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암학술상 수상소감
길희성
처음 제가 경암학술상에 대해 들었을 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큰 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벌써 7년째 되는 데도 제가 학계 소식에 어두웠다는 것이 드러난 셈입니다. 학자가 꾸준히 자신의 연구에 종사하는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처럼 권위 있는 학술상에 의해 업적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매우 기쁘고 감사한 일이며, 지금까지 해온 연구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일입니다.
먼저 이런 상을 마련해주신 송금조 이사장님과 경암학술상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또 오늘 수상자들을 축하해주시기 위해 바쁘신 가운데도 이 자리를 찾아주신 저의 친지 여러분과 내빈 모두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
3분가량의 수상 소감을 준비하라는 요청을 받고 자연스럽게 저 개인의 학문적 여정을 간단히 회고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인문학은 개인의 삶의 경험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가정에 태어나서 맹목적으로 해왔던 신앙생활이 고등학교 시절에 흔들리면서 신앙의 갈등과 인생의 고민을 안고서 철학과 문을 두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철학이란 것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고 입학했기 때문에 철학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먼 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신앙과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서양철학, 특히 서양 근대철학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실망이 컸습니다. 흔히 서양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시녀’였다고 말하지만, 당시 제가 받은 인상은 서양 근대철학은 신학의 시녀가 아니라 과학에 볼모로 잡힌 ‘과학의 시녀’라는 느낌이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 생각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대학에서 불교, 유교 등 동양사상 강좌들이 있어서 저의 갈증을 어느 정도 풀 수가 있었습니다. 동양철학은 본질적으로 인생관, 가치관 등 삶의 문제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제가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서양철학 공부가 저로 하여금 명료한 사고, 비판적 사고, 그리고 조직적 사고를 하게 만드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철학은 그래서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말하는 가 봅니다.
한국인이며 동양인이라는 문화적 자각
여하튼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기독교 신앙과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보낸 저의 대학생활 4년이 그 후 저의 50년 학문여정을 이미 결정지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대학 4년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됩니다. 군대 복무 3년 후 미국 유학 9년을 통해 기독교 신학, 그리고 불교를 비롯한 동양철학과 종교 공부, 그리고 비교종교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세계 종교들과 문화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14년간의 미국 생활은 저에게 제가 한국인이며 동양인이라는 문화적 자각을 뚜렷하게 각인시켜 주었으며, 이것이 저로 하여금 지금까지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 사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만든 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종교와 중세 사상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길
근대 서구문명이 합리주의와 과학기술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통해 인류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근대적 가치들이 오늘날 여러 면에서 심각한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서구 근대사상이 인간을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는 크게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삶이 정초해야 할 정신적 뿌리를 송두리 채 뽑아버림으로써 인간의 깊은 영적 갈망을 충족시키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서구 근대 철학과 사상의 근본 문제는 형이상학을 포기했다는 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하며, 이것이 저로 하여금 세계 종교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 특히 동서양의 중세 형이상학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 것입니다. 서구 근대 문명에 의해 이미 극복된 지 오랜 지나간 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고 쉽게 치부되곤 하는 종교와 중세 사상의 세계를 어떻게 해서든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 신념이고 학문적 관심의 중심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동서양의 종교와 형이상학적 사유들이 상이하고 다양하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적 시각에서 고대 종교사상과 중세 형이상학을 창조적으로 되살리는 데 부딪치게 되는 피할 수 없는 문제는 문화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단지 이론적 차원의 문제일 뿐 아니라 아직도 각기 다른 종교 전통을 안고 살면서 종교/문화/문명 간의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현대세계가 당면한 절실한 현실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또 가깝게는 종교적 독선과 편협한 배타성이 판을 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종교계에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정신적 공동체인 심도학사
저는 현대 세계가 이러한 도전을 창조적으로 감당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신념 아래 저의 연구를 해 왔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종교 간의, 그리고 문명 간의 진지한 대화와 깊은 상호 이해가 필요하며, 나아가서는 다양성 속에서 심층적 일치를 찾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연구는 물론이고, 조금이나마 실천적 기여를 하고자 금년에 강화도에 <심도학사>라는 ‘공부와 명상의 집’을 열어서 종교 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로운 영성을 추구하는 정신적 공동체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오늘 저에게 수여된 이 경암학술상이 저 자신의 개인적 영예는 물론이고, 저의 이러한 신념과 생각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고 기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실천적 기여.. 사회적 책임을...
길교수님, 다시금 축하드립니다~!!!
맑고 깨끗한 삶을 살아오신 교수님께 저는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받으실분이 수상하신것을 보고 아직은 희망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영예로운 수상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철학과 종교라는 어려운 주제를 흐르는 강물처럼 쉽고 막힘없이 우리의 복잡한 삶과 연결시켜주시는 선생님께 늘 감사드리며 선생님의 든든한 조력자이신 박남미사모님께도 큰 박수를 드립니다.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의 온전한 기도가 무엇인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 주신 선생님,
존경합니다. 무소의 뿔처럼 우뚝 선 그 용기를 따르겠습니다.
새길교회로 교수님을 알게 되고 또 심도학사까지 찾아갈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교수님과 심도학사를 통해 더 밝은 지혜와 삶의 깊은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축하드리며 오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우리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인문학적 배움과 토양의 멘토이십니다.
선생님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겨자씨 한알 땅에 떨어져 죽어 싹이 나는 것을 곁에서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아내와 저도 그 길을 따르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오랫동안 건강하셔서 심도학사를 이끌어 주세요. 심도학사에서 배우는 즐거움이 너무도 큽니다
심도학사는 나 자신도 이런 곳이 생겼으면 했는데 이렇게 미리 준비하고 실천해 주심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심도학사는 앞으로 종교의 갈등이나 깊은 영성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심도학사가 많은 갈증을 해소해줄것으로 보여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