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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기 현대사상 세미나(현대 맑스주의1) 2026. 7. 18. 조영준 선생님 발제문입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마르크스 생태사상의 현대적 해석
- 사이토 고헤이와 J. B. 포스터의 해석을 중심으로 -
조영준(경북대)
1. 생태 위기 시대의 마르크스
오늘날 지구 환경과 생태 위기는 인류의 생존과 문명의 존폐를 좌우하는 문제로서 21세기 인류의 최대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는 이제 우리에게 일상적인 단어로 여겨질 정도로 현실적 위기로 체감되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반세계화 사회운동가 클라인(Naomi Klein)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자본주의 대 기후』(2014)에서 “기후 변화를 자본주의와 지구와의 전쟁”이라고 말하며, “탈규제 자본주의의 근본 논리에 도전하지 않고서는”기후 문제가 절대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캘리포니아 지역 등에서의 무더위와 산불, 남북극 빙하의 해빙, 초대형 태풍의 발생 등 기후 위기라는 형태로 드러나며, 자본주의적 생산이 기후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처럼 우리는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과거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던 전 지구적 규모의 다양한 생태(환경)문제의 발생을 목격한다. 이제 기후 위기를 비롯한 지구 환경과 생태 위기의 해법은 무한한 자본의 축적과 끊임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논리 대신 자본주의 극복을 고민하는 급진 좌파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윤추구를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자연을 파괴하거나 약탈하는 자본주의 자체를 근원적으로 문제 삼지 않고는 생태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있으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생태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적 사유와 접근이 절실히 필요하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는 오늘날 같은 생태 위기가 닥치기 전에 자연과 환경을 생태학적으로 파악한 사상가이다. 비록 그가 지금처럼 심각한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을 당시에 목격하지 못했을지라도, 자연 자원의 고갈과 생태계에 가해지는 과부하 등 생태문제를 염려하고 그 해결책으로 새로운 사회체제를 제시한 선구자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에 대한 재평가는 그가 인간중심주의 자연관을 가진 베이컨(Francis Bacon)적 이념의 수행자로서 자본주의 기술의 진보와 생산력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했다는 기존의 해석과는 달리, 자연과 환경 악화에 대한 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발전시켰으며, 생태적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제기한 탁월한 생태학적 통찰자였다는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버킷(Paul Burkett), 사이토(Kohei Saito) 등의 최근 연구 성과에 기인한다.초·중기의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사회주의가 자본가 계급이 독점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여 잠재적 생산력을 완전히 실현할 경우 근대 산업의 부정적 측면을 제거한 이상사회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비해 후기 마르크스는 『자본(Das Kapital)』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라는 관점에서 인간 노동을 분석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이 도시와 농촌을 대립시키고 물질대사를 교란함으로써 생태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이 글은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진 마르크스 사상의 생태학적 측면을 부각하여, 그가 초기에 인간과 자연의 변증법, 후기에 물질대사론을 통해 생태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근거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미래의 사회상을 제시하는 데 실마리가 되었음을 밝힌다. 특히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연구에서 등한시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의 균열’과 그 극복 논의를 통해, 마르크스의 생태사상이 오늘날 생태 위기의 시대에 어떠한 의미와 통찰을 제공하는지를 검토한다.
2. 마르크스의 자연관
1) 청년 마르크스에서 인간과 자연의 변증법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 생태계를 떠나 생존할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의 근본 조건을 나타내는 것으로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어떠한 지위에 있으며,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역사적 유물론의 정립을 통해 인간 활동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하는 마르크스는 인간과 자연의 일차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연은 인간의 비유기적신체이다.말하자면 자연 그 자체가 인간의 신체가 아닌 한, 자연은 자연이다. 인간이 자연을 생존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자연이 인간의 신체이며, 인간이 사멸하지 않기 위해서 영속적인 과정을 통해 신체와 더불어 존속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생활이 자연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자연이 자기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이외의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파악하는 마르크스는 유물론의 관점에서 자연을 인간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일차적 대상으로 파악하는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의 인간학적 유물론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는 감각적 존재의 세계를 부정하는 헤겔의 사변철학을 비판하기 위해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적 유물론을 수용한 것이다. 헤겔의 사변철학에 따르면, 절대적인 것은 오직 이념(Idee)일 뿐이고, 자연은 이념에서 파생된 것이다. 즉 자연은 이념의 외화(外化) 계기에 불과한 것으로서 구체적 대상 세계에 적용된 이념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자연은 달리 있음의 형식(in der Form des Andersseins) 속에 있는 이념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따라서 포이어바흐는 감각적 존재의 세계를 부정하는 헤겔 체계를 비판하면서, 자연을 신의 존재나 인간의 사유와 관련 없이, 또 인간의 사유에 앞서 실재적이고 감각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포이어바흐에서 “자연 자체는 산출되거나 발생되지 않는 것으로서” “인간의 근원이 연역되어 나오는 최초의 본질”로 간주되며, 이 입장은 마르크스에게 계승된다.
