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세계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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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관이란?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세계에 대한 인식과 판단의 기본 틀이다.
가. 기독교세계관의 필요성
- 경제의 고도성장과 교회의 양적 급팽창 이면에서 독버섯처럼 번지는 세속화 그리고 기독교정체성의 위기, 전통적 가치관의 급속한 몰락 등으로 인한 위기감 속에서, 특히 서구에 비해 기독교 역사가 짧고 전통 종교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한국 기독교가 당면하고 있는 온갖 이원론적 행습, 패해의 밑바탕에는 기독교세계관의 부재가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라는 껍데기에 '세속' 내지 '전통종교'라는 안경을 끼고 다니기 때문에 그 數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기독교적이 되지 못하고 있다.
- 영어의 Christian은 명사적으로는 '기독인'이고, 형용사적으로는 '기독교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기독교적이 되는 것, 이 두가지는 개인이나 기독공동체의 성장과정에서 분리할 수 없는, 또한 분리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 특히 '문화'회복을 위해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어야 '분별'과 '회복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기독교세계관이란?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의 Knudson>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적인 진리들을 숙고함으로 얻은 깊은 진리들을 체계화한 것"
- 여기서 세계관은 단순히 성경내용을 체계화한 것이 아니라 체계화된 진리에 대한 성령의 조명을 필요로 한다.
나. 올바른 세계관의 역할
1) 통일적인 삶을 살게 한다.
- 인생의 지표를 얻는 것이고 복잡하고 혼란한 개념을 정돈할 방법을 찾는 것이며 우리의 행동들 간의 연관성을 찾는 것이다.
2) 생동적인 삶을 살게 한다.
- 올바른 생의 의미가 확립될 때 비로소 생동적인 삶이 가능하며, 의미있는 인생관은 건전한 세계관으로부터 나온다.
- 사물의 가치가 전도되고, 의미가 상실되며 '인생에 궁극적 희망이 있는 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때야말로, 분명하고 믿을만한 세계관이 필요하다.
3) 사고와 행동의 방향을 설정한다.
- 역사상 이 시대만큼 복잡 다양하고 다원화된 사회는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책임있는 선택, 우선순위의 결정을 위해서는 올바른 세계관의 확립이 필요.
※ 올바른 세계관의 특징 <왈쉬(B.J.Walsh), 미들톤(J.R. Middleton), 홈즈(A.F. Holmes)>
▷ 현실성, 내적통일성, 개방성, 타당성, 생동성 등을 들 수 있다. 즉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모두 포함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나 사건에 대하여 공평하게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 모순됨이 없이 내적인 조화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내용이 절대화되어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가져서는 안되며 끊임없이 확장되는 생의 지평을 무리없이 수용할 수 있도록 개방적이어야 한다.
▷ 또한 논리적으로 타당해야 하며 싸늘하게 죽은 지성이서도 안된다.
다. 세계관의 속성
- 영구 불변의 세계관은 없다.
- 개혁주의 세계관도 역시 잠정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피조 세계에 대한 우리의 영적 통찰력이 성장해감에 따라 더욱 더 완전하고 성숙한 형태로 항상 다듬어져가야 한다.
2. 올바른 세계관
가. 동양사회와 서양사회의 세계관 배경의 차이
< 서양사회 >
- 고대 희랍의 인본주의로부터 시작하여 중세의 교권주의, 진화론과 막시즘, 패권주의, 계몽사상, 유물론과 자연주의, 실증주의, 무신론, 허무주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등 수많은 반기독교적인 사상들이 근대 사상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서양에 있어 기독교의 수천년 역사가 그들의 사고체계 뒤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즉 서구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에 관한 관심은 주로 서구 세속주의에 대항하기 위함.
< 동양사회 >
- 동양의 전통사상(무속,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민족마다의 건국신앙)들은 기독교적 전통이 아닌 또다른 유기적, 통합적, 범신론적인 세계관을 형성해왔다.
- 따라서 동양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에 관한 관심은 동양의 반기독교적 사상에 대항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 따라서 서구인들에게 이원론의 문제는 주로 세계를 보는 정신세계에 나타나는 데 비해, 동양인에서는 주로 생활태도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에게는 기독교세계관으로 이분화된 정신세계를 통일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고 동양인들에게는 기독교세계관내에서 일관성있는 삶의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 한국에서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고려하여야 할 몇가지
1) 일차적으로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물론 기독교세계관의 적용대상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현실 문제만은 아니지만)
- 만일 한국에서의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단지 서구의 사변(思辨)적인 내용의 학습으로만 그친다면 그 자체가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와 문화적 전통이 다른 서구인들에게서와는 달리 동양적 전통을 가진 우리들에게 세계관의 사변화는 치명적이다.
- 기독교세계관 운동은 구호나 강연이 아니라 삶을 통해 기독교적 가치와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기독교적 지성'이 아닌 '기독교적 가슴')
2) 지나치게 복잡해서는 안된다
(물론 어느 정도 논리성을 가져야 하지만)
- 서구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은 철학개론이나 조직신학서설 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사변화된 희랍적 전통을 반영한 것.
