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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을 끊어서 떨어뜨리다. / 綱を断ち切って落とした。(2023년 2월 19일 주일예배)
본문; 사도행전 27:27-32
행 27:27 ○열나흘째 밤이 되었을 때에, 우리는 아드리아 바다에 떠밀려 다녔다. 한밤중에 선원들은 어떤 육지에 가까이 이르고 있다고 짐작하였다. 28 그들이 물 깊이를 재어 보니, 스무 길이었다. 좀더 가서 재니, 열다섯 길이었다. 29 우리는 혹시 암초에 걸리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고물에서 닻 네 개를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였다. 30 그런데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달아나려고,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척하면서 바다에 거룻배를 풀어 내렸다. 31 바울은 백부장과 병사들에게 말하였다. "만일 이 사람들이 배에 그대로 남아 있지 않으면, 당신들은 무사할 수 없습니다." 32 그러자 병사들이 거룻배의 밧줄을 끊어서 거룻배를 떨어뜨렸다.
27. 十四日目の夜になったとき、わたしたちはアドリア海を漂流していた。真夜中ごろ船員たちは、どこかの陸地に近づいているように感じた。28. そこで、水の深さを測ってみると、二十オルギィアあることが分かった。もう少し進んでまた測ってみると、十五オルギィアであった。29. 船が暗礁に乗り上げることを恐れて、船員たちは船尾から錨を四つ投げ込み、夜の明けるのを待ちわびた。30. ところが、船員たちは船から逃げ出そうとし、船首から錨を降ろす振りをして小舟を海に降ろしたので、31. パウロは百人隊長と兵士たちに、「あの人たちが船にとどまっていなければ、あなたがたは助からない」と言った。32. そこで、兵士たちは綱を断ち切って、小舟を流れるにまかせた。
지난 주일에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게 유익함을 끼치게 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인도하심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런 주님의 마음에 순종하여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천사가 그의 입에 맡기신 말로 예언하여 배 안의 사람들을 안심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바울을 본받아 우리에게 맡기시고 채우신 재능과 은사를 가지고 이 시대와 민족과 이웃을 유익하게 하고 안심하게 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이 탄 배는 지중해 한 가운데(아드리아 해)를 정처없이 떠밀려 다니기를 2주간을 더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실제로 배는 바울의 예언에 합당하게 점점 육지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들은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 반도에 가까운 몰타 섬에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구절은 결국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현실을 이끌어 가시는 질서의 주인이신 것을 발견하게 합니다. 배는 정처없이 사람이 컨트럴 할 수 없는 지경에 떠밀려 다니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약속하신 말씀을 현실로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여 주십니다.
저는 이 구절을 눈에 담으면서 성경의 구절을 통해 감동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우리의 일상과 일과 중에 수시로 확인하고 따라야 할 유일한 푯대가 되어야 함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시편의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또한 잠언의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 16:20)
여러분, 바라기는 오직 말씀의 기준으로 장래의 길을 찾고, 자신의 발걸음을 맡기시길 소망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좋을 것을 주시고, 복된 것으로 채우고 맡기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대로 우리 삶을 바르고 아름다운 길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자, 그렇게 바울은 자신에게 맡기신 말씀의 감동을 따라 예언하였고, 그 예언은 이제 곧 성취되는 일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바다의 깊이를 재어 보니 점점 얕아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지요. 한 밤 중에 암초에 걸리면 모두가 위험해 질 것을 염려하여 우선 날이 새기를 기다리며 닻을 내립니다. 그런데 30절에 보시면 이런 중요한 시기에 선원들은 자신들만 살아남기 위해서 거룻배를 내려서 탈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배에 탄 다른 누구보다 명확한 실력과 재능을 가진 이들이 바로 선원들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이 배의 진로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침몰하게 될지도 모를 배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지요. 어쩌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원들은 실질적으로 배를 부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배 안에 있는 누구보다 더욱 항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판단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여기서 다시금 이 세상의 가치관에 지배당하는 이들이 실력과 재능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와 그런 욕심이 생기는 까닭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실력과 재능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목숨과 생존을 위해서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체로 육신적인 삶에 몰입하는 생각과 활동은 자신이 가진 실력과 능력을 자기의 이기심을 위해서 사용하는데 민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용하기 위해 실력을 연마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이지요.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와 그 부모가 공부를 그렇게 시키려는 이유가 바로 그런 자기유익을 위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또, 어른들은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는 좋은 직장에 다니기를 갈망하고, 안락하고 편한 집에서 재미있고 즐거운 여가와 생활을 누리려고 그렇게 실력과 재능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인데요.