한편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자연관에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추상성을 비판하며 인간과 자연을 변증법적으로 고찰하는 자연관을 펼쳐나간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포이어바흐는 ‘자연의 선재성(Priorität)’만을 밝힐 뿐, 이것을 ‘인간 활동의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통일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즉 자연을 인간의 감각적 활동 속에서 파악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는 포이어바흐가 ‘자연의 선재성’을 통해 관념론적 자연관을 극복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이나 감각 세계를 인간의 능동적 활동 속에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인간과 자연의 살아있는 변증법적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포이어바흐는 감각 세계를, 그 세계를 이루기 위해 활동하는 개인의 전적으로 생동적인 감각 활동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추상적 관계에 머무는 포이어바흐와는 달리-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사회·역사적 과정이 매개된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변화하는 감각적 활동, 즉 능동적인 생성의 과정으로 간주한다.
“자연적인 모든 것이 생성되어야 하듯이, 인간도 자신의 생성행위 곧 역사를 가진다. 그런데 이 역사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의식된 역사이며, 따라서 의식을 지닌 생성행위로서 자신을 지양하는 생성행위이다. 역사는 인간의 진정한 자연사(Naturgeschichte)이다.”
이처럼 인간의 의식적 행위를 통해 매개된 자연사가 인간의 역사가 되듯이, 인간이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자연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생하고, 더 나아가 이 사회가 형성되고 발전되는 역사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통일은 완성된다. 따라서 인간 사회의 발생과정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외부 자연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밝혀진다. 이 점에서 실천적 활동으로서 ‘노동(Arbeit)’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2) 인간과 자연의 통일: 자연의 인간화와 인간의 자연화
헤겔에서 노동이 인간 정신의 형성과 발전의 동력으로서 자기를 드러내는, 즉 자기의식을 본질로 하는 “추상적이며 정신적인 노동”임에 반하여, 마르크스의 노동은 물질적 실천의 성격을 지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노동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노동의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동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한 과정, 다시 말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한 과정이다. 인간은 하나의 자연력으로서 자연의 소재(Stoff) 자체와 대립한다. 그는 자연의 소재를 자신의 생활에 사용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기 위하여 자기 신체에 속하는 자연력인 팔·다리·머리·손 등을 운동시킨다. 그는 이런 운동을 통해서 자기 외부의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변화시킴으로써 동시에 자신의 본성까지도 변화시킨다. 그는 자신의 본성 안에 잠자고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며, 그 활동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둔다. [...] 그는 자연물의 형태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와 동시에 자연물 안에서 그의 목적, 즉 그가 잘 알고 있고 그의 행동방식을 법칙으로써 규정하며 그 자신의 의지를 종속시켜야 하는 그런 자신의 목적을 실현한다.”
여기서 물질적 실천으로서의 노동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인간의 노력 또는 활동의 표현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는 인간이 노동을 통해 외부 자연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자기 내부의 자연(본성)도 저절로 변화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노동은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인간의 고유한 활동으로서, 이를 통해 인간은 자연 안에서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자기가 처한 환경을 자유의지에 따라 변형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은 생존에 필요한 생활과 생산수단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인간의 감각과 지적 능력을 향상하는, 즉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활동이다.
