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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28(금) 1986 :
엊저녁에 마신 3병의 각각 종류가 다른 맥주 탓인가 종일 머리가 아프다. 점심도 굶었다. 지랄 같다. 모처럼 시름을 잊고 기분 좋게 마셨는데-. 기관장의 상처도, R/O의 눈도 차츰 회복세를 보인다만 양쪽 모두 상처가 흉칙스럽다. ETD가 30일 Noon! 그러나 잘 될는지. 약 20m 뒤로 Shifting 하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빠른 유속 때문에 숙련된 기술이 선수와 선미가 잘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Poop Deck의 2/O가 많이 서툴다. 하는 일이 달라지면 그만큼 생각하는 것도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질 못한 듯 하다. 이 달에 ‘書譜’를 세 번 쓴 셈이다. 얼마만큼 진전이 있었을까? 우물안 개구리처럼 혼자 하는 일이라 아무리 봐도 제자리 걸음이다. ‘曺全碑’도 쓸수록 마음에 안 찬다. 이상한 일이다. 그저 남은 시간을 떼우기 위한 한 방편으로 쓸 뿐 정성과 마음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원인일 것이다. 알맹이가 빠진 것이다. 좀 더 정신과 마음을 기울여야 할 텐데-. 그게 뜻같지 않다. 여기까지 가져온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만큼은 해야 하지 않은가?
Nov/30(일) :
이 달도 간다. 생각보다 Loading이 늦다. 내일은 떠날 수 있으려나? 틀에 박힌 하루가 그래도 쉴 참 없이 간다. 다시 입술이 부릅턴다. 이상한 일이다. 무리하게 한 일이 없는데-. 전에도 Matadi출항 전후해서 부릅턴 일이 있더니-. 입항중 매일 1만보씩 꼬박 걸은 것이 무리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그렇게 Stress를 받는 것도 아니다. 눈가도 찝찝하다. 9일째 별반 일도 없이 그냥 오고 가는대로 보냈는데도 입술만 부릅터다니. 어서 떠나고 싶다. 살아 움직이는 짐승처럼, 큰 덩치가 역시 꿈적거릴 때 무엇인가 동적 삶이 이루어져 나갈 것만 같다. 벌써 마음은 12월을 넘어 달리고 있다. C/E의 상처에 계속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는데 염려가 된다. 좀 단단히 매고 덜 움직이도록 했으면 좋으련만 고집스레 안 듣는다. 제 몸 제가 더 잘 안다는데 할 말은 없다만. 속의 힘줄과 신경이 미지수다. 후유증이 문제가 아닌가.
Dec/02(화) 1986 :
12:00 Matadi출항. 만 9일째다. 어제는 Terminal의 Folk-Lift 고장으로 종일을 눙쳤다. 결국 하루를 늦춘 대신 Hamburg항을 Ommit(빼고)하고 Abi-Ant.로 직행하기로 한댔다. 그것도 괜찮군. 그 놈의 North Sea . 밤중의 강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된다. 아마도 다음 Voyage가 꽤나 Tight할 모양이다. 22일 아침부터는 천하없어도 Ant.에서 시작해야 27일 출항할 수 있다니-. 꽉 찼군. 그저 시간이 말하는 거다. 내야 급할 것도 답답할 것도 없지 않은가. 모처럼의 움직임이 속 시원하다만 그간 쌓였던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도 하다. 다리 모퉁이에 닻을 내리고 대기 중인 한국선원들이 탄 선박은 Cargo 사고로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단다. 그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 쌀이라도 좀 팔아 줄걸! 다시 40여일 후면 Matadi에 올 것이지만 매번 와도 정이 붙질 않는다. 상륙을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따라가 본 14살의 검둥이 아가씨의 방! 그것은 바로 토굴이었다. 인간이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 광경에도 오히려 동물적 욕망이 느낌도 수치도 가책도 없이 꽉 차오르기까지 했으니 생각할수록 이상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이 달은 書譜와 曺全碑를 한 번씩 完書했다. 기록적이다.
