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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이타닉호 침몰사건
여객선 RMS 타이타닉은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 44부두에서 출항해 프랑스의 셰르부르와 아일랜드의 퀸즈타운에 기항한 후 4월 17일 아침 미국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사고 당일 (4월 14일)
출항 당시 쌍안경 보관함의 열쇠가 인계되지 않아서 배 안에 있는 쌍안경을 꺼낼 수 없었다.
견시들이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고 육안으로 위험요소를 확인해야 했는데 사고 초기에는 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 실제로 동일한 환경 속에서 당시 쌍안경을 사용하여 실험한 결과 이것조차도 무용지물이었다.
실험 결과 그냥 검은 원만 보였다고 한다.
애당초 당시의 차가운 공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달이 없는 칠흑같은 밤에 파도도 없어서 빙산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여러 악조건이 겹쳤기 때문에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은 그 많은 악조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탐조등을 설치하지 않아서 빙산을 발견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출항 오전부터 빙산이 돌아다닌다는 위험한 소식이 선박 사이의 무선통신으로 공유되고 있었으며 적어도 타이타닉호는 4월 14일 6통의 경고를 통신으로 받았지만 화이트 스타 직원이 아니라 마르코니 사 파견 직원들인 타이타닉호의 통신사 2명은 승객들의 통신 발신 업무에 쫓기고 있었고 이 계절의 북대서양의 항해에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여겨서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배가 SS 캘리포니안호였는데 1명뿐인 통신사가 취침 중이라 무전 수신을 못 해 구조하러 오지 못했다.
빙산과의 충돌
운명의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39분 레지놀드 리와 함께 견시를 보던 갑판 선원 프레드릭 플리트가 전방 450m에 높이 20m 미만의 빙산을 육안으로 발견했다.
빙산의 10분의 9는 숨어 있기 때문에 빙산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플리트가 빙산을 발견하고 종을 몇 번 울린 후 급히 선교에 전화로 보고했고 당직 항해사인 6등 항해사 제임스 무디가 조타실에서 접수하고 선임 당직자인 1등 항해사 윌리엄 맥매스터 머독에게 보고했다.
보고와 비슷하게 종 소리에 전방을 바라보며 빙산을 확인한 그는 바로 좌현전타를 명령하고 엔진 오더 텔레그래프(EOT)를 전속 후진으로 돌려 기관실에 지시한 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보일러실의 방수격벽이 닫힐 것임을 알리는 알람을 울렸다.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는 지시에 따라 왼쪽으로 키를 최대한 돌렸으며 기관실에서도 배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노력했으나 배의 회전반경이 너무 크고 빙산과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충분한 회전과 감속을 하지 못했다.
결국 11시 40분 우현은 빙산이 있는 곳으로 서서히 접근하여 정통으로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우현 측면이 빙산과 충돌하였다.
1997년 영화 타이타닉에서는 빙산 발견 보고에서 빙산 충돌까지 장면을 약 2분 정도로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23노트로 달리는 배가 450m의 거리에서 빙산을 발견했다고 계산해 보면 발견에서 충돌까지의 시간은 약 38초 정도로 실제로는 영화에서 묘사되는 시간의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영화상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보니 당시 긴박한 상황을 실제 시간보다 더 장황하고 자세하게 묘사하도록 상당한 영화적 각색이 가해져 있다고 봐야 된다.
항목에 업로드된 영화 타이타닉 유튜브 영상과 당시 실제 상황을 시간으로 비교해 보면 함교장면에서 기관실 장면으로 넘어가는 38초 부근에서 이미 빙산과 충돌했을 것이다.
38초의 시간은 현 대선박에서 대응하기에도 매우 촉박한 시간으로 영화상에서는 기관실에서 함교에서 내린 명령대로 신속하게 역추진 명령을 실행해 프로펠러가 역회전을 시도하던 도중에 충돌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당시 현대의 선박보다 훨씬 더 복잡한 기관 메커니즘을 가졌던 타이타닉호는 함교에서 전속 후진 명령을 내렸다고 해도 기관실에서 손 쓸 새도 없이 빙산과 충돌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봐야 한다.
충돌 직후
충돌 직후 머독은 우현전타를 지시하여 빙산으로부터 벗어나는 한편 방수격벽 폐쇄 버튼을 작동시켰다.
보일러실 2호, 6호의 화부장 프레드릭 배럿을 비롯해 화부 등 선원들은 쏟아져 오는 물을 피하며 허겁지겁 대피했다.
빙산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아 타이타닉은 멈춰섰다.