한편,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노동을 통해 자연을 가공하면서 자신의 유적 본질(보편자로서 인간의 전인적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사실 노동을 통해 자연이 인간의 필요에 맞게 가공되는 과정, 즉 인간이 자연을 생산하기 위해 개입하는 과정에서 자연 자체는 변형되어 인간 삶의 일부가 된다. 자연이 인간 삶의 일부로 전화(자연의 인간화)될 경우, 전화된 자연은 이제 -사회와 구별되는 좁은 의미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화된 자연’으로서 바로 사회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자연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는 외적 대상으로서 ‘자연적’ 세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의 필요로 생산된 ‘인간적’ 세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가 인간을 자연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로 파악하듯이, 자연 역시 ‘자연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 세계로 파악되는 변증법적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통일이 이루어진다. 마르크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연의 인간적 본질은 사회적 인간에게서 비로소 존재한다. [...] 이 경우에 비로소 인간의 자연적 현존(Dasein)은 인간에게 인간적 현존이 되었고, 자연은 인간을 위해 인간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므로 사회는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본질적 통일체이며 자연의 진정한 부활이요, 실현된 인간의 자연주의(Naturalismus des Menschen)이며, 실현된 자연의 인간주의(Humanismus der Natur)이다.”
여기서 초기 마르크스가 추구하는‘인간과 자연의 통일’의 의미가 드러나는데, 이는 유적 존재인 인간의 전인적 보편성이 완전히 실현되고, 자연이 완전히 인간 삶의 일부로 전화된 상태를 뜻한다. 즉 자연 전체가 인간의 목적에 따라 개조되어 인간적인 삶이 실현된 사회상태를 의미한다.이렇게 외부 자연이 인간의 노동을 통해 사회로 현실화하는 동시에 인간 또한 자연과의 상호작용으로 자신의 자연(본성)이 변화되는 것을 ‘자연의 인간화와 인간의 자연화’라는 명제로 표시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상적 유토피아로서 공산주의에서 이 명제가 실현되고, 인간과 자연의 모순이 해결되어 양자의 통일이 가능함을 주장한다.
“인간의 자기소외로서 사유재산의 적극적지양으로서의 공산주의, 따라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적본질의 현실적 획득으로서의 공산주의, 따라서 사회적, 즉인간적 인간으로서 인간의 자기 자신으로의 완전하고 의식적인 귀환, 그리고 지금까지 발전의 전체적인 부(Reichtum)안에서 형성된 귀환으로서의 공산주의. 이러한 공산주의는 완성된 자연주의=인간주의, 완성된 인간주의=자연주의로서존재하며,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의 진정한해결이며, 실존과 본질, 대상화와 자기 확인, 자유와 필연성, 개체와 유(Gattung)사이에 발생하는 투쟁의 참된 해결이다.”
공산주의에서 목표로 하는 소외되지 않은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지향하는 공산주의는 “인간주의=자연주의”의 완성체로서,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획득하고 주체와 객체의 대립을 극복하여, 더는 인간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의 인간화와 인간의 자연화’라는 명제는 –그 속에 인간중심주의적 요소가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와 자연에 대한 착취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에서 바로 자본주의적 경제관과 자연관에 대한 비판의 서막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명제에서 마르크스의 선구적인 생태학적 통찰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3. 마르크스의 물질대사론
1) 물질대사 개념
마르크스는 자연을 비역사적으로 전제하는 포이어바흐의 입장에 반대해서, 인간과 자연 문제를 노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양자의 구체적 상호작용 속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그가 『경제학-철학 수고(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1844)에서 포이어바흐의 ‘유적 존재’ 개념에 기반해 설명한 ‘자연의 인간화와 인간의 자연화’ 과정은 인간과 자연을 상호 관계적 존재로 다루지만, 낭만적이라고 할 정도로 추상적 차원의 존재론적 진술에 불과하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이런 철학적 추상성을 극복하기 위해『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1845-1846)에서 인간과 자연 간의 특정한 역사적 상호작용에 주목하면서 유물론적 방법으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와 자연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청년 헤겔학파의 철학적 패러다임과 결별한 이후 마르크스는 인간과 자연의 소외 문제를 “인간주의=자연주의”라는 철학적 이념에 대비시키는 대신, 인간과 자연의 분리와 소외가 자본주의 생산양식 아래에서 어떤 이유와 과정으로 심화하는지를 탐구한다. 『독일 이데올로기』 이후 정치경제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심도 있는 연구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자본주의적 생산과 이에 상응하는 인간과 자연 관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고찰하려는 그의 프로젝트의 발전적 모습이다. 여기에서 ‘물질대사(物質代謝, Stoffwechsel)’라는 자연과학적 개념이 마르크스의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로 등장한다.
