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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목) :
공휴일이다. 원래는 사순절인데 ‘아버지날’로 아버지들이 정하고 있단다. 잔뜩 흐린 날씨다만 아침 일찍 숲속을 30분간 걸었다. 호텔 앞길 건너 숲이 너무 좋다. 숲속의 산책길과 파란 잔디의 운동장이 더욱 그렇다. 12시에 병원에 갔으나 Prof. Münzel이 수술 중이랬다. 오후 2시에 다시 갔으나 이미 퇴근했단다. 헛걸음을 한 셈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약 45분간 걸어서 Herr. Nienk의 주말 농장까지 갔다. 마티아스(닌케의 아들)의 친구라는 윌리라는 애가 깜찍하고 귀여웠으나 불쌍하다. 두 형제를 두고 그의 어머니가 바람이나 도망을 했다나. Frau Nienke의 말처럼 아무리 늘씬하고 인물이 좋아도 속이 비면 뭘하는가? 오른팔이 몹시 아프다. 농장에서 오랜만에 풀을 뽑고 삽질을 한 탓인 모양이다. 변비에다 치질인가 혈변이 나온다. Frau 홍에게 약을 얻어온다. 오늘은 다리가 뻐근하고 고단하다.
May 21(금) :
아침의 산보가 유일한 낙인데도 비 때문에 못한다. 왠 놈의 날씨가 이렇게도 오래 변덕이 심한가. 역시 Prof. Münzel을 만나지 못했다. 갈수록 귀가 멍멍한데-. 오후의 주사 후에 병원의 구내 Saloon에서 이발을 하다. 후련하게 쳐 올렸다. 속이 시원하다. 17마르크 치고는 서비스가 좋은 편이다. 부득이 우산을 하나 사고 다시 외출. 사진 현상도 마치고 편지도 직접 보냈다. 함브르그 시내까지 나갔다. 화려한 쇼윈도는 오히려 속만 뒤집히게 한다. 요즘 공항세관이 엄격하다는데-. 아직도 아내와 애들을 위해 아무런 선물하나 사지 못했다. 일간 봇다리도 정리해보자. 영화구경 하나 하고 오다. 저녁 시간을 넘겨 빵으로 저녁을 떼웠다. 22:00시면 조리사가 퇴근. 문을 닫는단다. Hotel의 별실에서 벌어지는 Party에서 춤추는 남녀들의 예의 바른 옷차림과 매너가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번 나갔다 오는데 60마르크 정도가 쓰인다. 아직도 얼마나 더 있을려는지. 내게 도움을 준 여러 사람들을 위해 Hotel에서 식사라도 한번 대접해야 할텐데-. Count가 문제다.
May, 22(토) :
다시 비. 07:00와 11:00에 병원에 들리다. Prof. Münzel 만나다. 오후부터 휴가라 대신에 Dr, Enger가 봐 줄것이라 했다. 월요일 왼쪽을 빼내고 검사하고 오른쪽은 아직도 핏물이 난다. 오후에 가방을 다시 점검하다. 60Kg이나 된다. 어떻게 절반인 30Kg으로 줄일 수가 없을까? Hotel도 방을 옮겼다. 예약이 있단다. 207호, 목욕탕도 화장실도 없고 좁다. 31일 오후에 다시 106호로 옮기기로 하다. 저녁에 호텔에서 Flower Party가 있었다. 꽃꽂이가 극히 상업적이다. 즉흥적으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 많아 좋았다. 종일 우중충한 날씨 같은 기분으로 보내다. ‘백범 김구’를 읽다. 왠일인지 모처럼 심한 육욕을 느끼다.
May 23(일) :
아침부터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성가시게 됐다. 오전내 잠만 자다. 박경리씨의 ‘토지’ 시작하다. 오후 함브르그 시내 나가서 ‘Circus’를 구경하다. 어린이용인듯하다만 관객과의 호흡이 일치를 이루는 것. 관객들의 관람 태도 등이 일품이다. 귀로에 St. Paul 성당을 둘러 보려했으나 심한 비 때문에 포기하다. Hotel도 병원도 너무 조용하다. 비만 오지 않았으면 숲속이라도 좀 돌아다닐 수 있는데-. 주사를 언제까지 맞아야 할라나.- 오른쪽이 가끔 우리하고 아플 때가 있다.
