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일주여행 2016.4.27~5.5
금년도 해외여행은 이태리 일주로 정했다. 이태리의 대부분 도시들은 대략 18년전?쯤으로 추산 되는데 소위 서유럽여행때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주 포인트는 TV에서 광고한 친퀘텔레, 그리고 조선일보에서 자세히 보도한 아말피의 경치에 현혹되어 집사람이 찍은 곳이였기에 우선적으로 가게 되었다. 5월2일로 하나투어 여행사로 당초일정을 잡았으나 페키지 모객이 안되어 4월27일로 바뀌고 27일부터 9일간 여정으로 무려 30명의 일행이 한팀이 되어 출발하게 되었다.
오후 3시5분발 대한항공편-새로 신설된 신분당선 광교역에서 카트를 끌고 타서 양재역에서 3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김포공항행 9호선으로 환승-김포에서 인천공항행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모두가 경로우대 무료이니-대한민국 좋은나라임에 틀림없다. 미리 인천공항에서 요기를 했지만 비행기에서 또 늦은 점심이 나온다. 인기만점인 비빔밥을 선택. 여행 중에서 가장 싫은 것이 비행시간. 좁은 좌석에 근 12시간을 타고 가야하는 괴로움. 그나마 밥때 먹고싶은 메뉴가 있으니 다행이다. 잠 잘 자는 것도 타고난 복이라는데 나는 좀처럼 잠이 오질 않고 자더라고 쪽잠이라--못먹는 와인도 마셔보고 하지만 실패. 그래서 아예 영화보기를 계속한다. 물경 4편을 거뜬히 봤다. 이래저래 시간이 가서 미라노 국제공항에 닿으니 그쪽 시간으로 저녁 때가 되었다. 비행시간 12시간에 시차가 7시간(서울이 빠르다).미라노 인근 호텔에 입숙했다. 내일 아침에 남쪽행이다 피사탑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피사를 거쳐 이태리의 중앙에 있는 로마까지 가는 여정이다.
2일차 피사(Pisa) 시차와 비행중 잠부족으로 몹씨 피곤한 가운데 첫 여정이 시작 되었다. 아침 7시에 식사를 하고 8시20분에 쳌아웃을 마치고 8시30분에 출발이다. 밀라노에서 피사까진 무려 4시간이 걸린단다. 밀라노 시내를 통과한다. 통근시간이다. 어둡고 오래된 느낌을 준다. 이태리는 40년전에 원자력발전소를 없애고 수력발전소만 의지한다고 하며 모자라는 전기는 러시아에서 수입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둡고 춥고 여름엔 더운 느낌을 받게 된다. 밀라노는 이태리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시로 이미 10년전에 4만불을 이룬 도시라니-(전국적으로는 25,000불 수준) 이태리는 남북으로 길죽한 장화형의 나라로 1,200km나 된다. 북쪽으로 알프스,남북으로 로만아테네산맥이 이어진다. 지중해를 끼고 남쪽에 아프리카에 연해 있어 기후가 다양한 편이다. 여름엔 고온 건조하고 겨울에는 저온 다습한 지중해성 기후이다. 시속100km로 제한된 고속도로를 타고 계속 남하하고 있다. 알프스산맥에 이어 이태리 등뼈라 하는 아펜티노 산맥을 보면서 계속 남쪽을 향해 달린다.
피사에 관해 설명이 이어진다. 11~13세기에 피사는 강성하고 잘 나가는 중세도시였다. 이태리가 1860~70년 사이 통일운동이 있어 이태리공화국이 되기 까지에는 모두 도시국가로 발전했다. 그래서 지역성이 강하다. 피사는 로마를 제외하고는 가장 오랜 해양도시였다. 드디어 피사에 도착했다.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피사의 사탑은 현재의 지리적으로는 토스카나주에 속하는 소도시이다.
약 700년전에 만든 피사의 사탑은 옛 성곽 안쪽에 위치한다. 기울어진 사탑은 1990년 붕괴의 위험이 있어 현대기술로 보수공사를 마치고 2003년에 개방하였다. 피사의 명소가 모여 있는 곳으로 기적의 광장이란 뜻을 지닌 두오모 광장에서 피사의 사탑과 두오모성당을 관람하였다. 끝쪽에 위치한 기울어진 사탑은 어디서나 시선을 강하게 끈다. 피사의 사탑은 볼때 기쁘고 나갈 때는 섭섭하다는 평을 얻고 있단다. 높이가 55m인 사탑을 오르자면 300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별도 입장료(2만원정도)를 지불해야 한단다. 하얀 백색 대리석으로 만든 성당과 사탑은 이곳 하얀 설산처럼 보이는 대리석이 풍부히 산재한 석회암산에서 캐낸다. 과거 융성했던 도시국가 피사는 피렌체(프로방스)와의 전쟁에서 피렌체로 흡수되고 만다. 사탑에는 오르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많은 사진을 남겼다.
