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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산요수산행방 원문보기 글쓴이: 요산요수
사 진 : 본 인
날 짜 : 2 0 0 9월 5월 24일 날 씨 : 맑음. 이상고온, 시계 좋음
행 선 지 : 속리산(俗離山 천왕봉 1,058m)-문장대-밤티재 능선종주
산행취지 : 牛腹洞天環從走(우복동천환종주) 2구간 산행
참가인원:영시미,산수유,박선미,비비츄,유진수,미광,이근욱,창바우,보람,김종길,현경희,한동일,박윤희,박순고,이옥남,박희옥,외 2명,메아리,최희주,요산요수 22명
글 쓴 이 : 요산요수 (류 인 호)
산행시점, 종점 :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만수리(만수동) -> 경북 상주군 화북면 장암2리(밤티재)
전체코스 : 회란석-도장산-갈령-형재봉-피앗재-천왕봉-문장대-밤티재-늘재-청화산-시루봉-회란석
이번코스 : 만수동~피앗재~대목리갈림길~천왕봉~입석대~신선대~문장대~입석바위~594봉~밤티재
산의 특성: 피앗재~천왕봉은 지루하지만 이후 문장대까지 멋진 경치였고,암릉구간은 상당히 위험하다.
지점별 통과시간 및 특징 :
-08 : 31~44 만수동(천혜비경 만수동 피앗재산장에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골짜기로 접근한다.)
-08 : 54 산길시작(시멘트도로가 굽어지는 곳에서 직진, 산길로 골짜기를 오르니 피앗재 도착)
-09 : 19~25 피앗재(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오르막길을 올라 639봉을 넘어 안부를 거처 다시 오르막)
-09 : 51~54 667봉(공터 삼거리서 10방향으로 내려갔다 봉우리 한 곳을 지나자 오른쪽에 전망터)
-10 : 11~14 전망터(천왕봉과 장각동이 잘 보이는 전망대에서 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10 : 34 폐헬기장(726봉을 지나고 민둥봉을 거쳐 폐헬기장을 지나 능선 좌사면길을 돌아간다.)
-10 : 44 703봉(묵묘)(묘를 지난 봉우리를 넘어 급경사길을 내려갔다 암릉을 통과한 후 오름길)
-10 : 59 전망바위(뒤쪽 전망이 좋은 전망터를 지나고 만수동 샛길을 지나 은근하게 오른다.)
-11 : 33~40 묘(잘 가꾼 묘에서 샛길을 확인하고 휴식 후 무명암봉을 넘어서자 안부에 내려선다.)
-11 : 47~49 대목리사거리(개념도가 있는 사거리에서 나무 계단오르막을 오르다 우측에 천왕샘.)
-12 : 01 천왕샘(반석위에 고인 물을 확인하고 계속 오르다 좌측 갈림길을 재차 확인한다.)
-12 : 08 한남금북정맥갈림길(수없이 많은 표시기를 확인하고 잠시 오르자 속리산 최고봉 도착)
-12 : 11~15 천왕봉(정상석은 없어지고 삼각점과 조망도만 확하고 조망터를 지나 헬기장에 도착)
-12:26~13:06헬기장(점심)(수 많은 인파속에 느긋하게 점심식사와 휴식 후 출발 6분 만에 삼거리)
-13 : 12 삼거리(좌측 상고암 길이 있는 삼거리에서 1시 방향으로 진행하자 좌우에 전망바위)
-13 : 18-21 전망바위(돌길을 지나 좌측에 전망바위에 올라 전후좌우를 조망한 후 진행하자 석문)
-13 : 24 천황석문(삼각형의 석문을 통과하여 돌길과 계단길을 오르며 좌우에 기암들을 구경)
-13 : 42 홈통바위(계단)(┌자 길로 봉우리로 올랐다 기암사이 나무계단을 넘자 또 홈통바위)
-13 : 54~59 전망바위(역시 좌측에 전망바위에 올라 다른 때 못 본 기암들을 살펴보며 휴식한다.)
-14 : 09 동릉입구(산죽밭 속 우측에 동릉으로 가는 산길을 확인하고 나무계단길을 내려간다.)
-14 : 16~20 입석대(←천황봉1.6k/문장대1.9k→에서 좌측 산길로 들어가 입석대를 구경후 원길로)
-14 : 31~37 조망바위(작은 봉우리를 넘어 좌측 조망바위를 올랐다가 내려와 봉우리를 넘어선다.)
-14 : 45~47 경업대갈림길(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1시 방향으로 진행 신선대에 도착)
-14:49~15:06신선대(속리산 능선중에 유일한 매점에서 휴식 후 돌계단을 내려갔다 오르기를 반복)
-15 : 18 산수유능선입구(돌계단길을 몇 곳 오르다 우측에 산수유능선 입구를 지나도 계단길)
-15 : 35 전망바위(공터만 남은 매점앞 사거리직전 전망바위를 올랐다가 다시 문장대로 오른다)
-15 : 42~55 문장대(언제 올라도 시원한 문장대에서 느긋하게 조망을 한 후 다시 매점터로 하산)
-16 : 10 능선길로(능선길로 들어가기 시작, 8분만에 본 능선에 들어서자 바로 통천문에 도착)
-16 : 24~37 통천문(힘들게 통천문을 통과하자 또 틈새바위를 넘어 바위사이를 조심스레 내려선다)
-16 : 47 바당바위(좌사면 Y자길에서 우측길로 올라 마당바위에서 휴식 후 내려서니 암릉지대)
-16:55~17:12대암릉줄구간(긴 줄을 잡고 슬랩을 하강하고 바위사이를 정체되여 통과하는 협곡지대)
-17 : 18 줄잡고 돌아감(홈통바위를 지나 능선길 안부를 지나고 밧줄을 잡고 바위를 돌아간다.)
-17 : 23 개구멍(Y자길 좌측으로 진행하여 좁은 바위틈새를 힘들여 통과하지만 다시 힘든 코스)
-17 : 35~40 덮개바위(바위가 덮힌 틈새로 옆드려 밧줄을 잡고 올라서서 암봉을 돌아 넘어간다.)
-17 : 42 전망바위(학소대 위쪽 조망이 정말 좋은 전망바위에서 잠시 머문 뒤 서둘러서 하산.)
-17 : 52 홈통바위(밧줄)(밧줄 2곳을 지나 바위사이에 밧줄이 짧아 힘든 구간 내려서니 순한길)
-18 : 12 ㅏ삼거리(우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봉우리를 넘어선다.)
-18 : 17~20 입석바위(오르막을 오르다 우측에 있는 입석바위에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18 : 38 옛밤티재(밧줄을 한 번더 잡고 내려간 후 능선을 따르다 예전 밤티재를 지나 오른다.)
-18 : 41~46 594봉(묘.삼거리)(묘가 있는 봉우리, 우측은 견훤산성 길이므로 11시방향으로 내려감)
-18 : 55 파묘터(안부를 거쳐 파묘한지 몇해 안된 터를 지나 Y자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19 : 02 묘2기(상하 2기의 묘가 있는 곳에서 큰길의 망을 보다가 묵밭을 지나 도로로 나간다.)
-19 : 05 밤티재(기다리던 버스에 승차하자마자 서둘러 어둠이 내리는 밤티재를 출발한다.)
참 고 지 도 : 속리(俗離)(50,000/1국립지리원발행),렌덤우스중앙(5만/1).상주명산 부록지도
예 상 시 간 : 9시간
실제등산시간 : 08 : 44~ 19 : 05 (10시간 21분)(산행시간, 휴식시간 포함) 널널산행
실제산행거리 : 약 15.321km(GPS 측정거리)
구간거리:만수동(1.585km)-피앗재(5.66km)-천왕봉(2.58km)-신선대(1.17km)-문장대(0.847km)-통천문(0.244km)-긴밧줄암릉(0.349km)-멋진조망바위(0.97km)-입석바위(0.753km)-견훤산성갈림길(1.163km)-밤티재
산행한 동기와 개요
道不遠人 人遠道(도불원인 인원도) : 도가 사람을 멀리하지 않건만 사람이 도를 멀리 하고
山非離俗 俗離山(산비이속 속리산) : 산은 세속을 떠난 것이 않건만 세속이 산을 떠났도다.
이 글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이자 시인인 白湖(백호) 林悌(임제)께서 속리산 현재의 慕賢庵(모현암) 근처에 왔다가 이글을 읊었다 한다. 임제는 조선 중기, 그러니까 16세기 때 네 차례의 사화로 선비들이 비명횡사하거나 권력투쟁에 희생이 될 때 기개 있는 선비들은 출사를 포기하고 강호로 숨어들어 속리산에 은거하던 대곡(大谷) 성운(成運, 1497~1579)으로부터 3년간 가르침을 받을 때 '중용'을 8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위 시는 중용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인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으나(道不遠人), 사람이 도를 행한다면서도 사람을 멀리하면(人之爲道而遠人), 도를 이룰 수 없다(不可爲而道)“에서 운(韻)을 빌려온 듯하다.
이번에 산행하는 2구간인 속리산구간은 이미 여러번 산행을 하여 중복된 산행이었지만 천왕봉에서 문장대까지 한 곳도 빼지 않고 밟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기쁨이 배가 되었으며 날씨 또한 흐렸지만 비가 오지 않아 원만한 산행을 마쳤다. 하지만 문장대에서 밤티재구간은 역시 국립공원관리동단에서 비정기 등산로로 지정되어 감시원들의 눈치를 보며 마치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산행을 하였지만 험난한 코스와 10시간이 넘는 산행에도 불평없이 따라준 일행들이 한 없이 고마웠다. 2구간 코스는 다음과 같다.