아래쪽 승객들은 큰 충격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고 위쪽 승객들은 약간의 흔들림을 느꼈으나 잠에서 깨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은 흔들림을 느끼고 깨어났다.
선장실에서 쉬고 있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도 흔들림을 느끼고 곧바로 조타실로 향했다.
스미스 선장은 머독으로부터 빙산 발견 및 회피 시도, 그리고 방수격벽 차단 여부를 간단하게 보고받았으며 좌현 윙브릿지에서 육안으로 빙산의 위치를 확인하고 4등 항해사 조지프 박스홀에게 피해 상황을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11시 47분경 다시 조타실로 돌아온 스미스 선장 일행은 충돌에 따른 선체 피로를 고려해 엔진 오더 텔레그래프(EOT)를 미속 전진으로 설정했다.
타이타닉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피해상황 조사에서 박스홀은 별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고 그대로 선장에게 보고했다.
당시 대부분의 승객들과 선원들은 빙산 충돌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갑판에 흩어진 얼음조각을 가지고 3등실 승객들은 축구를 하고 1등실 승객들은 위스키에 쓸 기념품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하지만 잠시 간의 예상을 깨고 타이타닉의 보수 책임자인 목공장 존 홀 허친슨이 배의 누수현상이 심각하다고 조타실로 긴급하게 보고했다.
11시 52분경 박스홀 역시 배가 빙산과 충돌하고 화부들이 대피한 뒤 10분만에 충돌 구역인 보일러실 2호, 6호와 최하 갑판의 수하물 취급소가 침수되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 뒤 타이타닉의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와 브루스 이스메이 화이트 스타 라인 사장이 조타실로 도착했다.
이스메이는 배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물었고 갑자기 불안감을 느낀 스미스 선장은 그저 걱정된다고만 답한 후 선원들에게 만일을 대비하여 승객들을 깨우라고 명령하는 동시에 엔진도 정지시켰다.
스미스 선장은 즉시 토머스 앤드루스 등과 함께 직접 피해상황을 점검했는데 11시 55분에는 최하 갑판이 완전히 잠기고 수선 바로 위 층인 G 갑판의 우편원들이 우편실에서 필사적으로 우편물을 구하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G 갑판의 승객들과 승무원들도 물이 복도로 천천히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고 빠져나왔다.
후일 초음파 탐사로 밝혀진 실제 파공의 면적은 모두 합해 1.1~1.2제곱미터 정도로, 그 거대한 배를 침몰시킨 손상치고는 경미했다.
그러나 문제는 파공의 위치와 형태. 6개의 파공들이 총 5구획에 걸쳐 길게 나는 바람에 배의 침몰은 확실해져 버렸다.
타이타닉은 2구획(선수부터는 4구획)까지 물이 들어오면 침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으나 선수부터 5구획 이상에 물이 차면 그 한계를 넘는 것이었다.
타이타닉의 격벽은 위의 E갑판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 침수구획이 5구획이 넘어버리면 선체가 부력을 잃고 앞으로 기울어지며 잠기는 와중에 해수는 격벽을 넘어 차례차례로 다른 구획까지 흘러 들어가 침몰해 버린다.
다시 조타실로 돌아온 앤드루스는 장시간의 계산 끝에 이미 5구획에 걸쳐 누수가 진행되고 있음을 파악했고 이대로라면 타이타닉의 침몰까지 길어야 최대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결론을 냈다.
빌지펌프를 동원해 물을 빼낼 수는 있었지만 누수 속도에 비하면 침몰을 고작 몇 분 더 연기할 뿐이었다.
스미스 선장은 다시 조타실로 돌아가 박스홀에게 긴급타전이 적힌 쪽지를 건내주고는 즉시 구조요청을 보낼 것을 지시하고 엔진 오더 텔레그래프를 전현 추진체 정지로 맞췄다. 오후 11시 59분 결국 타이타닉은 완전히 멈춰섰다.
탈출 준비
스미스 선장은 12시 5분에 탈출 명령을 내리되 혼란 방지를 위해 대놓고 승객들에게 침몰이 임박했다고는 알리지 않았다.
우선 승무원들을 시켜 잠들어 있던 모든 승객들과 선원들을 갑판에 집결시키기 위해 깨우고 구명조끼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이 시각 충돌부위의 F 갑판이 침수되기 시작했다.
