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서>
쓸쓸한 빈 방에 혼자 누어 잠도 이루지 못하고 음식도 먹지 못하니 자연 병이 되어 형용이 파리하고 말랐다.
하루는 사도 부처가 큰 잔치를 배설하고 한림을 청하여 놀다가 사도가 말하였다.
“양랑의 얼굴이 어찌 저토록 초췌한가?”
한림이 말하였다.
“정형과 술을 과히 먹어 술병인가 합니다.”
사도가 말하였다.
“종의 말을 들으니 어떤 계집과 함께 잔다 하니 그러한가?”
한림이 말하였다.
“화원이 깊으니 누가 들어오겠습니까?”
정생이 말하기를,
“형이 어찌 아녀자 같이 부끄러워하는가. 형이 두진인의 말을 깨닫지 못하기에, 축귀 부적을 형의 상투 밑에 넣고 그날 밤에 꽃밭 속에 앉아 보았는데, 어떤 계집이 울며 창 밖에 와 하직하고 가니 과연 두진인의 말이 그르지 아니하였소.”
라 하자, 한림이 속이지 못하고 말하였다.
“소자에게 과연 괴이한 일이 있습니다.”
하고, 일의 전후의 일을 아뢰자, 사도가 웃으며 말하였다.
“나도 젊었을 때 부적을 배워 귀신을 낮에 불러오게 하였는데, 이제 양랑을 위하여 그 미인을 불러 생각하는 마음을 위로하겠다.”
한림이 말하였다.
“장인어른께서 비록 도술이 용하시나 귀신을 어찌 낮에 부르시겠습니까? 소자를 희롱하시려는군요.”
사도가 파리채로 병풍을 치며 말하였다.
“장녀랑은 있느냐?”
하자, 한 미인이 웃음을 머금고 병풍 뒤에서 나오는데 한림이 눈을 들어 보니 과연 장녀랑이었다. 마음이 황홀하여 사도께 아뢰어 말하였다.
“저 미인이 귀신입니까, 사람입니까? 귀신이면 어찌 대낮에 나옵니까?”
사도가 말하였다.
“저 미인의 성은 가씨요, 이름은 춘운이다. 한림이 적조한 빈 방에 외로이 있음이 민망하여 춘운을 보내어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한림이 말하였다.
“위로함이 아니라 희롱하심입니다.”
정생이 말하였다.
“양형은 스스로 화를 입은 것이니 이전의 허물을 생각하시오.”
한림이 말하였다.
“나는 지은 죄 없으니 무슨 어물이오.”
정생이 말하였다.
“사나이가 계집이 되어 삼 척 거문고로 규중처녀를 희롱했으니 사람이 신선되며 귀신 됨도 이상치 아니합니다.”
한림이 고향에 돌아와 대부인을 모셔 와 혼례를 지내고자 했는데, 그때 토번(吐蕃)이란 도적이 변방을 쳐들어와 하북(河北)을 나누어 연(燕)나라, 위(魏)나라, 조(趙)나라가 되어 서로 장난하니 천자가 진노하여 조정 대신을 불러 의논하자, 양소유가 임금 앞에 나아가 아뢰어 말하였다.
“옛날 한무제(漢武帝)는 조서(詔書)를 내려서 남월(南越) 왕을 항복 받았으니, 원컨대 폐하는 급히 조서하여 천자의 위엄을 보이십시오.”
천자가,
“현명하다.”
하시고, 즉시 한림을 명하여 조서를 만들어 세 나라에 보내니, 조왕과 위왕은 즉시 항복하고 무명 천 필을 드렸지만, 오직 연왕은 땅이 멀고 군병이 강하기로 항복지 아니하였다. 천자가 한림을 불러 말하였다.
“선왕(先王)이 십만 군병으로도 항복 받지 못한 나라를 한림은 짧은 글로써 두 나라를 항복 받고 천자의 위엄을 만리 밖에 빛나게 하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겠는가?”