2 구간(속리산)
만수동(1.2km)-피앗재(5.8km)-천황봉(3.6km)-문장대(3.3km)-밤티까지 총 14.9km
牛腹洞天(우복동천)과 環從走(환종주=둘레잇기)코스 소개
문장기운(文藏起雲)=문장대를 일어나는 구름 견훤모아(甄萱暮鴉)=견훤산성의 저녁나절 까마귀
오송비폭(五松飛瀑)=오송폭포의 날리는 폭포수 초산목적(草山牧笛)=초산의 목동의 피리소리
도장낙조(道藏落照)=도장산의 해지는 저녁노을 삼봉제월(三峯霽月)=삼봉산에 비 개인 후 뜨는 달
원적효종(圓寂曉鍾)=원적사의 새벽 종소리 부소어옹(釜沼漁翁)=가마소에서 고기 잡는 늙은이
위 글은 상주시 화북면에서 우복동 주위의 8경을 발표한 글이다. 이글이 말하는 牛腹洞天(우복동천)이란 소의 뱃속(자궁을 뜻함) 모양의 명당터를 일컫는 말로 예부터 영남 일대에서 전해오는 피란지의 이름으로 상주에 있다고 하며 상주에서도 속리산에 둘러싸여 있는 화북면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으며, 전란,굶주림,천재지변을 피할 수 있는 예언의 땅 십승지(十勝地:열 군데의 유명한 곳)가운데 한 곳으로 꼽는다. 속리산 동쪽 상주시 화북면의 7개 동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동네가 진짜 우복동이라 주장 한다.실제로 화북면으로 피난 온 사람들은 한국전쟁(6.25사변) 당시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본인이 선친에게 직접 듣고 자라왔음)
여기에 나오는 십승지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면
천지 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에 좋은 10군데의 지역을 말한다. 鄭鑑錄(정감록)이나 格巖遺錄(격암유록)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간은 끔찍한 질병과 굶주림, 추위와 더위,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십승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자손이 끊기지 않고 후세에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하여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십승지의 정확한 위치는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십승지를 언급한 책은 <鄭鑑錄>, <南師古 秘訣>, <南格巖 山水 十勝寶吉之地>, <鑑訣>, <徵琵錄>, <운기구책>, <유산록> 등 60여종이 있다. 이 예언서들은 파자(破字)등으로 기록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표현 또한 직설법이 아닌 우회적으로 하여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또한 책을 쓴 저자와 시기가 불분명한데 당시에는 이러한 책들이 나라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소지하거나 배포하는 것을 금한 금서(禁書)였기 때문이다. 또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이기 때문에 쓰는 사람에 따라 실수든 의도적이든 내용을 누락 삭제하거나 첨가하여 보충하였기 때문에 똑같은 책이라도 내용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십승지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십승지를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등 명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곳이다. 십승지는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한 곳 밖에 없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다. 또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공간에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1년 농사지어 3년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개 십승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십승지는 발전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피난과 자손 보존의 땅이다. 따라서 한때 난리를 피하기는 좋은 곳일지는 모르지만 여러 대를 살면서 번창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곳이다.
이러한 십승지가 있다고 하는 곳은 다음 열 곳이지만 책마다 약간씩은 틀리게 지목한도 있다.
1. 풍기(豊基) 차암(車岩) 금계촌(金鷄村)으로, 소백산 두 물곬 사이에 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2. 화산(花山) 소령(召嶺) 고기(古基)로 청양현(靑陽縣)에 있는데, 봉화(奉化) 동쪽 마을로 넘어 들어갔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報恩) 속리산 사증항(四甑項) 근처로, 난리를 만나 몸을 숨기면 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4. 운봉(雲峰) 행촌(杏村)이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5. 예천(醴泉) 금당실(金塘室)로, 이 땅에는 난의 해가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 임금의 수레가 닥치면 그렇지 않다.(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6. 공주(公州) 계룡산으로, 유구(維鳩) 마곡(麻谷)의 두 물곬의 둘레가 2백 리나 되므로 난을 피할 수 있다.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7. 영월(寧越) 정동쪽 상류로, 난을 피해 종적을 감출만하다. 그러나 수염 없는 자가 먼저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8. 무주(茂朱) 무봉산(舞鳳山) 북쪽 동방(銅傍) 상동(相洞)으로, 피란 못할 곳이 없다.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扶安) 호암(壺岩) 아래가 가장 기이하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합천(陜川) 가야산(伽倻山) 만수봉(萬壽峰)으로, 그 둘레가 2백 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할 수 있다.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위에 열거한 십승지지 가운데 3번째인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장암리.용유리일대를 우복동이라고 지칭하는데 화북면은 크게 2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용유리(龍遊里)와 장암리(壯岩里) 지구. 이곳은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견훤산성에서 현재 '우복동사적비' 가 있는 병천의 입구까지가 해당한다. 청화산(靑華山) 이 진산(鎭山) 이고 서쪽에 속리산, 동편에는 속리산에서 갈라져 나온 도장산(道藏山), 또 청화산이 남쪽으로 뻗어와 이곳의 앞산이 된 승무산(僧舞山) 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 모양은 마치 속세를 떠난 유(儒).불(佛).선(仙) 의 대가들이 모여 앉아 담론하는 형세다.
산행코스는 이 우복동을 원을 그리며 감싸고 있는 三山(도장산,속리산,청화산)과 三水(한강,낙동강,금강)에 어울린 코스는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원점회귀 코스이면서도 여러 봉우리를 엮어 산행이 가능한 곳이다. 일반적인 원점회귀 산행은 하나의 봉우리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계곡을 타고 올랐다가 능선으로 하산하거나, 서로 다른 능선을 이용해 정상에 오르는 경우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곳은 산과 산을 연결해 원점회귀 코스로 엮은 것이 특이하다. 삼산은 화북면을 둘러싼 산줄기의 속리산(1,057.7m), 청화산(984m), 도장산(827.9m)을, 삼수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낙동강, 금강, 한강이 갈리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우복동천 코스는 이 세 개의 산을 하나로 엮은 산행 코스다. 상주시가 지난겨울(2007년 겨울) 개설한 이 코스는 긴 종주 산행이 가능하다. 기존 등산로 30.1km를 정비하고 도장산(5.2km)과 청화산(2.5km)의 7.7km 구간을 새롭게 개설했다. 상주시가 정비를 완료한 신규 등산로 구간은 산행에 지장이 없도록 1m 넓이로 잡목을 제거하고, 위험구간에는 밧줄과 나무 사다리를 설치했다. 현재는 임시방편의 시설물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로 좀 더 튼튼한 밧줄과 시설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예산이 편성되는 대로 도장산 7개, 속리산 3개, 청화산 4개 등 총 14개의 이정표도 설치할 계획이다. 완벽하게 능선만을 밟지는 않고, 청화산과 도장산 사이에 쌍용계곡을 건너게 되어 있다. 물을 건너야 하는 원점회귀 코스라 해도 실망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지루한 능선길보다 계곡에서 쉬어가며 식수를 보충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복동천은 산행거리가 37.8km에 달하는 장거리 코스다. 오르내림도 심하고 급경사와 바위지대도 곳곳에 널려 있다. 밧줄을 이용해야하는 위험한 구간도 제법 많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코스가 아니다. 세 개의 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넘어야 하는 크고 작은 봉우리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체력소모도 심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우복동천을 완주하려면 산행에만 20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꼬박 하루가 걸리는 울트라 마라톤 수준의 극한 산행인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세 산은 고갯마루와 계곡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 끊어 타기가 가능하다. 가장 긴 구간인 속리산의 경우 갈령에서 늘재까지 약 18km 거리에 달한다. 청화산은 늘재에서 쌍용계곡 회란석까지로 9.5km, 도장산은 회란석에서 갈령까지 10.3km 거리다. 세 산 모두 명산의 풍모를 지닌 아름다운 능선길 조망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 도장산은 속리산 조망이 좋고 바위지대가 멋진 구간이다. 게다가 얼마 전 우복동천 코스 연결을 위해 5.2km의 새로운 등산로가 조성됐다. 세 구간으로 나뉘는 국내 최장의 38.7km (요물님의 산행트랙 실거리 46.87km) 원점회귀 코스
우복동천 일반적인 속리산 구간은 갈령(1.3km)-갈령 삼거리(0.7km)-형제봉(6.9km)-천왕봉(3.6km)-문장대(3.3km)-밤티(2.5km)-늘재로 총 18km에 8시간25분이 소요된다.
청화산 구간은 늘재(2.1km)-청화산(0.5km)-백두대간 갈림길(3.1km)-시루봉(1.3km)-비치재(1.1km)-장군봉(1.4km)-회란석으로 이어지며, 총 9.5km에 4시간50분이 소요된다.
도장산 구간은 회란석(1.2km)-능선교차점(1.5km)-헬기장(0.7km)-정상(3.7km)-서재(3.3km)-청계산 갈림길(0.8km)- 갈령으로 연결되며 총 10.3km에 4시간50분이 소요된다.
산행은 이 세 산을 따로 나누어 하루씩 끊어 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럴 경우 우복동천 코스를 완주하는 데 2박3일이 소요된다. 한 방향으로 계속해 이어타기를 시도할 경우 갈령이나 늘재 등 고갯마루에서 시작하는 것이 산행이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어느 경우나 중간에 쌍용계곡을 건너게 되어 있다.
청화산과 도장산 산행은 쌍용계곡의 회란석을 종착지로 잡는 것이 좋다. 고도가 높은 고갯마루에서 시작해 낮은 곳으로 내려서기 때문에 산행이 수월할 뿐만 아니라, 산행 후 시원한 계곡에서 피로를 풀며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백두대간 줄기인 속리산 구간은 산길이 확실하고 뚜렷해 산행에는 큰 지장이 없다. 다만 거리가 좀 멀다는 점과 산불예방기간에는 일부 구간을 통제해 산행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걸린다. 또한 문장대부터 늘재 구간은 현재 비지정 등산로로 지정되어 있다. 이 문제는 현재 상주시와 국립공원이 협의 중에 있어 조만간 타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주시는 산불예방기간에도 청화산과 도장산은 산행이 가능하도록 개방하고 있다.
