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산악회원 혹한의 대관령,울산바위 등정기
2005.12.17~18
금년 겨울추위는 도대체 3한4온은 실종되고 강추위만 끝없이 이어진다.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 온난 화 영향으로 우리나라도 이제 아열대기후로 점차 바뀔 것이라는 학설이 난무 하더니 그런 말들은 쑥들어가 버렸다. 지난 16일은 서울도 영하 13도를 기록하고, 대관령은 영하 20도를 넘어섰다. 이런 깡추위에도 불구하고 LG 산악회의 일원으로 예정대로 대관령 선자령과 설악산 울산바위를 목표로 12월17일 아침 서울을 출발하였다(1박2일 코스).
미리 참가신청은 해 두었지만 막상 겁이 났다. 강원도 대관령의 최저기온은 영하 18도~20도를 예보하고 그뿐인가 강한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영하 30~40도까지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니- 몇해전 신년 사삼클럽 태백산 산행시 깜깜한 새벽에 후래시를 들고 눈바람을 맞으며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경험한 바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그때 귀에 동상이 걸려 오랫동안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 그때 걸린 동상이 혹 재발 할까봐 얼굴과 귀에 대한 단도리를 많이 하였다.
17일 아침 일찍 조반을 먹고 양재역 부근 모임장소에 갔더니 모두 11명이 모였다. 따로 승용차로 3명이 더 온다고 한다. 약속시간인 8시가 조금 넘어서 봉고 등 차 두대로 나뉘어 양재역을 출발하였다. 강원도 지방은 언제나 눈이 쌓여 있는 지역이라 아이젠은 물론 스패치까지 준비를 했지만 서해안은 13일째 눈이 계속 내린다는데 동해안쪽은 도무지 눈 소식이 없는지라 과연 눈등산을 할 수 있을까-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산 등성이에는 하얗게 눈이 안녹고 있는걸 보면서 그래도 기대를 할 수 있었다. 뽀드덕 뽀드덕 눈위를 아이젠을 신고 걷는 눈등산을 생각하니 신이 났다. 이왕이면 나무가지에도 눈꽃이 만발한 경관이라면 금상첨화이련만-
이천휴게소에서 아침식사겸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나는 이 특별한 혹한 등반을 앞두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다. 도대체 토끼잠으로 겨우 몇시간 눈을 부쳤지만 잠부족으로 머리가 아프다. 거기다가 아침 화장실 용무도 못본지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대관령에 도착하니 모진 칼바람이 정신을 못차리게 불어댄다. 겹겹이 입은 옷은 둔하고 얼굴 전체를 가렸으니 누가 누군지 통 구별할 수가 없어 서로 마주 보면서 웃기만 한다. 옛날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 자리다. 지금은 강릉까지 고속도로가 터널을 뚫어 바로 직행하므로 꼬불꼬불한 옛 고속도로는 추억의 명물로 변해버렸다. 바람으로 유명한 이곳 대관령휴게소 자리에는 주차장과 풍력발전기가 서 있고 고속도로 기념비만 강한 바람을 맞으며 무심히 서 있었다.
제왕산에 오르니 마치 왕이 된 기분- 그런데 대관령 선자령을 목표로 갔는데 등산로 입구에서 출입을 막고 있었다. 산불예방이라는 이유로 일절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강한 바람 때문에 그럴만도 했다.. 사정을 해 봤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다시 반대편 제왕산으로 목표를 바꿨다. 다행히 그곳은 출입이 허락되었다. 작년 1월초 삼도산악회를 따라 이곳 제왕산 옆자락인 능경봉을 지나 고루포기산 정산에 오른 기억이 새롭다. '고루포기산 정상의 칼바람'이라는 제목의 등산기를 내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게재한 바 있다. 고루포기산은 1,280m의 고산이다. 제왕산은 고루포기로 가는 능경봉 방향으로 가지 않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오르는 나즈막한 산이다. 해발 840m의 산이나 능선이 길어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에 아주 좋은 산이다. 특히 기암과 기송 그리고 고사목 등이 운치를 한결 돋군다.
눈산을 기대하고 갔으나 눈이라고는 구경도 못하고 먼지만 펄펄 난다. 전라도 지방은 13일째 눈이 와서 피해가 많다고 하는데 눈 많이 오기로 유명한 강원도는 건조주의보까지 내려 있으니--스패치를 한 것이 풀기가 귀찮아 그냥 차고 갔다. 스패치가 눈을 막아주는 대신 등산바지에 먼지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생각보다는 추위는 견딜만 했다. 도리어 대관령 주차장은 가만히 서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세서 강추위를 실감했는데 정작 제왕산에 오르니 추위도 바람도 훨씬 견디기가 나아졌다. 以熱治熱이 아닌 以寒治寒인가 ? 남들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산에 오르면 생각보다는 추위가 덜한 법이다. 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몇개 넘어면서 제왕산 정상을 향해 쉬지않고 올랐다. 능선에 오르니 멀리 강능과 동해바다가 아스라이 보였다. 파란하늘과 구름 그리고 겹겹이 쌓인 산들이 조화를 이루며 한폭의 산수화 그림을 그려 놓은듯 아름다웠다. 이 제왕산에는 기형으로 생긴 소나무가 많았다. 그리고 고사목이 하늘을 찌를듯 솟아 있어 운치를 더해 주었다. 누군가 돌을 정교하게 쌓아 올려 놓은 돌탑이 많았다. 강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였다.