Dec/04(목) :
어제 오늘 역시 종일을 잠을 보냈다. 오랜 정박기간 동안 자신도 모르게 쌓였던 긴장과 피로가 이제사 풀어지는 모양이다. Mr. Waytack녀석도 꼼짝을 않는다. 그럴테지. 마누라 왔다 갔으니-. 한동안 놓았던 일어관계 책을 다시 든다. 역시 자주 쓰지 않으면 녹이 쓸게 마련이다. 계속 하는 ‘Time’지도 그런대로 취미를 붙여 간다만 좀 더 시원스레 읽어지지 않는 게 아쉬움이 있다. Wife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쓴다. 지난 13일 C/E의 부상이후 치닥거리 하는라 정신 없었고 그 후론 통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엇이건 그냥 두면 퇴화하는 가보다. 더구나 폐쇄적인 생활공간에서 자꾸자꾸 찾고 노력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제자리걸음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 5일 자정 입항이 불가. Speed down했다. 아무래도 하룻밤을 외항에서 새야 할 것 같다만 그 놈의 곳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 다음 항차를 마치면 2월 중순. 곧장 귀국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그게 당연한 일이다. 그 다음은 다시 생각하고 형편에 따르자. Mr. Waytack에 의하면 내년 1월부턴 Lome. Cotonou, Douala는 Delmas Line에 맡기고 본선은 Abi-Mat. 직행하면 북항시는 여러 항을 빼는 대신 1 Trip를 42일간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2월 초순이면 귀국할 수 있다는 결론도 나온다. 매선 관계가 특별히 생기지 않는다면-. 2월과 3월, 한학기를 마감하고 다시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에 함께 있어 주고 의논도, 위로도, 격려도 해 주는 것이 어떤 점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Dec/09(화) :
5일 새벽 04:30시 입항. 7일은 휴무. 그리고 오늘아침 07:00 출항했다. C/E의 상처에 대해서 Dr. Kouassi의 진단결과 이대로는 승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Fortuna와 연락. Ant.에서 교대키로 했다. 아무래도 후유증까지 치료하자면 시일이 꽤나 걸릴 것 같다. Mr. Waytack 공로 귀국. 편지와 Monthly Report는 우송했다. 오늘 아침 출항시 Poop Deck의 Mooring rope Broken 사고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긴 것이다. 어제 계선줄 보급의 요청을 했다만 잘한 일이다. 낡은 줄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더 큰 인명사고로까지 이어질 우려가 있다. 다시금 1개월 가량 좀 신경을 덜 쓸 기간이다. 남은 두어 달은 보다 안전하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제 낮부터 한약을 시작하다.
Dec/11(목) :
약탓인가 아니면 긴장을 푼 탓인가 잠, 잠이 쏟아진다. 모처럼의 숙면이 괜찮기는 하다만. C/E 한테 목걸이 하나를 얻어 걸었다. 개발에 편자라더니-.
Dec/13 :
북위 21도를 넘어선다 날씨가 급히 변한다. 불과 10여일 사이에 여름과 겨울이 맞바뀌게 되어 있으니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탓이라 몸에도 좋을 것은 없을 것이다.
희부연 사막의 沙塵이 없어지는 대신 청명하고 맑은 태양이 모처럼 수평선 위에 나타난다만 어딘가 싸늘하고 칼날 같은 날카로움을 준다. 낮이 급격히 짧아져 간다. 해상이 거칠어지기 전에 만들어야 할 Documents를 준비해야겠다. 이제 금년도 반달을 남기고 있다. Boat Drill을 실시. 여전히 개미 채바퀴 돌 듯한 생활의 연속이다. 무엇인가 자극적이고 보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도데체가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발전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안일! 그것은 먼 뒷날을 위해선 오히려 정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Dec/15(월) :
날씨 때문인가 몸이 찜찜하다. 갑자기 한약 냄새가 역겨워진다. 골치고 팅하고 찌부듯하군. 불과 며칠 만에 기온의 급변한 자연현상을 맞음에 따른 적응이 늦은 탓이리라. 그저 사람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흘러가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을 거역한다는 것은 무리다 따른다. 낮에 약간 쌀쌀한 느낌 속에서도 얇은 옷차림 그대로 걸음을 걸은 탓도 있는 듯 하다. 그만큼 체질적으로 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리라.
