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있다. 정말 버릇이 그렇게 고쳐지지 않는 것일까?
심리학에서 파이크 증후군(Pike Syndrome)을 말하는데 과거의 실패 경험이나 제약에 갇혀, 실제로는 할 수 있는데도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고 경직되는 행동 심리 현상이다. 여기서 파이크는 민물 창고기이다. 투명한 수조에 물을 넣고,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파이크를 넣고 중간에 유리 벽을 임의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비어있는 수조에 작은 물고기들을
넣었다. 파이크는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힘차게 돌진하지만, 중간에 가로막혀 계속 머리를 부딪친다. 배가 고픈 파이크는
여러 차례 고통과 실패를 경험한다. 결국 먹이 사냥을 포기하고 수조 구석에 가만히 머물게 된다. 수조 중간에 가로막고
있는 유리 벽을 제거해 본다. 이제 파이크는 헤엄쳐 가기만 하면 먹이를 먹을 수 있지만, 이전의 실패 기억 때문에
더 이상 시도하지 않고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는 실험이다.
이런 경험은 인간에게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군에서 근무하면서 시간에 맞춰 의식주를 해결해 주니까 건강하고 강건하다.
제대한 후 1달이나 2달 정도 규칙적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캥거루가 아닌 이상 이성이 있는 인간은 살 궁리를 한다.
결국 새로운 환경으로 전환하여 적응하려고 발버둥 친다. 그런데도 과거에 숨긴 DNA는 환경이 바뀌도 되살아나는 듯하다.
이것은 파이크 증후군과 유사하지만 다르다. 증후군은 후천적이라면, 본성이 되살아나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선천적이다.
이런 의미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문구를 어른들이 사용했다.
후천적으로 얻은 것인지, 선천적으로 얻은 것인지에 따라 당사자의 정신 상태는 다르다. 누군가를 중생의 경험을 한 자라고
가정해 보자. 새 사람일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고, 새 삶을 살기도 결의만 아니라 결단하고 결심하며 산다.
성경에 있는 여러 명령에 대해서도 요리조리 해석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산다. 자신의 신념과 유사하면 순종하기 쉽고
흥미롭게 지낸다. 근데 상이하다면,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무리 영적으로 중생이 됐다고 가정하더라도 심한 경우이다.
그래서 숨긴 옛 본성, 아니 옛 본성이 아니라 여전히 묻어둔 본성이지만 이것이 터져 나온다.
증후군이면 훈련을 통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선천적이면 문제는 달라진다.
중생 됐다고 확신하는 자라면 이 현상을 심각하게 살펴봐야 한다. 대충 넘어가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이다. 근데 그분의 말씀도, 명령도, 삶도 따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유사 그리스도인이든지 바리새파인지 할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절대 전이하지도 않은 자는 중생이란 단어를 붙여선 안 된다.
거듭난 것이기에 옛 사람과 새 사람 간의 구분은 분명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중생의 경험을 하지 않은 경우엔
칼빈 선생의 설명처럼 하나님의 적이거나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신자들 무리에 어울려 살면서 성령하나님의
일반적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자신을 부인하여 그리스도를 닮는 데 있어 한 치 양보도 없다. 환경만 조성되면
언제든 본색, 즉 본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증후군이 아니라 유기된 자이다. 교회당에 출석하거나 일반적 활동에 참여했다면,
그것은 자신이 하고 싶어서 자발로 행한 신념이더라도 외식한 것이다. 외식하는 자의 특징은 게으름이다.
신앙생활을 잠시 쉰다고 해서 증후군이나 어려움 때문이라고 왜곡하면 안 된다. 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