May, 24(월) :
역시 비. 늦잠을 자다. 08:00 병원에 도착. Dr. Enger가 오후에 만나자고 한다. 오전에는 ‘토지’을 읽었다. 오후에 Dr. Enger가 왼쪽 심지를 빼내니 속마져 확 트인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오른쪽이 시원찮다. 아직도 꽉 막힌 느낌이다. 왼쪽은 Dr. Enger가 정성스레 치료를 해주었다. 오른쪽도 그가 봐주기는 했다. Frau Lee를 요청했으나 내일 같이 얘기하잖다. 양쪽 모두 심지를 갈아 끼웠다. 병원에서 바로 함부르그 시내에 가서 사진을 찾고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생활의 Idea가 가끔 있어 보이나 생활습관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것을 -. Frau Lee 집에 전화. 오늘이 야근임을 알다. 저녁에 읽은 책과 먹던 약(환약)을 그의 부군에게 주라고 갖다 주고 1시간 가량 그의 대기실에서 보내고 있으니 Frau Neipe가 주사 시간이라고 올라 오랬다. 주사후 11병동의 Frau 배(Stefken. 일명 밀양댁)을 오랜만에 만나 자정까지 잡답으로 보냈다. 모처럼 야식도 든든히 얻어먹었다. 아무래도 오른쪽이 걱정이다. 재수술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럴지? 알약을 오늘부터 복용하랬다. 하루 3알씩이다.
May 25(화) :
모처럼 맑은 햇살을 본다. 계속 좋았으면 좋으련만-. 점심 도중 다시 106호로 옮겼다. 두 뚱보 아주머니들이 내 허락도 없이 그냥 옮겨 버렸다. 그래도 고맙다고 3마르크의 팁을 주었다. 역시 좋아한다. 오후 Frau Lee와 Dr. Enger의 입회하에 검사. 왼쪽은 거의 완전하다고 했다. 심지도 그만한다. 속이 시원하다. 한쪽만이라도 완쾌되었으니-. 오른쪽은 고막을 붙인 자리가 일부 떨어져서 구멍이 생겨 있단다. 내일 오전 9시반경에 다시 접착제로 붙여 보잔다. 후유! 아찔하다. 재수술을 해도 당장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적어도 1년은 지난 후에 다시 해야 한다니 -. 내일 제발 잘 되어야 할텐데-. 간절한 기원의 마음이다. Frau Lee의 말로는 그렇게 떼우는 수술도 자기가 있는 수술실에서 하는데 고막이 찢어지거나 터진 사람들이 일일이 수술하지 않고 떼우는 방법으로 많이들 치료하고 있으니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하긴 했다만. Prof. Münzel은 6월 10일경에나 온다고 한다. Dr. Enger가 훨씬 친절하고 자상하다. 아직 얼마를 더 있어야 할런지는 Frau Lee도 물어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왜 그럴까? 오후 다시 함브르그 시내에 가서 $280을 독일 마르크로 바꾸고 Game기를 하나 살까 했으나 TV의 system이 맞질 않는다기에 사질 못했다. 내일 경과를 바서 Herr 고에게 연락. 안경이나 맞추어야겠다. 빌어먹을 !
Frau 배(Stefken)과 어제에 이어 두 번째로 늦게까지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일까지 근무하면 3주간을 휴가로 쉰단다. 아직 애가 어리단다. 그도 이미 생각은 독일 사람이 다 된듯하다. 보기보다 잘 조잘거리고 재미가 있다. 그도 딸 일곱중의 하나랬다.
May. 26(수) :
어제 이어 화창한 날씨, 맑은 날씨면 이제 덥기까지 한다. 대부분 바깥에서 식사를 한다. 여인들이 활짝 벗은 옷차림에 흰 살결이 자극적이다. 틈만 있으면 남자는 웃통을 모두 벗어젖히고 여자는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긴다. 9시에 병원착 11시경 O. P에서 Dr. Enger와 Frau Lee 그리고 그의 동료 간호원의 도움으로 오른쪽을 떼우는 수술을 했다. 고막을 붙인 자리가 일부 떨어졌단다. 생각보다 복잡하지는 않으나 상당한 정밀을 요하는 모양이다. 시종 일관 현미경을 들여다 보면서 한다. 이것이 좋아진다면 앞으로 10여일 후면 귀국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코를 풀지 말고 가급적 조용히 휴식을 하란다. Hearing Test도 많이 좋아 졌단다. 내 자신은 그렇게 현저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만. 우선 기분이 좋다. 계속 되는 진물로 잘 붙지 않을 경우에는 상태가 좋은 날을 봐서 한번 더 시도할 수도 있단다. 제발! Oh! God.
