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가끔씩 '온살도리'라는 몸짓을 한다. 그 몸짓을 하다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온살도리 아리랑춤을 만들었던 선인문 강신무 문주가 그 사람이다.
몇해전 자신의 운명이 다가옴을 알기라도 한 듯 오랫동안 준비해온 자신의 저서를 마무리하기 위해 강행군을 했고, 96년에 위암진단을 받았던 그런 흔적때문인지 아니면 천명이 그런것인지는 몰라도 아쉽게도 우리곁을 떠나갔다.
보부상의 대를 이어온 우리네 지킴이로서 그리고 전통문화를 깊이 연구한 사람으로서 또한 전통무예인으로서 우리의 기억에 남는다. 무엇이든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값진 정보는 서로 나누어 서로의 삶을 윤택하게 해야한다는 그의 말을 나는 깊숙이 새기고 있다.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전통된장부터 해서 최고의 품질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소개를 하면서 전통문화의 진수를 찾아 널리 보급하는 자세 또한 새기고 있다.
최상이라고 판단되면 누가 뭐라든 소개 및 보급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는 지금껏 무예인으로서 그토록 아름다운 사람을 본적이 없다. 앞으로도 보지 못할것만 같다.
부산의 한 작은 술집은 항상 그가 있어 웃음과 진지함이 넘쳐나고 있었다. 전통을 지키는 무속인의 몸짓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우리네 아리랑춤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몸짓으로 표현해낸 이름하여 '온살도리 아리랑춤'은 누구라도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번 서점에 가면 양손바닥위에는 턱까지 쌓이는 책을 사들고 나오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네 전통문화속에는 미래의 우리나라를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깊음이 있다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루 한두시간정도 눈을 붙이고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운전을 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엄청 많은 양의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다.
온살도리와 강신무에 대해서는 지난 96년도 단학선원의 '월간 단' 11월~12월호에 설명되어 있다. 그 잡지에는 강문주의 이야기를 편집없이 싣었다고 볼 수있다.
"온살도리"는 땅의 지기를 발바닥을 통해 몸으로 끌어올린다고 한다. 자연대학교를 꿈꿔온 한 동료는 27시간동안 감나무 밑에서 온살도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리 해도 피로감이 쌓이기는 커녕 건강에 도움을 주는데 강문주는 부산에서 중풍으로 쓰러져 비정상적으로 걷는 사람에게 하루 한시간씩 온살도리만을 시켜서 1년만에 정상으로 돌려놓기도 했다.
나는 물었다. 그러면 누워서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손가락만 움직인다면 손가락으로 '무한대'를 그리면 된다고 한다. 즉 8자를 옆으로 뉘인 글자모양이 '무한대'표시이다.
용구는 강문주의 온살도리가 역학적으로 보아도 아주 타당하고 훌륭하다고 한다. 이 카페에 진즉 올려두었지만 연산역을 보면 "1"과 "6"이 중(中)이다. 처음 출발하는 숫자 1이 있고 이어 2.3.4.5를 거쳐 6이 1의 위치와 겹쳐지면서 7.8.9.0이 된다. 순서가 맞남...?
여하튼 발 동작은 11자가 되도록 서는데 양 발바닥의 사이는 20여센티쯤 거리를 두고 앞굼치(용천혈)는 땅에 콱 붙이고 뒷굼치가 90도가 되도록 한다. 왼발을 먼저 움직였다면 반대로 왼발은 일자가 되도록 하면서 동시에 오른발을 왼발부위로 90도가 되도록 움직인다.
손은 그대로 편채 두고 발동작만 한다. 한참을 하다보면 양손바닥과 온 몸에서 어떤 기감이 느껴진다. 이때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손바닥이 시커멓게 변하기도 하고 냉기가 많은 사람은 차가운 뭐가 손이나 다른 몸 부위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아랫배가 따뜻해져옴을 느끼기도 하고 여하튼 변화가 온다. 이 동작을 서서히 하면 건강차원의 운동이 되기도 하고 아주 멋드러진 아리랑춤이 된다.
이 동작을 하면서 무술로 변형시킨다면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파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한다. 시선은 눈보다 약간 위를 쳐다보는데 많이 하게되면 한 부위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3개면의 움직임이 포착된다고 한다.
그러니 상대방이 공격을 해온다해도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