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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09(금) :
지난 3일간 겨우 240톤을 실었다. 가마득하다. 거기다 종류별 Separation 때문에도 지장이 많다. 같은 Sling 내에서도 뒤섞여 올라오면 어떻게 한담. Tally도 엉망이다. 계속 신경전의 연속이다. 서로 책임 안 질려는 이놈의 사회에서 혹시라도 잘못이 있으면 전부 본선에다 떠넘길 공산이 크다. 시간과 사람이 그냥 썩어간다. 이게 뭐람. Order를 받아간 선식도 감감 무소식이다. 물건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제 돈벌이 아니니 내 몰라라 하는지? 통 알 길이 없다. 무엇보다 쌀이 문제인데-. 골치다. Owner NYK에 보낼 Inventory 등 Report를 완료하다 잘 갈런지는 모르겠다만 띄워야지. 허리가 여전히 완전치 못하다. 다시 조금씩 걷기를 해본다만 아무래도 후유증이 있다. 영영 이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아닌지. 계속 마시는 차, 녹용, 꿀 그리고 웅담 조각 덕분인지 드물게 건강과 혈색은 좋은 편이다. 유일한 보람이 아닌가. 10월 중순이군. 정화의 입시가 한 달가량 남은 셈인데 잘 이겨 내는지 모르겠다. 제 엄마 성격 닮았으면 악착같이 버텨 낼 것이다. 정화야 힘내라! がんばれ!
Oct/11(일) :
어제 오늘 또 마냥 누워서 보냈다. 8. 9일 양일간 두어시간 걸었더니 허리를 꼼짝하지 못한다. 여전히 작업은 갈팡질팡이고. Cuban Embassy 직원이 다시 다녀갔다. Cost가 너무 높아진다고-. 당연하지.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는 모양이다. 저도 답답한가 보다. 예고된 시간보다 1시간반이나 늦어 Pilot 승선. NO.4 Berth로 Shifting 했다. 바로 석탄더미 옆이다. 빗방울이 듣는 걸 보니 내일은 또 비로 하루를 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제기랄이다. 관리건 하역인부 담당자들이건 꼭 두녀석씩 짝을 지어 다니는 것도 무슨 이유나 Order에 의해서 인가? 신기한 일 같기도 하다만 두 놈이 또 꼭 같이 해달라니 그것도 힘드는 일이다. 아마도 서로 감시하는 모양 같기도 하다. 신청한 야채 등을 가져왔으나 달걀은 일부 부패한 것이 있어 반품했단다. 역시 모든 물자나 생필품이 모자라고 있음이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Oct/12(월) :
비! 아이구, 사람 좀 살자. 하눌님아. 앞으로 4일이면 끝난다고 시불렁거리지만 말짱 거짓말 같다. 먹을 것 생각하면 지금 바로 떠나야 하는데-. 진흙탕과 석탄반죽을 밟고 Seaman's Club에 가보다. 말짱 헛거다. 여기도. 그것도 부두 안에 있다. 철조망 넘어 보이는 시내는 쥐죽은 듯 고요하다. 빌어먹을 놈의 나라. 이러니까 찌든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20분만에 돌아오다.
Oct/13(화) :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비. 하다가 말다가 하던 작업이 결국 중간에 그만둔다. 이제 겨우 반을 실었다나. 그래도 내일 모래면 끝난다고 큰소리다. 부산 중국집 짜장면시키는 것보다 수월하게 거짓말이 나온다. 허기사 급하면 만사 중단하고 바로 떠나라고 하는 수도 있으니 차라리 요행수나 바라자. 하루하루가 심각해져 간다. 오늘내일 아무리 늦어도 15일까지는 여길 떠야한다. 과연 Havana에서 쌀을 구할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거기서도 여기처럼 엿가락 모양 질질 끈다면 문제는 진짜 커질 수밖에 없다. 다음 항차를 지금 생각할 처지가 아니다. 어거지를 써드라도 사입할 수 있는 곳에 들어야 한다. 정화 입시때까지 집에 전화라도 한번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참으로 한심한 어제오늘이다. 내일은 또 어떤 운명의 날이 기다릴 것인지? 사는 것 같지가 않다. 쌍놈의 것.