드디어 제왕산 정상에 올랐다. 840m 정상 표지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단체사진도 -. 모두들 이토록 추운 날씨에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는 기분은 다른 어떤 높은 산에 오른 감회보다 더 좋은 것 같았다. 더구나 제왕산이라- 마치 왕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너무 추우면 카메라 밧데리가 얼기 때문에 사진찍기가 불가능해 진다. 겨울등산의 또하나의 고충이다. 나는 경험이 많이 있기 때문에 카메라 보온에 최선을 다했다. 또 여분의 밧데리도 따뜻하게 별도로 보관을 하면서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이곳 제왕산은 처음 등산을 하는 산인데 이토록 풍광이 좋은 산은 드물다는 생각을 했다. 고사목,기형의 소나무군락,인위적으로 쌓아올린 바위와 돌탑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산으로 각인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산행이 대부분 능선을 타는 것이라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도 기억에 남는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진달래 나무가 지천이다. 봄철의 진달래꽃 등산도 좋은 곳이라 여겨진다. 내려오다 가져간 도시락을 먹었다. 바람이 덜한 곳을 찾으니 자연 장소가 협소하고 불편하여 같이 모여 식사를 못하고 각자 흩어져서 간단히 식사를 해야 했다.
하산하는 길은 올랐던 길을 되돌아 왔다. 아침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 같았지만 대관령에 도착하니 여전히 강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속은 오히려 추위가 덜했다. 바람도 대관령이 훨씬 세게 부는 것 같았다. 오늘 등산은 이로써 무사히 마친 셈이다. 이제 주문진으로 가서 식사겸 횟집에서 소주 한잔 하면서 오늘의 피로를 푸는 즐거운 시간만이 남았다.
일행은 바로 주문진으로 향했다. 주문진 어항도 보통 때는 관광객들로 손님이 많은 곳이지만 워낙 날씨가 추워서인지 별로 손님이 없었다. 횟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부두에서 우리는 '단양팔경'이라는 집으로 들어갔다. 복어,우럭,광어 등 몇가지 생선을 섞어서 회를 만들고 식사는 매운탕을 준비시켰다. 저녁 식사시간으로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강추위에 등산을 마친지라 술도 회안주도 맛있게 먹었다.
숙소는 속초 설악산 입구에 있는 '금호설악리조트'이다. 57평의 큰 콘도로 2층구조였다. 아래층은 남자 10명이, 윗층은 여자 4명이 차지했다. 가져간 양주와 소주파티를 열었다. 내일 강추위의 산행이 있지만 멀리 속초까지 와서 좀처럼 잠이 올것 같지 않았다. 황우석교수 줄기세포 토론은 역시 모두에게 큰 관심거리였다. 모두 같은 의견일 수가 없었다. 밤10시가 되자 내일을 염려해서인지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아침 7시에는 출발한다고 한다. 뉴스에는 대관령 기온이 금년 최저로 영하20도라고 겁을 주고 있었다. 설악산은 대관령보다는 덜 춥겠지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바람이 문제이다. 강풍에 과연 울산바위까지 오를수 있을 것인가? 설악산 일출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나이 탓인지 5시도 되기전에 모두들 일어났다. 노인네들 잠이 없다고들 하지만- 예정시간도 되기전에 아침식사를 위해 시청 맞은편 부두쪽으로 차를 몰았다. 곰치국 전문집이 있단다. 요즘과 같은 추운 계절에 해장용으로 가장 적절한 메뉴인 것 같았다. 나는 아야진항에서 먹어본 경험이 있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처음 먹어보는 메뉴란다. 서울서는 구경하기 힘든 고기다. 곰치는 뼈가 없는 것처럼 물렁물렁하게 못생긴 고기이지만 TV에 방영되고 나서부터 인기메뉴가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물곰이라는 생선인데 강능쪽 사람들이 김치와 같이 먹는다 해서 곰치라 불러 이제 곰치로 통용된다고 주인 할머니가 설명해 주었다.
아침을 먹고나니 날이 밝아지면서 붉게 물든 동쪽 바닷가에서 해가 떠 오르기 시작했다. 모두들 카메라를 들이대고 모처럼 바닷가에서 일출구경에 신이 나 있었다. 붉은 하늘을 뚫고 힘차게 솟아 오르는 태양의 신비로움에 모두들 넋을 잃고 감상을 한다.