피사의 사탑 로마(ROME) 피사를 떠나 남행 로마를 향한다. 로마는 이테리 반도의 정 중앙에 위치한다. 1번 고속도로를 남으로 향해 달린다. 1번 고속도로는 미라노에서 피렌체를 거쳐 로마로 이어진다. 세계최초로 자동차 전용고속도로로 뭇소리니가 건설했다. 차창 밖으로 비가 뿌린다. 고속도로변 중북부지방의 전원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특히 요즘과 같은 봄 풍경은 유별나다. 구릉지대가 많다. 전국토의 30%가 구릉지대 이다. 중국이나 프랑스 독일처럼 한없이 평야만 이어지는 땅과는 달리 마치 우리나라를 보는 듯 산과 들판 구릉지대가 골고루 나와 자동차 여행이 지루하지 않다.
가이드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세계 최초의 슬로시티 올리비에또를 지난다고 알린다. 500년 된 중세도시로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다. 지나며 사진으로 남기지만 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로마는 유럽 전역 그리고 아프리카까지도 로마문명의 흔적을 보아 왔기 때문에 색다르거나 신비감이 없지만 장구한 세월의 로마문명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로마하면 생각나는 문구가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또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등등.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데 우리는 하루만에 로마를 모두 돌아볼 것이다. 로마하면 로마의 휴일이 떠 오르고 오드리헵번의 사랑스런 얼굴이 나타난다. ROMA 사랑의 도시라는 애칭이 있다. 알파벳을 거꾸로 하면 AMOR이고 바로 사랑이란 단어이다.로마의 어둠이 깃들고 로마의 불빛이 반짝인다. 내일은 이 로마를 하루만에 모두를 찾고 알아갈 것이다.
3일차 낡이 밝았다. 아침 8시에 출발한단다. 일찌감치부터 서둔다.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시국을 찾는 날이다. 세계3대박물관 중의 하나인 바티칸 박물관도 보고 세계 카토릭교의 본산인 성베드로 대성당도 입장하여 미술품을 관람한다. 창가로 보이는 로마시내--고색창연 그대로이다. 처음 찾은 곳은 원형경기장 코르세움이었다. 코르세움의 뒷쪽 높은 벽이 인상적이다. 그 앞에 개선문이 있다. 파리의 개선문이 200년 역사인데 비해 이곳 개선문은 17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비교가 안된다. 앞면 옆면 다 돌아 본다. 조각이 너무 섬세하고 아름답다 어떻게 그 옛날에 이토록 아름다운 조각품이 나올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난다.
로마 시내투어에는 벤츠투어라는 옵션이 있다. 시내에는 관광버스가 다닐 수 없어 걸으면서 관광한다. 다리가 아프고 시간 절약을 위해 벤츠투어(미니버스)를 개발하여 다닌다. 우리 부부는 일반 걸으면서 투어하기로 했다. 아직은 걸을만 하기 때문이다.가장 많이 찾는 트레비분수를 찾았다. 수많은 인파는 언제나 볼 수 있는 광경 분수옆에는 그 유명한 본젤라또 아이스크림 가게도 문전성시다.아이스크림을 물고 분수에서 사진도 찍고--판테온 신전,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진실의 입,스페인광장을 둘러본다. 점심을 먹고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시국에서 박물관과 성베드로 성당을 구경한다. 바티칸 경계 표시가 있긴한데--바티칸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예전엔 엄청 긴줄을 서서 기다린 기억이 있는데 바로 들어간다. 미리 표를 예약해 두었기에 시간이 되면 바로 들어갈 수가 있단다. 역시 수많은 관람객으로 북적거린다. 미리 바깥에서 천지창조,최후의 심판 그림 모사품을 세워놓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안에서는 사진촬영도,해설가 설명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별도로 설치한 모양이다.
1508년 교활 율리우스 2세의 명을 받아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렸다 당시 미켈란젤로와 라이벌이었던 최고의 건축가 브라만테는 프레스코화는 전혀 그려본 적이 없는 미켈란젤로가 실패할 거라 생각하고 그를 교황 율리우스에게 권유했는데, 아이러니하게 그의 라이벌 예술가들도 놀랄 정도로 세계 미술 사상 최고의 불후의 명작<천지창조>를 남겼다. <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달의 창조>, <식생의 창조>,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와 낙원으로부터의 추방>,<노아의 제물>, <노아의 대홍수>, <술 취한 노아>에 이르기 까지 9개의 그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그리고 이 그림들의 좌우 부분과 구석의 삼각형 부분들을 비롯하여 창문들의 위 반원형 부분에는 그리스도의 선조들과 다윗 왕조의 인물들이 그려져 있으며 그 이외의 공간에는 예언자들과 무녀들의 인물화들이 그려져 있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제대 뒤 벽을 채우고 있는 벽화<최후의 심판>천장화 완성 22년 후 교황 클레멘트 7세의 부름을 받고 미켈란젤로가 다시 로마로 돌아와 착수하게 되었다,이때 그의 나이가 60세로 건강 상태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390명 이상의 인물이 그려진 200제곱미터가 넘는 거대한 그림이다.예수를 중심으로 꼭대기의 천상계, 튜바를 부는천사, 죽은 자의 부활승천, 지옥으로의 추락 장면으로 나뉘어 있다. 이곳에 등장하는 인물을 모두 나체로 그려 종교재판에 회부될 뻔했다 그후 나체에 옷을 그려 넣었다는...말하자면 미켈란제로는 30세에 화제작 천지창조를 그리고 환갑에는 문제작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바로 문제작에서는 예수를 벗겨서 나체로 그린 점,아프리카 흑인을 구제하는 장면,교황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장면 등이다.