‘물질대사’ 개념은 사전적으로는 생물체가 “외부로부터 섭취한 물질을 합성이나 분해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로 바꾸고, 불필요한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생리적 작용을 말한다. 이 개념은 생물체와 환경의 복잡한 상호 조절 과정을 통해 생물학적 성장과 쇠퇴를 포착하는 것으로, 그 자체에 ‘물질교환’(질료변환)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19세기 사회이론에 근거해 물질대사 개념을 사회에 적용한 인물로서 노동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후기 저서에서 물질대사 개념을 사용한다.이 개념에 근거해 그는 노동과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개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노동과정 전체의 분석에 따르면, 경제적 순환의 과정은 물질교환과 밀접하게 결합해 있고, 이는 다시 인간과 자연 간의 물질대사적 상호작용과 관련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물질대사 개념을 두 가지 맥락에서 사용한다. 먼저 생태학적 의미 차원에서 노동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에 이루어지는 물질대사적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물질대사 개념을 사용한다. 이 개념은 ‘자연의 인간화와 인간의 자연화’라는 초기 마르크스의 철학적 견해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 인간과 자연의 근본적 관계를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이론적 표현을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은 인간화되고 인간은 자연화된다는 실제적 내용을 담고 있는 물질대사 개념은 ‘인간의 일방적 자연 지배’라는 근대 자연과학 패러다임의 오만함을 넘어 자연을 인간의 소유물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초기 저서『경제학-철학 수고』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그 싹이 보이고, 후기 저서『런던 노트(London Notebooks)』(1850-1853),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1857-1858), 『자본』(1867-1894)에서 사용된 물질대사 개념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생태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마르크스는 사회적 의미 차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형태로 등장하고 재생산되는 인간의 욕구와 관계들 그리고 이로부터 제기되는 자유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물질대사 개념을 사용한다. 이 개념을 통해 마르크스는 인간의 현실적 욕구 충족을 위한 노동과정 전체, 곧 ‘사회적 물질대사’의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과 자연 간의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상호교환을 철저히 규명한다. 인간과 자연 관계에서 물질대사 개념은 ‘자연이 부과하는 조건’과 이 과정에 영향을 주는 ‘인간의 능력’, 양쪽을 모두 포괄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물질대사를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과정이자 인간 생활의 자연조건인 노동과정의 측면에서 파악할 경우, 인간이 그 자신의 행위를 통해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측면이 강조된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또는 노동이 현실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떠한 사회적 규정을 받으며, 또 그것이 어떻게 균열·파괴되거나 합리적으로 관리(규제, 통제)되는지가 중요하다. 이 점에서 사회적 물질대사는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에 생태사회주의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2) 물질대사의 균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생산양식이 자본 축적을 위해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를 어떻게 자본주의적으로 변형하고, 또 이를 통해 자연환경에서 부조화와 불일치가 일어나는지를 연구하였다. 자본주의에서 왜곡된 물질대사는 인간과 자연의 소외 형태인 물질대사의 ‘균열(Riss)’ 또는 ‘교란(Störung)’을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인간이 생존의 기반인 자연으로부터 물질적으로 소외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와 그 관계에서 생기는 균열 개념을 사용했다.
