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의 발자취를 되돌아 봅니다.
1911년 4월 22일, 신설 대목구의 주교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조선으로 향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서 보낸 전보 한 통이 서울에 도착했고, 뮈텔 주교는 새벽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다 자신의 방 앞에 놓인 전보를 발견했습니다. 드망즈 신부가 대구대목구의 초대 주교로 임명되었다는 통지였습니다.
뮈텔 주교는 곧장 경향신문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주교님이 되셨습니다.” 일과를 준비 중이던 드망즈 신부를 포옹하며 축하의 말과 함께 직접 전보를 건넸습니다.
주교 성성은 삼위일체 대축일인 6월 11일에 거행되었습니다. 드망즈 주교는 주례 축성주교인 뮈텔 주교와 만주 교구장인 두 명의 공동 축성주교에 의해 주교로 축성되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대구의 신자들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6월 26일, ‘신뢰하고 일하라(Confide et Labora)’를 사목 지표로 세운 대구대목구 초대 대목 구장 드망즈 주교는 ‘나눠줄 재산이 없으니 가난이나 함께 나누자’는 뮈텔 주교의 배웅을 받으며 마침내 대구로 향했습니다.
대구역에서는 이미 수많은 신자들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린 드망즈 주교는 부산, 마산 등 각 지역에서 달려와 역을 가득 메우고 있던 2천여 명의 신자와 학생들에게 강복을 주고 계산성당으로 향하는 행렬 마차에 올랐습니다. 신자들과 선교사들이 뒤를 따르던 행렬이 시가지를 가로지르자 거리에는 구경하는 시민들까지 몰려들었습니다. 계산 성당 정문에서 공식적인 영접을 받고 성당 안으로 들어선 드망즈 주교는 감사의 찬가 ‘테 데움 (Te Deum)’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구대목구의 첫 대목구장으로 착좌했습니다.
자생적 신앙과 평신도의 헌신 위에 세워진 교구가 마침내 주교좌를 갖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밤, 대구는 축제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불꽃놀이와 환영 행사가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다음 날 드망즈 주교는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첫 번째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어 6월 29일, 초대 대목구장으로서 첫 공문을 발표하며 대구대목구의 행정과 사목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렸습니다.
대구주보(26년 02월 08일) 교구 문화홍보국 장성녕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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