모처럼 간이 목욕을 하고 오후에는 낮잠을 휴식. 아직은 아무래도 무리를 피하는 게 좋겠다. 내일 12시에 다시 오랬으니 결과가 나오겠지. 결과에 따라 집에 전화를 해야겠다.
저녁 8시 병원에서 TV로 축구구경. 모처럼 나온 Frau 홍과 배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개한테 입술을 물어뜯긴 젊은 여인의 응급치료와 내일 수술을 앞두고 저녁 굶긴 터키 어린애의 칭얼댐 때문에 실패, 일찍 돌아오다. 개 한테 입술 물린 여인은 개하고 뽀뽀하려다 아마도 기분이 안 좋았던가 개가 물었을 것이라고 했고, 터기 애는 보호자가 오지 않는 이곳 사정 때문이랬다. 한국의 광부와 간호원이 인력수출을 오기 전에 벌써 독일에서는 터키인들을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데려와 시민권을 주었는데 이 민족은 애들을 낳았다면 9-10명이란다. 그래서 부모들이 병원까지 올 형편이 못되어 데려다 놓기만 하고 가버리니 간호원들이 죽을 지경이란다. 지금은 독일 사회에서도 이들 터키계가 그 수를 늘여감에 따라 노동력 시장의 커다란 변수로 작용. 큰 압력단체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알만하다. Frau 배는 내일부터 3주간 휴가니까 어쩌면 귀국시까지 못 볼 것 같다고 해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간 정신적으로 많은 위안과 도움을 준데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독일 할머니가 되더라도 밀양댁이란 택호를 잊지말고 열심히 건강하게 살라고 했다. 오른쪽이 아무래도 들리는 것이 시원찮아 불안하다만 재발없이 잘 가라 앉아야 할텐데-.
May 27(목) :
11시반 병원 도착. 점심까지 얻어먹고 기다리기를 3시간 반. 어제 오후에 잠시 요통이 있었고 오늘 오전에 속이 답답하더니 정오를 넘어서면서 한기가 돌고 미열이 있다. 몸살인 것도 같다. 콜라 두 병을 연거퍼 마셨다. 기다림. 그도 불안한 기다림이라 기분이 좋지 않다. 2시경 휴가 중이라던 Prof. Münzel을 만나다. 급한 수술 때문에 귀원. 수술중이랜다. 끝나면 다시 간다고. 양쪽을 봐주고 그냥 ‘gud'소리만 했다. 내려오다가 Frau Lee에게 전화 사정을 얘기했더니 Dr. Enger가 아직 수술실에 있으니 기다리는 김에 3-40분을 기다리다가 만나보자고 하다. 책도 부탁을 했다. 3시경 Dr. Enger가 올라왔다. 옷에 주일쯤은 귀국이 가능할 것 같단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다시 Frau Lee를 기다려 책을 받았고, 식사 중인 Dr. Enger와 얘길 나누는 것을 봤으나 그 결과를 물어 볼 틈이 없이 바쁜 그였다. 호텔에서 병원, 집으로 전화를 했으나 불통. 내일은 오후 1시에 등원하랬다. 저녁에 Frau 홍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번개가 크고 길게 친다. 내일은 또 다시 비랬다. 제기랄. 겨우 이틀을 맑더니-. 전화, 당신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는 듯 했으나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된다. 처음으로 왼쪽에서 시계소리를 들었다. Dr. Enger가 오른팔의 주사침을 직접 빼준다. 더 이상 필요 없단다. 속이 시원하다. 프라스틱 주사바늘이 꽂혔던 자리에 크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으나 곧 아물것이고 내일부턴 목욕이 가능할 것이랬다.
May 28(금) :
비가 온다. 오전에 정말 오랫만에 목욕을 하고 머리도 시원히 감았다. 오후 병원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 Dr. Enger을 만났다. 오른쪽이 약간 잘못된 것 같단다. 재 수술은 1년 후에라야 가능하단다. Frau Lee에게 전화 했으나 없다. 기분이 안 좋다. Agent에 가니 Herr. Glinderman이 반겨준다. 병원청구서가 9,217DM란다. Pine Crest에 보낸 Telex에도 한쪽이 불완전하다고 나와 있다. 화요일 다시 상의하기로 하다. 안경을 맞추다. 2개 528DM. 비싸긴 해도 오래전부터 벼뤘던 것이다. 밤 11시까지 St. Pauli에서 서성이다. 일이 안 된다. 왠일일까? 지난해는 마음에 드는 일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애를 썼고 돈도 제법 버렸었는데 -. 역시 정신적인 탓일까? 집에 가서도 그렇까? Wife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혼자서는 아무 일 없지 않은가?