비단 이천 필과 말 오십 필을 상으로 내리시니, 한림이 삼가 사양하며 말하였다.
“모두 다 현명한 임금의 덕이오니 소신이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연왕이 항복지 아니함은 나라의 부끄러움이니, 청컨대 한 칼을 짚고 연국에 가 연왕을 달래어 듣지 아니하면 연왕의 머리를 베어 오겠습니다.”
천자가 장히 여겨 허락하시고 병부(兵符)를 주시니 한림이 임금의 은혜에 감사히 여겨 경건하게 절하고 나와 정사도께 하직하고 갈 때, 사도가 말하였다.
“슬프다. 양랑이 십륙 세 서생으로 만리 밖에 가니 노부(老夫)의 불행이다. 내 늙고 병들어 조정 의논에 참여치 못하나 상소하여 다투고자 한다.”
한림이 말하였다.
“장인께서는 과히 염려치 마십시오. 연나라는 솥에 든 고기요, 구멍에 든 개미라 무슨 염려하겠습니까?”
부인이 말하였다.
“좋은 사위를 얻은 후로 늙은이 기쁨과 노여움을 위로 받았는데 이제 어찌 될 지 알 수 없는 땅에 가시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는가? 바라건대 빨리 성공하고 돌아오시오.”
한림이 화원에 들어가 행장을 차려 떠나려 할 때, 춘운이 소매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상공이 한림원에 가셔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시는데 이제 만리 밖에 가시니 볼 지키다 울까 합니다.”
한림이 웃으며 말하였다.
“대장부는 나라 일을 당하여 사생을 돌아보지 아니하니 어찌 사사로운 감정을 생각하겠는가? 춘랑은 부질없이 슬퍼하여 꽃 같은 얼굴을 상하게 말고 소저를 편히 모셔 내가 공을 이뤄 허리에 말 같은 인(印)을 차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고 같다.
한림이 낙양 땅을 지날 때, 십륙 세 소년으로 옥절(玉節)을 가지고 병부(兵符)를 차고 비단옷을 입고 위의가 늠름하였다. 낙양 태수와 하남 부윤(河南府尹)이 다 앞길을 인도하여 맞으니 광채가 비할 데 없었다. 한림이 서동을 보내어 계섬월을 찾으니 섬월이 거짓으로 아프다 하고 산중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한림이 섭섭한 마음을 금치 못하여 객관(客館)에 들어가 촛불만 벗을 삼고 앉았다가, 날이 새거늘 글을 지어 벽 위에 쓰고 갔다.
연국(燕國)에 이르니 그 땅 사람이 한쪽 구석에 있어 천자의 위엄을 보지 못하였다가, 한림 행차를 보고는 두려워 음식을 많이 장만하여 군사를 먹이고 사례하였다. 한림이 연왕을 보고 천자의 위엄을 베푸니 연왕이 즉시 땅에 엎드려 항복하고 황금 일만 냥과 명마 백 필을 드리거늘 한림이 받지 아니하고 왔다. 한단(邯鄲) 땅에 이르러 한 나이 어린 서생이 혼자 한 마리 말을 타고 행차를 피하여 길가에 섰는데, 한림이 자세히 보니 얼굴은 반악(潘岳) 같고 풍채와 거동이 비범하거늘 한림이 객관에 머물러 소년을 청하여 말하였다.
“내 천하를 두루 다니며 보았지만 그대 같은 사람을 보지 못하였으니 성명을 뉘라 하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소생은 하북 사람입니다. 성은 적씨요, 이름은 생이라 합니다.”
한림이 말하였다.
“내 어진 선비를 얻지 못하여 세상일을 의논치 못하였는데 그대를 만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적생이 말하였다.
“나는 초야(草野)에 묻혀 있어 견문(見聞)이 없거니와 상공이 버리지 아니하시면 평생소원인가 합니다.”