12시 15분 경부터 통신사들에 의해 첫번째로 구조 신호가 보내지고 좌현에서는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가, 우현에서는 1등 항해사 머독이 구명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보일러 폭발을 막기 위해 연돌에 달린 안전밸브를 모두 열어 연돌 4개 중 환풍구인 4번 연돌을 뺀 실제 연돌 기능을 하던 3개의 연돌이 동시에 증기를 뿜기 시작했는데, 이때 발생한 큰 소음으로 인해 이후 한동안 갑판에서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같은 시각에 충돌부위의 F갑판이 잠기고 방수격벽이 있는 가장 높은 층이며 기나긴 복도가 있는 E갑판까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제빵장 찰스 조그힌을 비롯한 조리사들은 비상식량으로 빵들을 준비해 구명정마다 약간씩 실었으며 악단은 승객들이 공황에 빠지지 않도록 음악을 연주했다.
처음에는 승객과 선원 대부분은 배가 침몰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형식적인 절차로만 여겨 구명정에 탈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배는 아직 몸으로 느끼기는 힘들 정도로 느린 속도로 가라앉고 있었고 어두컴컴한 북대서양 한복판에서 나무로 만든 조그마한 보트보다는 길이 270m의 강철로 만들어진 최신형 여객선이 훨씬 안전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게다가 한밤중인 데다 추운 날씨 때문에 귀찮아했던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배에서 가장 부자였던 존 제이콥 애스터도 아내에게 "여기가 저 조그만 보트보다 안전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는 선장에게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태울 것을 건의했고 선장은 이를 승인했다.
이건 당시는 물론 지금도 사회 통념 상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이기도 했고 실제 통계상으로도 혼란스러운 재난 상황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의 생존 가능성이 더 낮은 점을 고려해 구조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조치이기도 했다.
구조 요청
구조요청 여기는 MGY
(중략)
현 위치 북위 41.46 서경 50.24 즉시 와주기 바람. 빙산과 충돌했음.
0시 15분, 타이타닉의 긴급구조요청
4월 15일 0시 15분, 직전까지 뉴욕 기지국으로 1등실 승객들의 전보를 보내고 있었던 타이타닉은 빙산 충돌 이후 긴급히 구조요청을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 보낸 것은 조난신호 CQD였다.
타이타닉호와 불과 16km 정도의 거리에 빙산이 너무 많아 야간 항해는 무리라 판단하여 아침까지 투묘하고 있었던 화물선 SS 캘리포니안(SS Californian)호가 있었지만 1명밖에 없는 통신사 '시릴 에반스(Cyril Furmstone Evans, 1892 ~ 1959)'가 오랜 1인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으로 취침 중이라 연락을 받지 못했다.
이 배와 통신이 닿았다면 대부분의 승객이 구조 가능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지점이다.
사실 캘리포니안호는 앞서 통신사 에반스가 선장의 지시에 따라 수시로 빙산 경보를 주변 선박에 전파했다.
타이타닉호도 이를 수신했으나 동일한 경보 무선이 여러 차례 반복되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하루 12시간씩 1등실 승객들을 위한 전보를 보내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통신사 잭 필립스는 일 방해하지 말고 닥치라는 무선을 캘리포니안호에 날리기도 했다.
CQD 신호를 6회 보내고 현재 위치를 말한 타이타닉호의 조난 신호를 최초로 수신한 것은 근처를 지나고 있던 약 250 km 떨어져 있었던 독일 선박 SS 프랑크푸르트호였다. 이후 SS 마운트템플호가 응답하여 상황을 물었고 타이타닉호는 '빙산에 충돌했다'는 사고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고했다.
마운트템플호의 통신사 '존 듀란트(John Durrant)'는 "타이타닉호가 CQD를 보내고 있으니 주변 선박들은 무선을 자제해줄 것"을 알렸다.
마운트템플호의 알림 이후 7분간 비슷한 내용의 무선 호출이 각 통신국으로부터 오갔다.
0시 25분 드디어 사고현장으로부터 대략 93km 떨어져 있던 여객선 RMS 카르파티아호가 응답했다.
카르파티아호의 통신사 '해롤드 코탐'은 구조가 필요하냐고 물었고 타이타닉호는 즉시 현장으로 와달라고 무선을 보냈다.
이후에도 타이타닉호는 지속적으로 CQD를 송신했는데 현재 위치와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빙산에 충돌하였고 가라앉고 있다는 말을 보냈다.
해롤드는 당장 브릿지(선교)에 알리겠다고 응답했다.
0시 34분 프랑크푸르트호는 그동안의 무선통신을 듣지 못하고 있었는지 타이타닉호에게 재차 상황을 물었다.
타이타닉호는 빙산에 충돌했으며 프랑크푸르트호의 선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이쪽으로 와 줄 것을 요청했고 프랑크푸르트호는 선교에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카르파티아호와의 통신이 이어졌으며 카르파티아호는 현재 전속력으로 가고 있고 도착까지 4시간이 예상되니 기다려 달라는 말을 했다.