물질대사 개념은 마르크스가 초기부터 중점적으로 비판했던 문제, 즉 인간의 노동생산물로부터 소외 및 이와 관련된 인간의 여러 소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초기 저서 『경제학-철학 수고』에서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이 삶에서 심각한 빈곤과 의미 상실과 같은 부정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철학적 통찰력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 자본주의에 대한 생태학적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의미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그 후 마르크스는 초기 분석의 이론적 맹점을 점차 인식하기 시작했고, 정치경제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통찰력을 더 깊이 발전시켜 나갔다. 이는 말기의 경제학 저서들에서도 유지되었는데, 예를 들면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소외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살아서 활동하는 인간들과 이들의 자연과의 물질대사의 자연적·비유기적 조건들의 통일 그리고 이들의 자연 점유(Aneignung)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이 비유기적 조건들과 이 활동하는 존재의 분리, 즉 임금노동과 자본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완벽하게 정립된 바와 같은 분리는 설명이 요구되거나 역사적 과정의 결과이다. 이런 분리는 노예 관계 및 농노 관계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사회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 자체에 의해서 자기 자신의 재생산을 위한 비유기적·자연적 조건으로 취급된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생산활동을 하는 인간이 생존의 비유기적 조건인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는 현상을 초기의 포이어바흐적인 용어가 아닌 ‘자연과학적’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이 현상을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에 필요한 객관적 조건에서 인간이 유리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생산자로서의 인간이 자연과 통일되지 않고 분리되는 과정을 근대 부르주아 사회로의 결정적인 이행으로 간주하는 마르크스는 이를 역사적 과정으로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 작업인 정치경제학 연구에 몰두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인간과 자연 관계에 대한 개념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이처럼 자연과 사회에 적용되는 물질대사 개념은 마르크스 사상을 생태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유기체로서의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과 끊임없이 물질대사를 한다. 문명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인간은 물질대사를 원활히 하기 위해 자연에 적합한 상태가 되도록 노력해 왔다. 그러나 산업과 문명이 일정한 단계를 넘어 발전하자, 인간의 물질대사적 활동이 기존의 자연과 환경을 인간 생존에 적합지 않은 상태로 변화시킴으로써, 마침내 물질대사 과정이 개악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인간과 지구 환경 사이의 물질대사 관계에 균열이 생김으로써 인간의 삶 자체가 곤경, 즉 생존을 위협받는 생태계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특히 거대한 규모의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과 토지 사이의 물질대사에 균열이나 교란을 초래하여 자연의 지속 가능한 조건을 훼손한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발전은 노동생산물의 물질대사를 상품교환의 과정인 ‘사회적 물질대사’ 과정으로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적대적 분업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을 파괴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도시인구를 대도시에 집중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의 역사적 동력을 집적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과 토지 사이의 물질대사를 교란한다. 즉 인간이 음식과 의복의 형태로 소비한 토지의 성분들을 토지로 복귀시키는 것, 즉 토지 비옥도를 지속할 영구적인 자연조건을 교란한다. 그럼으로써 자본주의 생산은 도시노동자의 육체적 건강과 농촌노동자의 정신생활을 동시에 파괴한다.”
마르크스의 설명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인한 물질대사의 균열로 토지의 작용력이 고갈되고 토지의 자연적 성질이 황폐해진 다음에야 우리는 토지에 관심을 가지고, 도시와 농촌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살피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자본』 제1권 13장의 끝부분 「대공업과 농업」에 관한 서술에서 자본주의의 생산력 발달이 초래하는 진보의 역설적 상황과 그것이 가져올 자연환경의 황폐화를 강하게 비판한다.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를 약탈하기 위한 기술상의 진보일 뿐만아니라 토지를 약탈하기 위한 기술상의 진보이고, 일정 기간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는 모든 진보 또한 이 생산력의 항구적인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이다. 예를 들어 미국처럼 한 나라가 대공업을 발전 배경으로 하여 출발할 경우, 이에 비례하여 토지의 파괴과정도 그만큼 더 급속해진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함으로써만 각종 생산과정을 하나의 사회 전체로 결합하여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킨다.”
이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말하는 진보가 자연환경의 질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진보 자체의 아이러니, 즉 진보가 오히려 파괴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속적인 자연조건을 침해한다는 관점에서, 노동자들과 자연의 착취를 자본주의적 대공업과 농업의 약탈적 논리의 결과로 설명한다.