피오클레멘터 미술관은 수많은 걸작 조각품으로 눈을 황홀케 한다. 차례로 줄을 서서 들어간 박물관-두뱀에게 물려 죽어가며 고통받는 라오콘과 두아들,인체의 비율을 가장 잘 나타낸 아폰론,미켈란젤로의 '가장 완벽한 인체의 표현'이라고 극찬해서 유명한 토르소.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대리석조각상,신넵튠신상,메두사의 목을 벤 카노바 페루시우스 조각상,그리스 다신과 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 여신상 등등. 밖으로 나외 솔방울정원(피냐정원)에서 지구본을 구경했다. 환경파괴로 파괴되어가는 지구를 상징하는 청동조각물 그리고 높이 4m나 되는 솔방울 조각품은 단연 시선을 끌었다. 이어 복도 갤러리와 지도갤러리에서 천장 프레스코화와 조각 모자이크에 감탄한다. 이탈리아 전체지도,캄파니아(나폴리)지도등 조각작품은 당시 기술로 어떻게 이런 정교한 작품이 나오는지--시스티나 예배당에서는 밖에서 본 미켈란제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압권이다. 사진을 못찍게 하여 미리 밖에서 가이드 설명과 그림을 상세히 볼 수 있었다.
정교한 천장,아라치의 회랑.복도를 따라 양쪽 벽에 대형 카펫이 걸려있다.15세기에 만든 정교한 이탈리아 지도,예수의 부활,미켈란제로의 피에따,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54명의 인물이 그려진 아테네학당,네로황제의 욕조,콘스탄티누스대제 어머니 성 헬레나 석관,이루 말할 수 없는 정교하고 화려한 그림과 조각품을 원없이 감상했다. 나갈때는 베드로성당쪽으로 나갈 것을 강조한다.
시간에 맞추어 셩 베드로 성당에 입장했다.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베드로 무덤에서 세워진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1506년 브라만테가 착공,1626년 바로코식 성당으로 완공했다. 성베드로 성당의 돔은 전세계에서 가장 크며 정문 입구 왼쪽에 천국의 열쇄를 쥐고 있는 베드로, 우측에 성바오로 조각상이 눈에 띈다. 지붕쪽에는 예수의 12제자가 조각되어 서 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유명한 미켈란제로의 피에타 상을 구경할 수 있다. 지하에는 베드로의 무덤과 그 옆에 바오로2세 교황의 무덤이 있다. 성베드로 성당을 감동으로 관람후 바깥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며 사진을 찍었다. 광장과 정면,동남쪽의 모습은 가관이다. 우뚝 선 오벨레스크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호텔로 향했다. 내일은 다시 남쪽으로--
로마의 원형경기장
1700년 역사의 개선문
이태리 통일 100년 기념 통일기념관
트레비분수/포세이돈 석상 천지창조
네로 황제의 욕조
성베드로 성당 광장 동남쪽의 모습,우뚝 선 것은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레스크
4일차-오늘은 이태리 남부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는 날이다. 로마에서 일찌감치 아침 7시에 출발했다. 첫 관광지 폼페이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 장장 1200km나 되는 남북 고속도로는 뭇소리니가 전세계 처음으로 개통한 도로이다.바다와 하늘 색갈이 같은 블루 천지이다. 그래서 이태리 축구단을 아주리군단이라 부른다. 바다와 하늘이 아주리색상이다. 시와 노래에도 긍정적인 푸르럼의 문귀가 많다. 땅은 비옥하고 대리석이 나는 산은 마치 눈이 쌓인 것처럼 하얗다. 까라라산이라고 이름도 재미있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태리는 도시개발이 없고 먹는 것도 새로운 개발이 없단다. 그리고 산업개발도 없고 오로지 유지관리가 전부라고-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도시전체가 통째로 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50개지역이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단연 세계1위이다. 독보적이다. 휴게소를 거쳐 이제 캄파니아 지방을 지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라북도 정도라니 상당히 남하했다.포도밭이 이어진다. 이태리 포도주도 유명하다. 식탁마다 와인이 곁들여진다. 일찍 떠나기도 했지만 스케쥴상 11시경 점심식사를 하고 폼페이 관광에 나섰다.
