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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50대 후반쯤 되면 친목 모임의 화젯거리가 각종 성인병이나 그 치료법, 거기에 좋은 약이나 식품에 관한 것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담론에서는 주로 자신이 질병을 극복한 체험 사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무용담을 설파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체험을 통해 얻은 건강에 관한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강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질병과 고통, 죽음에 대한 자신의 불안을 스스로 완화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내 나이가 40대였을 때 직장 동료 및 선배님들과 함께 저녁 식사하는 자리에서 대화 소재가 늘 암이나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이나 간장 질환 등 각종 성인병과 그 치료법, 거기에 좋은 운동과 식품 등이 주를 이루는 걸 듣고 있다가 나는 답답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더 나아가 퇴직을 앞둔 원로 교수님들은 종종 죽음이니 장묘 문화니 등의 화제로 좌중의 분위기를 짓눌렀다. 그때 나는 저 양반들은 유쾌해야 할 자리에서 왜 저렇게 매번 질병이나 죽음과 장례식에 관해 이야기를 할까 하고 불만을 가졌었다. 그리고 그런 대화의 결론은 매번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였다. 옳으신 말씀이다. 그랬더니 그후 10여년이 지나자 내 친구들 모임에서도 똑같은 화젯거리가 대화의 주를 이루었다. 또한 뒷산에서 산책하다 보면 지나쳐 가거나 앞서거나 뒤 서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는데, 그 내용이 병이나 병원, 좋은 약 등에 관한 것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르는 심리의 저변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게 아닌가 한다. 그 경우도 물론 결론은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권력보다도, 때론 사랑보다도 ‘건강이 제일이다’이다. 역시 옳은 말이다.
건강에 대한 그처럼 강한 관심과 표현 욕구는 따지고 보면 건강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억눌려 있는 죽음 불안이 저절로 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젊고 건강했을 20대나 30대쯤에는 죽음이 실상이라기보다는, 아득히 먼 우주에 떠다니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나 그런 예견쯤으로 여겨졌지만, 노화가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몸의 여기저기에서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60대나 70대가 되면 더 이상 아득한 우주에서 아른거리는 현상이 아니라, 항상 나의 일상의 대기에서 오락가락하며 언제라도 제 심사가 뒤틀리면 갑자기 들이닥쳐 나를 절멸시키려는 ‘실재하는 귀신’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귀신’인 이유는 아직까지 어떤 개인에게도 실체를 드러낸 적이 없고, 지금까지 인류 중 그 누구도 그것을 자신이 직접 체험적으로 파악하거나 설명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재’인 이유는 우리가 평범하거나 위대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미미하거나 막강한 다른 생명체의 죽음을 보고 그것이 자신에게도 반드시 닥칠 사태라는 걸 확신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자신의 죽음을 현실로 생각하게 되고 그걸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점점 굳히게 된다. 더불어서 자신의 죽음이 어떤 성격일 것인지 예상하기도 하고 그게 어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짐짓 대범한 듯, 덤덤한 듯, 마치 남의 일인 듯 말하기도 한다. 나는 유명 디스크자키 배철수 씨가 방송에서 “내 나이 72세인데 난 지금 죽어도 호상이야.”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배철수 씨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도 종종 그 말을 한다. 한편 만화가 허영만 씨는 75세 때 자신의 부고장을 작성해 언론에 알려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는 거기에 이렇게 적었다. “허영만 선생이 작업 도중 숨졌다. 향년 107세. 타살 흔적은 없고 코피가 1㎝ 정도 났을 뿐 평소와 다름없이 건강한 모습이었다. 만화의 만화를 위한 만화에 의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호방한 말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죽음에 대해 초연해졌다고 볼 수는 없다.
평생을 삶과 죽음, 소유와 무소유의 화두를 세우고 그토록 엄격한 수행을 해오신 법정 스님이 노년에 가파른 비탈을 낀 산길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 비틀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어찌나 깜짝 놀라고 아찔했던지 그때까지 해왔던 수행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헛되게 느껴졌다고 고백하신 걸 읽은 적이 있다. 생명 본능과 죽음 불안은 생각이나 의지, 명상이나 수행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또한 영웅들 중에는 자신의 묘비명을 사전에 마련해두었던 경우가 종종 있다. 그중 인구에 회자되는 몇 구절을 여기 옮기면, 첫째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인 쇼(George Bernard Shaw)의 것으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아마도 쇼가 남긴 말보다 더 유명한 것 같은데, 그리스 문학가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묘비명으로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이다. 내친김에 하나 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Pardon me for not getting up.)는 헤밍웨이다운 간결한 묘비명이다. 묘비명은 아니지만 공자도 죽음에 대해서 정곡을 찌르는 가르침을 남겼다. 제자인 자로가 “감히 죽음에 대해 여쭙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공자는 “삶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거늘, 어찌 죽음에 대해 안다고 하겠느냐!”(未知生 焉知死)라고 대답했다.