한림이 적생을 데리고 산수풍경을 구경하고 낙양 객관(客館)에 다다랐다. 계섬월이 높은 누각 위에 올라 한림의 행차를 기다리다가 한림에게 나아가 절하고 앉으니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첩이 상공을 이별한 후에 깊은 산중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가 상공이 급제하여 한림 벼슬하신 기별만은 들었지만, 그때 옥절(玉節)을 가지고 이리 지나실 줄을 모르고 산중에 있었는데, 연나라를 항복 받아 꽃 장식한 덮개 가마를 앞에 세우고 돌아오실 때, 천지만물과 산천초목이 다 환영하오니 첩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알지 못하겠지만 부인은 정하셨습니까?”
한림이 말하였다.
“정사도 여자와 혼사를 정하였지만 예식은 치루지 못하였다.”
말을 그친 후에 날이 저물어 서동이 고하여 말하였다.
“한림께서 적생을 어진 선비라 하셨는데 지금 섬랑의 손을 잡고 희롱하고 있습니다.”
한림이 말하였다.
“적생은 본디 어진 사람이라 반드시 그러지 아니할 것이요, 섬월도 내게 정성이 지극하니 어찌 다른 뜻이 있겠느냐? 네가 잘못 보았다.”
서동이 열 적어 물러갔다가 한참 후에 다시 와 고하였다.
“상공께서 제 말을 요망타 하셔 다시 아뢰지 못하겠으니, 원컨대 상공께서 잠깐 가서 보십시오.”
한림이 난간에 숨어 거동을 보니 과연 적생이 섬월의 손을 잡고 희롱하거늘, 한림이 하는 말을 듣고자 하여 나아가니 적생이 갑자기 한림을 보고 놀라 도망하고, 섬월도 부끄러워 말을 못하자 한림이 말하였다.
“섬랑아, 네가 적생과 친한 사이였느냐?”
섬월이 말하였다.
“첩이 과연 적생의 누이와 결의형제하여 그 정이 동기 같더니 적생을 만남에 반가워 안부를 물었는데 상공께서 보시고 의심하시니 첩의 죄가 백번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한림이 말하였다.
“내 어찌 섬랑을 의심하겠는가? 어진 사람을 잃었으니 잘못되었다.”
하고, 이어서 섬월과 함께 잤는데 닭이 울어 날이 샜다. 섬월이 먼저 일어나 촛불을 돋우고 단장하는데 한림이 눈을 들어보니 밝은 눈과 고운 태도가 섬월이었으나 자세히 보면 또 아니었다. 한림이 놀라 물어 말하였다.
“미인은 어떤 사람인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첩은 본디 하북 사람입니다. 제 성명은 적경홍으로 섬랑과 함께 결의형제한 사이였는데, 오늘 밤 섬랑이 마침 병이 있노라 하고 저에게 상공을 모시라 하거늘 첩이 마지못하여 모셨습니다.”
말을 맺지 못하여 섬월이 문을 열고 말하였다.
“상공께서 오늘밤 새 사람을 얻었으니 축하드립니다. 첩이 일찍이 하북의 적경홍을 상공께 천거하였는데 과연 어떠십니까?”
한림이 말하였다.
“듣던 말보다 훨씬 낫군, 어제 적생의 누이가 있다 하더니 그러하냐? 얼굴이 아주 같구나.”
경홍이 말하였다.
“첩은 본디 동생이 없습니다. 첩이 과연 적생입니다.”
한림이 오히려 의심하여 말하였다.
“홍랑은 어찌 남자의 복장을 하고 나를 속이느냐?”
경홍이 말하였다.
“첩은 본디 연왕의 궁중 사람입니다. 재주와 얼굴이 남보다 못하나 평생에 대인군자를 섬기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저번에 연왕이 상공을 맞아 잔치 할 때, 첩이 벽 틈으로 상공의 기상을 잠깐 본 후에 정신이 호탕하여 호화로운 생활이 다 하찮게 보여 상공을 따라 좇고자 하였지만, 구중궁궐(九重宮闕)을 어찌 나오며 천리만리를 어찌 따르겠습니까? 죽기를 무릅써 연왕의 천리마를 도적해 타고 남자의 복장을 하여 상공을 따라 왔으니, 부디 상공을 속인 일은 아니지만 엎드려 사죄합니다.”