특히 『자본』 제3권 47장 「자본주의적 지대의 발생사」에서 ‘물질대사의 균열’ 개념을 구체화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파괴적인 힘이 자연의 보편적인 물질대사를 붕괴시킴으로써, 결국 인간의 자유롭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적 농업에 대한 리비히의 비판에 근거해 토지의 착취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하면서, 특히 대규모 공업과 농업이 어떻게 결합해 노동자와 토지를 황폐화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대토지 소유는 농업인구를 끊임없이 감소시켜 최소한의 수준으로 만들고, 이들을 대도시로 밀집시켜 공업인구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킨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회적 물질대사와 자연적인, 즉 토지의 자연법칙에 의해 규정된 물질대사의 연관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을 발생시키는 조건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지력이 낭비되고, 이 낭비는 무역에 의해 한 나라의 국경을 넘어 멀리까지 확대된다(리비히). [...] 대공업과 산업적으로 경영되는 대농업은 함께 협력한다. 원래 이들 양자가 전자는 보다 많은 노동력 즉 인간의 자연력을, 후자는 보다 많은 토지의 자연력을 각각 파괴하고 낭비함으로써 서로 갈라져 있었다면, 그 후의 발전 과정에서는 농촌에서도 공업제도가 노동자들을 무력화하고 공업과 상업은 농업에 대해서 토지를 황폐화하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양자가 서로 결합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농업과 관련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비판하며 생태학적 접근 방식을 취하는 마르크스를 발견한다. 사실 그는 『자본』을 집필하던 1860년대에 자본주의적 농업이 물질대사를 교란한다는 리비히의 논의와 함께 자본주의에서 산업화한 삼림 벌채가 기후 변화를 초래한다는 농식물학자 프라스(Carl Nikolaus Fraas)의 논의를 수용하여 자본주의적 농업의 지속 불가능성을 확신한다. 이렇게 자본주의에서 이루어지는 자연 약탈을 비판하는 리비히와 프라스를 따라 마르크스는 물질대사의 균열 이론을 심화·발전시킨 이후, 자본주의 비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생태학적으로 변모시킨다. 따라서 그는 후기로 갈수록 도시와 농촌의 적대적 노동 분업이 초래한 생태적 재앙을 토지 영양분 순환의 파괴로 인한 물질대사의 균열과 연결해 설명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업과 농업 생산의 친밀한 관계를 재확립하는 데 필요한 사회주의적 비전을 제시한다.
한편 마르크스는 도시와 농촌의 적대적 분업으로 인한 물질대사의 균열을 일국의 국지적 수준을 넘어 전 지구적 차원의 국제적 수준에서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대영제국이 모든 국가로부터 그곳의 비옥도 조건들을 약탈하고 있다며 아일랜드를 그 극단적 사례로 제시하는 리비히에 따라, “잉글랜드가 아일랜드 농민에게 소모된 토지 성분을 보전할 수단조차 남겨주지 않음으로써 지난 150년 동안 간접적으로 아일랜드의 토지를 수출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세계사에서 우리는 식민 모국이 산업화를 지탱하기 위해 식민지의 토지, 자원, 토양을 강탈한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생태제국주의(ecological imperialism)’, ‘부등가 생태교환(unequal ecological exchange)’ 같은 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북반구 선진국들은 자국민의 풍요로운 생활양식, 즉 “제국적 생활양식(imperiale Lebensweise)”을 유지하기 위해 남반구 후진국들의 노동력과 자연 자원을 희생시킴으로써 그들에게 생태적 위험을 전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산업화의 지속 및 생산력과 무역의 발전을 통해 자본의 규모를 확장하려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향은 전 지구를 무대로 저렴한 노동력과 원료(식품, 에너지)를 찾아 나섰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생활양식과 자연 자체를 파괴하였다. 아마존 지역의 대규모 벌목, 중국의 광산업으로 인한 물, 토양, 공기 오염, 멕시코만의 석유 유출 사고 등은 자연 자원의 활용 과정에서 심화된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 인류가 성취한 다양한 혁신과 급속한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균열을 더욱더 심화하여 인간 개성의 자유롭고 지속적인 발전을 방해한다. 따라서 인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주의는 완전히 비합리적인 체제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는 토지를 착취하고 황폐화하는 자본주의적 농업 생산을 비판하면서, “토지를 항구적인 공동소유로서, 양도할 수 없는 인류 대대손손의 생존과 재생산 조건으로서 의식적이고 합리적으로”관리하는 일을 사회주의의 근본 과제로 간주한다.