글씨도 종이가 아까워 계속하지만 더 이상 진전이 없어 보인다. 한계에 달한 것인가? 아니면 싫증 때문에 정성이, 혼이 깃들지 않은 탓일까. 어쨌든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隸書는 거의 포기하다 싶이 했으니 갈수록 뒷걸음이다. 물론 정박 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사정도 있으니 의외로 생각 같지 않음에 짜증이 날 때도 있다. 북대서양의 Swell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쪽은 역시 바람과 해상이 거칠다는 증거다. 내일 모래만 좋아준다면 이항차도 무사히 마치련만.
Dec/18(목) :
어제, 오늘 그냥 딩굴기만 했다. 역시 폴투칼 서안인 Biscay만은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다행히 강풍이 없어 다행이었다만 크고 늘직한 너울 때문에 그냥 곤두박질을 쳐댔다. 오늘 아침부터 시작된 강풍과 그로 인해 생긴 높은 파도, 그리고 나쁜 視界였지만 오후 2시반. Ushant섬을 항과. 변침했다. 내일 밤 늦게는 접안이 가능하리라.
Radio라도 들리고 Radar로나마 보는 육지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땅덩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기를 느낀다. X-Mas Carrol들이 어디서나 들린다. 부쩍 짧아진 낮. 공연스레 설레는 마음.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렇다. 오직 한 가지 있다면 편지를 찾고 전화로 목소리나마 들을 수 있다는 것 뿐이다. 오직 그것을 바라고 50여일을 잘도 참아왔다는 생각이다. 한약을 다섯 첩으로 중지한다. 다음 유럽 출항시 다시 달이기로 했다. 연일 음산하고 습한 이곳 겨울 특유의 일기와 바람이 싫다. 새로 온다는 C/E(기관장) 편에 책이라도 한권 보내려나?
Dec/19(금)~24(수) :
개 좃같은 며칠이었다. 19일 외항에서 하루 대기. Pilot Service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Flushing Road에서 두 번 Dragging. 그리고 술 취한 Pilot에 의한 Shifting. 그리곤 21일 Schlde강 Lock 입구에서 Denmark선 ‘Gudrun Danielsen'호와의 선체 충돌 사고. 거기서 다시 Tug Boat 기다리느라 하루 대기. 결국 Tug Boat 없이 접안. 연이은 CMB. ABS. Hull Insurance. P & I Survey, River Pilot 당국의 조사 등등. 춥고 찔끔거리는 음산한 날씨마져 참말로 개좃 같은 날들이었다. 과정상 내 잘못은 없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최종적인 책임은 Capt.가 져야하는 것이다. 그 경황 속에서도 기관장이 교대되었고, 전화도 했고, 편지와 참기름도 받았으나 책은 없다. 전화에서 ‘보낸 줄 알았다’는 말이 오히려 얄미운 정도로 귀엽다. 그러나 용케도 많은 일들을 무사히 처리했다. 마지막 한 항차를 앞두고 불길한 예고는 아닌지 모르겠다만 쉽게 다음 기항지에서 교대되기는 어려울 것만 같은 예감이다. 정화의 건강이 계속 염려스럽다. 대입제도가 다시 바뀌었다니 좃 같은 새끼들. 참 세상이 어찌되려나. 마음마져 춥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영하 12도까지 내려간데나. 개업했다는 현지 Restaurant ‘한국관’에 잠시 들러 얼굴만 내밀고 오다.
Dec/25(목) :
크리스마스. 그러나 White가 아닌 Gloomy X-mas다. 모처럼 벼룬 휴일인데 아침부터 처량스럽게도 비가 내린다. 제기랄이다. 비 오는 날 뱃놈의 신세는 개보다 못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군. 종일을 꼼짝없이 서성이다 말았다. 시간에 맞추어 하려했던 전화도 수포, 밀린 일들과 잠으로 떼우긴 했어도 생각할수록 미운 날씨다. 저녁에 걸음 걷는 사이 Unicon의 徐 기관장이 다녀간 모양.
