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그레이엄 수 그 이상 - 박제천 시업 50년 방산사숙 시인들의 회고담 2015.07.15
시詩, 그레이엄 수 그 이상 / 이담하
오래전에 어느 시인이 운영하는 논술학원에서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의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와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제목의 책은 내 눈길을 끌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시가 좋아서 시를 읽고 대충 알고 있는 형식으로 써보면, 내 몸에 붙박이처럼 붙어있는 시에 대해 알고자 하는 허기는 갈증만 불러왔다. 시 쓰기 왕초보가 시의 허기를 안고 본 책들은 대부분 한문 투의 문장이거나 한자 표기로 되어 있어서 옥편을 찾다 보면 중간 부분에 가기도 전에 지쳐서 책을 덮게 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두 권의 책도 그럴 것 같아 볼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수업 중인 시인을 기다리다가 한글로 된 제목이 친근감으로 다가와 먼저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꺼내어 읽어보았다.
그리고 목차를 보고 몇 페이지를 보니 지금까지 읽어 온 시창작 이론서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아 두 권을 빌려 달라고 했다. 원래 시창작 이론서는 잘 안 빌려준다기에 읽고 반드시 갖다준다는 약속을 하고 빌렸다. 빌려 온 두 권은 지하철을 타고 회사 출퇴근을 하면서 읽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시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도 있었다. 그렇게 박제천 선생님을 책 속에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진지하게, 재미있게 끝까지 읽은 두 권의 책은 내게 문학의 허기를 더욱 증폭시켰다. 유명한 시집이 된 『장자시』 나 『나무사리』와 시 「유수」로 선생님의 함자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뵌 적은 없었다. 나는 누구의 소개로 방산사숙을 들어온 것이 아니다. 주소나 전화번호를 몰라 인터넷을 검색하여 계간 『문학과창작』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전화번호를 찾아 시간 약속을 하고 찾아뵈었다. 전화로 문의하였을 때 들려오는 사무적인 목소리에 첫 번째 실망을 하고, 방산사숙에 가서 상담을 하면서 쌀쌀한 모습에 두 번째 실망을 했다.
선생님은 상담을 한날부터 수업하라고 하셨다. 긴장과 설레임으로, 7시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가 뭐해서 잠시 나갔다 온다고 하고 문학아카데미를 나섰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으로 연극이나 영화도 볼 수도 없고, 쇼핑도 할 수도 없어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영양탕집에서 삼계탕을 시켜 혼자 먹고 방산사숙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처음 보는 분들이 낯설었다. 그분들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내놓은 작품을 읽어보았는데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 작품들을 보며 다시 한번 긴장하고 수업에 참여했을 때 선생님께서 작품 갖고 왔으면 읽어보라고 하시는데 부끄러워 내놓을 수가 없어서 안 갖고 왔다고 거짓말로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분들의 작품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부하면 할수록 시창작 공부는 점점 어려웠다. 문학의 갈증과 열망으로 문우들과 함께 공부하는 금요일이 기다려졌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준비한 텍스트를 갖고 가면 가위질을 떠나 가혹한 확인 사살을 당한 적이 수없이 많았다. 어떤 금요일은 정신병동에 입원할 때도 있고, 어떤 금요일에는 정신병원을 탈출한 환자가 되는 날도 있었다. 때로는 좌절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제자들을 강도 높게 트레이닝 하셨다. 그렇게 하신 것이 어디 제자가 미워서겠는가. 문단이라는 파고 높은 곳을 항해하려면 혹독한 수련이 필요해서 언어의 회초리를 들으신 걸 알고 마음이 숙연해진다.
등단이 무슨 금메달 따는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등단했다. 등단하고 나니 오히려 글에 대한 책임과 중압감을 느껴 더 깊이 더 많이 정진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시인이란 허울 좋은 명찰을 달고 다니기엔 난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늘 시적 허기로 인해 시적 배고픔이 언제쯤이면 포만감으로 채워질지 모르지만 치열하게 공부 할 것이다.
중국의 구양수가 글을 잘 짓는 비결로 많이 듣고, 많이 읽으며, 많이 생각하는 ‘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과 박제천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공자의 ‘시즉절’이란 말씀은 평생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길 것이다.
방산사숙에 들어와 공부를 하면서 선생님에게 배운 많은 제자 중에 훌륭한 제자가 많다는 것도 알았다. 신문사에서 일 년에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제자가 23명이 넘는다. 전국에 있는 대학 중에 신춘문예 당선자를 배출 못 한 대학들도 수두룩한데 선생님 혼자 지도하셔서 이렇게 많이 당선시켰다는 것은 엄청난 쾌거이며 분명한 노하우가 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국내외 유수한 문예지 등단과 각종 문학상을 휩쓴 방산사숙의 우수한 문하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방산사숙의 일원이 된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다.
내가 전화로 상담했던 그 시기는 아마 7월 하순쯤일 것이다. 강원도 춘천시에서 숲속의 워크숍을 개최한다고 하시며 참석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춘천이라는 말씀에 난 무척 고무되었다. 강원도 홍천이 내 고향이고 춘천에서 3년을 학교 다녔던 곳이라 춘천이란 말만 들어도 향수에 젖는다. 참가한다고 전화로 약속을 드렸지만 뜻하지 않는 집안의 일로 참가하지 못해 죄송스럽고 아쉬웠었던 일이 있다.
그다음 해에 공주에서 개최하는 숲속의 시인학교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때 관광버스로 가게 되었는데 문학 행사에 시인들이 그렇게 많이 참석하는 것에 놀랐고, 시인들이 참석한 큰 행사에 그 누구도 허튼소리나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실수하는 분이 없다는 것에 놀랐다. 모두가 조용한 선생님의 성품과 카리스마에 눌리고, 선생님이 이룩하신 시업에 대한 경의에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사 때마다 선배 시인들께서 후배들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나의 문학적 친정은 언제나 든든하다.
수업 시간에 시창작만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강의 도중에 특히 동양철학이나 참고가 될 만한 사상가와 서적을 곁들여서 강의하실 때, 몰랐던 것을 알게 되어 재미있게 배운 것과, 강의가 끝나고 화기애애한 뒤풀이에서 경험과 폭넓은 식견 또한 강의의 연장이었다. 어찌 그것만 배웠겠는가.
성현의 말씀 중에, 복숭아나 자두나무는 자기 자신은 말을 안 하지만 그 꽃이나 열매에 이끌려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므로 나무 밑에 오솔길이 생긴다고 한다. 훌륭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가만히 있어도 많은 사람이 따르며 모여든다는 것이 있다. 즉 훌륭한 선생은 알려지게 마련이라는 성어 ‘도리불언 하자성혜(挑李不言 下自成蹊)’ 는 허언이 아닌 것 같다. 나무가 크면 클수록 그늘이 넓은 이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문학은 영원하다, 그중에 시는 더 영원하다. 그 수를 알 수 없고 셀 수 없는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를 항하사수라고 한다면, 그 항하사수를 넘어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대수를 넘어, 구골, 센틸리온, 구골플랙스, 그레이엄 수를 넘어 그 이상인 시!
지금은 겨울, 그리고 밤, 그리고 비. 독서삼여(讀書三餘)의 시기. 그레이엄 수, 그 이상인 시를 언어의 회초리로 제자들을 길러 내시는 박제천 선생님께 머리 숙여 절합니다.
- 문학과 창작 2013년 봄호 통권 137호 방산사숙 회고담 이담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