Oct/16(금) :
새벽 2시 드디어 출항했다. 마치 안 될 일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출항전에 올라왔던 군인 녀석들의 꼬락서니도 분통이 터진 일이지만 그게 저네들 사정인 것을 어쩔것인가. 내가 참아야지. 한시도 빨리 뜨고 싶은 마음에다 지랄 같은 훼방을 놓는 것 같아 더욱 답답했다만 잘 참고 넘겼다. 종일을 허허하게 보냈다. 허탈, 바로 그것이다. 우선 방바닥부터 박박 문질러 닦고 먼지 묻은 옷도 빨고 몸뚱이도 더운물에 담가 겨울 묵은 빨래 삶듯 삶아냈다. 모든 상념의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털어 내 버리자. 그리고는 잤다. 그것밖에 할 일이 없다는 기분에서-. 이제 뭘 더 바랄 것인가. Cuba의 일은 거기 가서 또 부딛치자. 소제하고 빨래한다고 한나절 움직인 탓인가 허리에 무리를 느낀다. 보통일이 아니군. 그저 모든 것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다. 쿵쿵쿵 하는 Eng. 소리가 심장의 고동처럼 우렁차게도 들린다. 다시 시작하자. 생활을 활성화시키고 보다 적극적인 생각을 갖자. 지난 8개월에 비하면 남은 4개월은 잠깐이 아닌가.
Oct/18(일) :
Italy, Algeria 그리고 Spain 연안을 항과 중에 모처럼 TV가 볼만했다. 역시 자유 그리고 권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느낀다. 생존, 언론, 정치 각 방면에 걸친 인간의 개성과 능력이 존중되고 제대로 발휘되는 사회가 진정한 발전을 자연스럽게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초라하고 답답했던 Durres의 TV에 애처러운 연민의 정 마져 느꼈음은 귀중한 경험이다. 사막 한 가운데서 처자식과 집을 두고 France 건축공사장에서 일하던 어느 인부의 그 꿈. 그것은 곧 내 생활을 보게 하는 듯도 해 서글프기까지 했다. 인간의 삶에 돈이 전부는 물론 아니라 하지만 현대 경제사회에서 물질적 부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데서 많은 갈등이 생긴다. 한 달간에 걸쳐 웅담(?)을 먹은 셈이다. 기분만이라도 벌은 셈치자. 다시 ‘걷기’를 시도해 본다. 괜찮을는지. 거의 한 달을 쉰 셈이다. 집 나선지 꼭 8개월 되는 날이군. 정모 녀석의 모습이 삼삼하다. Mambisa로부터 Cable, 출항직후 보낸 전보는 어떻게 됐는지? 아직도 Disport가 미정인체다. 그 놈의 곳도 개판이겠지. 보나마나.
Oct/20(화) :
18일 09:00시 Giblartal을 통과. 근 70여일만에 다시 만나는 흔들림에 멀미끼가 고갤든다. 잠이다.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을 듯한 잠부터 멀미증세는 시작된다.
Owner로부터 Havans Agent와 연락이 안 된다는 cable이다. 나도 마찬가지. Crew mail에 대한 유일한 희망도 잿불처럼 사그러지려는가? 저네들이 필요한 것 이외는 일체 통보해 주지 않는 Agent가 무슨 놈의 Agent란 말인가. 썩을 놈의 쌔끼들!
Oct/ 21(수) 1987 :
종일 황천, 하루가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다. 그러나 갇혔단 며칠전에 비하면 그래도 뭔가 움직임, 생기 같은 게 있긴 하다. 해를 쌓을수록 거친 해상이 더욱 겁이 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일까? 여전히 양하항은 미정이나 우편물은 전해 줄 수 있다는 Mambisa의 Cable를 받는 즉시 Tonichi(東日)에 알린다. 잘 될는지?
Oct/22 :
“단풍이 한창일텐데-”
“뭐요? 단풍이 뭔데? 그런것도 있오?” 참 우울한 얘기들이다.
Oct/23 :
절망, 바로 그것이다. 다음 항차가 Cuba/USSR이랜다. 아득하군. 이 일을 어쩐다? 이 겨울철에 말이다. Baltic Sea라도 가서 한 달가량 Waiting이라도 한다면? 비둘기를 잡아먹고 눈(雪)으로 물을 만들어 먹었다는 경험자들의 얘기들이 바로 내 자신의 것으로 닥아오는 모양이다. 우선은 어떤 방법으로든 먹을 것을 확보해야 한다. 일단 중간의 적당한 Port에 잠시 기항하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NYK와 Tonichi에 각각 Cable해 본다만 아무래도 Voy, Instruction을 받아 쥔 다음에라야 대책이 나올 것만 같다. 아이구 2월아! 언제 내 앞에 나타나려나? 너무 멀구나. 맥이 빠지고 입맛이 간다. 藤井(후지이)놈의 얼굴이 떠오른다. 쥑일놈 같으니라구. 연일 꿈꾸어 왔던 Tampa-Japan, 그리고 wife의 초청 희망이 사그리 녹아져 버린 셈이다. 詐欺다 분명히. 이 절망을 삭이고 다시 마음을 다잡을 때까진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신경을 쏟아야 할 것인가? 참으로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스스로가 너무 비참해진다. 취해서라도 잊어버리고 싶다. 과연 기적의 여신이, 행운의 신이 나를 버리고 말 것인가?