중세의 단테로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밀턴, 현대의 돈 들릴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학적 거장들이 죽음을 소재나 주제로 하는 작품을 썼다. 그들 중 에밀리 디킨슨은 그녀의 다수의 죽음 시(death poems)에서 죽음을 한껏 희화화하고 일상화한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하면,
“나는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는 소릴 들었어—내가 죽었을 때—”
나는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는 소릴 들었어—내가 죽었을 때—
방안의 고요함은
폭풍우 사이사이—
대기의 고요함과 같았어—
주변에 있는 눈들은—눈물도 짜내져 말라버렸고—
숨결들은 굳건하게 부풀고 있었어
그 마지막 출발을 위해서—그때 그 왕이
목격되었을 거야—방 안에서—
나는 내 유품들에 대해 유언했고—서명해서 양도했어
내 모든 재산을
양도할 수 있는 건 뭐든—그런데 그때
거기 파리 한 마리가 개입했어—
푸르스름하며—아련하게 비틀거리는 윙윙 소리와 함께—
빛과—나 사이에—
그런 다음 창문들이 닫혀버렸고—그런 다음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어—
이 시의 아이러니는 묵직하다 못해 익살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화자는 죽어가고 있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죽어서 자신의 임종 순간을 회상하며 그 경험을 보고하고 있다. 임종을 맞이하는 화자와 그걸 지켜보는 그의 가족들은 이제 눈물도 말랐다. 방안은 폭풍 전야처럼 혹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화자는 이제 자신의 유품을 하나하나 가족들에게 양도한다. 화자나 그의 가족들은 아마도 화자가 죽는 순간 “왕”, 즉 위대한 하나님과 마주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화자가 실제로 마주한 것은 한 마리 파리일 따름이다. 푸르스름한 걸 보면 아마도 쉬파리이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과 죽어가는 화자의 눈 사이에서—그 둘은 사실 하나의 이미지이고 같은 대상인데—윙윙거리며 비틀비틀 날아다닌다. 그런 다음 곧바로 창문이 닫히듯 눈이 감기고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넘어서는 그 누구도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될 뿐이다. 이 시는 죽은 다음에 화자가 자신의 경험을 보고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시가 끝나도 사실 죽음은 여전히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남겨진다. 이 삶 이후가 무엇일지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죽음의 순간에 “개입한” 주검의 청소부인 쉬파리, 끔찍한 이미지이다. 디킨슨은 죽음의 순간을 불경스러울 정도로 희화화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종교는 죽음이라는 옥답에서 해마다 풍년을 수확하는 농업이다. 죽음이라는 비옥한 침묵의 경작지가 없다면 종교라는 말씀의 작물이 어디에서 그처럼 풍성하게 자라겠는가? 그러한 관점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국한하면 죽음에 관해 무언가 말을 보태는 것은, 무거운 말이든 가벼운 말이든, 그다지 진실되지 않고 실익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에 대해 점점 더 자주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되며 그만큼 더 자주 그것에 대해 말하게 된다. 점점 더 무거워지는 죽음 불안과 두려움이 그만큼 더 마음속에 들어차게 되어 저절로 흘러나오는 표현들이다. 그렇게 말로 표현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죽음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거기에서 위안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짐짓 하찮은 것인 것처럼 허세를 부림으로써 그로 인한 초조와 두려움을 덜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어둠속에서 휘파람을 부는 격이다.
죽음은 경험으로서의 요건을 다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에 대해 평가하거나 정의하거나 해명할 수 없다.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다른 경험은 예상하는 단계와 실제 그걸 겪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난 후에 그걸 성찰하여 인식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죽음은, 어쩌면 치매도, 겪는 과정이나 사태를 어렴풋하게 인지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이후, 결과를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체험으로서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이나 정의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제 단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다. 즉 죽음은 괴괴하고, 죽은 자는 끽소리도 못 한다. 그런데도 그걸 아직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많은 말을 한다. 산처럼 쌓인 그 많은 말들은 모두 허튼소리이다. 따라서 거기에 한 마디라도 덧붙이는 게 헛된 짓이지만 또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고 말았다. 행동이 아니라 말로만 하는 모든 건 아이러니의 그물망을 피할 도리가 없다.
첫댓글 모를일이니까 만화처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호미님 깊은 사색과 좋은 시까지 들어간 글, 참 감사합니다^^ 제목이 너무 웃겨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있는 곳은 크레타 섬인데, 그곳에 직접 가서 묘비명을 찍어보기도 했었지만, 저는 카잔자키스 작품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 나는 모든 것을 바란다. 나는 모든 것이 두렵다. 나는 자유롭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다"로 거꾸로 읽히더라고요... 어떻게 그의 작품을 자꾸 읽게 되었는가하면, 한국에 카잔자키스 학회(문학가와 예술가가 주축인..)라는 것이 있어서 매년 발표회를 갖는데, 이제까지 여러번 발표를 부탁받았었거던요.이제부터는 졸업하려고요 ㅎㅎ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 요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