폼페이 번영했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전체와 2만여명의 주민이 함께 화산재에 파묻힌 비운의 도시이다. 화산재가 5m나 쌓였다니--도시 전체가 미라의 형상이 되어버린 폼페이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높았던 도시였다. 베수비오 산이 아득히 보인다. 당시의 비운을 겪고서도 의젓이 서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당시 호화스런 귀족의 집으로 목욕탕,정원,마차길,우물, 공연장,여관 등등 넓은 광장에는 현대물의 조각상들이 어우러지게 전시되어 있다. 마차길에는 바닥의 큰 돌은 사람 키 만큼 파서 만들었기 때문에 단단하여 수명이 길고 밤에도 통행이 가능토록 흰점돌을 박아 야광 역할을 하게 했다. 마차길이 지나도록 바퀴길을 만들고 물이 가득 찼을 때 건너는 다리를 놓을 때도 반드시 마차 바퀴길을 감안해서 과학적으로 길을 만들었다. 폼페이를 관광하고 소렌토 방향으로 -
소렌토와 아말피 바닷가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소렌토의 절경이 창가에 앉은 관광나그네들을 흥분시킨다. 너무나 아름다운 해안절벽의 풍경이다. 잉크빛 바다와 하늘,깎아지른듯한 절벽해안이 리아시스식으로 이어지고 구름낀 산을 배경으로 업고 앉은 주황색 지붕의 소렌토는 그야말로 한폭의 수채화이다. 소렌토를 보고 이어 카프리로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그 전에 우리가 그토록 소망하는 아말피 해안을 보기 위해 꼬불꼬불한 해안도로를 달린다. 올리브나무들이 울창한 지역을 지나 드디어 포지티노와 아말피로 가는 방향표지판이 우리 일행을 반긴다. 아말피 해안이 드디어--마을이 보이고 해안절벽이 이어진다. 해안으로 걷는 스케쥴도 있나본데 우리는 차안에서 그리고 잠시 내려서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소렌토에서 카프리까지는 배로 불과 30분이면 간다. 소렌토 항구도시를 걸어본다. 세계적인 전설의 테너가수 엔리코 크루소가 머물다 사망했다는 빅토리아 호텔도 관광명소 중의 하나이다. 이태리 어느 작곡가가 그를 애도하며 작곡한 노래라고 가이드는 음반을 틀어주었다. 이제 배를 타고 카프리 섬으로 간다. 카프리섬 관광은 옵션으로 되어 있었지만 전원이 가기로 했다.
카프리섬 불과 30분만에 카프리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다음 다시 버스로 꼬불꼬불한 도로로 산을 오른다. 체어리프트를 타기 위해서다. 체어리프트는 한사람씩 타게 되어 있다. 두명씩 타는 리프트보다 좀 두려움이 있는듯하다. 약 15분을 타고 가면서 발 아래로 보이는 경치 멀리 바닷가와 산 풍경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고 오가는 관광객끼리 손짓,미소로 인사를 나눈다. 남산케이블이 4분정도이니 비교하면 꽤나 긴 거리다. 정상에 올라 바다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베스비오산도,가까이 해안쪽에서의 요트와 카프리의 하얀집 주택가도 보인다. 정상의 카페에서는 아이스크림,음료등이 인기를 끈다. 체어리프트를 타고 내려와서 해안 물가를 걸었다. 명경같이 맑은 물은 속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인다. 이제 배를 타고 나폴리로 간다. 나폴리까지는 한시간 가량 걸린다.
나폴리 18년전 처음으로 나폴리를 찾았을 때의 인상이나 지금의 감상은 똑 같다. 어둠침침하고 오래되고 퇴색된 느낌의 항구도시-이 나폴리가 세계3대미항이라니--그 의문이 안풀린채 다시 찾은 나폴리. 배에서 내리니 달걀성이라 불리는 카스텔델오보성이 바다쪽으로 뽀죽히 내다본다. 카폴리는 그리스이후 수많은 국가의 식민지로 지내 이 건물도 프랑스식민시대에 건축한 것. 석양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한다. 나폴리하면 산타루치아 노래로 유명한 곳이다.산타루치아항이 바로 여기이다. 세계3대미항의 기준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관광객입장에서 재는 기준이 아니라 항구 주민들의 행복지수로 평가한단다. 그곳 삶에 만족하면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싫은 마음을 평가한단다.