코스문의 054-537-7207 상주시청 문화체육팀 전병순씨
우복동천환종주 2구간인 속리산 소개
▲ 도장산 산행때 건너다 본 속리산 전경
속리산(俗離山 1,058m)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한반도의 등을 이룬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남한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소백산맥의 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한국 팔경의 하나인 속리산이다.(100대명 산중 15위) 백두대간 주능선 상에 있는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 경계에 있는 산으로 우리나라 8경 중의 하나로 명승고적이 보은군에 몰려 있어 보은 속리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지금은 동쪽인 경북 상주군 쪽이 신선미와 원시림이 있어 인기가 날로 상승하고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1,058m)을 중심으로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관음봉, 묘봉, 상학봉, 수정봉 등 8개 봉우리와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 등 8개 대가 있으며, 속리산이라는 이름 외에도 광명산, 지명산, 미지산, 구봉산, 형제산, 소금강산, 자하산 등의 이름으로 불려왔다. 산속에는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내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성문, 추래석문 등 8개 석문이 있고, 수정교, 태정교 등 8개 다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3개만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본래 9개 봉우리가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 했으나 신라 혜공왕(惠恭王) 때부터 속리산이라고 불려다 한다. <문헌비고>에는 ‘산세가 웅대하며 기묘한 석봉(石峯)들이 구름 위로 솟아 마치 옥부용(玉芙蓉) 같이 보이므로 속칭 소금강산이라 하게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심산유곡과 울창한 수림을 이루어 정이품송(正二品松·천연기념물 제103호),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서원리 소나무(일명 정부인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52호) 등 672종의 식물과 큰잣새, 붉은가슴잣새, 딱다구리, 사향노루 등 344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산속에는 복천암, 상환암 등 대소 암자가 8개나 산재되어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법주사와 경내에는 국보 3점, 보물 2점 외 많은 유적 유물과 지방문화재가 있어 1966년 6월 사적 및 명승지 제4호로, 1970년 3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찾아간 길: 성서나들목-경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남상주 분기점 청원쪽 우측으로 청원~상주고속국도 환승- 화서나들목-T자삼거리 보은.청주쪽으로 좌회전(우회전 화북,상주)-신봉사거리 직진-평온리 보건지소앞서 우회전-골짜기를 올라가다 동관삼거리서 보은.속리산면쪽 좌회전-장고개를 넘고-T삼거리서 좌회전(직진 달마선원)-구병리삼거리 우회전-T자삼거리서 만수동쪽으로 우회전-피앗재산장 앞에서 하차
산행을 하기전
05:00~08:31 산행지로 이동 산행지가 멀지는 않지만 긴 산행시간이 예상되어 일찍 출발한다.
이번 산행은 지난 5월 12일 도장산 1구간 산행에 이어 2구간으로 행해지는 속리산 주능선 전구간 산행이라 산행준비를 하고 6시에 집을 나서 반고개 행복주유소 앞에서 기다리다 도착하는 버스에 승차하자(06:23)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못 오신다던 메아리님이 동참하여 대단히 반갑다. 버스는 광장코아를 거쳐 성서홈플러스에 도착하여 늦게 도착하는 비비추님을 태우고 출발하여 성서나들목으로 들어서니(06:38) 22명 참가 하셨다. 서대구요금소를 거쳐(06:42)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든 후 편도4차선 고속도를 신나게 달려 차는 구미를 지나 중부내륙고속국도로 접어든 후 선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07:17~42) 차는 고속도로를 5분정도 달리다가 남상주분기점에서 상주-청원간고속국도로 바꿔 탄 후 화서나들목을 나가(08:05)자마자 T자 삼거리에서 보은.청주쪽으로 좌회전하여 화령시가지 남측에 우회도로를 통과 신봉사거리에서 직진하여 고개를 넘어서 내려가다 화남면 평온리 소재지 들머리 왼쪽에 있는 보건지소 앞에서 우회전(달마선원쪽)하여(08:!1) 동네 사이길을 빠져나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회전(↖보은, 속리/화북.동관↗)하여 왼쪽 골짜기로 들어서서 꼬불꼬불한 포장된 산길을 돌아올라 장고개를 넘어선 후 골짜기를 내려가 ㅓ자 삼거리에서 좌회전(직진은 달마선원)하여 4~5분후에 나오는 구병리 T자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삼거리저수지 윗 언저리를 따라 가다 T자 삼거리에서 만수동쪽으로 우회전하여(08:23) 좁은 길을 따라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몇 개의 다리를 건너고 아늑한 마을에 도착한다.
▲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 도착한 피앗장산장
▲ 피앗재 산장을 다녀간 유명한 산님들의 표시기가 단풍나무에 달려 있다.
08 : 31~36 산행준비(피앗재산장) 심산계곡 만수동 끝 부분에 있는 피앗재산장에서 산행준비
마당가에 자란 단풍나무엔 이곳을 다녀간 산군들의 표시가 수없이 많이 달려있어 이색적이고 천왕봉이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피앗재 산장은 2년 전 충북알프스 산행 때 인연을 맺은 인정이 많은 피앗재산장 주인 다정님(서성수씨)이 미리 기다렸다가 마련해 주신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산행을 서둘러 출발한다.
산행을 하면서
▲ 버스가 도착한 만수리회관이자 노인정
▲ 회관앞에는 자연재해 대비 안내판이 설치되었다.
▲ 회관앞을 출발 산행이 시작된다.
▲ 첫번째 갈림길에서 직진한다.(좌측은 절로 건너 가는 길?)
▲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간다.
08 : 31~44 만수동 천혜비경 만수동 피앗재산장에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골짜기로 접근한다.
피앗재산장을 나서 오른쪽으로 20미터정도 가자 좌측에 자연재해 대피안내판과 만수리안내게시판이 섰는 마을회관 겸 노인정인 만수리 주민회관(충청북도 보은군 주민정보사랑방)이 반듯하게 세워져 있다(1999년 12월 준공). 몇 년전만 해도 없었는데...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골짜기로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좌측 10시방향에 개울을 건너가는 길이 있지만 우리는 ‘ 입금지구역공고판’이 섰는 옆길로 올라가니 좌우에 밭 옆으로 난 시멘트포장 농로를 따라 몇 구비 오르다가 길이 좌측으로 굽어지는 커브부분에서 직진하는 산길이 보인다.
▲ 밭둑에도 피앗재산장 표시판이...
▲ 시멘트 길에서 직진하는 산길시작
▲ 산길을 들어서서 잠시 임도길이 지속되더니
▲ 물도 없는 이 개울을 지나고
▲ 이 물탱크를 지나면 임도는 끝이나고
▲ 이 개울을 건너서면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선다.
▲ 옛날은 이곳이 밭이였는지 낙엽송이 우거진 사이로 올라가다
▲ 이 썩어서 넘어진 나무를 지나 오르면 경사길도 잠시 피앗재에 올라선다.
08 : 54 산길시작 시멘트도로가 굽어지는 곳에서 직진, 산길로 골짜기를 오르니 피앗재 도착
농로가 좌측으로 굽어져 내려가는 곳에서 직진하는 산판길 같은 약간 넓은 길을 따라 들어서서 물도 별로 흐르지 않는 개울을 건너서고 노란색 물탱크를 지나서고(08:58) 나니 길은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며 물이 제법 많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 좌측으로 올라서자 낙엽송이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서서 땀이 나도록 올라가니 훤한 능선에 다다른다.
▲ 피앗재에 올라서니 좌측에 이정표가 섰고
▲ 바닥에는 단단한 스테인리스로 만든 119구조요청 위치 표시판도 누군가의 의해 나딩군다.
▲ 소나무에는 역시 피앗재산장의 길안내가 눈에 띄고
▲ 넘어로는 상오리(순심이,또는 쉰섬이)로 내려가는 길이 산죽밭 속에 있다.
▲ 일행들이 쉬고 있는 피앗재 전경
▲ 출발하여 경삿길을 오르다 첫번째 봉인 639m봉에 올라 섰다가
▲ 이 암릉길을 넘어서면 평지길이 이어지다가...
▲ 살짝 내려서는 이 안부를 지나 약간 숨이차게 오르면 민둥봉에 오른다.
09 : 19~25 피앗재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오르막길을 올라 639봉을 넘어 안부를 거처 다시 오르막
3번째 오르는 이 피앗재는 예전에는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쉼섬이,순심이)에서 만수리(동)리쪽으로 넘나드는 중요한 고갯길인 피앗재 공터에 들어서자 길 입구에 ‘↓만수계곡’이란 팻말과 함께 119구조요청지점 속리산62번 팻말과 함께 이정표(←천황봉 5.8km/형제봉 1.6km→)가 섰있다. 일행들이 쉬고 있는 동안 나는 전방 상오리로 넘어가는 길을 확인해 보고 되돌아온다. 만수계곡 쪽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데 소나무에는 우리가 커피를 마시고 출발한 산꾼의 집인 피앗재산장(http://cafe.daum.net/piazze)을 소개하는 팻말이 달려 있다. 휴식을 마치고 좌측으로 비탈진 길을 오르는 선두를 따라 힘겹게 오르자 작은 봉우리인 639봉에 올랐다가 길이 오른쪽 2시 방향으로 굽어서 능선을 따라 진행하더니 잠깐 바위가 섞인 칼돌 길을 넘어서지만 이내 능선길이 내리막으로 내려가 안부에 닿는다. 좌우가 트여 시원한 안부를 지나 서서히 오르막을 올라가 은근한 오르막 끝자락엔 반들반들한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다.
▲ 민둥봉인 667봉에 오르면 2시방양에 샛길이 있지만 길은 10시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 667봉에 쉬고 있는 일행
▲ 2시 방향에 샛길
▲ 10시 방향으로 가다 무명봉을 넘어서고 다시 좌사면길을 가다 능선으로 올라선다.
09 : 51~54 667봉 공터 삼거리서 10방향으로 내려갔다 봉우리 한 곳을 지나자 오른쪽에 전망터
봉우리에 올라보니 우측(2시방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하나 보인다. 자세히 살펴봐도 분명한 셋길이다. 언젠가는 한번 확인해 봐야지... 지도를 살펴보니 이 길로 내려가면 순심이쪽이나 장각폭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능선이다. 10시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완만한 능선을 따라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작은 봉우리(647봉)를 넘어서고 월간산지에서 발행한 지도에 있는 만수동에서 장각동으로 넘어가는 샛길과 임도를 찾아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두 가지다 없으므로 지도만 믿고 이곳을 지나는 여러분들은 유념하길 바랍니다. 길은 산 왼쪽으로 돌아가더니 119구조위치표시 속리산61번지점을 지나(14:59) 능선으로 올라선 길에서 우측으로 10미터정도 올라가면 전망이 좋은 곳이 있다.
▲ 능선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10m정도 가자 있는 전망터.