3) 물질대사 균열의 극복과 새로운 사회
지금까지 도시와 농촌의 적대적 분업, 대규모 공업과 농업의 약탈적 논리 등으로 인한 물질대사의 균열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유래하고, 이는 바로 생태 위기와 지속 불가능성의 문제를 낳는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마르크스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가? 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서에서 자연환경 또는 생태문제를 일반화된 이론으로 발전시키거나 체계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았고, 때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끼치는 ‘문명화 영향’을 비판 없이 찬양하기도 했지만, 저서의 군데군데 자본주의에 대한 생태학적 비판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문제해결 방안을 찾아보도록 하자.
마르크스는 자연의 황폐화를 인간의 본성이나 생산 자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의 왜곡된 물질대사의 결과로 간주하고, 그 해결 방안으로 인간과 자연 관계의 혁명적 변화를 주장한다. 다시 말해 문제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에서 왜곡된 양자의 물질대사 형태에 있으므로 이를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층 높은 수준에서 물질대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하거나 통제할 대안으로서 ‘새로운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란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합하는 사회’를 말하며, 여기서는 인간 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사라져 자유로운 인간(생산자)들이 합리적으로 물질대사를 관리함으로써 자연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고 한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는 자본과 임노동이 지배하는“자연적 필연의 왕국(Reich der Naturnotwendigkeit)”을 넘어서야합리적인 물질대사 관리와 진정한 인간적 활동이 가능한 새로운 사회, 즉 “참된 자유의 왕국(das wahre Reich der Freiheit)”이 실현된다고 말한다.
“이 영역[자연적 필연의 왕국]에서의 자유는 오직 다음과 같은 것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즉 사회화된 인간, 연합한 생산자들(die assoziierten Produzenten)이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그 물질대사가 맹목적인 힘으로서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물질대사를 공동의 통제하에 두는 것, 그리하여 최소한의 힘을 소비하여 그들의 인간 본성에 가장 알맞고 적합한 조건에서 이 물질대사를 수행하는 것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인간이 최소한의 힘과 인간 본성(인간적 자연)에 적합한 조건에서 합리적으로 물질대사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듯이, 물질대사 문제는 노동의 소외가 사라지고 인간이 인간뿐만이 아니라 자연과도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전망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물질대사의 합리적인 관리의 실현이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력을 사회적으로 통제할 필요성”, 즉 물질대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사회 제도적 차원의 소유양식과 생산양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에서 자유롭게 연합하는 인간들이 물질대사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회주의 차원에서 사유재산의 지양과 자연 보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토지의 사적 소유를 비판하면서, 사람들이 소유자가 아닌 점유자로서 토지를 잘 보존하고 관리해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을 주장한다.
“더 높은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Erdball)를 개인의 사적 소유로 삼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만큼이나 황당무계한 것으로 보인다. 한 사회 전체나 한 국가, 또는 동시대의 모든 사회를 합친다고 해서 이것들이 토지(Erde)의 소유주(Eigentümer)는 아니다. 이것들은 토지의 점유자(Besitzer)이자 그것의 수익자(Nutznießer)에 지나지 않으며, 좋은 가장으로서 그 토지를 다음 세대에게 더 개량된 상태로 물려주어야만 한다.”
이처럼 미래 후손들의 생존조건인 자연환경의 보존과 관리를 위하여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기획 아래 인간이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의식적으로 재조직하는 실천적 작업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잉여가치의 증식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물질대사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농업경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생산의 자연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변증법적으로 파악할지라도-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생산의 자연적 측면)를 원활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생산의 사회적 측면)의 변혁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생산의 사적 성격과 임금노동을 철폐하는 생산관계의 변혁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새로 구성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재통합(인간주의=자연주의)이 이루어지고, 결국 인간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는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변혁의 실행에 있어서 객관적인 조건인 물질적 생산양식의 변혁과 더불어 주체적인 원동력으로서 사회구조 전체를 바꿀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통해 마르크스가 오늘날에도 유용하고 의미 있는 방법과 통찰을 제공한다는 ‘생태사회주의(ecosocialism)’의 견해를 발견한다.