영화를 보여 주었다. 웰컴 투 사우스 라는 코미디영화로 북쪽 밀라노 인근에서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이 밀라노로 근무지로 옮기기 위해 장애인 흉내까지 내다가 적발되어 멀리 남부 나폴리로 귀양(?)까지 가지만 그곳 생활에 점차 적응하다 보니 정이 들어 만족하게 된다는 영화. 남과 북의 극심한 빈부차와 선호도를 표출한다. 국회에서 심하게는 남부를 떼내어 북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작명까지 하여 나라를 달리하자는 발의까지 하는 정도라니--못살고 지저분하고 질서가 없고 마피아가 지배하는 무법의 항구도시 나폴리 그러나 천혜의 자연 즉 북쪽에서는 볼수 없는 아주리색의 푸른바다와 하늘 날씨만큼은 절대적으로 나폴리가 최고이다. 버스를 타고 나폴리 시내를 관광한다. 7층아파트에서 줄달린 바가지로 면요리를 배달한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나폴리하면 피자가 유명하다. 대학로의 이태리식당 디마테오 피자집이 나폴리 피자 전문집이다. 고속도로를 달려 저녁 7시경 식당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바로 호텔에 입숙했다. 남부의 관광을 모두 마치고 내일부터는 다식 북상하면서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로 향한다.
폼페이 관광
폼페이 공연장
아름다운 소렌토항
그림처럼 아름다운 아말피
카프리로 가는 배
드디어 카프리섬에
카프리 시가 풍경
나포리 항의 관광인파
5일차 루네쌍스의 진원지 피렌체 이태리 남부에서 이제 북쪽으로 여정이 바뀌었다. 르네쌍스의 발원지 피렌체로 향한다. 제법 긴 장거리 여행이다. 그린 초원의 연속이다. 루네상스를 꽃피운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도시역사지구 전체가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태리 관광의 메카로 로마와 함께 역사 문화의 장인정신이 흠뿍 밴 매력의 도시이다.
역시 중심은 성모마리아 두오모 대성당이다. 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단테의 생가와 박물관을 지난다. 르네쌍스의 선구자 단테는 신곡으로 잘 알려진 대문호이다. 두오모 성당의 압도적인 규모가 놀라게 한다. 중앙성당 위에는 포토트랙 1톤짜리가 3500대 분량의 하중을 올려놓아져 있다니 --지붕은 붉은 벽돌이다. 규모가 크고 넓어서 사진을 한장에 넣기가 힘들 정도이다. 가능한 한 장엄하게 더욱더 화려하게 라는 컨셉에 맞추어 지어진 세계 4번째 크기의 두오모 성당이다. 무려 166년에 걸쳐 완성된 성당-싼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 원 이름이다.
로마에서 중세 카토릭문화시대를 지나 근세 루네쌍스시대로 이어진 역사의 흐름에서 루네쌍스라면 떠 오르는 세사람이 있다. 미켈란제로,레오날드다빈치,라파엘로이다. 미켈란제로 같은 천재를 발굴한 것은 아시는 바와 같이 그 유명한 메디치가문이다. 유럽돈의 1/4을 쓸 만큼 재력왕이었던 메디치 가문은 처음엔 약장사에서 양모사업 면죄부로 떼돈을 벌고 가죽업,은행업(금융)까지-드디어 앤토테인먼트사업에 참여하여 천재를 발굴 육성하였다. 엔터테인먼트와 교양사업으로 환심을 싼 메디치가문은 200년동안 교회를 짓고 교황을 3명이나 배출했다.
성당 옆에는 단테가 세례를 받았다는 세례당이 있다.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에는 줄을 서서 몰려 있다. 이 청동문 제작에 참여한 7명의 작가 중 브르넬레스키와 기베르티는 최후까지 경합을 벌였느나 예상을 뒤엎고 기베르티가 당선되었고 그는 자신의 얼굴까지 넣어가며 북문제작에 20년 걸려 28개의 패널을 완성하고 동문까지 완성하였다. 미켈란제로가 감탄하여 천국의 문이라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 두 사람의 작품은 바르젤로 미술관에 걸려 있다. 세례당 천정은 화려의 극치로 누워서 보는 것이 좋을 정도로 목이 불편하다. 최후의 심판과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만든 작품이다.
조토의 종탑에 오르기 위해 줄을 선 장면이 보인다. 82m의 종탑은 조토를 비롯한 3면의 건축가가 만들었다.올라갈 시간도 힘도 없어서 포기했지만 아마도 피렌체 시가지를 훤히 볼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미켈렌제로 언덕에서 피렌체 도시를 감상할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상징인 베키오 궁전 시계탑은 700년 피렌체공화국과 현재의 청사로 사용되고 있는데 시뇨리아광장에 우뚝 솟은 명물이다. 광장에는 무슨 행사를 하는지 인파가 많다. 그 곳에 다빈치 상과 헬라클래스 상이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미켈란제로 언덕을 올라 광장에 이르니 피렌체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켈란제로 광장은 도시 동남쪽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두오모를 비롯해 베키오다리가 아주 인상적이다. 이 광장에는 미켈란제로의 "다비드상" 복사품이 있어 유명하다. 서울 남산타워에서 서울시내를 내려다 보듯 피렌체 관광객들은 당연 미켈란제로 광장을 찾기 마련이다. 피렌체 관광의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다음 여정을 위해 몬테카티니로 이동했다.