내일은 다시 오전 11시에 오랬다. 좀 더 구체적인 것을 알고 싶다. 오른쪽은 중간이 막힌듯한 느낌이다. 그것만 좀 더 넓히면 시원히 트일 것도 같은 기분이다. 이제는 귀국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집과 대아에 편지를 띄우다. Frau Neinke에게 전화가 왔던 모양. 주말에 Gaten Club에서 여행간다더니 같이 가자고 한 모양이다. 고맙다.
May 29(토) :
아침에 Frau Neinke에게 전화하다. 내일 주말 Gaten에 가는데 오란다. 그의 아들 마티아스의 양모도 오는데 그가 영어를 잘하니까 심심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Frau Lee에게도 전화. 월요일이 대기근무일이라 했다. 11시 병원. 12시 Dr. Enger의 치료, 역시 같은 소리. 오른쪽은 화요일에 다시 한 번 떼워 보겠단다. 그래서 안 되면 1년 후에 다시 재수술해야 한단다. 맥이 빠진다.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왼쪽처럼 좋았으면 얼마나 생광일까. 오후에는 아무데도 가기도 싫고 갈 생각도 없다. 울창한 숲 속의 신선한 공기. 즐비한 가족 소풍의 차들. 연인들과의 산책. 젊은이들의 조깅. 늙은 주부들의 정다운 산보, 경쾌한 Tennis 코트의 싱싱한 약동들. 그런데 왜 나만은 뜻하는 일이 잘 되지 않고 이그러져만 가는가. 호텔의 Hall에서는 단란한 결혼피로 Party가 열린다. 가벼운 음악에 맞춰 나비처럼 움직이는 Dancing. 낮의 청바지 차림들이 하얀 드레스로 바뀐 여인들의 모습이 전연 낯설게도 보인다. 싱싱한 잔디밭 가엔 각가지 꽃들이 더욱 아름답다. Frau Lee에게 전화. 내일 저녁 호텔에서 식사초대를 문의 했다. 미국에 사시는 그의 시부모가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낮에 몇 번 전화를 해도 없었군. 다른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 사실상 그에게 가장 많은 실질적인 편의를 보았으니까. 내일 모래 이틀은 쉰다. Zoo에라도 가볼까. ‘토지’ 1부 3권을 끝내다
May 30(일) :
식전 산보. 우거진 숲 속의 아침 공기가 차웠지만 상쾌하다. 동물원에 가다. 특히 Dolphin들의 묘기는 처음 보는 것이다. 박물관에도 갔으나 휴무. TV Tower에 올라가 함브르그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Sydny, Rotterdam, Paris, Tokyo의 Tower들과 함께 128m의 높이를 올라가 본 셈이다. 넓은 평원이다. 끝이 보이질 않는다. 도심 속의 공원마다 물과 숲이 있다, 그 속에서 햇살을 쬐며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우고 있다. St. Micheal 교회. Bismark의 동상도 거치다. 저녁 Hotel에서 기다렸으나 Frau Lee에게서 못 온다는 연락이 왔다. 섭섭하고 미안하다. 고마운 사람이었는데-.
저녁에 다시 1시간 산책. 다리가 아프다. 입안에 쓴 물이 계속 나오고 오줌의 색이 노랗다. 위산과다 증세인가? Frau Lee와의 약속 때문에 Neinke의 주말 Gaten에도 가질 않았었는데-. 또 내일을 어찌 보낸다?
May 31(월) :
월요일이지만 공휴일이다. Frau Neinke에게 전화, 그러나 오늘은 Gaten에 가질 않는단다. 10시 넘어 함브르그 시내에 나왔다. 한국 음식점을 찾다가 포기. 시내일주 관광버스를 타고 두 시간을 다녀보다. 저녁에 Frau Lee에게 갔으나 수술이 있다는 핑계로 책과 과일만 전하고 TV를 보다 오다. Hotel에서도 아무도 없다. 투숙객이라고는 나 하나 뿐이다. 자정을 약속했으니 그 시간에 나와서 문만 열어주고 간다. 속편한 장사다. 밤부터 양쪽 발목에 알레르기가 생긴다. 노란 Tablet를 저녁때 먹은 탓인가 보다. 너무 쓸쓸하고 적막하다. 5월도 기어이 여기서 보내고 마는 구나.