이때 자매선 RMS 올림픽호도 타이타닉호에게 상황을 묻는 메세지를 보냈으나 타이타닉호가 응답이 없자 카르파티아호는 올림픽호의 메세지를 듣지 못했냐고 물었는데 타이타닉호는 침몰하고 있었고 증기 소음이 워낙 시끄러웠기 때문에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0시 45분, 타이타닉호는 CQD에 SOS를 섞어서 보내기 시작했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빠르게 침몰하고 있으니 즉시 와 달라는 말이 추가되었다.
이 신호는 케이프 레이스 무선국을 비롯한 당시 사고현장 근처 모든 선박들에게 송신되었으나 응답한 선박 중 가장 가까운 카르파티아호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으므로 다른 배들은 직접적으로 도울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타이타닉호의 구조신호를 재차 내보내면서 최대한 많은 선박에게 알려주는 것뿐이었다.
한편 타이타닉에서 캘리포니안호를 지목해 호출하며 구조요청을 보내고 이어서 케이프 레이스도 캘리포니안호를 호출해 보지만 통신사가 1인 근무로 취침 중이던 캘리포니안호는 끝내 이를 수신하지 못했다.
1시 3분, 대량의 무선신호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고가 꽤나 중대하고 심각한 상황임을 다른 선박들이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마운트템플호가 무선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걸 생각해 보면 다소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타이타닉의 구조요청은 다들 들을 만큼 들은 상황이었고 해당 해역을 통과하는 배는 많았기 때문에 그 배들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에 하나 타이타닉을 침몰시킨 그 빙산이 다른 선박과도 충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박들 사이에서는 바짝 긴장하고 빙산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하라는 경고가 필요했다.
그 와중에 카르파티아호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고 속력인 15노트로 달려가고 있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1시 10분, 패닉에 빠진 주변 선박들이 미친듯이 무선을 날리다 못해 재밍이 오기에 이르자 올림픽호의 통신사 '어니스트 무어'는 참다 못해 'STOP TALKING'이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1시 15분에는 타이타닉호로부터 400km 떨어진 RMS 발틱호가 구조요청에 응해 현장으로 향했고 1시 20분에는 270km 떨어진 RMS 버지니안호가 응답하여 현장으로 향했다.
1시 27분, 타이타닉호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구명정에 실어 탈출시키고 있다는 무선을 보내며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고 기관 동력이 끊어졌다는 말도 보낸다.
1시 35분, 타이타닉호는 다시 CQD SOS 신호를 반복해서 보내면서 기관실이 침수되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1시 35분경 타이타닉호의 무선 송신이 일시적으로 끊겼다.
1시 50분경 100해리(약 185km)까지 접근한 프랑크푸르트가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어오자 답답해진 타이타닉은 "Fool. You fool. Keep out and standby(멍청이, 이 멍청아. 접근하지 말고 대기하라)"라며 프랑크푸르트를 무시했다.
구조에 응함을 알리던 발틱호는 "We are heading for Titanic but can't agree to signals(타이타닉을 향하고 있으나 신호에 응할 수 없음)"이라고 알렸다.
2시 10분, 상황이 악화되어 신호가 미약해진 상황에서 타이타닉호는 계속해서 구조신호를 보냈다.
이에 주변 선박들은 신호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보냈으나 타이타닉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들을 수 없었고 타이타닉호는 2시 17분, 'CQD DE MGY CQD DE(도움이 필요하다 여기는 타이타닉,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는-)' 메세지를 끝으로 무선 신호가 사라졌다.
통신실의 침수가 시작되어 필립스와 브라이트가 송신을 중단하고 탈출했기 때문이다.
신호탄과 항해등
한편 타이타닉호는 캘리포니안호 등 무선 통신이 되지 않지만 근접해 있는 다른 선박이 있을 것으로 보고 꾸준히 로켓형 폭죽으로 된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항해등을 점등하며 조난신호를 발산했다.
타이타닉은 강렬하게 빛을 집중해 쏘는 탐조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통상 항해등으로 조명 신호를 보냈는데, 항해등은 탐조등에 비해 조도가 미약한데다 배 자체의 등화가 너무 밝아서, 깜박임이 인근 선박에서 관측되지 못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신호탄의 불꽃과 타이타닉 전체에서 나오는 조명 불빛은 9해리(약 16km) 떨어져 있던 캘리포니안호에서 희미하게나마 관측되고 있었다.