Oct/26(월) :
안항 중. 간간히 타선을 통해서 들리는 소식도 역시 염려들 뿐이다. 심한 물가고와 Inflation, 달러화의 가치절하 등. 이중삼중으로 피해를 보면서도 가만히 앉아서 쳐다보고만 있어야 할 따름이다. 과연 앞으로의 사회가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 大權에 8명이 도전했다는 것도 참말인지 모르겠군. 뭔가 한가지씩이나마 나아져가고 시정돼 가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텐데-. 어떻게 그런 가운데 저축이래도 좀 돼 가는지 모르겠다. 궁금하고 염려스러운 게 많다. 무엇보다 취업선에 대한 대우가 갈수록 악화돼 가는데 대한 내 스스로의 대책이 시급하다. 참 어중간한 시기에 문틈에 손가락끼이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럴 때 일수록 Wife와 좀 더 자주 연락을 하고 의견을 듣고 해야 하는데-. Disport가 Havana로 Fix 되었다고 한다. 예상보다 제반 여건들이 좀 나으려나? 기대가 크면 실망이 더욱 커진다. 아예 기대를 말자. 신고절차가 너무 까다로운 것 같던데?
Oct/28(수) :
새벽 4시 Bahama Channel 진입. 오전 중에 Florida의 TV방송을 보면서 항해를 한다. 11시 넘어 Destination을 Santiago De Cuba로 바꾸란 Cable이 있어 180도 정남으로 돌았다. 빌어먹을 놈의 것들 엊저녁에 서너시간만 일찍 타전해 주었으면 내일 저녁때는 들어갈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저녁에 다시 Rotation이 Havana까지 간다는 Cable이 전연 처음 듣는 Cable add.로 타전되어 왔다. 뭐가 어케 돌아가는 것인지? 두 Port라면 역시 10여일 이상은 걸려야 겠군. 아무래도 주부식과 다음 항차에 대한 NYK의 조치가 신경쓰인다. Voy, Instruction을 받아 쥐기까진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다. 불안. 그것뿐인 심정이다. 계속 허리가 시원찮다. 병원에 가 볼만한 곳도 없으니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아야 할텐데-. 참기름이 어제로 끝났다. 더 있었으면 -.
Oct/30(금) :
엊저녁 22:30 Santiago Road에 도착. 초행길에 해도(海圖)마져 없이 일찌감치 Eng. S/B하고 Test한 것이 천만 다행. 입구에서 갑자기 Starting Nozzle Tip이 파열, 하마터면 바로 바위산을 들이받을 큰일을 낼 뻔했다. 역시 ‘설마’는 절대 금물임을 증명하는 좋은 증거다. 자정 넘어 접안하다. 생각보다 항내가 넓고 Cold Store까지 갖춘 Reefer船 전용 Berth이다. Boarding Office들도 생각보단 인상이 좋다. 한 주일 전에 우리나라 아마야구팀이 여기 와서 세계아마야구대회에 3위를 하고 귀국했단다. 그때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게 남은 모양이다. 일단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날 것 같기도 하다만 막상 어떨는지? 03시 넘어 수속을 끝냈고 오후 1시부터 작업 시작. 그러나 비 때문에 곧 중지됐다. Africa산 육류를 Cuba내에서는 사용금지 하란다. 우린 뭘 먹냐? 식료품 사입에도 어려움이 있다. 다음 항차와 급유계획 등 아직도 확정되지 않은 게 많다. 일단은 Cash 청구를 Telex했다. 저녁때 Agent차로 그의 사무실에 들러 전화를 했다. 2시간 걸린다. 미국을 거치는 등 절차가 많았으나 여기서 한국에 전화가 통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또 내가 직접 교환과 통화, 전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도 많은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사무실의 우중충함과 골동품 같은 커다란 구식 타자기 등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Wife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한. 정모의 힘차고 즐거운 듯한 외침이 더없는 위로가 된다. 정영 아무 일 없어야 할텐데-. 아내와 얘들의 마음속에서도-.
