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문협 부회장 김건일 시인(국문과 65)
현실에 뿌리내린 문학 꿈꾸는 건국의 시인
글| 편집부
김건일 시인은 삶의 깊은 맛과 멋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스스로 농촌문학의 길을 선택했고, 등단 후 낙향하여 손수 논밭을 일구기도 했다. 1973년 <시문학>에서 ‘선인장과 부활’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후, 건국문학회 초대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회장 등 문학계 안에서 여러 역할을 맡아온 그를 건국문학 제2집 출간을 앞두고 만나보았다.
김건일 시인은 요즘 무척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동시장에 위치한 정우당 약국을 손수 경영하고 있는 데다, 건국문학 제2집 발간을 앞두고 곳곳에 흩어져있는 건국대 출신 문인들까지 챙겨야 하는 까닭이다. 어찌 보면 혼자만의 작품 활동에 전념해도 부족함이 없는 김 시인이지만, 의협심을 타고난 성품 탓에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전통적으로 건국대는 축산대학이 유명해 농촌 출신들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일감호반을 끼고 있어 문학에 대한 감을 키울 환경도 충분했지요. 내적으로는 실력을 쌓고, 정서적으로도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었던 캠퍼스 환경이 있었지만 창작분야를 지원할 수 있는 지도교수가 부족해 아쉬운 면도 있었습니다. 건국대 내에도 실력 있는 동문들이 계속해서 배출되고 있는 만큼, 문인활동을 하는 모든 동문들이 한 자리에 뭉치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국문단에서 건국문학회로
건국문학회의 초대회장이기도 했던 그는 창립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문학회로 만들고 싶다’는 거창한 포부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한 자리에 똘똘 뭉치는 힘이 모자란 것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그럼에도 그는 건국대 특유의 끈기로 건국문학회를 끝까지 붙들었고, 다른 회원들 또한 그의 열정에 동화되어 건국문학회의 발전적인 미래 개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제가 65학번인데, 당시만 해도 건국대 전체를 아우르는 문학동아리가 부재했습니다. 그래서 2학년이 되던 해에 송덕수, 이만근 씨와 주축을 이루어 ‘건국문단’을 만들었지요. 이전에도 ‘광장’과 같은 여러 모임이 있었지만, 주로 국문과 출신들만 활동하고 있었어요. 건국문단은 범 건국인들의 종합문학회였고, 일감호에서 전국 중고등학교 백일장을 개최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당시 활발하게 활동했던 동문들이 바로 김홍신, 임석래, 최홍규 등의 유명작가들이다. 그때부터 건국문단에서 발간한 <건국문단>은 80년대에 <표상>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된 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건국인의 열정 어린 문학활동을 위해
이처럼 학교의 이름을 내건 문학회에 대가 없는 열정을 보이는 김건일 시인은 시골 출신 특유의 의리로 자리를 지켜왔다. 마산고를 졸업하고 문학이 하고 싶어 무작정 상경했다는 그는 한때 김동리 선생 밑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이후 문학에 대한 큰 꿈을 품고 건국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그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창작활동에 관심이 부족해 의분마저 느꼈다는 김건일 시인. 한편으로 그는 재학시절 썼던 작품이 몇 년 만에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면서, 실력도 중요하지만 꿈을 가진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고.
“등단작인 <선인장과 부활>은 제가 1966년 건국문단 회지에 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때 조병화 선생님, 이원섭 선생님께서 제 글을 추천해주셨지요. 아마 우리 학교에도 지도교수가 있었다면 그 시기가 좀 더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후배들의 진로를 터줄 지도교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지만, 그는 스스로 그 역할을 자처하며 전후방위로 활약하며 후배들의 든든한 지원자를 자처하고 있다.
현실에 무게 둔 글을 써야
이제는 안정적인 생활에 젖어 살 법도 한 시기임에도, 그는 매일같이 새로운 꿈을 새긴다. 그럼에도 그는 이상주의자보다는 현실주의자 쪽에 가깝다. 이는 문학관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현실에 무게를 두지 않은 이상은 허황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학을 즐거움의 대상 혹은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지만, 저는 현실 속에서 어떤 꿈과 이상을 찾아가는 과정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꿈과 행동과 글이 삼위일체가 되어 완성된 것이 진정한 문학인 것이지요.”
그는 오늘날의 현실이 혼란스러운 것 또한 작가정신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다못해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만 보아도 내용도 목적도 이유도 없다는 것. 지금껏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출해왔던 시인의 영혼이 다시금 부활해야할 때인 셈이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한 만큼 시인의 역량과 역할도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는 달라진 환경 속에서도 몽환적인 세계보다 땀과 피 그리고 눈물과 뿌리가 굳건한 문학이 변함없는 대안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면서 약재를 다루는 정우당 약국을 열게 된 것도 결국은 농촌의 뿌리를 현대인과 연계하고자하는 의지의 발로였다.
“문학을 하는 많은 동문들이 농촌에 내려가 농사만 짓고 작품 활동에는 소홀하게 될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이제 건국문학 제2집이 나오는 만큼 건국문학회도 더욱 많이 발전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등단한 사람만이 아닌,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건국인들이 건국문학회 안에서 소통하고 희로애락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김건일 시인. 그의 순수한 열정이 모든 건국인들의 문학 사랑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프로필
김건일 시인은 경남 의창 출생으로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65학번)를 졸업하고 건국문학회 초대 회장과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1974년『시문학』에 시 <선인장> <부활> <생활> <선유>로 추천 완료하여 문단에 등단했으며, 1992년 제10회 흙의 문예상 본상, 1996년 자유시인상 본상, 2002년 서포문학상 대상 등을 받았다. 시집으로 『풀꽃의 연가』『뜸북새는 울지도 않았다』『꿈의 대리 경작자』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