영국 청문회 조사에 따르면 사고 당시 투묘중이던 캘리포니안호는 이미 사고 전날인 14일 오후 10시 10분에 남쪽 멀리에 희미한 불빛을 관찰했고 선장 스탠리 로드와 당직이던 3등 항해사 그로브스는 강한 밝기와 움직임을 봤을 때 여객선의 불빛으로 보인다고까지 판단한 상황이었다.
11시에 선장과 3등 항해사가 하번하고 이어 상번한 2등 항해사 허버트 스톤은 11시 50분쯤 문제의 불빛이 번쩍이더니 움직임을 멈추는 듯한 것을 보았고 이에 탐조등을 통해 모스 부호 신호를 시도해 보도록 지시해 5일 오전 1시까지 몇 차례 실시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1시 10분에 번쩍이는 불빛(타이타닉의 신호탄)이 5차례쯤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이에 해도실에 있던 선장에게 보고했다.
선장은 불빛의 색상을 물었고 항해사는 흰색이라고 답했는데 당시엔 불빛 색상의 의미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있지 않아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구조신호로 즉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선장은 탐조등으로 신호를 계속 보내라고 지시하고 잠에 들었다.
2등 항해사는 1시 50분에 3번의 번쩍이는 불빛을 추가로 관측했고 2시 15분을 넘어선 불빛이 더이상 보이지 않자 선장을 깨워 이를 보고했다.
선장은 불빛 색상을 재차 물었고 모두 흰색이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후 불빛이 사라진 것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5시 30분에 이르러서야 자고 있던 통신사 에반스를 깨워 밤중에 알 수 없는 불빛을 관찰했다는 걸 알려주며 주변 선박과 교신해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마침내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구조를 위해 침몰지역으로 이동했으나, 이미 막대한 인명이 사망하고 남은 생존자는 카르파티아호가 모두 구조했음을 프랑크푸르트호가 알려왔다.
참고로 청문회에서는 스탠리 로드 선장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는데 탐조등이 닿지 않아 소통이 안되는 상황에서 즉각 통신사를 깨워 연락을 시도하지 않은 것의 안일함과 그로 인해 유일하게 적시 도착이 가능했던 캘리포니안호가 구조에 나서지 않아 대참사로 이어진 점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선장을 비롯한 캘리포니안호의 선원들은 상세미상의 배에서 보내는 알 수 없는 불빛이었고 결국 의미를 알 수 없고 희미하게 반짝이는 이 불빛이 마스트에 설치된 점멸등일 거라고 짐작했다며 항변했다.
불빛이 없어진 이후론 누군가는 그저 멀어져서 안 보이는 거라고 하고, 누군가는 증기에 가려진 거라고 하고, 누군가는 별이 넘어간 거라고 하며 의견이 분분해 통신사를 바로 깨울 생각을 미처 못했다고 했다.
결국 정황상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이 인정되어 따로 재판이나 처벌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선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원은 선사에서 해고되었고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천민 취급되며 멸시받는 등 사회적 불이익은 막대하였다.
구명정 진수
구명정은 좌현과 우현 양쪽에서 하나둘씩 내려지기 시작했다.
1등 항해사 머독은 더 이상 여성과 아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남자를 태우는 것을 허용하는 등 비교적 남성에게도 관대한 대응을 했지만 라이톨러는 "여자와 어린이 먼저"를 "여자와 어린이만"으로 받아들여 혼란을 막기 위해 여성과 어린이 우선의 관습을 철저히 실시했다.
이게 현장에선 도리어 역효과를 내기도 했는데 정원이 덜 찼음에도 성인 남자라는 이유로 탑승이 거부되거나 우현에 비해 구명정을 내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실제로 머독이 맡은 우현에서 구명정을 절반 가량 진수시킬 동안 라이톨러는 겨우 한 척을 내릴 수 있었다.
다만 좌현에서 남성 승객의 구명정 승선이 100% 거부된 건 아니고 구명정에 선원이 한 명뿐이라는 여성 승객의 이의로 인해 선원 대신 타게 된 요트 선수와 몇 명의 노인 등 약간의 예외도 있었다.
1등실 승객들 중 소년 한 명이 조숙한 탓에 성인인 줄 알고 탑승이 거부될 뻔하다가 소년의 아버지가 "얘는 아직 13살이라고요!"라고 라이톨러에게 이야기해 탈출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옹호하자면 일부러 죽게 남겨둘 생각은 없었고 당시 구명정에 대한 인식은 탑승자들을 다른 배에 태운 뒤 돌아와서 또 태우는 식이었고 라이톨러 본인도 자리가 남는 구명정들이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고 한다.
남자들을 승선시키는 건 질서 유지 측면에선 위험 부담이 있다.