Jun 1(화) :
괴롭고 지루하고 짜증난 하루였다. 아침부터 시작한 알레르기는 양 다리가 붓고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8시경 병원. Dr. Enger가 귀를 보기만 하고 약을 중지하란 지시뿐이다. 꼼짝않고 누워 있었다. 재수없는 일만 일어난다는 느낌이다. 오후 2시 Agent 영감님과 Dr. Enger를 기다렸으나 그가 너무 바쁘댔다. 저녁 8시에 다시 영감님이 와서 겨우 만나다. 다시 한번 치료후 Frau 홍의 통역으로 제반 사정을 들었다. 더 이상 있어봐야 별 수가 없으면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야겠다. 다행히 다시 떼운 오른쪽이 붙기는 잘 붙었단다. 겨우 납득이 간다. 이 이상은 현재로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좁아진 귀구멍을 넓히는 것은 적어도 1년이 넘어야 된다고 -. 금요일쯤 귀국하려고 했으나 일요일이나 월요일쯤 가라고 한다. 고공 비행은 압력 때문에 고막에 손상을 줄 수가 있단다. 주사를 맞았으나 계속 다리가 붓고 가렵다. 내일은 좀 나아지려나. Agent 영감님에게 Moroco에서 산 돌로 만든 잿털이를 감사의 기념으로 주었다. 봇다리를 챙기면서 미련없이 버릴 것은 버리기로 했다. 내일은 마지막 정리를 하자,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Jun 2(수) :
8시 병원. 역시 2시간을 기다렸다. 화도 나고 착찹한 심정이다. Mr. Münzel이 보였으나 끝내 만나지는 못했다. Dr. Enger가 역시 왼쪽을 치료, 더 좋아졌다면서도 다시 솜으로 막는다. 세상이 막막한 느낌이다. 내일 8시를 약속하다. 11시반경 Agent 영감님이 몸이 다소 불편한데도 왔다. P. C, 대아의 Telex를 의뢰하고 Ticket도 의논하다. 내일 다시 P.C측의 답신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함브르그 시내의 한식점 “福”집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하고 각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너무 비싸다. 우리네 입장에서 볼 땐…. 저녁은 다시 ‘복’ 집에서 비빔밥과 생두부로 배를 가득 채웠다. 얼마만의 개운한 입안인가?
저녁에 병원에서 Frau 홍에게 전화 마지막 인사를 했고, Nienke에게는 토요일쯤 그의 Gaten에서 인사키로 했다. 평일은 너무 바쁘게 움직인다. 토, 일요일의 조용한 휴식을 위해서-. 그러나 저러나 알레르기가 빨리 없어져야 할텐데 걱정이다.
Jun 3(목) :
08:00 마침 Dr. Enger가 치료. 다시 심을 갈아 넣는다. 좋아졌다고 하면서 왜 심지를 넣는지? 월요일 출국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곧 Agent 가다. Pine Crest의 회신이 있었다. Buns Co.에서 Ticket Booking 하기로 했으며 Ham-Tkyo-Pusan 이며 동경에서 당일 환승하여 8일 16:15시 부산 도착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의 내 컨디션으로선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다만 Seamen Ticket인 이상 따를 수밖에 없다. 집에 전화로 알리다. 몇 가지 귀국을 위하여 백화점을 다시 둘러보았으나 역시 맞는 게 없다. 오후에 Herr. 고에게 들러 Coffee 한 통을 선사하고 그간의 고마움에 사의하다. 알부민 약을 한 병 준다.
대강 짐을 꾸려보았다. 7-8kg가 Over한다. 추가 요금을 물어도 도리가 없다. 벌써부터 잠이 안 온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겨우 2달이었는데 내게는 수많은 세월이 지나간 듯한 느낌이다. 근간 부쩍 갈증이 심한 증세가 보인다. 왜 그럴까? U/Reefer호가 화요일 밤에 다시 이곳에 입항한단다.