6일차 아름다운 해안마을 친퀘텔레 친퀘텔레는 배낭족들의 입소문으로 알려져 1998년 셰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절경 마을이다.시간과 바닷 바람 속에 풍화를 거듭하면서 아름다운 절벽마을이 생겨 났고 지금부터 130여년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5개의 마을은 기차로 연결되는데 작게는 250명,큰 마을이 1700명이 거주한다. 해안 산을 경작하여 포도밭을 이루었는데 돌로 쪼개서 돌담을 만든 계단식 농장이다. 절벽 위에 지어진 파스텔톤의 집은 한폭의 그림이다. 물론 자동차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마을전체가 유적지요 박물관이다. 태풍과 싸워가며 쌓은 옹벽을 쌓고 경작을 하는 모습에 경외감을 느낀다. 여행객이 점차 늘어나면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변하지 않는 컨셉으로 자연 그대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가는 모습에 놀람움을 금치 못하겠다. 친퀘텔레로 가는 시발역은 라 스페치아 역이다. 여기서 기차표를 끊어서 가고싶은 마을로 향한다. 5개 마을 중 우리는 3개를 택했다.
라스페치아역에서 세정거장만에 내린 곳 몬테로쏘-그야말로 절벽 위에 파스텔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도 있었다. 우리는 산책을 하면서 보이는 예쁜 마을 모습과 절벽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산 위쪽으로 트레킹하는 코스도 있었다. 마을에 도착 자유시간 동안 이 지방 특산물 도자기나 토산품 가게에 들어 쇼핑의 즐거움도 가졌다.
다시 기차를 타고 베르나짜 마을로 왔다. 예쁜 꽃마을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찾은 마나롤라 마을은 제법 규모가 컸다. 굴을 지나 해안가로 가니 호텔도 있고 각종 상점가가 즐비하다. 나이든 유럽 등산객이 베낭을 메고 스틱을 쥔 많은 할배 할매들이 단체 트레킹을 하는 모양이다. 해안 모래사장도 걸을 수 있다. 곳곳에 파라솔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판다. 역시 여인들은 쇼핑이 좋은가 보다. 가게마다 일행들이 보인다. 시간이 되어 다시 역에서 기차를 타고 원래 떠났던 라스페치아로 돌아왔다. 버스로 갈아타고 몬태카티나로 귀환하여 투숙하고 내일은 물의 도시 베니스로 간다.
단테의 생가
두오모 성당
산 조반니 셰례당
미켈란제로 광장에서 본 피렌체 시가지
친퀘텔레 파스텔톤 색의 언덕위 집들
마나롤라 해안 산책길
7일차 물의 도시 베네치아 이제 여행도 종반에 접어 든다. 7일차이다. 오늘은 유명한 물의 도시 베네치아(영어:베니스)로 간다.식당에서 뿔처럼 생긴 빵 코르넷또를 많이 먹었다. 이태리의 아침식사 5천만명이 즐긴다는 빵이다.차 안에서 베네치아가 성행했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임진왜란 등에서 보면 전쟁이 나면 산성도시로 피난 가듯이 여기서도 전쟁시 산위에 있는 도시가 방어하기가 쉽다. 그리고 페스트와 같은 모든 전염병도 지대가 낮은 저지대,하천지역에서 발생하여 고지대는 상대적으로 천국인 셈이다.
훈족의 침략을 받고 거의 전멸상태인 가운데 이태리 시민들은 뻘이 있는 베네치아쪽으로 피난을 갔고 여기서 거주하기 위해서는 돌과 나무가 필요했다.바다쪽이라 생산이 풍부한 소금과 교환이 가능했다. 항상 성당을 일차적으로 짓고 그들이 살집을 지었다. 120개나 되는 섬을 하나의 섬으로 만들고 물길를 따라 메인스트리트를 만든 것이다. 마치 동화같은 도시이고 임펙트가 크다. 믿을수 없는 도시가 베네치아이다. 해수가 오르면 바닥은 자연 내려갔고 광장에 물이 차는 경우도 생긴다. 11세기 로마교황청이 에루살렘을 뺏기고 십자군 전쟁을 중세 200년간 진행되면서 결국 수도를 콘스탄티노풀(현재(이스탄불)로 옮긴다. 로마가 멸망한 대신 중동문명이 발달한 셈이다. 중동문화로 대체 되지만 로마 문명을 그대로 보존 된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베네치아는 소금 생산부터 배 건조기술까지 발달하여 교황청에 배,다리를 제공했고 베네치아에 국영 조선소를 만든다. 십자군을 지원해서 떼돈을 벌고 최빈 도시가 최고의 부자도시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베네치아에서는 1년내내 축제행사가 이루어진다. 축제는 가면을 쓴다. 얼굴 뿐만 아니라 ,전신가면도 있다. 그래서 카사노바도 탄행하게 되는 것이다.