일단 사회 분위기상 아이들과 여자를 먼저 태우는 것까지는 용납하던 남자들이지만 같은 남자들이 자기 대신 타게 될 경우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그들이 "왜 저 사람은 되는데 나는 안 되나?"라는 식으로 항의하고 자칫하면 폭동이 일어나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
이때 수많은 3등실 승객들이 여전히 배를 헤메고 있었다.
대피훈련도 하지 못했는데 여러 구역이 철창으로 막혀 제한되어 있었고 배가 미로처럼 복잡했기 때문에 탈출에 지장을 빚었으며 일부 승무원들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 못하거나 혼란을 막는다는 이유로 승객들의 통행을 제한하기까지 했다.
3등실의 상당수 가난한 승객들은 미국 이민을 위해 전 재산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짐에 대해 미련을 가진 승객들도 많았다.
거기에다가 이 배는 영국인과 미국인만 탄 게 아니라 미국 이주 목적으로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많았고 3등실 승객들 중에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승객들도 많았다.
이 상황에서 여러 3등실 승객들은 그냥 탈출 시도를 포기한 채 자신들의 숙실이나 식당, 복도 등에 남아 지시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고 일부 승무원들은 상부와의 소통 부재로 그냥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 수백명의 승객들이 식당에 남아 묵묵하게 탈출 지시를 기다리거나 같이 모여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존 에드워트 허트를 비롯한 승무원들과 바일스 신부 같은 승객들은 배 밑으로 내려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3등실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인도해 도와주기도 했다.
항해사들에 의하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한 선원들도 있었다는데 이 중 허트는 다행히 살아남았다.
단, 1등실 승객이 먼저 탈출하도록 3등실 승객을 가둬 두었다는 통설은 사실과 다르다.
전술하였듯 3등실 승객은 대부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이민 올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출항 전에 전염병이 미국에 유입되는 걸 막기 위해 미리 선의가 간단한 검사를 한 뒤 태웠다.
갑판으로 나가는 가장 빠른 길은 3등실과 1-2등실을 직접 연결하는 통로였는데 마찬가지로 미국 이민법상 전염병을 막기 위해 이 통로를 차단해 놓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충돌 직후의 혼란 속에서 이 통로를 개방하라는 명령이 상당히 늦게 전달되었다.
항해사들도 이 사실을 파악하자 즉각 선원들을 파견해서 밑에 갇혀있을 승객들을 구출하도록 했으며 구명정에 바로 태울 수 있도록 현측에 출입문을 열라는 지시도 내렸다.
배는 우현의 손상에 의해 우현쪽으로 기울어졌다가 E 갑판의 여러 구역과 이어지는 "스코틀랜드 로드"라는 방수격벽이 없는 긴 복도에 물이 흘러들어왔고 이후부터 좌현으로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중앙계단에서는 맨 밑에서 물이 차오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편 최하부의 기관부 선원들은 동력 유지 및 펌프로 물을 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려진 최초의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5번 보일러실에서 펌프 작업 도중 6번 보일러실의 격벽이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기관사 2명이 익사한 것이다.
화부장 배럿은 사다리에 매달려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12시 40분쯤 우현에서 정원 65명짜리 7호 구명정이 겨우 28명을 태우고 처음으로 내려졌다. 곧이어 43분에 41명을 태우고 5호정이 내려졌다.
1시경 3호정(우현)은 32명이, 8호정(좌현)은 39명이 탔고 1시 5분경 경 1호정(우현)은 겨우 12명밖에 타고 있지 않았다.
1시 10분에 6호(좌현) 구명정이 28명을 태우고 내려졌는데 여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빙산에 부딪히고 있었을 때 조타 당직자였고 6호정의 지휘자로 탑승한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 빙산을 처음 목격했던 견시 프레더릭 플리트, 그리고 훗날 "불침자(Unsinkable)"라는 별명을 갖게 된 마거릿 몰리 브라운도 있었다.
1시 반쯤에는 해수면이 상갑판(B갑판 및 C갑판)의 선수에 도달해 잠기기 시작했다. 밑에서는 1등실 식당이 있는 D갑판이 침수되기 시작했으며 E갑판의 스코틀랜드 로드에 물이 꽉 차 좌현으로 기울어지고 다른 구역으로 흘러가 침몰 속도가 점점 빨라졌는데 몇몇 생존자들은 좌현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보다 더 심했다고 한다.
구명정도 하나둘씩 떠나가고 배가 몸으로도 느끼고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기울어짐에 따라 승객들도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혼란이 점점 가중되었다.
