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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지난 9월 7일에 올린 신성, 인성관련 포스팅도 참고해 주세요
아래 4개의 영상과, 녹취록을 올렸습니다(전체 설교 유투브 링크도).
정말 한 번씩 들어 주시고... 개혁파 신학에 비추어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제가 간단히 정리 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니케아 신조에서도 말을 했듯이.....
* 신성과 인성은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면 안되는거에요.
* 신성이 예수님을 도왔다 그러면은 그 도움 부분은 예수님의 인성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가가 안되는 거에요.
* 예수님의 사역은 실제로 인간으로만 해야 돼요. 인간으로만. 인간으로
* 예수님께서 신으로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유한한 인간의 육체로 견딜 수 없어서.. 그래서 신이 필요합니다.
* 두번째는 주님이 성취하신 그 율법, 이 모든 것을 선택된 자들에게 골고루 제공되게 하기 위해서, 나눠줄 때 무한한 공로로 변해야 하기 때문에...
*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사역하시다가 어느 영역을 신에게 가호를 받고 신으로 도움을 받으면 그 부분은 우리를 위로할 수 없습니다.
* 예수님의 인격은.. "너 나 인격을 무시했어?" 그런 인격이 아니라 우리를 구속하시는 과정, 구속하시려는 그분의 인격.
* 법적으로 부부이고 한 몸이지만 실질적으로 따로 따로 기쁨도 즐거움도 있고 따로 고민도 있듯이.. 두 본성은 구분은 되나 나눠지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0 / 제 21문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갈 4:4-5)/ 정대운목사/삼송제일교회/청교도
https://www.youtube.com/live/8smyhKQcWeg?si=cZFGqYmf05MycMd5
1. 니케아 신조에서도 말을 했듯이 하나... 신성과 인성이 이렇게 혼합되어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신성과 인성은 연합되어 있지만 분명히 구분되어 있어야 되는 것이고.
신성과 인성은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왜 그러냐?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그 목적만 곰곰이 생각해 봐요.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육체를 입고 오셨느냐? 그 목적을 생각해보면은 그분이 어떻게 사역을 해야 되는지가 나오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우리의 육체를 입고 온 이유는 우리랑 같은 컨디션에서 우리가 성취해야 될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예수님이 독자적으로 성취해야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의 것을 성취하시는 동안에 신성이 예수님을 도왔다 그러면은 그 도움 부분은 예수의 인성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가가 안 되는 거예요.
이해가 되셨죠?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처지에 오셨고 거룩하시고 순절한 삶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전히 이루심으로 완전한 의로움을 취하셨으므로 그 의로움을 우리에게 전가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그 의로움을 완전히 취하심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전가시켰다.
그리고 고난과 고통과 결국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것까지 모두 담당하심으로 심판받을 것까지 담당하심으로 우리가 치뤄야 될 모든 것을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우리 주님께서 손수, 그 몸을 가지고 다 이루셨다. 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부분에서 신성에 개입을 하여서 신성이 예수그리스도를 도왔다 그러면 그때는 그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2. 이걸 못 기억해. 이걸 못 기억하니까~ 자꾸 이 기독론에 대해서 이게 헷갈려 하는 거거든요.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율법 하에 갇혀 있고 죄로부터 멸망당할 그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서 오셨죠? 그렇잖아요.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그러면 우리 예수님의 사역은 실제로 인간으로만 해야 돼요. 인간으로만. 인간으로, 인간으로, 인간 예수로 일을 다 해야만 그 구속의 원리가 맞는 거예요.
그러면 왜 신으로 오시냐 이 말이에요. 왜 신이 왜 100%이신 하나님이셔야 되느냐?