베네치아는 이태리 반도의 동쪽 아드리아해의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동양과 서양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이자 물의 도시로 속칭한다. 베네치아의 운하와 어우러진 건축기술에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의문이 있었다. 나무인데 물속에서 그토록 오래 지탱할수 있을까? 썩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염분을 먹은 내수성 강한 나무는 수명이 길고 다만 마찰이 많은 표면만 부식되지 않게 처리한단다. 배를 타고 바다를 질러 베네치아의 중심 산마르코 광장을 향해 25분쯤 가니 산마르코 광장에 닿았다. 비록 오래 되긴 했지만 예전 와서본 기억이 새로우며 모습은 그대로이디.
산마르코광장(Piazza de San Marco)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다. 또한 베네치아 여행의 중심지로 광장에는 베네치아 수호신인 날개 달린 사자상과 성 테오도르 상이 서 있다. 광장 주변에는 회랑,카페가 즐비하며 비둘기들이 광장주변을 여유롭게 다니며 평화스럽고도 활기찬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투어가 시작되었다.
베네치아에는 처음 섬이 6개였으나 현재는 18개로 늘어났다. 지면이 올라 현재는 80cm이고 이런 현상을 아쿠아랄타현상이라 부른다. 섬으로 들어가는 문은 450개나 되고 6만명이 거줄한다. 년 관광객이 3천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가히 규모를 짐작케 한다.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가 이곳 출신 음악인이다. 비발디는 고아원 악기선생으로 파티가 성행한 이곳에서 인기가 있었다. 비발디 사후 160년 뒤 1900년대에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성행했다. 수상교통수단으로는 버스와 택시가 있고 곤돌라가 있다. 곤돌라는 관광객의 투어용과 자가용이 있다. 대당 5천만원 정도라고-물찬 제비처럼 날씬하면서도 경사가 지게 삐딱히 서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곤돌라를 나누어 탔다. 6명씩 나누어 탔는데 5개의 곤돌라 중 한대가 추첨되어 여가수와 악사가 타게 되었다. 우리는 행운을 얻지는 못했지만 바로 뒤에 따라가면서 악기연주와 여가수의 이태리 민요를 많이 들어 행복했다. 곡이 끝날 때 마다 박수와 앙콜을 연발했다. 카사노바가 갇혔던 감옥에는 탄식의 다리가 걸려 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두칼레 궁과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로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 세상과 단절된다는 의미에서, 이 감옥에 들어가면 살아나오는 사람이 없다하여 한숨을 내쉬어 탄식의 다리라 불리는데 유일하게 카사노바가 탈출에 성공하여 더 유명하다. 리알토 다리도 건너고 프라다 현대미술관도 보인다. 카페와 싸롱이 주변에 즐비하다. 다리 4개를 모두 지나간다. 주황색의 주청사 건물도 보인다.
여행사의 서비스라 불리는 수상택시를 탔다. 산마르코 광장을 시작으로 약 4km에 달하는 운하를 40여분을 돌며 산제레미아 성당과 리알토 다리,두칼레궁전 등을 감상하고 여러 곳을 지나며 그들의 생활상과 도시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산마리노 광장에서 리모델링한 총독 관저건물도 구경했다. 문양이 이슬람식이 특징이다. 쇼핑을 겸한 2시간 가량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300년 역사의 노천 플로리안 카페에서 커피값 7유로, 음악값 6유로를 지불하고 그랜드 피아노에 악단 지휘의 오페라 음악을 듣기도 하고 신선한 예쁜 과일을 믹스한 쥬스를 사 먹기도 하고 정말 자유스런 시간이었다. 못다 찍은 사진도 모두 찍기도 하고--
8일차 로미오와 쥴리엣의 배경도시 베로나 이제 마지막 투어 날이다. 오전에는 베로나를 가서 로미오와 쥴리엣의 애틋하고도 비극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고 또 2천년이나 된 아레나 원형 야외 오페라극장을 구경한다. 오후에는 처음 도착한 도시이자 마지막 떠나는 곳이기도 한 밀라노 관광을 하고 밤 비행기로 귀국하는 일정이다.