역시 설악산은 최고의 명산 매년 몇번씩 설악산을 찾지만 과연 설악산은 언제 찾아와도 좋은 명산이었다. 추위와 강풍 탓으로 손님이 적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카메라를 이리 저리 어느 곳을 돌려도 그림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감탄을 짓게 한다. 신흥사 앞 통일대불을 지나 신흥사 뒷쪽으로 갔다. 절 뒷담길이 너무 예쁘다. 신흥사 대웅전 옆 종루는 앞마당 푸른 대나무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 작품처럼 보였다.
강풍에 몸은 흔들거리고/울산바위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바람이 세다. 산에 오를수록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흔들바위와 울산바위를 향해 계단을 오를수록 바람은 점점 강도가 높아진다. 신흥사에서 울산바위 까지 3.2km이니 왕복 6.4km 정도 된다. 거리상으로는 얼마되지 않는 거리지만 날씨도 추운데다 워낙 강풍이 불어서 과연 오를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나도 이쪽 울산바위는 오랫만에 왔다. 꼭 끝까지 가리라 다짐을 해 본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강추위에도 배낭을 멘 등어리에는 땀이 날 지경이다. 얼굴과 귀,코,입을 몇겹으로 싼 탓인지 코와 입마게가 내뿜는 김으로 뿌연 안경이 앞을 가린다. 비누로 안경의 김서림을 막도록 조치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소용이 없었다. 아예 안경을 벗어 버렸다. 흔들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울산바위 까지 오르는 동안 바위의 웅장함과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느라 자주 위를 쳐다보게 된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8부 정도 오르니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바람이 셌다. 흔들거리는 몸을 가눌수가 없어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계속 기어 오를 수도 없다. 한두걸음 기어 가서는 쉬고- 이토록 세게 부는 바람은 처음이다. 도저히 더 오를수가 없었다. 대략 20m정도 남은 것 같은데- 유성삼 전회장이 결단을 내렸다. 혹여 사고라도 나면 대형사고가 틀림없으니 욕심을 버려야 했다. 좀처럼 포기를 할 줄 모르는 유회장이지만 이 시간의 등반중단 결정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자기는 오를수 있다는 오만함은 금물이다. 모두들 엉금엉금 기면서 하산을 했다. 내려가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긴장을 하니 추위는 멀리 달아난 것 같다. 바람의 위력이 이렇게 강할줄이야-
설악산 입구에도 늘 등산객을 유혹하는 식당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추운날에도 바깥에서 판촉아줌마가 꼭 들려달라는 '다래정3호집'을 찾았다. 막걸리 두잔을 연거푸 마시고 활활 열기를 솓아내는 난로 옆에서 얼었던 몸을 녹였다. 하산하는 길은 등산길과 꼭 같은 길이다. 걸어오면서 미처 못 찍었던 신흥사 주변의 극락교,세심교,돌담길 사진을 찍었다. 하산을 완료하니 11시 45분경. 10분후 척산온천에 도착했다. 이틀간의 강추위와 강풍속의 등정을 모두 마쳤다. 따뜻한 온천물로 피로를 씻어야지- 척산온천에서 겹겹의 등산복을 모두 훌훌 벗고 뜨거운 온천탕에 들어가니 온몸의 피로가 삽시간 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온천을 마치고 예정대로 미시령 가는 길에 있는 '김영애할머니손두부집'으로 갔다. 속초나 설악산에 오면 자주 오던 집이다. 이곳의 메뉴는 순두부 단 한가지뿐이다. 그러나 단연 인기다. 강추위에도 이곳에는 손님이 많았다. 식사를 하면서 소주 한잔을 하고 있으니 여자분들이 늦게 온천욕을 마치고 왔다. 일행중 주문진항에서 문어를 사겠다해서 다시 주문진항에 들렀다. 추운 날씨에도 시장은 흥청거렸다. 카메라를 든 사람에게는 사람 사는 풍경이 가장 좋은 대상이 될 수 있다.
일요일 오후 귀경길은 어디든 막히겠지만 서울과 경기지방은 눈이 왔다는데 아마도 영동고속도로는 스키인파로 혼잡할 것 같아 한계령코스를 택했다. 좀 둘러서 거리는 멀지만 역시 선택을 잘 한 셈이었다. 그다지 밀리는 곳 없이 잘 왔다. 양평에 와서 '양평장터해장국'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보통 양평 하면 '양평신내해장국'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나는 솔직히 이집 해장국이 내 입맛에 맞았다.
영하 20도를 예보한 날 대관령과 설악산을 오르는 것이 어리석은 것인가 현명한 선택인가는 직접 와 보지 않고는 감히 말할 수가 없다. 늘 경험을 하는 것이지만 고생스런 여행과 등산일수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법이다. 1박2일의 강추위에 도전한 노익장의 송년 특별산행이랄까? 영원히 추억에 남는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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