Dec/26 :
CMB의 점심 초대를 거절하고 집에 전화, 간식 등을 Shopping 했다. Tug 없이 Berthing한 수고의 대가로 Italy제 Pilot용 가방 한 개를 보냈다. 별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덕을 본 일에 대해선 분명히 그 대가를 생각해 주는 사고방식이 합리적이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더니 이 참에 Special Bonus 청구서를 만들어 보냈다. 구태여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그만큼 내 고충은 이해하라는 뜻이 있다. 이번엔 한 일 없이 부산하게만 설쳤다. 아무 것도 산 것이 없으면서도 용돈도 축나고-. 그나마 연이은 두 번의 전화가 유일한 남음이다. 아마 지금쯤 정현이 다리고 Sky場 갔을거야. 금년들어 부쩍 여행이 잦은 듯하다.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만 전에 없던 일이다. 삶의 길이에 따라 그 질도 변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변화의 하나이다. 그러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성이 되고 젖어 버리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Dec/28(일) :
River Pilot. 부족으로 10여 시간을 늦어 08:00시 출항. 그러나 Sea Pilot의 Strike으로 Flushing 에서부터 Non-pilot로 나왔다. 생각보다는 훨씬 좋은 해상이라 다행.
이번이 Last Voy.라 보고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자. 자칫 마지막에 해이해진 마음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적지 않다. ETA Dakar가 다소 변경될 것 같다.
Dec/30 :
Dover strait부터 서서히 시작된 Rough Sea가 Biscay Bay에서는 절정이다. 역시 이놈의 Biscay만은 惡名이 높은 곳이다. Biscay만을 빠지기 7-8시간을 앞두고 Radar 2대가 한꺼번에 고장이다. 심한 선체의 요동에 따른 충격 때문에 어딘가가 끊어진 모양이다. 1마일 앞이 안 보이는데 완전한 장님 꼴이다. 예정대로 출항만 되었어도 이미 이 만(灣)을 벌써 빠져 나갔을 것 아닌가.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다. 다시 긴장에 휩싸인다. Last Voy. 때마다 애를 먹던 그 Jinx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어제오늘 꼬박 Tape 녹음 때문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간 시간을 맞자.
Dec/31(수) 1986 :
금년 1986년의 마지막 날이다. 또 한해가 간다. Adios 1986년. 달력을 갈아 붙이다. 아무런 미련도 보람도 없는 듯. 다만 건강해진 것 그것만이 유난히 기억된다. 역시 1년간의 Comforts of Home을 잃어버린 한 해다. 두 주일 가까이 못했던 jogging을 재개함으로 새로운 기분을 갖는다. 왼쪽 귀가 재발하는 듯. 남은 약을 먹는다.
자정 전화를 시도했으나 Telex가 고장이다. 해가 바뀌는 순간에 고장이 날게 뭐람. 기다릴 텐데. 좃 같은 것. 다시 한 나이를 더한다는 데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다.
1987년 Jan/01(목) :
기대했던 만큼 밝은 새해 첫날이 아니다. Telex고장으로 인한 전화의 失機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그 때문에 잠을 설쳤고, 낮에는 잠에 쫒긴 것이다. 나무를 옮겨 심었다. 깊은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새로운 시작에 무언가 쏟아 보고 싶은 때문이다. 정성스레 가꾸어 보는 거다. 오랜만에 선내 순시도 했다. 다시 한해. 더욱 건강하고 우리 모두가 무사하고 마음먹은 바가 쉬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길 새벽 부옇게 밝아오는 여명의 동쪽 하늘을 보며 기원했다. 오후 Telex 복구, Sub-Radar도 어느 정도 작동한다. 죽으란 법은 없는가 보다. Speed도 의외로 잘 난다. 그렇다 모든 것을 다시 낙관적으로 생각하자.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모래 다시 전화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Jan/03(토) :
몸이 너무 찹고 춥다. 어께가 시리고 으시시하다. 대부분 반소매를 입고 문을 열어 두는데 나 혼자만 유독 추위를 타니 정상이 아니란 말인가. 10시 경산에 전화하다. 제사는 끝난 모양이다만 Wife는 참석하지 않았단다. 생각이 어긋나 서운한 마음이 오래 남는다. 기대가 컸었는데-.
Jan/05 :
Dakar 출항. Unlashing Car에 대한 문제로 BSN과 얘기가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그의 생각이 모자람에 어처구니가 없다. 그것이 결국 Super Cargo의 장난이 아니기를 바라고 역시 CMB와 직접 Discussion 할 일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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