그렇게 자기 유익을 위한 실력을 쌓기 위해서 모두가 몰두한 결과는 어떠합니까?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물론 인류에게 주어질 앞으로의 시대를 낙관하는 이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로 비관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확실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환경오염으로 인한 자연환경의 파괴와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들이 녹아내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인류와 각종 지구생명체들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현실적인 다양한 데이터들과 우리의 피부로 느껴지는 일들로 인해 이 지구라는 큰 배가 좌초하거나, 침몰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위기 가운데에서도 자기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 생존할 나름의 방법을 고안해 내는... 세속적인 실력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신문기사에서 보았는데요. 지구 환경이 나빠지고 자연재해 등이 일어났을 때 자기들의 몸을 피할 수 있는 대피소를 만드는 부자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각종 아이디어 등이 넘쳐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지하 벙커를 만들겠다는 사람도 있구요. 달이나 화성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지구 대기권에 우주기지와 같은 인공구조물을 만들어서 소수의 사람들을 이주시켰다가 지구의 환경이 안정되면 돌아올 계획을 세우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기사를 보면서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결국 부자들과 권력자들, 소위 세속적인 실력자들만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을 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 결국 그 소수에 들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면서 서글프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방법과 새 길을 열어 주시길 기도하지요. 그리고 이 세상은 망해도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실 주님의 놀라운 계획을 믿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바울의 예언이 현실이 되어 가는 와중에 선원들이 취한 행동을 보며, 오늘날 온 인류가 직면해 있는 생존의 위기와 인류역사의 암울한 미래를 예상하고 있는 소위 실력자들과 재력가들의 모습이 떠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행동인가요?
지난 주일에 우리에게 주신 실력과 은사는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분명히 배웠습니다. 이 말씀이 기록된 것이 거의 2,000여년 전인데요... 여전히 이 땅의 대부분 유력자들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실력과 재능을 연마하고 쌓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안에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런 실력이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만 주신 축복이고 특권인냥 간증이라는 이름으로 자랑하며 성공사례를 말하듯이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사실은 너무도 불편합니다.
지난 목요일에 서울에서 예수동행 집회가 있었습니다. 예수동행운동을 위한 부흥집회였는데요. 온라인으로 생중계가 되어서 잠깐 접속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유기성 목사님께서 당신이 예수동행운동과 동행일기를 쓰는 사명에 순종하며 경험하였던 것을 나누시는데요. 전에도 한 번 들었던 내용인데, 새삼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역과 이 운동이 결코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죽고 예수로 살자고... 예수와 동행하며 행복하게 살자는 운동을 하고 동행일기를 쓰면서 하루하루를 점검하도록 권면하는 사명에 사역을 집중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무모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유 목사님 본인도 이 운동에 대한 확신이 분명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이 운동이 이렇게까지 확장될 것을 예상치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소위 이런 사역을 하면서 앞으로 반드시 이렇게 저렇게 확장되고 일이 커질 것이다... 는 예언이나 음성도 처음에는 듣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께 질문하기를... 과연 이 일이 될 만한 일인가요? 과연 이 운동과 사역에 동참할 사람들이 있기는 할까요?... 라고 하셨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유 목사님도 의심하고 믿지 못하셨다는 투로 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회의와 의심의 기도 끝에 이런 마음의 감동이 오셨다고 하는데요.
그럼 성공하지 못할 것이면 순종하지 않을 것이냐?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고 힘들다고 하면... 올바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냐? 하고 반문하시는 것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사람들에게 거절 당할 것도 알고,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라고도 생각하면서도... 순종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유 목사님이 어떤 예측을 하고 데이터를 모아서 시도하고 도전하여 얻어낸 좋은 결과로서 지금과 같은 규모의 예수동행운동과 동행일기 사역을 성공적으로 확장하고 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는 이 고백을 들으면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위기와 그리고 믿음생활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척박한 이 일본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걸림돌이 아닌가요? 게다가 소위 성공적인 신앙생활과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170여년을 경험하며 체감하고 있지요.