▲ 속리산 동릉길과 사모봉이 건너다 보이고
▲ 갈 길쪽을 바라 보니 속리산의 최고봉들이 줄지어 보이며
▲ 뒤돌아 보니 형제봉까지 한눈에 들어 온다.
▲ 갈령을 지나 흐르는 작약지맥인 청계산쪽의 풍경도 좋다.
▲ 바로 발 아래는 장각동이 심산유곡을 자랑한다.
▲ 길을 나서서 오르는 봉우리인 725m봉을 바라 본다.
▲ 정작 봉우리에 오르자 725봉은 뽀족하진 않다.
▲ 갈 길쪽엔 멋진 바위가 탐스럽다.
▲ 이 민둥봉인 685봉을 넘어서서 내려섰다 올라선다.
10 : 11~14 전망터 천왕봉과 장각동이 잘 보이는 전망대에서 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가야할 전방으로 천황봉과 우측 아래쪽의 장각골이 보이며 골골이 짙은 녹음이 산의 정기를 새삼 느끼게 한다. 다시 능선길로 돌아와 은근한 오르막을 올라서자 멀리서 보면(특히 조금전 전망터) 삿갓같이 보이는 725봉에 오른다.(10:22) 길은 서서히 서북쪽으로 진행하더니 길 우측에 민둥봉(685봉)을 넘어(10:29) 내리막을 내려갔다 살짝 오르막을 오르다 우측 묵묘 같은 곳이 있어 잠시 살펴본다.
▲ 길 우측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옛날 헬기장이 모습을 숨기고 있는데
▲ 헬기장 뒤쪽에 통행이 거의 없는 샛길이 있으며
▲ 이렇게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면서
▲ 길가에 만개한 쪽동백나무(일명 때죽나무,개동백나무, 약명 玉鈴花) 꽃
▲ 길이 점차 험해 지더니
▲ 이런 돌길을 올라가다가
▲ 이런 멋 있는 바위도 있더라.
10 : 34 폐헬기장 726봉을 지나고 민둥봉을 거쳐 폐헬기장을 지나 능선 좌사면길을 돌아간다.
공터나 묵묘 같은 이곳은 페인트 칠이 된 블록이나 그 밖의 정황을 보면 예전에 헬기장이 있었던 곳인데 뒤쪽에 나무가로 막아 놓아 희미한 샛길이 있지만 통행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길은 산죽이 많은 사이로 약간 내려갔다 올라가 잣나무가 우거진 산좌사면 길을 돌아가 약간 내려섰다 서덜길을 올라가니 작은 봉우리에 도착한다.
▲ 묵묘가 있는 703m봉을 넘어서자 급경사 내리막 길이 잠시 이어지며
▲ 이 암릉을 좌측으로 돌아 가는 우회로도 있지만 직진하는게 더욱 쉽다.
10 : 44 703봉(묵묘) 묘를 지난 봉우리를 넘어 급경사길을 내려갔다 암릉을 통과한 후 오름길
직전에 묘가 있는 것을 보면 703봉이 틀림없다. 봉우리를 넘어 내리막을 내려가며 암릉을 넘어서(좌측에 우회로도 있음) 올라서니 703봉에서 15분 걸려 전망바위에 도착한다.
▲ 올라선 전망바위
▲ 전망바위에서 바로 건너다 본 만물상 바위들...
▲ 전망바위에서 삼거리저수리 쪽을 바라 본다.
▲ 지나 온 능선들...
▲ 만물상 바위쪽을 확대해 본다.
▲ 전망바위에서 잠시 오르면 좌측에 만수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곳
▲ 만수리쪽 길에도 표시기가 달려 있다.
▲ 길은 완만하게 잡목속으로 이어지더니
▲ 점점 숲이 짙어지더니
▲ 경사길 오르막에 머리카락 풀도 많이 나 있다.
▲ 이 경사진 길을 숨차게 올라간다.
10 : 59 전망바위 뒤쪽 전망이 좋은 전망터를 지나고 만수동 샛길을 지나 은근하게 오른다.
넓지는 않지만 전망바위에서는 남쪽 조망이 매우 훌륭하다. 마침 남쪽으로 보이는 산능선에 암봉이 드문드문한 모습은 여러 가지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고 깊은 골짜기는 심산유곡의 풋풋한 냄새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와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해 주고, 오늘 지나온 능선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시원한 곳이니 뭐니뭐니해도 산행 중에 기막힌 조망이 없다면 김빠진 맥주 맛 일게다. 길은 거의 평탄한 길로 이어지다 오르막을 올라서자(11:10) 좌측에 역Y자 삼거리길이 있는데 무심코 그냥 지나치기 쉽다. 좌측 7시 방향으로 내려가면 만수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로 2년 전만해도 나무위엔 피앗재와 같은 만수산장의 팻찰이 달려 있는데 지금은 아무런 표시도 없다. 길을 서북쪽에서 서서히 북쪽으로 진행하면서 오르막을 올라가더니 삼거리에서 20분이 넘게 걸려서야 무성한 대나무밭 속에 묘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던 산죽밭 속의 묘
▲ 묘 앞에도 역시 장각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 묘를 지나 올라가자 암봉을 지나서
▲ 이 봉우리를 지나 내리막을 내려가면 사거리 안부
11 : 33~40 묘 잘 가꾼 묘에서 샛길을 확인하고 휴식 후 무명암봉을 넘어서자 안부에 내려선다.
휴식하기 좋은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휴식을 하며 간식을 하고 저번 충북알프스코스를 할 때 확인했던 묘 앞쪽에 길을 다시 확인을 하고 서둘러 출발하여 숲속으로 오르자 암릉이 드문드문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오른다.(11:44) 사방이 나무에 가려 조망이 전혀 없는 봉우리(924m)를 거쳐서 잠시 내려서자 사거리길 안부에 도착한다.
▲ 좌측은 대목리 길, 우측은 장각동 길이 있는 사거리
▲ 안부에 있는 주 탐방 안내도
▲ 안부에 있는 119구조요청 번호표목
▲ 우측 장각동으로 내려가는 길
▲ 좌측 대목리로 내려가는 길엔 많은 표시기가 달려 있다.
▲ 천왕봉으로 오르는 급경사 통나무 계단길
11 : 46~48 대목리사거리 개념도가 있는 사거리에서 나무 계단오르막을 오르다 우측에 천왕샘.
‘주탐방로안내’란 개념도와 119구조요청번호 ‘속리04-05’란 묘목이 있는 안부에는 앞을 쳐다보니 고개를 뒤로 젖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천황봉이 높게 보이는 확실할 좌측 길은 대목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에 희미한 길은 약도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장각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매아리님이 떡 좀 없냐고 물어오지만 이미 조금 전 묘에서 휴식할 때 먹고 없으니 미안할 뿐이다. 서둘러 직진을 하여 통나무 계단을 시작되더니 상당히 가파른 오름길을 진행하여 3분정도 올라가다 우측에 2년 전 확인했던 천황샘에 창바우님과 함께 들어가 본다.
▲ 오르다 우측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천왕샘 물12 : 01 천왕샘 반석위에 고인 물을 확인하고 계속 오르다 좌측 갈림길을 재차 확인한다.
천황샘은 옹달샘은 아니고 L자 바위면에서 약간씩 흘러내리는 물이 돌바닥에 고여 있지만 먹기에는 꺼림직 하다. 아주 목이 마르면 모르지만... 되돌아 나와 올라가던 급경사 길을 숨이 턱에 닿도록 6분정도 오르다가 왼쪽으로 샛길이 대나무 숲속의 길과 조금 더 오르다가 거의 천왕봉정상에 다 올랐을 때 다시 좌측으로 샛길이 있어 들어가 본다.
▲ 좌측에 한남금북정맥 갈림길이 삼거리
▲ 한남금북정맥 분기점에 새로 만들어 세운 출입금지 안내판
12 : 08 한남금북정맥갈림길 수없이 많은 표시기를 확인하고 잠시 오르자 속리산 최고봉 도착
출입금지 표시판이 있는 샛길에는 예전에 없던 표시기가 많이 달려 있다. 커다란 우산같은 참나무가 섰는 좌측에는 바위가 얹어 있는 곳이 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임을 확인하고 되돌아 나와 30미터정도 올라 가 정상인 천왕봉으로 오른다.
▲ 천왕봉 정상에는 정상석이 없다.(임시 철거중)
▲ 우리가 올라 온 능선
▲ 천왕봉에 올라서니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 천왕봉에 설치 되어 있는 주변탐방로 안내지도
▲ 천왕봉 정상의 삼각점
▲ 삼각점 설명문
▲ 천왕봉에서 갈길을 바라 본다.
▲ 천왕봉에서 동릉쪽을 바라본다.
▲ 북으로 출발하자 첫번째 바위
▲ 잔망바위에 올라선 박선?씨 포즈를 살짝 찍었다.(피헤만 다니더니 걸렸습니다.)
▲ 두번째 전망터에서 내려다 본 장각동
12 : 11~15 천왕봉 정상석은 없어지고 삼각점과 조망도만 확하고 조망터를 지나 헬기장에 도착
전번에 올라 본 적이 있는 천왕봉(1,058m)정상에 서니 발아래엔 날씨는 흐릿한 개스로 시계는 좋지는 않지만 한 점 막힘이 없는 조망은 가슴이 확 트인다. 동쪽으로 바라보니 속리산 동릉으로 흘러가는 능선이 높낮이를 자랑하고 그 뒤로는 청화산과 도장산도 희미하게 비춰지며, 우측에는 동서로 깊고 기다랗게 골진 장각동이 천장비지처럼 보이며, 북쪽으로는 비로봉을 넘어 문장대까지 이어지는 흰색 기암괴석의 암봉들이 나열되어 있고, 뒤돌아보니 형제봉까지의 백두대간 능선이 발아래로 뻗어있다. 2년 전에만 해도 정상 바위에 세워져 있던 정상석이 없어졌다. 알고 보니 천황봉이 일제강점기의 일본 천황의 칭호를 따른 잔재이기도 하고, 또 2008년 1월에 천왕봉으로 공식명칭이 바뀌어서 정상석을 새로 교체하기 위해 임시 철거중이란다.