빗속에 둘러본 시내와 Sanpedro De Mar의 Show 등은 지금까지 상상속의 Cuba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 Havana 이후 바로 Island De Pines(N.Gerona)로 보낼 모양이다. Max Draft가 18‘06“로서 적하 가능한 Quantity를 뽑으라니-. 그럼 Havana에서 바로 시작된다는 뜻인데 먹고 견뎌야 할 식품이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Oct/31(토) :
종일 비. 하루를 공쳤다. 10:00부터 약 1시간에 걸쳐 실시된 Customs의 Search. 20여명이 선내를 샅샅이 뒤졌다. 마약과 외환관계다. 생각보담 많이 신사적인 편이였지만 심지어 개까지 동원하여 입항하는 곳마다 실시하고 있다나. 이놈의 짓도 아직 몇 번을 더 겪어야 할는지. 아마도 인근 남미의 마약과 그로 인한 검은 돈에 대한 어떤 정보가 있었던가 보다.
Bond Store의 Seal Paper가 말라 떨어져 또 한 번 법석이 있었으니 차분한 설명에 선선히 인정해 주었다. 유고에서 벌어지는 아마 권투의 중계를 이곳에서 보다. 한 주일 전 이곳에서 있었던 야구와 함께 한국에 좋은 Image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내년 88년 올림픽이 있으니-. Agent 말처럼 3-4년 전만해도 한국 사람들은 상륙도 불허했다고 한다.
주부식 신청하다. 쌀, 배추, 양념 등은 全無하다. 알랑미에 빵까지 사라고 했다. 좌우지간 먹고 견뎌야 할 것 아닌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라나? Bunker는 재청구하되 여기서 할 예정이랬다.
Nov/01(일) 1987 :
여전히 종일 장대 같은 비가 내린다. 개보다 못하다는 생각이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없는 듯 사위가 죽어 있다.
NOv/02(월) :
작업 개시. NYK로부터 다음 항차에 대한 Instruction을 받다. 역시 요행이나 기적은 없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Kiel Canal를 통과하는 것이다. 거기까지 약 40일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문제다. 주부식을 약간의 육류와 쌀 등 극히 일부만 구입키로 한다. 달러 Cash는 이곳에서는 불가하다는 NYK의 견해지만 현지 Agent는 가능하다니 다시 Telex하고 정 안되면 Kiel에서 받도록 하자. Ship store와 Spare parts도 거기서 하도록 Owner에게 연락한다만 결과는 미지수다. 참 갈수록 어렵군.
Customs의 외환점검. 그리고 묘한 함정에 걸려들었음을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귀한 달러를 몇푼씩 앗긴다. 약은 고양이가 밤눈 어두운 꼴이다. 그 놈들이 외환관리를 위해서 자국민들이 쓰는 동전과 외국인들이 쓰는 동전의 모양을 달리 해 두었음을 몰랐던 탓이다.
Black Market에서의 환률이 10배 이상이니 우리로서도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미묘한 전쟁이다. 선내 위원회를 소집. 각자 스스로 준비하고 요령껏하여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무엇보다 犯法으로 문제발생소지는 절대 피하도록 했다.
다음 항차 한 겨울의 Baltic Sea! 과연 견딜 수 있을까? 가뜩이나 추위라면 쩔쩔매는 체질이 아닌가? 부근에 널부러진 호박잎을 따다가 쪄서 밥을 싸 먹다. 다소 질기긴 하지만 모처럼의 별미다. 구수한 된장이 있다면 더욱 고향생각을 나게 할 것도 같다.
Nov/04(수) :
야채 없는 식탁. 별 것 아니던 푸성귀가 이렇게 귀한 음식인 줄은 몰랐다. 뭔 놈의 나라가 이렇게도 철저하게 없단 말인가? 알랑미 밥에 질긴 가죽 같은 쇠고기, 야채가 빠진 반찬, 상상해보시라. 짜증이 겹친다. NYK에서 Kiel Canal 통과시 급유하겠다고 알려오다. Hamburg의 선식 ‘도성’에다 Telex. 우선 식품의 가격부터 문의하고 주문하겠다고 하다. 무엇보다 Havana에서는 야채가 있어야 할텐데-. 아무래도 한 나라의 수도이니까 조금은 달라도 다를 것이 아닌가. 하루 또 출항이 늦어진다. 허리가 더 심해진 듯. 빌어먹을 것. Kiel에서 귀국하는 게 낫지 않을까?