이 부분에서 자꾸 기적 얘기하지 말고 자꾸만 이런 거 얘기하면 안 돼요.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신으로 오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하나님의 무한하신 진노 하나님은 지금 예수님에게 진노를 쏟아부어야 되는데 그 진노를 쏟아붓는 자가 무한하신 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무한하신 자가 우리 예수님에게 진노를 무한하신 진노를 쏟아부을 거니까 유한한 인간의 육체로는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 신이 필요합니다. 그때. 이해가 있죠? 사망의 고통, 사망의 고통을 인간의 육신으로는 이길 수가 없어요. 사망의 고통을 이길 수가 없고 지옥의 권세를 이길 수가 없는 거예요. 뭘로? 육신으로는. 그런데 이것을 능히 이길 수 있도록 신성이 필요하다고요. 신이...
두 번째, 이 땅에서 우리 주님이 겪었던 고난, 이 땅에서 우리 주님이 성취했던 그 율법, 이 모든 것들이 모든 선택된 자에게 골고루 제공될라 그러면 인성을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리 인성이 뛰어나다 그래도 내가 어떤 사람 일대일로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그 일을 희생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 일대일로 그 일을 희생할 수 있지만 그 일이 무한한 사람에게 뻗어나가는 것은 신성일 때만 뻗어나갈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 땅에서의 공로는 인성으로 이루시는 것이고. 그 공로를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된 사람에게 나눠줄 때 무한한 공로로 변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이로 오셔야만 되는 거예요. 아시겠죠?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이 목사님 이 부분은 신성 아닐까요? 물 위를 걷는 건 신성 아닐까요? 어디 병자를 살리는 것은 신성 아닐까요? 중풍병자를 살리는 건 신성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좀 하지 마시고 신성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돼요.
하나님 무한한 진노를 받아내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뭐냐 그러면 그 예수께서 이루신 그 공로를 선택된 모든 자에게 나눠줄 수 있는 무한한 공로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신성이 필요하다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리스도는 사람이 된다. 이건 다 얘기했잖아요. 제가 왜 그리스는 사람이 돼야 되냐. 왜 똑같은 본질에 똑같은 고통을 경험해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죽으셔야 되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똑같은 본질에 똑같은 고통을 겪으셔야 되고 죽으셔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 크게는 첫 번째 그거고,
두 번째는 뭐냐면,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채율하시기 위해서 인성이 필요하다고요. 인간의 연약함을 채율하시기 위해서 인성이 필요하다. 그 인성을 채율하시고 어때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변호하시고 있더라 이 말이에요. 변호하시고 있더라.
3.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사역을 하시다가 어느 영역을 신에게 가호를 받고 신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그 부분은 우리를 위로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한번 저 같은 처지를 당해 보셨을까요? 예수님 그때 어떤 마음인지 아시기나 합니까? 라고 얼마든지 그럴 영역이 있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인생의 어떤 사람보다 더 치밀하게, 더 처절하게, 더 힘들게 모든 고난을 몸으로 손수 다 경험하신 거예요. 몸으로.
그리고 그 권한 모두를 신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대로 모든 만민에게 그 공로를 뿌려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필요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겠죠? 왜 인성이 필요한지, 왜 신성이 필요한지 아시게 될 겁니다.
이 인성과 신성은 하나의 인격, 그 인격이 뭡니까? 아 너 나 인격 무시했어? 그런 인격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인격이 뭐예요? 우리를 구속하시는 그 과정, 그 구속하시려고 하는 그분의 인격, 기업무를 자라는 그분의 인격, 그 인격, 그 구속물을 그 일을 준행하실 때 이 신성과 인성이 함께 연합해서 하고 계시더라 이 말인 것이에요.
4. 이제 여기까지만 할게요. 그 다음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안에서 인성과 신성이 어떻게 교류하고 있느냐~ 고 부분은 조금만 하는데 5분만 더 할까요? 그냥 5분만 더 해버릴게요. 그냥 끝낼라고 했는데 우리 성도들의 마음, 이왕 끝낼 거 거기까지 끝내주시지.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은 연합적인 상태로 있어요. 이 두 본성은 절대로 분리될 수가 없는 거예요. 절대로 분리되거나.. 제일 착각하는 게 뭐냐면 분리됐다고 생각 안 해요. 사람들이 섞여버린 거예요. 섞여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몸에 몸 안에 인격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 인격 안에 인성과 신성이 같이 있으니까~ 이게 어떻게 해서든 섞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고난 받을 때도 신성이 도움을 주고 막~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경우 거든요.
