌어먹을! 사랑에 대한 도덕이나 윤리관이 판이하게 다른가보다. 나중 귀선하여 보니 모두들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 얼굴이 좁다. 특성인가 보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살결이 너무 희고 곱다. 까만머리 단정한 차림의 가족산책! 핵가족들인갑다. 길거리에 늘어놓은 벤취. 아무데서고 휴식을 취하도록 한 모양이다. 누가 뭐라든 얼굴을 맞대고, 가끔은 뽀뽀를 하고-. 자꾸만 생각이 난다. 밤이 익자 주변의 가로등이나 원경, 특히 지브랄탈의 불빛이 맑고 깨끗하며 찬란하다. 일찍 쉬자. 일주일간의 항해를 무사히 마쳤다. 마음속으로 감사드린다. 입항과 더불어 가족들의 편지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이다. 마치 희망을 갖지 못한, 무언가 허전함이 감도는 것을 금치 못한다. 차라리 候鳥, 철따라 찾아가는 철새라면. 이곳으로 띄워둘 수도 있으련만-. 부평초! 그야말로 한 잎 부평초에 지나지 않는다. 개새끼들. Lagos가 유럽쪽이라면 얼마든지 제때제때 보내주고 받을 수 있을 텐데. 선진과 후진, 개명과 미개의 차이, 문화의 가치, 역사의 장단 등이 가져다 주는 인간생활의 근본적인 격차, 그리고 인간자체에 대한 개념의 相異에서 잘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6th. Jun(월)
08시 양하시작. 인부들도 별로 없다. 하는지 않는지 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조용하다. 그러면서도 교대로 12시간 휴식이 없이 한단다. Agent 사무실 가다 Las와의 전화로-. 선용금 7,000달러 송금됐음을 확인하다. 차항은 Italy의 Triest의 One Port. 청구한 소모품 수배 등 결과를 확인하다. 德丸해운에도 차항이 확정됨을 알렸다. Las의 Mavacasa에서는 Mr. Tikam이 상근이 아니고 몇차레씩 나왔다가는 정도로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가 보다. 그렇담 우리가 치는 전보는 다만 그 Cable 혹은 Telex 번호만 빌리는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마침 Mr. Consalez뿐이고 티캄은 없단다. 작업비 지급이 어떻게 될란가?
저녁에 국장, C/E등과 시내 구경 나가다. 극장을 찾았으나 너무 늦었단다. 오후 10시반이다. C/E의 안내로 Sanghai Bar를 거쳐 옆집 Club를 둘러 보다. 시원찮다. 늙고 이상하게 생긴 여자들이 있다. 서로의 눈동자가 파랗고 부옇게 보이도록 실내조명이 되어있다. 기분이 이상하다. 맥주 한잔에 50Pesta. 아가씨들이 먹는 술은 한잔에 200Pst란다. 자그만치 1400원 꼴이다. 국장영감 질색인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옆에서 칭칭대는 얼굴이 드물게 둥그스럼히 생긴 아가씨에게 한잔 사본다. 이그러진 표정을 한체 -. C/E의 체신없는(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을는지 모르나 내가 보긴 그렇다) 짓거리가 나온다. 얼른 나오다. 낮에 얼른 들은 Night Club 얘길했더니 C/E 희색이 만면하며 기어이 가잔다. Taxi가 없다. Call제란다. 시내거리에도 Taxi 대기장소가 지정되어 있다. 우리네처럼 손님을 찾아 무작정 헤메는 것과 대조적이다. 늙은 운전수 영감님. 이름을 써보이자 도수 높은 안경을 꺼집어내 쓰고 보이더니 ‘Senorita'한다. 그렇다고 하니 알았단다. 아마 여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Night Club 'Rey Chio' 변두리 외따로 지어졌다. 입구의 역시 늙은 문지기 영감님, 아마 60은 넘어 보이는 데도 샛빨간 윗도리에 까만 바지. 하얀 와이쌰스에 나비타이, 그리고 마치 고적대원이 쓰는 모자(빨간 바탕에 노란줄이 그어졌다)를 쓰고 반겨 맞는다. 어쩌면 이런 곳에 드나든다고 나무랄 것만 같은 우리네 할아버지 같다. 입장료 400Pst. 새벽 4시까지 란다. 아무튼 들어가 보자. 아무도 없다. 손님으론 우리가 개시란다. 군데군데 짙은 화장의 아가씨가 여나문 앉아있다. 붉은 카펫이 깔리고 옆의 별실은 Stand Bar가 열려있다. 마침 영어를 하는 한 아가씨가 물었다. 조금 전에 동양인의 몇 사람이 다녀갔단다. 우리 선원들임에 틀림없다. 옆에 앉히고 물었다. 입장료 속에는 마시고 싶은 데로 한잔씩의 요금이 포함되어있고, 이곳 아가씨는 Show가 시작되면 모두 Stage로 올라가야 하나, 쉬는 시간에는 불러주면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나 마시는 것을 사주어야 한단다.