천왕봉(天王峰 1,058m) : 천왕봉이란 이름을 가진 곳은 수도 없이 많지만(월출산,괘관산,계룡산,천황산,만행산,욕지도에 있는 산 등등...) 이번 우리가 밟게 되는 천왕봉은 속리산의 주봉이며 한남금북정맥의 시발점이다. 속리산 주능선 9개봉우리 중 가장 남쪽 끝머리에 위치한 천황봉은 멀리서 보면 육산으로 보이지만 실제 올라보면 바위가 엉겨있어 전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이며 3강(낙동강(장각동,화북지역),금강(만수동.삼가저수지지역),남한강(상환암.법주사지역))의 발원지이며 법주사에서 동쪽으로 5.7km 떨어져 있다.
북쪽에 숨어 있는 삼각점(속리11, 2003년 재설)과 천왕봉주변 안내도를 확인하고, 서둘러 북쪽으로 나지막한 바위 좌측으로 돌아 돌틈 사잇길을 하산하다 오른쪽 전망이 좋은 바위에 나선 본다.(12:24) 높거나 넓지 않은 바위에서 장각동쪽의 조망이 상당히 좋은 곳이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천왕봉과 비슷한 조망으로 시원한 바람만 얼굴에 불어 닥쳐 더위를 식혀 준다. 다시 대나무 숲길 속으로 잠시 진행하자 국립공원위치표시 ‘속리 04-06’지점에 이정표(↓천황봉 0.6km/장각동 3.7km→)와 함께 ‘입산통제알림’판이 있는데 여기에는 헬기장~장각동이 3.9km로 되어 있으니 200m나 차이가 나니 어느 것이 정확한지 한 가지(정확한 것)로 통일을 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오른쪽에 있는 헬기장으로 들어선다.
▲ 이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들어서야 헬기장
▲ 헬기장엔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 우리들도 맛있게 식사를 한다.
▲ 다음 구간으로 가야할 청화산쪽을 바라만 본다.
▲ 헬기장에서 바라본 천왕봉
▲ 헬기장에서 본 문장대쪽 조망. 바위 전시장이다.
▲ 바위전시장을 확대해 본다.
▲ 헬기장 넘어에는 장각동으로 내려가는 길에 3.7km이정표가 보인다.
▲ 헬기장 들머리에 섰는 안내판엔 장각동이 3.9km로 이정표와 200미터 차이가 난다.
▲ 속리산 주능선 길로 가다 통과하는 바윗길
12:26~13:06헬기장(점심) 수 많은 인파속에 느긋하게 점심식사와 휴식 후 출발 6분 만에 삼거리
상당히 넓은 헬기장에 들어서서 인산인해로 북새통인데 모두들 점심식사를 하기에 여념이 없다. 북쪽을 바라보니 마침 안개가 걷힌 사이로 보이는 암릉전시장은 천상선경을 방불케 하여 입에선 저절로 탄성이 질러진다. 맞아! 산이란 이런 기분에 오를 거야! 나도 일행들 사이에 끼어 점심식사를 마친 후 일행들에서 문장대에 16시까지 도착해야하는 이유를 이야기 하고 거북이 걸음걸이로 문장대까지 가기로 약속하고 헬기장을 넘어 동쪽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장각동3.7km→'이정표를 확인하고 되돌아 헬기장입구로 나와 우측(북쪽)으로 능선을 따라 간지 6분만에 3거리에 도착한다.
▲ 좌측은 상고암.상환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
▲ 삼거리 이정표
▲ 삼거리에서 문장대쪽으로 들어서는 길
▲ 길은 바위사이와 나무뿌리를 밟고 이어지고
▲ 이런 돌틈 미로도 이어지며
▲ 너덜돌길도 지나 가며
▲ 길가에 멋진 고목나무도 우릴 반긴다.
13 : 12 삼거리 좌측 상고암 길이 있는 삼거리에서 1시 방향으로 진행하자 좌우에 전망바위
반들반들한 이정표(←상고암 0.7k,법주사 5.1k/↓천황봉 0.6k/경업대 1.9k.문장대2.6km↗)가 섰는 삼거리는 좌측은 배석대. 상고암을 거쳐 상환암이나 법주사로 내려가는 길이므로, 1시 방향으로 진행하여 나무뿌리와 돌틈새 길을 지나고 서들길를 통과하자 좌측에 있는 바위에 일행들이 올라가 있다.
▲ 좌측에 두개로 된 전망바위에 오른다.
▲ 뒤돌아 본 천왕봉쪽 모습
▲ 법주사쪽으로 푸른 물결이 넘치는 계곡도 바라보며
▲ 비로봉쪽의 바위 전시장이 말과 사진으로 다 설명할 수 있으랴?
▲ 전망바위 동쪽에 있는 기이한 바위
▲ 확대해 보니 개구리를 어깨에 얹은 오뚜기 형상이다.
13 : 18-21 전망바위 돌길을 지나 좌측에 전망바위에 올라 전후좌우를 조망한 후 진행하자 석문
좌.우 2개의 바위로 되어 있는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막혔던 가슴이 확 트인다. 뒤돌아 본 천왕봉은 삿갓을 씌워 놓은듯하고 서쪽골짜기를 타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뱃속 끝까지 숨을 빨아들려도 싫지 않다. 가야할 비로봉능선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암릉들이 군락을 지어 모양을 뽐내고 있고 전망바위 바로 동쪽에 있는 바위는 어깨에 개구리를 얹어놓은 오뚜기 형상이다. 다시 가던 길로 내려와 잠시 산죽밭 속 바위사이 길을 재촉하자 전방에 석문이 나타난다.
▲ 내려서서 길을 재촉하자.
▲ 거대한 석문이 기다리고 있다.
▲ 석문은 사람이 서서 꾸부리지 않고도 지나갈 수 있다.
▲ 석문을 지나자 징검다리 길이 이어지고
▲ 우측에는 이정표와 119구조요청 위치 표목도 있다.
▲ 길 우측에는 애기업은 바위가 이채롭고
▲ 길 좌측에는 고개를 쳐든 물개바위가 오라고 부르며
▲ 돌아보니 천왕봉도 멀어지며
▲ 이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어서 진행한다.
▲ 봉우리 같은 공터 이곳을 지나면
▲ 나무계단을 내려섰다 올라선다.
13 : 24
천황석문 삼각형의 석문을 통과하여 돌길과 계단길을 오르며 좌우에 기암들을 구경큰 바위가 삼각형으로 서로 받치고 있는 바위는 예전에는 천황석문이라고 하였는데 천황봉이 천왕봉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니 천왕석문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들어 발행되는 지도에는 그냥 석문이라고만 부른다. 석문을 통과하자 우측에 ‘속리04-07’이란 119구조위치표목과 이정표(↑입석대0.7km/천왕봉0.9km↓)를 지나면 돌틈 길이 잠시 지속되지만 우측에 거대한 바위군을 구경하고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치 예쁜 물개가 앉아 있는 듯 한 멋진 바위 옆을 지나 통나무 계단을 오르자 이정표(↓천왕봉1.2km/문장대2.7km→)에서 길은 우측으로 90˚ 꺾여서 나무계단을 이용 약간 내려섰다 올라서니 홈통바위다.
▲ 올라선곳은 비로봉지대인 고개길인데
▲ 확대해 보니 긴코 원숭이 바위가 분명하다.
▲ 나무계단을 몇 번 꺾어 내려서면서
▲ 도장산쪽을 바라 본 후
▲ 올라가자 홈통바위를 빠져 넘어가고
▲ 이 엄청난 바위 옆을 돌아
▲ 우거진 산죽밭 속으로 길은 이어진다.
13 : 42 홈통바위(계단) ┌자 길로 봉우리로 올랐다 기암사이 나무계단을 넘자 또 홈통바위
비로봉(毘盧峰 해발 973m) : 비로봉은 법주사에서 5.77km떨어짐, 입석대에서 천황봉 방향으로 250m지점에 위치하며 비로(毘盧)란 비로자나불을 줄인말로써 인도말로 '모든 곳을 두루 비친다'라는 뜻이며, 광명을 말합니다. 진표율사가 속리산 법주사에 온 이튿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쳤습니다. 대사가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띠고 사방팔방을 비추고 있었고 대사가 황급히 합장배례를 하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하여 구름을 타고 떠났다합니다. 대사는 비로자나불을 직접 배알할 수 있었던 산봉우리를 비로자나불의 이름을 붙여 비로봉이라 이름 붙였다 합니다.
마치 코긴 원숭이 모습을 닮은 바위와 주변에 어울린 바위는 비로봉지대의 명물이다. 바위사이를 넘어서자 나무계단길을 몇 번이나 굽어져서 내려갔다 다시 올라서면 홈통바위를 넘어야 한다. 홈통바위를 넘어서면 우거진 산죽밭길을 지나다 왼쪽에 있는 전망바위에 올라 본다.
▲ 다시 좌측에 전망바위에 다람쥐처럼 올라서니
▲ 바위가 넓고 좋은지 미광님이 지팡이로 어딘가를 가르키고 있다.
▲ 바라보니 신선대.경업대에 이어 문장대, 관음봉에 묘봉까지 서북릉선이 조망된다.
▲ 바위위에서는 일행들이 정상회담(?)을 하는가...
▲ 문장대 부근 좀더 확대해 보고
▲ 신선대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경업대 부근도 확대해 본다.
▲ 전망바위가 넓고 좋은지 엉금엉금 기어다닌다.
▲ 어! 무시라~~~ 산수유님은 발끝이 간질거린다면서도 밑을 내려다 본다.
▲ 다시 산죽밭길을 걸어간다.
13 : 54~59 전망바위 역시 좌측에 전망바위에 올라 다른 때 못 본 기암들을 살펴보며 휴식한다.
속리산능선을 여러 번 왕복했음에도 이 전망바위에는 처음 올라와 봤는데 얼마나 조망이 좋은지 아마 이 능선에서 제일 시원스런 전망바위로 생각된다. 서쪽으로는 금강골의 시원한 숲과 서북쪽엔 경업대로 내려가는 암릉길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고 문장대쪽 주능선 암봉들도 더욱 가까워져 그 뒤로 관음봉과 묘봉도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둘러보며 호연지기를 만끽한 후 내려서서 통나무 계단길을 내려가다 우측에 표시기를 발견하고 잠시 살펴본다.
▲ 우측 산죽밭 속이 속리산 동릉입구라오.