교회가 양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것이 누군가의 실력과 재능으로 될 수 있는 일일까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걸림돌들과 실패들과 낙심과 좌절들이 과연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운 일일까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냐고 불평하고 짜증으로 반응할 일인 것일까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이후에 이 세상은 이미 이렇게 범죄와 사악함으로 물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 속에 위기가 없었던 때가 없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실력자들은 위기의 상황이 되면 자신들의 재능과 재력으로 위험한 항해에서 거룻배를 내려 벗어나고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불의합니다. 성경은 이미 이 땅과 인류에게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오직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그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이 열린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 5:17)
따라서 우리가 믿는 복음은 실력을 더 쌓게 해 주고, 재능과 재력을 더 얻게 하거나, 성공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만능 치트키 혹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미 우리 모두의 운명이 영생으로 예정되어 있으니 이 땅에서의 실력과 성공과 번영과 재력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전히 복음을 위한 일상보다 성공이나 재력이나 번영과 형통함의 거룻배를 붙들고 있다면 주님께서 놓게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놓던가, 아니면 하나님의 의지로 놓던가 둘 중 하나입니다. 오히려 그 실력과 재력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바울은 선원들의 그런 야비한 행동을 발견하고 백부장과 군인에게 말합니다. 그 선원들이 없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바울은 백부장과 군인에게 말하였지만, 실은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말입니다. 한 배를 타고 있는 처지에 백부장과 군인만 선원들의 부재로 인한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배에 탄 모두가 선원들의 실력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를 위해 필요합니다. 기술과 재능과 재력을 가진 자들이 이 땅의 모두를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회를 이루고 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어떤 사회든 그 사회가 특정한 부류의 일부의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모두의 생활과 생명을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의지하고, 격려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고, 넉넉히 차고 넘치는 은혜를 이미 베풀고 계신 이유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1a-22)
또한 예수님의 형제 야보고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약 2:1)
무엇을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요? 오늘 말씀을 통해 본다면 모두의 운명과 모두에게 주어진 약속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위기의 배에서 바울이 배 안의 모든 이들을 위해서 선원들의 탈출을 막았던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 안에도 도사리고 있는 선원들의 이기심을 막아야 합니다. 선원들이 남들 몰래 탈출하기 위해서 내린 거룻배의 줄을 군인들이 끊었던 것처럼 자기 안에 붙들고 있는 이기심의 줄, 자기 중심적인 생각의 줄을 끊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줄을 끊으시거나, 아니면 멸망을 향해 가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롬 1:24)
혹시 내 마음에 주님의 뜻을 거스르고 성공하려는 생각이 좌절되었습니까? 그럼 주님께서 그 줄을 끊어 주신 것입니다. 혹시 위기의 시대에 나만 순조롭고 나만 마음 편히 사는 것이 불편합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탈출을 위해 몰래 숨겨둔 배를 떠내려 보내셨습니다. 성공하지 못할 것, 남들이 달가워 하지 않을 것, 나 조차도 자신이 없는 것... 그러나 분명히 성경이 가르쳐 주시고, 주님께서 나의 양심의 고동으로 울리시는 말씀이 있다면... 어렵고 자신이 없어도 순종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로 그 좁은 길이 저와 여러분을 살리는 생명의 길이요, 영적인 승리의 길인 것을 믿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고 주님 보시기에 좋게 창조되었지만, 아담의 범죄 후에 이 세상에 위기의 때가 아닌 적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전쟁이 멈추었던 적이 없고, 갈등과 다툼과 미움이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위기와 갈등과 미움과 전쟁 속에서도 주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인간들의 허무한 행동에 주님은 헛되고 야비한 탈출을 위해 내린 거룻배의 줄을 끊으시고 모두에게 약속하신 생존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구하고 소망할 것은 성공과 번영이 아닙니다. 안정된 수입이나 안전한 지하 벙커도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로 구해야 할 것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세주를 보내신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정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저와 여러분이 일상 가운데 스스로 이기심과 자기중심이라는 거룻배의 줄을 끊고 주님의 놀라우신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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