한잔에 600Pst(4,200원)란다. 비싸군. 넌 뭘하냐? 단 자기 혼자만이 무대에 서지 않고 홀에서 손님을 안내하고 Dance를 원하면 상대를 해준다나 -. 01시부터 쇼가 시작, 5인조 악단의 가벼운 Flamenco 연주가 열린다. 무대는 자동적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존슨 대통령을 꼭 닮은 트람펫연주자가 Band Mater 랬다. 턱에 우물이 페인 놈, 그렇지 배우 카크다그라스 였지, 그놈을 닮은 섹스폰 연주자, 뚱뚱한 여자 하나가 Piano를 친다. 남자 4인은 흰웃도리에 나비타이를 맨 말쑥한 차림의 중년을 넘은 녀석들이다. 유독 그 피아니스트만은 같은 중년인데도 꾸밈없는 차림으로 무대 옆쪽을 보고 건반을 두드린다. 졸라 입은 부라우스 위로 뚱뚱한 뱃가죽이 겹쳐 보인다. 신이 나는가 연신 발이 가볍게 움직인다. 명쾌한 훌라밍고 춤이 인상 깊다. 까만 차림의 남자 Step dance와 Castanuelse의 소리가 크지만 시끄럽지가 않다. 손바닥으로 함께 박자를 맞춰보라는데 아무래도 안 된다. 황홀한 리듬 속의 Strip Show. 그리고 마직막을 장식하는 고리라 분장의 남자와 裸身의 여인이 그 춤은 농도가 짙은 것이다. 처음 보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틈엔가 꽉찬 청중들이 한결같이 조용하다. 물론 깊은 감동의 표정도, 즐거운 비명소리도 하나 없다. 끝났을 때 가벼운 박수소리만으로 답례를 할 뿐이다. 4시 일단 Show는 끝났으나 1시간동안 객을 위한 유흥시간이 있단다. ’
Senorita "Sinab' 그는 Spanish계가 아니고 Moroco의 아랍계와 Spanish의 튀기란다. 자기 이름도 아랍식이다. 명량하고 유쾌한 20세의 아가씨다. 내일 저녁 자기집에 가잔다. 오늘은 끝까지 내 곁에서 얘기의 상대가 되어주었다. C/E의 그 체신없는 몸짓이 몇 차례 오가더니 기어이 남겠단다. 국장영감의 지친 표정, 그리고 내 자신의 피로감, 졸림, 갑판장 영감의 무표정, 기관장 영감의 좋아 못견디겠다는 표정들이 서로 불협화음이 된다.
Senorita Sinab이 내일 밤을 꼭 약속하잔다. 그러나 그의 지쳐빠진 얼굴이 짙은 화장기 뒤로 감쳐진 것을 밝은 조명아래서 읽는 순간 오히려 가여운 생각과 함께 몹시 불결하게 느껴진다. 또한 더 마실것이 없다는 것을 다짐하고는 거침없이 자리를 옮기는 그의 너무나 분명한 직업의식에서 또 같은 실망이 닿는다. ‘내 대신 이 친구를 봐줘라’ C/E를 인계하고 나왔다. 1800Pst. 차라리 그 돈을 직접 그 여자에게 주었으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 것인가. 그러나 부득부득 조르다 못해 등에 대고 고함을 치며 욕을 해대는 한국의 술집 같은 억지는 없다. Tip을 주자 일단 받으면 그만큼 부담을 느끼며, 내일 약속을 하지 않는 한 받지 않는단다. 넉 잔 마신 위스키가 조금도 취기가 없다. 한 잔으로 1시간을 마셨으니까, 마시는 것이 아니고 그져 퍼부어 넣듯이 하는 우리의 술버릇은 분명히 잘못이다. 클라 한잔으로 5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단다. 대개 위스키 한 두어 잔으로 하루 저녁을 보낸단다. 이것만은 몸에 익히고 배워둘만하다. 愛酒가 아닌가, 바로 그게! 술에 사람이 먹히어 고주망태가 된 체 저지러지는 어처구니없는 실책, 떠나오기 전날의 내 자신이 다시 떠오른다. 정녕 잘못이었다. 할마씨의 괫씸한 노릇을 탓하기 전에 내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그만큼 무질서했고 너무나 엉뚱하게 피해는 아내에게 돌아갔다. 술만 보면 상기해야 할 일이다.