4. 마르크스 물질대사론의 생태학적 현재성
이상에서 우리는 『경제학-철학 수고』를 중심으로 하는 초기 마르크스의 자연관과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후기 마르크스의 물질대사론을 살펴보았다. 특히 포이어바흐류의 자연주의적 추상성을 벗어나지 못한 초기 마르크스의 ‘자연’ 개념보다 후기 마르크스의 ‘물질대사 균열’ 개념이 그의 사상을 생태학적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이 균열 개념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교란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소외 현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윤 추구를 위해 인간을 착취하고 자연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과정은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인 동시에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균열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 소외와 자연 소외라는 양면의 모순을 초래하는 균열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도시와 농촌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이런 맥락에서 초기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을 당대 자연과학 연구를 통해 더욱 발전시킨 물질대사의 균열 개념은 도시와 농촌의 대립 관계 분석, 자본주의적 농업의 비판, 인간과 토지 사이의 물질대사 복원에 대한 그의 주장을 오늘날 생태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농촌의 식량 생산은 도시의 인구를 부양하는 데 맞추어져 영양물질의 순환을 막고 있으며, 도시는 대량의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사용하지만 식량을 생산하지 않고 물과 공기를 정화하지 못한다. 그러면 이 모순을 제도적 차원에서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고, 그것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생태 위기의 시대에 마르크스의 생태사상, 즉 물질대사론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가?
마르크스와 더불어 엥겔스가 지속 가능한 미래 사회를 구상하면서 “도시와 농촌 간 대립의 지양은 농업 생산 나아가 공중 보건에서 필연이 되었듯이, 공업 생산 그 자체에서도 직접적으로 필연이 되었다. 도시와 농촌의 융합만이 오늘날의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등을 제거할 수 있다.”라고 언급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왜곡된 물질대사를 정상적이고 최적의 상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친환경적 사회로의 이행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제도적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최적의 상태로 조절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고,더욱이 기후 위기와 같은 국제적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전 지구적인 협력과 조율이 절실히 요구된다.
기존 자본주의 체제가 자연환경이나 생태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생태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적 접근과 대안은 아직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의 생태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및 자본의 무한한 축적에 내재된 파괴적 논리에 대한 뛰어난 분석에 기반해 자본주의 시스템의 파행적 작동기제와 이로 인한 환경 파괴를 비판하며, 마르크스가 말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란 인간 개발보다 성장중심의 경제 개발을 우선시하며, 독재적인 계획경제 아래 생산을 민주화(사회화)하지 않고 국가화함으로써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환경 파괴를 조장한 20세기의 ‘국가사회주의’(구소련 같은 국가 집권형 사회주의)는 아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경제 개발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혁명하는 것, 즉 인간 소외와 자연 소외 모두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회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마르크스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생태사회주의자들의 기본 입장에 따라 그의 자연관과 물질대사론이 지닌 생태학적 함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생태사회주의자들은 현재의 생태 위기와 관련해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이는 마르크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의 저작에 담긴 생태학적 함의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거나, 역사적인 한계(과학의 발전이 충분치 않았던)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저작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거나 보완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통찰력을 현재의 생태 위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연구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1868년 이후 마르크스의 자연과학(화학, 지질학, 광물학, 농화학) 발췌 노트를 깊이 연구한 사이토는 마르크스가 리비히와 프라스의 이론 수용을 통해 “프로메테우스주의적인 사회 발전 모델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인간 발전을 전망하는 비판적 이론을 수립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물질대사론에 기반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현재의 생태 위기를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데 상당히 유용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사실 만년의 마르크스는 추상적 이념이 아닌 물질대사의 구체적 논리에 주목함으로써, 농업을 위시한 다양한 영역에서 물질대사의 고유성과 다양성이 추상적인 자본 축적의 운동에 저항하는 강고한 거점이 된다는 점을 알았으며, 이를 통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을 위한 노동자들의 연합 가능성을 제시하였다.이처럼 자연의 순환에 맞게 생산양식을 바꾸려는마르크스의 물질대사론은 시대적 제약을 넘어, 현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방법론적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생태학적 의의를 지닌다. 그동안 우리에게 잊혔던 마르크스는 아직 살아 있다. 생태 위기의 시대에 인간과 자연의 온전한 물질대사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그의 부활을 꿈꾸며 소리 높여 외쳐 본다.
“마르크스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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