▲ 동릉 입구에 안동막가와 산내음님의 표시기가 달려 있다.
14 : 09 동릉입구 산죽밭 속 우측에 동릉으로 가는 산길을 확인하고 나무계단길을 내려간다.
대나무숲속 우측에‘安東邈?’와 ‘산내음‘의 표시기가 달려 있는 곳이 그 유명한 속리산 동릉길 입구다. 아무런 관심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길은 나무계단길을 내려가다 좌측에 ’속리04-09‘119구조위치표목과 이정표(↑문장대1.9km/천왕봉 1.6km↓)가 섰는 곳에서 좌측 능선위로 올라간다. 예전에는 입구에 입석대 설명서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없어졌다. 바위틈새를 억지로 올라선 후에야 입석대 전망대에 도착한다.
▲ 어디지 몰라도 멋있는 봉우리 모습
▲ 입석대를 보려면 이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올라가야 한다.
▲ 보라! 이 멋있는 입석대를 가까이서 본 모습을...
▲ 경업대로 내려가는 능선길
▲ 비로봉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상고암의 부속건물인지 지붕만 보인다.
▲ 입석대 좌측으로 보이는 풍경
▲ 다시 본래의 길로 내려온다.
14 : 16~20 입석대 ←천황봉1.6k/문장대1.9k→에서 좌측 산길로 들어가 입석대를 구경 후 원길로
입석대(立石臺) :문장대에서 천황봉을 향하다보면 신선대를 지나 만나게 되는 바위로 법주사 동북방 5.5km떨어짐, 관음암에서 1km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 인조 때 (1623~1634)에 임경업장군이 이 곳에 이르러 6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장군의 기상을 닦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의 단련이 그의 체력한계가 되는지를 알 길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시험해 보고자 했으나 기준조차 알 길이 없어 매우 당혹하게 여겨오고 있었는데 하루는 석굴에 않아 정신을 통일하고 있는데 그 뇌리에 홀연히 형체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임경업이 정신을 모아 그 말을 들으니「마주 바라다 보이는 석벽에 올라가 그 옆에 누워있는 돌을 비석처럼 세워놓으면 그 힘을 측정할 수 있으리라」하는 내용이었다. 임경업은 곧 경업대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올라가 커다란 돌을 일으켜 세우는데 아직도 힘이 부족했다. 이에 임경업이 그 힘이 모자람을 깨닫고 다시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기를 1년 마침내 7년째 되던 해 반석(盤石)위에 돌을 세우는 데 성공을 했다. 그 후부터「돌을 세웠다」고해서 입석대(立石臺)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전에도 몇 번을 보았지만 오늘 다시 보니 우뚝 선 바위가 우람하고 듬직하여 전설내용이 새롭다. 그런데 어릴 때 보았던 입석대 꼭대기에 박혔던 쇠고리는 제거되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되돌아 나와 본길에 내려선 후 산죽밭 속의 길을 따라가다 다시 좌측에 전망바위에 오른다. 아! 오늘 아주 느긋하게 하는 산행이 마음에 든다.
▲ 다시 또 좌측에 전망바위에 오른다.
▲ 전망바위에서 어느쪽으로 보았는지 모르겠군...
▲ 경치가 좋아 흥이나서 노래를 부른다는 영심이님
▲ 뒤돌아 보고 한 장 찍어 본다.
▲ 입석대쪽을 보지만 입석대는 보이지 않는다.
▲ 신선대쪽으로 한 번 바라 본 다.
▲ 비비추님은 그리 골똘이 생각하는지요?
▲ 경업대 삼거리에 내려서기 직전 좌측 암봉
14 : 31~37 조망바위 작은 봉우리를 넘어 좌측 조망바위를 올랐다가 내려와 봉우리를 넘어선다.
듬직하고 큰 두 개의 바위로 된 전망바위에 오르니 남쪽은 비로봉 부근까지 선명하고 천왕봉은 꼭대기만 보일듯 말듯하다. 서쪽 골짜기와 가야할 신선대쪽의 기암괴석의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 시원하게 바람을 쐬며 휴식을 한 후 내려와 길을 따라 능선길을 살짝 넘어서니 훤한 삼거리 길에 나선다.
▲ 경업대 삼거리
▲ 경업대 삼거리 이정표
▲ 경업대 삼거리의 모습2
▲ 경업대 삼거리에 있는 안내도
▲ 이 길로 잠시 넘어가면 신선대가 나온다.
14 : 45~47 경업대갈림길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1시 방향으로 진행 신선대에 도착
얼마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는지 길바닥에 있는 바위면이 번들거린다. 여기서 좌측으로는 경업대로 내려가는 길이요, 문장대는 직진이라는 이정표(‘←경업대 0.4k/법주사 5.2k,↓천황봉 2.1k,문장대 1.3k ↑')와 119구조 표시판(속리 02-05)와 안내지도도 서있다. 1시 방향으로 직진하여 잠시 능선을 하나 넘어서 능선 좌사면을 돌아가자 산객들의 휴식처인 신선대에 도착한다.
▲ 매점 마당가에 있는 신선대 정상석
▲ 속리산 능선중에 유일한 매점인 신선대매점
▲ 신선대에서 바라본 산수유능선(칠형제바위)
▲ 신선대에 있는 이정표
▲ 매점 뒤쪽에 있는 화장실(화장실 뒤에 성불사로 내려가는 비정기 등산로가 있다.)
▲ 잠시 돌계단을 내려갔다 올라 가는 길
▲ 다시 내려가는 돌계단
▲ 이젠 자연석을 파서 만든 돌계단을 올라간다.
▲ 돌계단 고개를 넘어서지만 다시 돌계단이 이어진다.
14:49~15:06신선대 속리산 능선중에 유일한 매점에서 휴식 후 돌계단을 내려갔다 오르기를 반복
길 우측에는 휴게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휴게소는 2~3십년 전 초기에는 우리 동네(시어동) 김현덕,현태 형제가 간단한 천막을 치고 시작한 것을 처음으로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고 나서는 지금 누가 운영하는지는 모르지만 몇 개의 휴식용 의자를 마당에 내어놓아 방문객들의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하고 휴게소엔 아마추어용 3단 GP안테나가 서 있는데 여기 주인이(DS3LBG)가 하시는 것이라고 지난번에 들었다. 휴게소 좌측(앞)에 신선대 표지석(신선대 1,026m,←천왕봉 2.3km/문장대 1.2km→)이 세워져 있고 그 뒤에 있는 전망바위에 오르니 서쪽의 전망이 상당히 좋다. 멀리 법주사 아래에 있는 상가까지 안개 속에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보이면 첩첩이 쌓인 산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와 마음속에 새겨진다.
신선대(神仙臺 해발1,026m) : 신선대 법주사에서 5.7km지점, 경업대 바로 위, 입석대와 청법대 중간지점에 있는 봉우리로 옛날 한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 외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건너편 산봉우리에 있는 바위에서 백학이 춤추는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는 것이었다. 고승이 황급히 청법대를 내려와 신선을 만나보고자 달려갔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며 크게 실망하고 다른 봉우리를 찾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여전히 10여명의 신선들이 담소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고승은 그이 눈이 아직도 가까운 곳에서 신선과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달려갈 마음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신선이 놀았다는 뜻에서 신선대라고 부르고 있다.
이정표(↑문장대1.1km/경업대 0.6km.천왕봉 2.4km↓) 뒤쪽 성불사쪽으로 내려가는 길쪽에 있는 화장실에 간 산수유님과 선미씨를 기다렸다 출발을 하여 문장대쪽으로 돌계단을 내려갔다(15:04) 철제가이드가 세워진 돌계단을 올라갔다 넘어서길 두 번한 후 올라서서 돌아가자 우측에 통나무를 사태방지용으로 쌓아놓은 축대 우측으로 바위 하단부에 산수유라고 쓴 희미한 글씨가 보인다.
▲ 사태 방지용 목책
▲ 이 목책뒤로 산수유 능선 입구가 있다.(바위 하단에 있던 산수유란 글씨가 지워졌나 보이지 않네...)
▲ 청법대
▲ 다시 오르는 돌계단
▲ 이 계단을 오르면 문수봉이지만 그냥 지나간다.
15 : 18 산수유능선입구 돌계단길을 몇 곳 오르다 우측에 산수유능선 입구를 지나도 계단길
층층으로 쌓여진 바위 하단부에 산수유라고 쓴 곳이 산수유능선 입구(본인 산행기에 산수유 능선은 2번 소개했음)이며 이 바위가 그 유명한 청법대다.
청법대(聽法臺) : 문장대 왼쪽으로 신선대와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문장대에서 신선대쪽으로 향하다 문수봉을 지나 뒤를 돌아 바라다보면 잘 볼 수 있습니다. 속리산 기암 중 최고로 꼽히는 암석으로 부처님상을 하고 있으며, 주변에 일곱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각기 개성이 있습니다. 제1봉은 장수같이 생겼고 제2봉은 불상모양, 제3봉은 대호상, 제4봉은 산성이 보이며 제 5,6,7 봉은 성불사쪽에서 잘 드러납니다. 청법대를 보기 위해선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오르막 언덕끝에 왼쪽으로 난 샛길을 돌아서면 우뚝 솟은 바위위에 올라서야 청법대와 봉우리들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 절경에 영혼을 잃고 방황하던 중 이 봉우리에서 불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제 정신을 차렸다 하여 청법대라고 부릅니다.
산수유능선 입구를 지나 넘어섰다가 돌계단을 올라 문수봉(1,031m)에 올라섰다 잡목숲속 길을 간지 6~7분만에 문장대 매점이 있던 앞에 솟아 바위에 올라간다.
▲ 문장대 사거리 직전에 있는 전망바위
▲ 전망바위에 오르자 바로 전면에 있는 바위군
▲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문장대(통신대 안테나가 더 높아 보인다.)
▲ 전망바위에서 화북쪽으로 바라 본다.
▲ 전망바위에서 뒤돌아 본 천왕봉쪽 모습
▲ 전망바위 바로 전면 아래에 법주사로 내려가는 길목(우측상단에는 매점은 헐리고 공터만 남았다.)
▲ 전망바위를 내려오자 섰는 우측에 상주시 주요 명소 안내도.