한림이 섬월을 시켜 위로하였다. 이날 한림이 떠나려 할 때, 섬월과 경홍이 말하였다.
“상공이 부인을 얻으신 후에 첩 등이 모실 날이 있으니 상공은 평안히 행차하십시오.”
이때 연왕의 항복 받은 문서와 조공 받은 보화를 다 경성으로 들여가자,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말하였다.
“양한림이 승전(勝戰)하여 온다.”
하고, 모든 관리들을 보내어 맞아 들여와 상을 내리고 예부상서(禮部尙書)를 내렸다. 한림이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고 물러나와 정사도 집에 가 뵈니, 사도가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말하엿다.
“만리타국에 가 성공하고 벼슬을 돋우시니 우리 집의 복이로다.”
한림이 화원에 나와 춘운에게 소저의 안부를 묻고 귀한 정을 이루 다 헤아리지 못하엿다.
하루는 한림원에서 난간에 지어 붙인 글귀를 읊으며 달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바람결에 퉁소 소리가 들리거늘 하인을 불러 말하였다.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느냐?”
하인이 말하였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달이 밝고 바람이 순하면 때때로 들립니다.”
한림이 손 안에 백옥 퉁소를 내어 한 곡조를 부니 맑은 소리가 청천에 사무쳐 오색구름이 사면에 일어나며 청학과 백학이 공중에서 내려와 뜰에서 춤을 추였다. 보는 사람이 기이하게 여겨 말하였다.
“옛날 왕자 진(晉)이라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때 황태후에게 두 아들과 한 딸이 있는데, 맏아들은 천자요, 또 하나는 월왕을 봉하고, 또 딸은 난양공주다. 공주가 날 때 한 선녀가 명주를 가져와 팔에 걷자, 한참 후에 공주를 낳으니 옥 같은 얼굴과 난초 같은 태도는 인간 사람이 아니요, 민첩한 재주와 늠름한 풍채는 천상의 신선이었다. 태후가 가장 사랑 하셨는데, 서역국(西域國)에서 백옥 퉁소를 진상하였거늘 악공을 불러 불라고 하였지만 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공주가 밤에 한 꿈을 꾸니 한 선녀가 한 곡조를 가르치기에, 공주가 꿈을 깨어 그 퉁소를 불어보니 소리가 청아하여 세상에 듣지 못하던 곡조였다. 황제와 태후가 사랑하여 항상 달 밝은 밤이면 불게 하니, 그때마다 청학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 태후와 황제가 매일 말하였다.
“난양이 자라면 신선 같은 사람을 얻어 부마(駙馬)를 삼을 것이다.”
하더니, 이날 밤 공주의 퉁소 소리에 춤추던 학이 한림원에 가 춤을 추었다. 그 후에 궁인이 이 말을 전파하니 황제가 듣고 기특히 여겨 말하였다.
“양소유는 진실로 난양의 배필이다.”
하시고, 태후께 들어가 아뢰어 말하였다.
“예부상서 양소유의 나이가 난양과 서로 비슷하고 재주와 얼굴이 모든 신하 중에 으뜸이니 부마를 정할까 합니다.”
태후가 크게 기뻐하여 말하였다.
“소화(簫和)의 혼사를 정하지 못하여 밤낮으로 염려하였는데 양소유는 진실로 하늘이 정해준 소화의 배필이니, 내가 양상서를 보고 청하고자 하오.”
황제가 말하였다.
“어렵지 아니하니 양상서를 불러 별전(別殿)에 앉히고 문장을 의논할 때, 태후께서는 주렴 속에서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태후가 크게 기뻐하였다.
난양의 이름은 소화인데 그 퉁소에 그렇게 새겨져 있어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임술(壬戌)년 가을 완산(完山) 개판(開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