Nov/05(목) :
그렇게 없다고 생 지랄하던 녀석이 오이와 감자를 갖고 왔다. 밉기보다 반갑다. 다소 숨통이 트인다. 사실은 미워할 수도 없다. 선식도 개인이 아니고 대리점의 업무 중 하나로 담당자가 따로 있다. 시장이 물품도 자유롭게 유통되고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서 배급되어 나오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마침 오이와 감자가 배급된 것이란다. 자연이 배급되면 시장의 값도 엄청 싸지지만 없으면 똑 같은 물건이라도 금값이 된다. 도리없는 일이다. Havana에도 도착 즉시 가져오도록 수배를 부탁한다만 기대는 금물이다. 또 하루 늦어진다. 운반용 트럭이 없단다. 여러 가지가 말썽이다. 허리가 너무 아파온다. 두어시간 Typing한 것밖에 없는데-.
Nov/06(금) :
급유를 이 Port에서 하는니 마느니 몇번 Telex가 오가고, 양하한 화물의 Tally 때문에도 옥신각신 끝에 겨우 22:40시 출항. 자정에 외항으로 빠져 나오다. 교교한 달빛이 너무 밝다. 같은 사회주의 나라들에 비해 너무 까다롭고 번잡스런 출입항 수속들. 아직도 몇 번을 더 겪어야 할 것인가? 아득히 멀어져만 가는 고국과 내 가족의 모습들이여-.
Nov/08(일) :
정오경. Havana Road 도착. 그러나 외항에서 표류하면서 대기하다. 의외로 방파제 부근의 조류가 거세다. 제법 바람이 있으니 그런대로 견딜만 하다. 선명한 TV의 화면에 FM음악의 유일한 낙이고 위안이다. 어째서 여지껏 Pilot Station에 아무런 Instruction이 Mambisa로부터 없었을까? 역시 믿을 수 없는 곳이다.
사는 것 같지도 않은 생활의 연속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의 보람과 가치 그런 것을 고려할 개재가 아니다. 우선은 기본적인 목숨의 유지가 급한 상황이다. 아마도 이 달을 넘겨야 뭔가 제대로 돌아 올 것만 같다. 매사 의욕을 갖지 못하는 것도 그 근원적인 마음의 상태가 허물어져 버린 탓이리아. 내일쯤 입항하는 즉시 편지라도 찾을 수 있어야 할텐데-. 무엇보다 강열한 바램이다.
Nov/10(화) :
오후 4시 느닷없이 호출이 있었다. 오전에 그렇게 불러도 대답이 없더니-. 19:30 Port Fish No.2에 천신만고 끝에 접안했다. 아마도 배를 타고 난 후 이런 일은 처음으로 겪는 접안이다. 마치 경자동차 밀어 넣듯이 한다. 50m의 자리에 길이 50m짜리 배를 붙여 넣으려니 땀이 날 수밖에 -. 결국 Cuba배와 선수가 닿아 경미한 Damage를 남겼지만 정말 그만한 게 天佑神助다. 처음부터 이 녀석들을 믿은 것은 아니지만 Pilot란 사람이 그렇게 엉터리 정보를 갖고 도선을 하리라고는 생각질 못했다. 앞뒤가 꼭 닿은 접안이다. 1/E 말마따나 ‘붙여도 신통하게’ 붙였다
Nov/11(수) :
아침부터 시작된 손님(?)들! 쌍말로 개판이고 개새끼들이다. 실지로 개까지 동원한 Search가 내 방까지 와서 뒤지고 같다. 최소한 Capt. 방만은 어디가나 성역으로 대우해주는 기본 예의도 없다. Sanitary Inspector라면 한 놈이면 족하지 그 앞에다 거창하게 ‘International’이란 걸 붙이고 몇 놈이 몰려 다니는 것은 또 뭐람. 정오가 지나 겨우 한숨을 돌린다. 엽서를 찾다. 딱 한 장. 그러나 그렇게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없다. 그래 용기를 갖자 Wife의 노력에 비해 너무 나약한 내 자신이 아닌가. 이 정도를 못 참고 이겨내지 못한대서 될 말이 아니다. Hamburg의 ‘도성’과도 Contact 되었고 이곳 Shipchandler도 만나 최선의 협조를 약속 받았다. 시팔 ‘잇빨이 없으면 잇몸’이 있지 않은가. Diaship으로부터의 Telex가 의외로 들어왔다만 역시 고무적이다. Kiel에서 4명 만기자 교대하겠다니. 오전의 무리가 다소 불편한 허리에도 불구하고 밤의 하바나 거리를 두리번 해보았다. 좃도 재미없는 결과였지만 설친 보람은 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엔 무엇인가 있을 것은 다 있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한 달, 통통 굶어 찬물만 먹고도 버틸 수 있는 악과 오기가 필요하다. “二人同心이면 其利斷金하고, 同心之言이면 其臭如蘭이로다(擊辭上傳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