▲ 사거리에 섰는 이정표
▲ 우측 화북쪽으로 내려가는 길목
▲ 문장대를 오르다 바위군 뒤쪽에 백두대간 길을 통제한다는 표시판
▲ 통신대 옆 계단길을 오른다.
15 : 35 전망바위 공터만 남은 매점앞 사거리직전 전망바위를 올랐다가 다시 문장대로 오른다.
먼저 도착한 메아리님이 바위에 올라가 파노라마사진을 찍는다고 신중을 기하고 있다. 바위우측에 이정표(←법주사5.8km/↓천왕봉 3.4km/문장대 0.1km↑/화북3.3km→)가 있는 바위에서의 조망은 문장대만은 못해도 천왕봉도 바라볼 수 있고 문장대도 유난히 높다랗게 보이는 곳이다. 얼마전까지만 행도 매점이 있었는데 모두 헐고 공터만 을씨년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등산객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는데 왜 없애버렸는지? 누구를 위한 처사인지? 생각해 봐야겠다. 매점터 옆을 지나 계단길을 올라 무선국 우측을 통과하자 문장대에 도착한다.
▲ 문장대 전경
▲ 문장대를 오르는 철제사다리 길 3번을 꺾여서 오른다.
▲ 문장대에서 밤티재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유일한 헬기장(문수봉과 산수유능선 일부)
▲ 사다리 꼭대기 부분
▲ 문장대 정상
▲ 문장대 주위에 둘러쳐진 추락방지용 목책('기대지 말것'이라고 했는데...)
▲ 서북쪽을 바라 보니 관음봉이 손에 잡힐듯 하다.
▲ 동쪽으로 보니 칠형제바위(산수유 능선) 아름답다.
▲ 밤티재로 이어 지는 바위군락이 있는 능선
▲ 바로 내려다 보니 통신대 안테나가 더 낮다.
15 : 42~55 문장대 언제 올라도 시원한 문장대에서 느긋하게 조망을 한 후 다시 매점터로 하산
들어서는 우측엔 문장대 안내문(이 글 앞에 문장대 소개 글을 줄여서 놓음)공터엔 文藏臺란 작은 표지석이 섰고 바로 우측에 큰 표지석엔 한글로 ‘문장대’란 글씨와 옆에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삼십삼번지’란 글귀도 적혀 있고 뒷면에는 문장대에 대한 싯글이 적혀있다. 철계단(좌측은 올가는 길, 우측은 내려오는 길)을 딛고 3번이나 방향을 바꿔가며 현기증을 느끼면서 올라가야 비로소 문장대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5~60명이 동시에 올라서 조망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넓은데 중간에는 몇 개의 움푹 패여진 요철 홈들이 안전성을 확보해 준다. 바람이 불어와 땀은 순식간에 마르지만 모자가 날려갈까 봐 손으로 꼭 잡아보기도 한다. 고개를 돌려 남쪽을 바라보니 천황봉과, 비로봉, 신선대, 문수봉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일열로 늘어선 7형제봉(산수유능선)이 뜀뛰를 하는 듯 높낮이를 반복하며, 북서쪽으로는 서북능선이자 바위봉인 관음봉에 이어 묘봉과 그 뒤로 상학봉이 이어져 있다. 북동쪽으로는 우리가 가야할 헬기장에서 이어지는 바위능선이 좌측으로 여러줄기의 보기좋은 암릉을 가지 치면서 달려가 밤티재를 건너 백악산,청화산,대야산,장성봉,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희미하게 도명산, 낙영산, 칠보산, 군자산의 봉우리들을 눈에 들어와 흥을 돋운다. 서둘러 문장대를 내려와 표지석이 있는 공터 도착한다.
문장대(文臧臺 해발 1,054m) : 문장대는 속리산의 봉우리중 하나로, 법주사에서 동쪽으로 약6km지점에 있으며, 큰 암석이 하늘높이 치솟아 절경을 이루고 있다. 봉우리 위에는 50여명이 앉아 놀 수 있는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걸쳐 있다. 문장대의 전설은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하루는 월광태자라 칭하는 귀공자가 꿈에 나타나 동쪽으로 시오리 올라가는 곳에 영봉이 있으니 그곳에 올라가 기도를 올리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세조가 신하들을 데리고 온종일 올라가 보니 하늘 위에 오른 것 처럼 사방이 구름과 안개 속에 가린 영롱한 봉우리가 보였다. 그러나 위태로운 바위라 올라갈 수 없어 철못을 박고 밧줄을 늘어 정상에 올라보니 널따란 박석위에 책 한권이 놓여 있었다. 세조가 집어보니 오륜과 삼강을 명시한 것이라 세조가 크게 감동하고 하루종일 그 자리에서 글을 읽으며 신하들과 강론을 하였다. 뒤부터 이 봉을 문장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 한편으로는 정상이 언제나 구름속에 가려 있는 봉이라 해서 운장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장대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다.
서둘러 무선국 옆을 통과하여 일행들이 기다리는 바위지대까지 내려간 후 매점터까지 내려간 후 좌측 화북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 화북길로 들어서서 내려가자 나타나는 고무판 테크길
▲ 하산길가에서 어림잡아 좌측으로 산길로 들어 간다.
▲ 거의 개척산행이다.
16 : 10 능선길로 능선길로 들어가기 시작, 8분만에 본 능선에 들어서자 바로 통천문에 도착
적당한 위치에서 짐작하여 좌측 능선으로 들어서서 8분 만에 본 백두대간 능선에 들어서니(16:18) 헬기장에서 조금 내려선 곳이다. 능선길을 진행하자 우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 2곳(본래 이 길로 올라 왔서야 하는데...)을 지나(16:19,16:20)서자 바로 바위지대가 가로막는다.
▲ 대간능선에 들어서서 첫번째로 만나는 통천문 (줄을 따라 빠져나가야 한다.)
▲ 뒤돌아 보니 문장대가 보인다.
▲ 통천문을 빠져나와 뒤돌아보니 좁기는 좁다.
▲ 다시 이 틈새로 빠져나거야 한다.
▲ 이어 바위사이를 줄을 잡고 내려가야 한다.
▲ 미광님이 친절하게 내려오는 사람을 보조해 주고 있다.
▲ 먼저 내려간 사람들은 조심해 내려오라고 응원을 한다.
▲ 내려와서 뒤돌아 본 바위틈새 길
▲ 약간 멀리서 찍은 바위틈새길
▲ 이 바위 틈새를 올라가야 한다.(어려움의 연속)
▲ 삼거리 길 우측으로 올라가야 한다.(좌측으로 내려가면 밤티로 가는 길)
▲ 이 길로 올라가야 한다.
16 : 24~37 통천문 힘들게 통천문을 통과하자 또 틈새바위를 넘어 바위사이를 조심스레 내려선다.
등로는 바위틈새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윗부분이 막히지 않아 통천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배낭을 먼저 다른 곳으로 올려 보내고 몸만 바위틈새로 빠져나가자 다시 바위틈새에 줄을 잡고 내려서야한다. 옆에 서있는 나무도 의지해 가면서 줄을 2번이나 잡고 내려선 후 다시 좁은 틈새바위를 빠져나가니 Y자 갈림길에서(16:42) 우측 길(좌측은 밤티마을로 내려가는 길)로 올라서서 돌아가자 마당바위다.
▲ 문장대가 보인다.
▲ 마당바위에 둘러 앉아 휴식를 한다.
▲ 산수유 능선을 건너더 본다.
▲ 소나무 하나도 아름답다.(진행길은 사진 우측)
▲ 마당바위를 지나 이 바위지대를 내려왔다.(뒤돌아 보고 촬영)
16 : 47 바당바위 좌사면 Y자길에서 우측길로 올라 마당바위에서 휴식 후 내려서니 암릉지대
문장대가 높다랗게 잘 보이고 이어지는 서북능선의 관음봉이 너무나도 잘 보이며, 북쪽으로 밤티마을과 그 뒤 백악산과 낙영산까지 연이어 시원하게 보이는 너럭바위는 산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잠시 휴식 후 오른쪽으로 내려서자마자 어마어마한 암릉지대에 들어선다.
▲ 대암릉지대가 시작된다.
▲ 이 암릉길에서 가장 힘든 바윗줄 구간
▲ 전방을 바라보니 온통 바위뿐
▲ 열심히 그리고 쉽게 내려가는 영심이님
▲ 밧줄이 바위에 스쳐 달아서 위험하다. 위험구간
▲ 바줄을 내려와 내려서야 하는 부분
▲ 나무를 의지해 내려와도 이 바위사이를 건너 올라서애 한다. 일일이 일행들을 끌어 당겨 주는 유진수 님
▲ 또 다시 이 틈새를 빠져 나가야 한다.
16:55~17:12대암릉줄구간 긴 줄을 잡고 슬랩을 하강하고 바위사이를 정체되여 통과하는 협곡지대
커다란 바위 아래를 미끄러지듯 내려서자 이번에는 아래 암릉사이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위압감을 더해주고 한사람씩 조심하여 굵은 줄을 잡고 20여미터 슬랩을 내려선 후에 바로내려서서 바위밑을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우측으로 걸쳐 놓은 통나무를 발디딤으로 내려선 후 다시 바위사이를 이리저리 건너서서 올라서야 한다. 올라서는 우측에는 큰 바위 굴을 형성하고 있어 말을 할 때마다 울려 항아리 속에서와 같이 메아리친다. 암릉구간 끝에는 큰 바위 사이를 통과해 우측으로 내려서지만 험한 암릉길이 지속되면서 나무를 잡기도 하고 바위사이를 씨름하면서 5분여 진행하자 또 힘든 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 이 구간은 줄을 잡고 바위를 앉고 돌아 가야 한다. 일행을 잡아장겨 주는 창바우님.
▲ 건너다 본 산수유능선과 옆에 나란이 한 우연일치 능선.
▲ 또 이 바위 틈새를 오른다. 오늘 유격훈력을 단단히 하는군 !
▲ 이 바위 아래쪽을 통과한다.
17 : 18 줄잡고 돌아감 홈통바위를 지나 능선길 안부를 지나고 밧줄을 잡고 바위를 돌아간다.