구명정도 이제 정원에 어느 정도 맞추거나 초과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사고도 약간씩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1시 25분경 1시 20분에 16호정(좌현)이 약 40명을 태우고 내려졌는데 여기 타고 있었던 사람들 중 간호사 바이올렛 제솝은 후에 자매선 HMHS 브리타닉이 침몰했을 때도 간신히 살아남았다.
1시 25분경 14호정(좌현)이 내려지려 하자 공황에 빠진 승객들이 필사적으로 타기 위해 우르르 몰려왔다.
이에 라이톨러의 지시로 14호정에 탄 5등 항해사 로우는 혼란을 저지하기 위에 허공에 대고 웨블리 리볼버를 쐈다.
1시 35분경 11호정(우현)은 정원을 다섯 명 초과해서 내려졌고 배에서 펌프질로 빠져나오는 물이 들어갈 뻔했지만 가까스로 피했다.
13호정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문제를 가까스로 피했으나 밧줄에 문제가 생겨 1시 40분경 옆에서 함께 내려지던 15호정은 바로 위에 내려져 깔리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다행히도 15호정에 타고 있던 화부장 바렛을 포함한 선원들이 아슬아슬하게 밧줄을 잘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명정이 하나둘씩 내려짐에 따라 이제 후미로 몰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1시 41분경에는 15호정(우현)이, 1시 45분에는 2호정(좌현)이 내려졌다.
이때 몇몇 외국인들이 타려 했지만 2등 항해사 라이톨러가 권총으로 위협해 쫓아냈다.
존 제이콥 애스터는 어린 아내를 태우고 아직도 빈 공간이 많은 것을 보고 타도 되냐고 물었으나 라이톨러에 의해 거절당했다.
1시 50분경에 내려진 구명정 10호정(좌현)에는 어떤 여성이 배 사이에 떨어져 끼었다가 구조되었다.
같은 시각 4호정(우현)이 내려졌다.
어떤 승객들, 특히 탑승이 거부된 성인 남성들 중 몇몇은 구명정에 타기 위해 구명정을 내리고 방치된 줄을 타거나 물에 뛰어들어 구명정까지 헤엄쳐 가거나 아예 선원들의 제지를 뚫고 뛰어들기도 하였다.
어떻게든 구명정에 오르기만 하면 내려가는 중이거나 다 내려진 경우 쫓아낼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고 익수자는 일단 구조의 의무가 있는 사람이니 별 말 않고 건져줬다.
대부분의 구명정이 정원 미달이어서 여유 공간이 있었고 다 내려진 뒤라면 공중에서 내릴 때보단 좀 더 태울 수 있으므로 구조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이 거의 없기도 했다.
물론 이 와중에 부상자들도 생겨났다.
접이식 구명정 C호정(우현)이 2시 정각에 내려지기 직전 두 사람이 뛰어내려 탔는데 한 명은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 성인 남성 승객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화이트 스타 해운의 회장이자 배의 선주 브루스 이스메이였다.
그는 이 때문에 돌아와서 욕을 꽤 먹었으며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도 사퇴했다.
이 구명정은 숨어 탄 네 명의 중국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상적으로 내려진 구명정은 접이식 구명정 D호정(좌현)으로 2시 5분에 내려졌다.
이때 해수면이 A갑판까지 도달해 산책로에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상용으로 선교 위에 올려진 접이식 구명정 두 대를 제외한 모든 구명정이 떠나자 선장은 총원 퇴선 선언을 하고 남은 선원들에게 모두 제 살 길을 찾으라고 했다.
남은 사람들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살기 위해 발악하는 수밖에 없었다.
배에 남은 사람들은 남은 항해사 네 명과 함께 진수되지 못한 접이식 구명정 2척을 기다리거나 후미 쪽으로 달아나거나 바다로 뛰어들었다.
배가 기울며 프로펠러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배에 남기로 한 사람들도 있었다.
뉴욕에서 유명한 메이시즈 백화점을 소유한 스트라우스 부부는 금슬 좋은 노부부였는데 남편 이시도르 스트라우스가 노인의 경우 남성이라도 선원들이 대체로 태워주니 타라는 말에 다른 남자들이 구조되기 전까지는 타지 않겠다며 구명정 승선을 거절하자 아내도 선원의 구명정 승선 제안을 거절한 다음 하녀 엘렌에게 자신의 모피 코트를 건네주고 자기 대신 구명정에 태운 뒤 배에 남아 남편과 운명을 같이했다.
철강업자 벤저민 구겐하임은 현지처와 하인을 구명정에 태운 뒤 선원의 구명조끼를 거절했다.