여러분 우리 청교도들은요. 청교도는 분명히 말합니다.
로마 카톨릭이나 루터교 같은 경우는 신의 속성, 인성과 신의 속성의 교류가 있다고 봐요. 그런데 개혁교회는 안 봅니다. 철저히 교류하지 않는다. 철저히 교류하지 않는다. 두 본성은 연합 때문에 서로 섞이거나 영향받지 않고 서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돼요.
서로 연합된 것이 분리되지 않아요. 그러나 구분되어 있어요. 구분.
여러분들 부부가 법조로 연합돼 있잖아요. 그렇죠? 법조로 연합돼 있어요. 부부가. 한 몸이란 말입니다. 이 부분은.. 그러나 구분되어 있잖아요. 그러나 구분되어 있잖아요.
구분 안 되어 있나요? 얼마나 남편이랑 같이 잠자기 싫어요. 그렇잖아요. 떨어져 살라고, 그러고 어떻게? 오늘 저녁에 늦게 온다면 좋아라 하고 그러잖아요. 구분되어 있어요.
아내도 자기 나름대로의 인격과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남편도 그러는 것이고... 그렇잖아요. 그렇죠?
부부는 연합돼 있지만 구분되어 있듯이..
우리 예수님의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은 연합돼 있지만 두 분은 철저히 구분되어 있고, 각각의 고유한 속성을 가지고 있고, 신성이 신성이 유한해지는 것도 아니고 인성이 신격화되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 주님.
우리 주님은 그래서 인격이 인성이 신격화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전능하시거나 편재하시거나 전지한 상태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고요. 우리 주님의 인격은.. 우리 주님의 인성은~ 하지만 두 본성은 구분은 되나 나눠지진 않는다.
그래서 제일 쉬운 방법이 쉬운 생각이 부부의 연이에요. 부부의 연.
법적으로는 부부고 한 몸이지만, 실질적으로 따로 따로의 기쁨도 즐거움도 있고 따로의 고민도 있고.. 이런 것이 있듯이.....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 인격은, 그리고 한 인격이에요. 한 인격 당연하죠. 뭡니까? 구속자 기업물을 자라는 인격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주님이 흘리신 그 피 보혈의 피가 무한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아시겠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은 부활하셔서 육이 그대로 올라가셨잖아요. 그렇죠? 그 육체로 지금도 천국에 계셔요. 지금도 신성 100%, 육신 100%의 우리 주님께서 지금도 천국에 계시고 영원히 분리되지 않아요. 영원히 분리되지 않아요.
우리가 천국 갈 때도 우리 예수님 육체를 보는 거예요. 왜? 그분은 영원히 분리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의 신성은 여전히 그와 분리되어 있지 않는다. 이게 지금 저희가 여러분이 말했던 예수님의 인격. 아시겠죠?
인격이 뭡니까? 그분의 구속자, 구속주 또는 그분의 기업무를자, 또는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이게 인격이라 그러면...
그렇잖아요? 이 인격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어떤 일이 발생했느냐~ 하나님과 인간편 두 편이 충분히 만족할 중보자로서 오신 것이고. 중보자로 오실 때 한 편이 인성이고 한 편이 신성으로 오신 거예요. 그래서 이 양편에서 일을 우리 인성이신 예수께서 다 이루시고 신성이신 성자의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런 구조로 예수님이 되어 있다.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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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는 두 본성 간에 일어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인격안에서 일어난다 - 투레티누스 : 464p 개혁파 조직신학 기독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