- 기독교세계관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면 논리적 적합성은 유지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무식한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고, 따라서 알 수 없는 세계관을 생활로서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
3) 기독교세계관과 전통사상의 이원대립적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 서구인들이 희랍전통으로부터 기독교적인 요소를 발견해냈듯이
- 우리는 한국의 전통사상으로부터 기독교적인 요소를 찾아내야 한다.
인간의 타락, 지리적 고립과 언어적 장벽이 에덴동산에서의 '원형문화(Prototype culture)'를 많이 왜곡시켰을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때때로 민족마다의 전통문화 속에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원형문화의 그림자들이 반영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그림자들에 대한 바른 기독교적 시각을 개발하는 것도 기독교세계관운동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4) 이원론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필요하다.
- 한국의 전통문화와 기독교세계관의 부조화가, 삶에 대한 이원론적 태도에 연유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최근 세계관운동의 가장 큰 목표는 이원론적 행습의 타파였다.
- 무조건 이원론적 태도를 배격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이원론을 배격해야 한다.
- 동시에 속된 일을 거룩한 일 속에으로 통합하거나. 거룩한 일을 속된 일 속으로 통합하는 혼합주의적 일원론도 경계해야 한다.
- 이원론의 배격은 聖, 俗의 경계를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거룩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분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 세상에 대한 바른 분리가 없이는 바른 참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3. 기독교세계관의 출발 - 창조
가. '창조'
- 기독교 유신론의 핵심.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기독교유신론과 다른 세계관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며 기독교적 사고의 핵심이 된다.
- 창조와 창조주에 대한 견해는 기독교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기독교적 신관, 인간관, 자연관, 학문관, 도덕관, 결혼관, 역사관, 시간관 등의 기초가 된다.
나. 창조주
○ 창조주 하나님은 단일론 이나 이원론에서의 신과 뚜렷이 구별된다.
- 잘못된 단일론(유물론, 자연주의, 세속적 휴머니즘 등) : 하나님을 피조세계의 일부로 포함
- 이원론 : 하나님과 피조물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이들간의 관계에 혼돈
○ 하나님과 피조물
- 현대의 자연주의적 휴머니즘은 모든 것을 자연으로 환원시킴으로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왜곡시켰다. 피조물과 구별하지 않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범신론에 빠지기 쉽고, 하나님 없이 피조세계만을 받아들이면 자연주의로 흐르게 된다.
- 성경에 나타난 창조주 : 우주의 필연성이나 어떤 제한에 묶여 있는 분이 아니라 우주를 초월하신 최고의 책임자이시며 다른 어떤 것과도 대등한 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원론을 부정한다.
다. 창조기사
○ 영감성
- 성경의 주된 관심은 신학적인 것에 있으며 성경은 생물학이나 지질학, 연대기 등의 교과서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자연의 원리들이 성경을 통해 새롭게 발견, 해석되고 있다(창조과학운동). 따라서 성경은 비역사적이라기 보다는 초역사적이요, 비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초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
- 창세기의 창조기사는 온 우주 가운데 있는 만물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 지를 말한다. 인간의 존재도 자신의 내부나 주위 환경 가운데서가 아니라 그를 지으신 창조주와의 관계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
- 하나님께서는 모든 존재 뿐 아니라 가치와 희망, 의미, 목적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 전체가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 독특성
- 전세계의 모든 창조신화들이 기존의 재료로부터 변형에 의한 창조를 말하고 있는 데 반해, 성경의 창조는 '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 히브리어 'bara'는 無의 상태에서 어떤 것이 창조될 때 사용하는 것.(이 동사는 유독 히브리어에만 있다)
- 無로 부터의 창조는 창세기 뿐 아니라 시편33편 6절, 9절, 아모스 4장 13절, 로마서 4장 17절, 히브리서 11장 7절에 기록.
20세기 들어 현대물리학이 탄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시간, 물질, 공간은 절대적인 물리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고, 물질도 없는 절대 無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절대 無에서 무엇이 창조되었다는 주장은 인간의 이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절대 無의 상태에서 어떤 것이 창조되었다는 동사가 유독 히브리어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기록하시기 위해 히브리어를 선택하신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창조의 증거들
♣ 대기와 궁창위의 물, 그리고 노아 홍수 ♣ 바다와 물 : 최대밀도 온도와 빙점의 차이
♣ 공룡이야기 : 멸종?
라. 창조의 의미와 목적
1) 창조주와 피조물의 본질적 구별
-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도 피조세계의 일부가 아니며 피조세계도 그 일부가 아니다.
- 하나님은 피조되지 않았고 무시부종한 분으로서 피조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2) 모든 피조물의 전적 의존성 (히1:1, 요1:13)
-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의존 원리는 불변이다. 단지 인간이 자의적으로 하나님 의지하기르 거부했을 뿐이지 의존적 인간이 자존적 존재로 바뀐 것은 아니다.