턱시도로 갈아입은 그는 자신을 따르는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라고 하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배의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도 비슷한 길을 택했는데 목격된 그의 마지막 모습은 흡연실에서 구명조끼를 벗은 채 그림을 응시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2시 10분에는 바닷물이 최상층인 보트 갑판까지 다다랐다.
그때쯤 체육관 바깥쪽 휴식터에서 월리스 하틀리가 지휘를 맡은 악단이 마지막 음악을 연주했는데 어떤 곡이 연주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력한 곡은 'Nearer, My God, to Thee'와 영국 민요 'Autumn'(가을)이다. 전자는 침몰현장에는 없었던 그의 가족이나 동료들이 그가 죽을 때 마땅히 연주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내용이고 후자는 현장에 있었던 타이타닉의 무선사가 증언한 내용이다.
선장은 확성기를 쥔 채로 선교에 들어가 그대로 그곳에 남았다.
2시 12분경 마지막으로 남은 구명정인 접이식 구명정 A호정(우현)과 B호정(좌현)을 선원과 승객들이 힘을 합쳐 선교 옥상에서 내렸으나 A호정은 캔버스가 제대로 덮이지 않아 누수가 일어났고 B호정은 내려지던 중 받치던 노가 부러져 뒤집혀 버렸다.
2시 15분에서 17분 사이에는 바닷물이 마치 파도가 흽쓸듯이 보트 갑판을 본격적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해수가 이제 배 위에서도 들어오면서 배가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통신실도 침수되기 시작했고 한계까지 버티며 구조신호를 보내던 통신사 잭 필립스와 조수 해럴드 브라이트도 더 이상은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 구조 신호를 보낸 후 빠져나왔다.
남은 접이식 구명정 두 척은 제대로 진수되지 못한 채 물에 흽쓸려 갑판 위를 떠다녔는데 접이식 구명정 B호정은 뒤집힌 상태에서 여러 명이 매달려 있었고 A호정은 물이 반쯤 찼다.
이때 몇몇 사람들(아치볼드 그레이시, 찰스 라이톨러, 잭 테일러 등)이 환기구 때문에 빨려들어갔지만 다시 보일러실에서 발생한 뜨거운 공기가 올라오면서 물 속으로 빠져나와 뒤집어진 B호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
2등 항해사 라이톨러는 그레이시 대령과 테일러 등과 함께 B호정에 매달려 살아남았지만 수석 항해사 와일드, 1등 항해사 머독, 6등 항해사 무디는 A호정을 풀려다가 물살에 떠내려갔고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던 중 연돌 1호기가 수압과 기울어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선교루 쪽으로 쓰러지면서 물에 빠져 있던 사람들 여럿이 깔려 죽고 말았다.
근처 접이식 구명정들은 아슬아슬하게 피했으나 그 여파로 생긴 파도가 접이식 구명정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쓸어내리는 동시에 구명정을 배로부터 밀어냈다.
잠시 후 중앙계단의 유리 돔과 창문이 파도에 의해 깨져 물이 쏟아져 내렸다.
잠깐 후 2번 굴뚝이 미상의 폭발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선내의 온갖 가구, 기관, 잡기 등등이 쏟아지며 굉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타이타닉 최후의 순간
2시 18분, 깊은 곳에 있는 선실로부터 굉음이 네 번 발생한 뒤 침몰 속도가 가속되었다.
배가 더 기울어지자 잡을 것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 또한 혼란 속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다.
정전이 발생해 사방이 어두워지는데 곧바로 유입 해수의 하중을 견디지 못한 선체는 2호기와 3호기 연돌 사이의 신축 이음을 중심으로 금이 가면서 폭음과 함께 두 동강으로 쪼개졌다.
선체가 쪼개짐과의 동시에 3호기 연돌이 붕괴되어 바닷속으로 낙하하였다.
다만 정전으로 인한 어둠 때문에 이는 소수만 목격했고 구명정에 탄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목격하지 못했다.
이윽고 선수 부분은 잠기고 후미 부분은 분리되어 잠깐 떠 있는 듯했지만 후미도 좌측으로 돌면서 다시 빠른 속도로 거의 수직으로 기울었고 잡을 것을 찾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떨어트렸다.
이와 동시에 꿋꿋이 버티던 4호기 연돌이 부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2시 20분 경, 타이타닉호는 수면 아래로 완전히 수장되었다.
이 때 구명정들은 빨려들어갈 것을 염려하여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선체 후미는 엘리베이터처럼 비교적 느리게 침몰했고 빨아들이는 상황 같은 건 없었다고 한다.
후술하듯이 당시 후미에 매달려있던 배 제빵장 찰스 조그힌은 머리도 젖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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