7th. June (화)
맑은 하늘, 따사로운 햇살, 가끔 떠도는 흰 구름 조각. 저쪽 구릉 위에는 점점이 흰 양떼인 듯 흩어져 있다. 마치 우리의 초가을 같다. 지중해기후라는 것인가? 연일 드나드는 객선, 그리고 수많은 승객들, 나도 저속에 끼여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주위의 아무 것도 없는 바다 위가 아닌, 산이 있고 들이 펼쳐져 있으며 그 위에 서식하는 모든 인간과 그 인위적인 물질, 또한 생명체들의 삶의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Cash Advance가 오후 되겠단다. 은행에서 US$가 부족, 모으는 중이란다. 조그만 시골 포구라 도리가 없단다. 오전에 시내 변두리까지 혼자 걸었다. 제법 바람이 분다. 쌀쌀한 느낌도 있다. 현대식 고층 아파트를 벗어난 Spain고유의 흰벽, 그리고 붉은 기와로 처마 없이 만든 집, 대문은 비교적 좁으면서도 나무로 마치 한국고유의 대문처럼 만들어져 있다. 6세기경인가 무어족들이 이곳 Spain을 점령, 지배했다고 알고 있다. 종족의 근원은 알 수 없지만 동양적인 것이 가끔 섞여있다는 느낌은 있다. 거리에서 좀처럼 동양인을 보지는 못한다. 데파트, 상가 등은 크게 특색이 없다. 다만 어느 집, 어느 아파트 치고 꽃이 없는 집이 없다는 것이다. 벽 자체에다 화분걸이를 만들어 수없이 걸어둔 꽃들! 그저 꽃 거리다. 꽃을 파는 곳이 없는 걸 보면 전부 손수 바꾸는가 보다. 생활의 여유라기 보다 마음의 자세 때문이 아닐까. 공원에 모여 재잘거리다 손뼉을 치며 거리낌없이 훌라밍코를 추는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여학생들! 누가 보든 아무런 상관없고 또 나 같은 客이 아닌 이상 꼬마 하나 서서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교복 위에 걸치는 까운 비슷한 것에 무늬가 있어 자세히 곁에 가서 보았더니, 이건 무늬가 아니고 친구들끼리 볼펜, 만년필, 색연필, 싸인펜 등으로 제 마음끝 이름인가 뭔가를 쓰고 Sign을 했다. 가로 세로 무질서하게-. 그걸 입고 무심히 등하교는 물론 집에도 가는 모양이다. 연인과 벤취에 꼭 껴않은체 앉아 있던 군인이 사복 입은 그의 상관이 가족들과 함께 지나가니 벌떡 일어나 한쪽 발을 탁 구르며 엄격한 경례를 붙인다. 군인 막사 주변의 경계가 엄한 것 같다. 프랑코총통 이후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라고 들었던 스페인이라 해도, 별로 생각을 갖지 않았었는데 우선 이 한쪽 조그만 시골에서 받은 인상에서 그러한 선입감이 싹 가신다. 과거 오대양을 누비며 활약했던 그 역사의 흐름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는 느낌마져 든다.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격인지도 모르나 國力이라는 것이 곧 그 나라의 경제적인 富만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거리에 교통순경 없이도 잘 되는 사회, 좁은 인도를 꽉 메우면서도 누구하나 차도를 걷지 않는, 습관화된 공중도덕도 큰 국력이 아닐까.
내일쯤은 대강 일이 끝나는 데로 Bus를 타고 내륙 깊숙이 항구가 아닌 곳을 찾아가보자. Las의 Mr.Tikam에게 전화. 금항차 마치고 Las에서 Docking, 그리고 기타 작업비 정리도 그때 모두 하기로 하다. 어쩌면 Las까지 비행기로 갈까도 했어나 생각보담 그의 성의 있는 대답이 안심을 시켜준다. 선용금의 일부를 이곳에서 Local Current로 찾아 가불정리를 마치다.
얘들에게 보낼 카드 두어장을 싸다, 아내에게도 편지를 써야 하는데, 자꾸만 붓이 막힌다. 대화의 단절, 화제의 빈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로부터 받을 수가 없는 것이 너무 많다. 궁금증을 비례하여 더해간다. 내일 모래면 3개월째다. 빠른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오래된 것도 같다. 별다른 일이 없는지? 낮에 본 이곳 얘들의 모습들이 너무 선명하다. 유모차에 고무젖꼭지를 문체 잠이든 2-3살 돼 보이는 동생을 기어이 자기가 밀고 가겠다고 엄마와 싱강이를 하던 언덕베기에서의 광경이 떠오른다. 과연 내가 언제 저렇듯 땅을 딛고 살 것인가. 무한한 시공 속에 유한한 인생인데 무얼 위해서 이러고 있을까. 결국 내 자신을 위해서 지나치게 무모하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가? 언제 얼마만큼의 안정과 부를 위해서 이러는 것일까? 과연 1년간의 축척된 경제적인 여유가 그 만큼의 가치 있는 정신적인 대가를 가져도 줄 것인가. 평화로운, 아늑한 한 가정의 행복스런 모습들이 눈에 띌 때마다. 느껴지고 가져지는 회의! 그리고 열망. 그것이 더욱더 내 자신을 폐쇄된 방안에만 있도록 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 갑갑하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을 메꾸어 가는 방법이 없을까? 내 돌아가기 전 까지만이라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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