Jun 4(금) :
아침 8시 진료시 Frau Lee를 불러 주도록 요청하다. Dr. Enger가 약을 좀 주겠으니 귀국해서 반드시 현미경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랬다. 고막을 재생 수술한 가장자리에서 군살이 돋아남으로 그것을 약을 발라 없애주는 것이라 했다. Medical Report도 발급해 주도록 요청. Dr. Stüven이 작성해 주겠단다. 현재 상태로서는 승선치 못한다는 말은 넣지 않기로 했다. Lee에게는 번역을 부탁했다.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 귀국해서 내 뜻대로 치료를 더 받자. 오른쪽은 상처자체는 치료가 잘 됐으나 청력 및 재발의 우려성이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양쪽을 한꺼번에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단다. 일반적으로 현지인들이라면 한쪽을 마치고 적어도 1-2년 경과 후에 나머지 한쪽을 하는 것이 정상이란다. 의술의 문제이기보다 신체의 자연 치유력 자체가 문제란다. 이해가 된다. 독일의 이비인후과에서 귀는 ‘환자와 의사가 결혼’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오래동안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걸 두 달만에 끝내려고 한 것 자체가 무리였음을 이해할 만하다.
오전에 알부민 약을 사러 시내에 나가다. Herr. 고의 어제 그 약에 대한 보답으로 어린애 장난감 하나를 더 선물했다. 퇴근시에 맞춰 Frau Lee를 만나 약 남은 것을 마저 주고 Medical Report의 번역을 거듭 부탁했다. 오후에 어제 주문한 H. Albumin이 비싼 느낌이다. 얼마나 효과가 좋을는지? 오랫만에 노랑영화를 하나 보다. 연일 불면의 밤에 계속된다. 마음이 푸근한데도-.
Jun 5(토) :
9시 치료. Medical Report와 약을 받았다. 월요일 최종적으로 진료를 받기로 하다. 아내의 편지를 받다. 무척 심적 고행이 많다. 건강도 염려되고-. 알부민이 효과가 있어야 할텐데. 큰집 일도 문제다. 형님이 와서 그런 정도로 얘기 했다면 짐작을 할 수 있다. 그 큰 자존심이 얼마나 상처 입었을까. 마지막으로 함부르그의 Helem, Altoma 두 박물관과 Botani Garten을 둘러보았다. 저녁때 Frau Nienke의 주말 Garten에 갔다. 마침 주변에 있는 어떤 Garten에서 불고기 Party가 있다고 같이 가 보았다. 모두 인근 Garten에 나온 사람들이다. 자유스럽고 풍성하지는 않지만 정갈스런 분위기다. 그러나 동양인이라고는 Frau Nienke와 나 뿐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개밥의 도토리 같은 기분. 그냥 나왔다. 평소 명랑하던 Frau Nienke의 약간은 기가 죽는 듯한 표정에서 역시 이방인이라는 그 어떤 외로움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어둠이 깃던 숲속의 산책길도 오늘로 마지막이 될 것이다.
Jun 6(일)
오후 Nienke의 Garten에 가서 두어 시간 보냈다. 냉면을 삶아 먹고 이웃집 구경도 했다. 그간 인사를 했던 사람들에게 직접 혹은 전화로나마 작별의 인사를 했다.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만날 수 있었고 많은 도움을 받긴 했지만, 진주, 홍천, 밀양댁 특히 대구댁인 Frau Lee 모두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Herr Knack이 몹시 서운해 한다. 좀 더 일찍 연락해서 집에라도 한번 가 볼걸. 사람은 어디가나 함께 아울려 살게 되어 있고, 민족이나 색깔을 막론하고 정을 나누면 얼마든지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는다.
(이것으로 일기가 멎어 있다. 어떻게 귀국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만, Frau Lee에게 부탁한 Medical Report의 번역은 결국 그의 시간적 여유로 하지 못하고. 그냥 가져오는 대신 역시 독일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면서 의과대학을 졸업. 당시 여의사로서 부산 구서동에서 병원을 한다는 그의 친구인 임성자씨에게 소개장을 써 주어 귀국 후 만나 역시 번역해 받았다.
현미경이 있다는 부산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너무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대학병원에서 소개해준, 서면에서 개원한 고한진 박사를 소개받아 계속 다닐 수 있었고, 99년인 지금도 이비인후에 관해서는 고 박사를 찾는다. 그에게 코뼈를 깎아 내는 수술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내 인생의 상반기 40년 동안을 괴롭혀 온 중이염의 완쾌에서 벗어났고 그 이후로는 재발이 없이 20여년을 살아 온 것이 진정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물론 그간 많은 주의를 했으면서도, 타성에 젖어 폭주 등으로 무리를 한 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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