우사면에 2층으로 된 바위에 사이 줄을 잡고 바위를 앉고 돌아 올라야 하는 곳이지만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올라선 후 한차례 더 줄을 잡고 바위사이를 넘어섰다 올라서는 곳에 Y자 갈림길에서 좌측(우측은 길 없음)으로 가서 바위밑을 지나가면 이번에는 개구멍바위가 나온다.
▲ 이번에는 힘든 개구멍을 통과한다.
▲ 통과하면서 보니 그리 쫍은 굴은 아니다.
▲ 이 바위사이를 통과하고
▲ 이 밧줄을 올라 가야 한다.
17 : 23 개구멍 Y자길 좌측으로 진행하여 좁은 바위틈새를 힘들여 통과하지만 다시 힘든 코스
여러개의 바위가 엉겨서 이루어진 개구멍은 붉은 화살표를 따라 들어가 배낭을 먼저 내보내고 다음에 몸이 통과해야 하는데 진땀을 좀 빼야한다. 이어지는 암릉지대를 가느다란 줄을 잡고 내려서고 가느다란 줄을 잡고 올라서자 커다란 바위가 갈 길을 막는다.
▲ 하지만 이 바위 밑으로 통과
▲ 줄을 잡고 엎드려 낮은포복으로 올라간다.
▲ 배낭은 따로 몸은 따로 올라 가야 한다.
▲ 올라서서 바라본 바위지대
▲ 오른쪽 바위위를 톰과한다.
17 : 35~40
덮개바위 바위가 덮힌 틈새로 옆드려 밧줄을 잡고 올라서서 암봉을 돌아 넘어간다.비스듬한 큰 바위에 다시 넓적한 바위가 덮힌 틈새로 줄을 잡고 올라서야 하는데 역시 배낭이 걸려서 먼저 올라간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날엽한 사람들은 그냥도 통과할 수 있지만 나는 역시 큰 몸집이 말썽이다. 엉금엉금 기어서 줄을 잡고 올라서자 이번에는 바위 날등을 타고 우측으로 올라서서 넘어서서 잠시 진행하다 우측으로 나서면 멋있는 전망바위다.
▲ 멋진 전망바위에 오르자 커다란 바위에 돌이끼가 돋 보인다.
▲ 바위를 확대해 본다.
▲ 네려다 보니 내고향인 시어공에 이어 장암리,용유리(화북시장) 승무산이 한눈에 보인다.
▲ 3구간으로 가야할 밤티재-늘재-청화산-시루봉이 아련하게 보인다.
▲ 전망바위를 지나 첫번째 밧줄.
▲ 두번쨰 밧줄
17 : 42
전망바위 학소대 위쪽 조망이 정말 좋은 전망바위에서 잠시 머문 뒤 서둘러서 하산.시어동-문장대 등로 중 절반인 쉴바위에서 올려다보면 보이는 학소대 윗부분인 이곳은 동서로 길 다란 바위가 좌측은 아찔한 절벽이요 우측은 비스듬하여 올라서서 주위를 조망할 수 있게끔 되어 있고 서쪽에는 수 십 톤이 넘는 바위덩어리들이 엉기고 성겨 있으며 위부분에는 이끼가 만년의 세월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건너편에는 산수유능선(7형제봉)의 끝자락인 할미봉이 너무나도 크게 보이고 그 위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암벽훈력을 하는 사람들이 눈길을 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진촬영을 하고는 좌측으로 가파른 길을 2군데나 줄을 잡고 내려선 후 잠시 완만한 능선길인가 했더니 다시 줄을 잡고 씨름을 해야 한다.
▲ 이번에는 밧줄이 짧아 힘든 홈통바위 길17 : 52 홈통바위(밧줄) 밧줄 2곳을 지나 바위사이에 밧줄이 짧아 힘든 구간 내려서니 순한길
밧줄이 짧아 내려서기 약간 힘든 바위 틈새를 힘들여 내려서자 순한 내리막길에 능선을 따라 속도를 내여 좌사면을 진행하다 능선으로 들어서서 내려간지 20분만에 우측에 갈림길이 있는 곳을 지난다.
▲ 능선중에 우측으로 빠지는 유일한 갈림길18 : 12 ㅏ삼거리 우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봉우리를 넘어선다.
그전에 이곳을 지날 때 확인하지 못했던 샛길이 이번에는 보인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문장대-시어동 길에 합쳐지며 대간군들의 탈출로로 이용되기도 하는 곳이다.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서자 전방에 입석바위가 잘 조망되는 곳을 지나 안부를 거쳐 마사토 오르막을 올라가 길 우측에 있는 입석바위에 올라본다.
▲ 건너다 본 698m봉인 입석바위
▲ 입석바위에서 본 화북소재지와 1구간인 도장산
▲ 건너다 본 산수유 능선
▲ 입석바위 부근에 만고풍상을 겪은 나무들...
▲ 능선길을 가다 보이는 아름다운 바위
▲ 능선길에 마지막 밧줄이 매여 있는 소나무
▲ 밧줄을 내려오는 보람님과 동남풍님
▲ 이 바위 틈새로 오른다.
▲ 미끄러지면서 올라서는 마사토길.
▲ 아직도 멀었나 바라보는 일행모습
▲ 이 바위아래에 옛날 호랑이가 살았다고 호랑이 바위라나....
18 : 17~20 입석바위 오르막을 오르다 우측에 있는 입석바위에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698m봉인 이 봉우리는 멀리서 보면 도구통(절구통) 같은 바위지만 그 바위 앞에 10여명이 앉을 정도의 넓은 바위가 상석처럼 바쳐져 있어 여기에 올라 뒤돌아보니 우리가 온 능선이 한눈에 보이고 하산장소인 시어동에 주차장과 그 너머로 보이는 속리산 동릉의 끝머리 사모봉이 웅크리고 앉아 있고 우측에는 하산코스인 산수유 능선이 허연 암벽이빨을 들어내고 있다. 하산은 오른쪽으로 내려서도 되지만 위험할 듯 하여 다시 들어온 길로 되돌아 나와 능선길을 재촉하길 5분 만에 다시 까다로운 소나무에 달린 밧줄구간을 내려서서 저물어가는 능선 우사면길을 반복하면서 돌아가 큰 바위(옛날은 호랑이 굴이라 했음)앞을 지나 밋밋한 안부에 다다른다.
▲ 옛날 밤티재(어렸을떼 몇번을 넘어 밤티마을로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좌우에 길도 없음
▲ 묘 직전에 우측은 견훤산성길이고 직진하면 대간길이라고 쓴 글씨
18 : 38 옛밤티재 밧줄을 한 번더 잡고 내려간 후 능선을 따르다 예전 밤티재를 지나 오른다.
50년 전에는 지금 밤티재에는 길이 없었고 밤티나 용화에는 차도 다니지 않을 때 우리 마을에서는 의당히 이 고개를 넘어 밤티나 용화로 볼일을 보러 걸어서 넘어 다녔고 나도 이 고개를 몇 번 넘은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좌.우 어디를 살펴보아도 길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桑田碧海(상전벽해: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란 말이 실감이 난다. 서서히 오르는 길을 따라 오르다 페인트로 ‘ ↑대간(밤티)/견훤성→’라고 씌여 있는 바위좌측을 지나자 봉우리에 도착한다.
▲ 묘가 삼거리인 594m봉우리
▲ 밤티재는 11시 방향쪽 이 돌무더기 사이로 내려가야 한다.
▲ 평탄한 안부 가랑잎 길
18 : 41~46 594봉(묘.삼거리) 묘가 있는 봉우리, 우측은 견훤산성 길이므로 11시방향으로 내려감
사방이 훤하게 전망이 트인 봉우리는 지도에 594m봉으로 묘는 허술하기는 하지만 전망은 그런대로 좋다. 좌측 견훤산성길은 표시기가 없지만 묘 뒤쪽 11시방향에 바위가 듬성듬성 있는 사이에 백두대간길에는 곳곳에 흔적을 남긴 표시기들이 본인들의 이름을 휘날리고 있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쉬고 있고 몇몇은 지쳐서 더 이상 못가겠다고 푸념을 한다. 푸념이 아니라 실제로 하루 산행시간이 8시간이 한계라나... 저물어 오는 햇살을 받으면서 일행을 재촉해서 순탄한 숲속내리막을 내려가 안부를 거쳐 오르막에 있는 묘터에 다다른다.
▲ 몇년전에 이장한 파묘터
▲ 마지막 나즈막한 봉우리
▲ Y자 삼거리서 우측으로 내려간다.(좌측에 초소가 있으므로...)
18 : 55 파묘터 안부를 거쳐 파묘한지 몇해 안된 터를 지나 Y자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가만히 보니 수년전에 묘를 이장한 파묘터로 아직 풀이 무성하지는 않았다. 능선을 따라가다 Y자삼거리에서 오른쪽(좌측은 위험(?))길로 조심조심하게 서서히 내려가길 5분만에 상.하2기가 있는 곳에 내려선다.
▲ 거의 하산을 끝난 부근에 있는 묘19 : 02 묘2기 상하 2기의 묘가 있는 곳에서 큰길의 망을 보다가 묵밭을 지나 도로로 나간다.
사전 탐색을 하길 전화로 부탁한 버스가 보이자 묘 부근에 있던 일행들이 한꺼번에 내려가 철망울타리 우측가에 뚫어진 곳을 이용 빠져나가 도로로 내려서자 번개같이 버스에 올라탄다.
▲ 길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쏜살같이 올라 탄다.
▲ 출발하면서 어둠이 내리는 밤티재를 뒤돌아 보면서 출발한다.
19 : 05 밤티재 기다리던 버스에 승차하자마자 서둘러 어둠이 내리는 밤티재를 출발한다.
아니! 007작전인가? 배낭을 짐칸에 마구 쑤셔 넣고 석양이 물드는 밤티재를 다음을 기약하고 신속하게 출발한다. 이렇게 마음 조렸던 문장대 밤티재구간은 무사히 끝이 나고 3구간인 청화산 구간만 숙제로 남았다.
산행을 하고나서
이 구간 중 속리산 주능선을 속속들이 살펴본 것이 좋았지만 문장대-밤티재 구간은 국립공원에서 비정기 등산로로 정하여 힘든 산행이 되었다. 하루 속히 유관단체에서 노력하여 원만한 해결로 우복동천화종주코스가 각광을 받았으면 한다.
요산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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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 011-814-6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