1시간 반에 걸쳐 도착한 베로나는 25만명의 소도시이지만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엣"의 배경도시로 이탈리아에서 세번째로 큰 고대 로마의 원형극장인 아레나 경기장이 유명하다. 먼저 로미오를 찾아 간다. 와~ 인파인파~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 처럼 몰려든 인파에 그저 놀랄뿐이다. 두 주인공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재연한 쥴리엣의 베란다와 쥴리엣을 기념하는 동상을 보기 위해--쥴리엣 석상의 두가슴은 하도 많은 사람들이 만져 반질반질하다. 젖가슴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 때문이겠지만 --줄을 섰다. 남여노소가 없다. 쥴리엣 집은 13세기 귀족의 집이었으나 70여년전 쥴리엣 집으로 둔갑. 결국 인공 상품인 셈이다. 벽면에는 세계 언어가 다 집결한 듯 낙서가 새까맣다. 물론 한글도 보이고-
아레나 공연장 외관을 감상했다. 로마 콜로세움을 1/3 크기이고 2천년의 역사를 살려 현재 야외공연장으로 연간 오페라 공연이 계획되어 있었다. 베르디 나비부인 춘희 라크라비아타 등 전설적인 오페라 공연--쥴리엣으로 가는 길은 완전 쇼핑가이다. 중앙광장에는 84m의 시계탑이 서 있고 중앙곡물시장이 유명하다. 이제 마지막 점심을 중국집에서 하게 되었다. 전날 와인을 대접했더니 답례가 있었고 오늘은 연장자로 또 중국 청도 맥주를 스폰서 했다. 모두들 고맙다고-나이값을 안할수 없는 분위기이다. 여비 몇푼으로 생색도 내니 기분도 좋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
곤도라를 타고/아코디온 연주에 맞춰 여가수는 민요를 ~
산마리노 광장
베로나 줄리엣집 베란다
아레나 원형경기장/공연장
9알차 이태리 경제의 중심지 밀라노
오후는 마지맏 코스 밀라노 행이다. 2시간10여분이 걸렸다. 여행일정은 계절과 관계가 깊다. 특히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길수록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관건이다. 봄철은 그래서 좋다. 일반 산하 외에도 아름다운 꽃들을 구경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밀라노까지 가는 길에는 푸른 포도밭, 빨갛게 핀 야생 양귀비가 너무 아름답다. 간혹 양이나 말이 풀을 뜯고 있는 전원 풍경도 정겹다. 3시가 조금 넘어 미라노 경계로 들어섰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명동같은)가 1km나 되는데 상가밀집지역이다. 역시 밀라노는 패션의 메카이다. 블랜드가 수없이 많다. 우리에게 알려진 유명브랜드 말고도 수없이 많은 브랜드--
봄여름/가을겨울 퍄션 전시전람회가 두번 열리고 있다. 여기서는 사진을 찍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카피하기 위한 사진이 문제가 될 수 있단다. 도시의 성벽은 거의 없고 문만 남아 있다. 도시 확장 때문이리라. 문만 있어도 문양이 아름답다. 베네치아문,로마문 등 환상적인 디자인이다. 스칼라 오페라 전용극장 앞에서 하차했다. 스카라극장은 1770년 건립했는대 오페라 전용으로,발레공연으로 유명한 곳이다. 2차대전 후 재건하여 2800명이 수용되는 구관과 신관이 있다. 신관은 현대식 원형극장이다. 스칼라극장은 이 가문으로 시집온 공주를 위해서 지은 것이란다. 갤러리아 비토리오엠마누엘2세(아케이드)로 들어갔다. 1865년에 지은 이 건물에는 바닥에 황소그림이 있는데 발 뒤꿈치로 돌리면 행운이 온다하여 관광객들이 모두 시연한다. 재미다..
밀라노 관광의 한축 두오모성당을 뺄 수 없다. 2245개의 거대한 조각군으로 장식되었고 100m높이의 유리첨탑이 하늘로 치솟은 두오모 성당은 길이 157m,높이 108.5m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105m의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고 높이 70m의 첨탑에 스탠그래스로 아름답게 장식괴어 있다. 규모로 세계 3번째이다. 성당앞에는 두오모 광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비토리오엠마누엘 2세의 동상이 서 있다. 별도 13유로를 주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첩탑 꼭대기까지 가 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걸어서 갈수고 있으나 힘 비축으로 왕복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위에서 보는 직접 만질듯한 첨탑 예술을 보는 감흥은 대단했다. 그리고 멀리 밀라노 시내 또 아래 성당 앞 광장도 아름답다. 두시간의 자유 관람시간이 있어 주변의 가리발디 장군 청동상도 보고 레오날드 다빈치의 석상도--마지막 쇼핑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행은 쇼핑 주안점은 유리그릇과 도자기 인형(꽃,동물)들이다.
스카라 극장
갤라리아(아케이드)에서/행운을 비는 황소에 발 뒤끔치로 돌리기
밀라노 두오모 성당 첨탑
미라노의 스카이라인
첨탑 엘리베이타 안내원 한국 팬이라며-
드디어 모임시간이 되어 이제 귀국절차를 밟는다. 말텐사 밀라노 국제공항으로 갔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와서 여유가 많다. 저녁 식사값으로 10유로씩 여행사에서 주었다. 각자 해결하는 자유선택 식사시간이다. 공항내의 피자 가게에서 얇고 맛있는 이태리 피자를 시키고 음료수로 즐거운 식사도 마치고 -- 밤 비행기를 탔다. 서울도착은 오후 4시경(시차적용,12시간 비행). 장장 9일간의 여정이 끝나고 귀가길에 오르니 나른했던 피곤이 몰려온다.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 실감이 난다. 그러나 아직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체력에 스스로 만족한다. 집에 오니 이렇게 자유스럽고 편할 수가 없다. 마침 6일이 임시 공휴일이 되었다니 일상생활은 하루 연기된 셈이다. 다음의 여행을 위해서 힘을 비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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