3) 창조의 목적론 (골1;15∼17)
-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 (창1:31)
- 역사 전체를 통해 그의 선하심과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
▶ 만물이 그에 의해서,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선 것이다 : 골1;15∼17)
【 인간창조의 목적 】
▷ 무릇 내 이름을 일컫는 자 곧 내가 그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개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43:7)
▷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여 함이라 (사43:21)
※ 우주는 정해진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계획되고 인도되는 유목적적 우주이다. 이는 내재적이고 비인격적인 힘에 의해 주어진 과정만을 이루어가는 진화론적 목적과는 달리 초월적인 창조주께서 피조계를 위하여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는 인격적인 목적론이다.
4)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문화명령 (창1:28)
- 인간이 청지기라는 사실은 소극적으로 보존, 관리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를 조작, 계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 이러한 청지기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에 제정하신 질서나 규칙을 잘 알아야 한다. 이것이 신자들이 열심히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동기이어야 한다.(학문과 연구의 목적)
5) 하나님의 자기계시 (롬1:19,20)
- 성경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특별계시),
- 창조하신 만물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신다. (일반계시)
3. 타락 그리고 구속의 역사
※ 이미. 그 뿐께서는, 자신을 알게 할 여러방법(계시)를 마련해 두셨다. 이미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그 증거들을 발견하고 깨달아 아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다. ☞ 창조냐? 진화냐?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이다.
가. 타 락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3:8)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언약의 파기 (창조질서의 파괴)
- 하나님과 의존적인 관계를 거절하고 (하나님으로 부터의 도피)
- 인간 자신이 자기의 주인임을 선언한 행위. (사실상으로는, 하나님과 피조세계로부터의 소외의 시작)
※ 인간은 종교적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대신 다른 것을 섬길 수밖에 없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섬기지 않은 중립적인 상태에 있을 수 없다<어거스틴은 이를 '종교적집중'이라고 불렀음>
우상숭배의 개연성이 내포되게 됨 (물질, 명예, 지적만족, 성욕, 특정이데올로기, 인생의 목표 등. 그러나 우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채워질 수 있는 인간의 내적 공허를 채우는 모조품일 뿐이다.) ☞ 바닷물로 갈증이 채워질 수 있는 가? 모조는 모조다.
※ 고백들
▶파스칼 :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공허(God -shaped vaccum)가 있다.
▶어거스틴 : "당신은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우리의 마음이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는 평안이 없나이다"
【 결 과 】
▶ 인간소외와 피조물 의지 (피조물을, 하나님 대신 숭배하는 신앙 출현 - 우상숭배)
▶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
▶ 불의, 추악, 탐욕, 악의, 교만
②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 하나님과의 단절 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에 있어서도 단절과 소외
【 결 과 】
▶ 근심과 공포, 절망과 좌절, 이질감과 불합리, 무의미와 소외, 시기, 비방, 분쟁, 사기, 무정, 무자비, 배신 등 등
▶ '죄나무'(?) : "죄가 열리므로 죄나무인가, 죄나무이기 때문에 죄가 열리는가?'
※ 인간은 선한 일을 위해서는 굉장한 극기와 절제가 필요하지만, 악한생각이나 행동을 위해서도 조금도 결심할 필요가 없다.
※ 타락과 문화
현대 문학과 예술은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③ 자연(피조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 즉 네가 얼굴에 땀을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여호와 하니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
- 하나님의 저주가 사람 뿐만 아니라, 땅과 모든 생물계에 미침
- 구속사의 시작을 내포 (무화과잎 가죽옷 : 희생양?)
【 결 과 】
▶ 생물들은 죽어서 썩어지고, 환경을 파괴 오염되어져 가고, 가용에너지는 갈수록 감소
( 열역학제2법칙 - 엔트로피증가의 법칙)
▶ 생물계의 약육강식과 정글의 법칙(용불용설 - 진화론)
▶ 잡초일수록 번식이 강하고, 해충일수록 구제가 어렵다.
▶ 자연계의 쇠퇴와 멸망
※ Lynn White 신드롬 경계
※ 여기서 노동은, 타락의 결과가 아니다. 소명이다. 노동에 있어 타락의 결과는, 노동환경의 악화일 뿐이다.
※ 피조세계의 구분 = 구조와 방향
▷ 구 조 : 하나님의 창조법칙에 의해 구성된 피조물의 본질
▷ 방 향 : 피조물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지의 여부
즉, 타락이란, 창조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으나, 그 방향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 <주의! 잘못된 이원론 경계>
나. 회복 - 구속
예수께서 만물을 회복하신다는 것은 먼저 인간에게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형상(에베소서 4;24. 골3:10)을 회복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청지기로서 피조세계를 향한 본래 의도를 이루시고 인간과 (고후5:18) 모든 피조세계(막16:15) 화목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 구속은 타락한 인간이 온전하고 무흠한 상태가 됨을 의미하기 보다 그렇게 될 가능성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 예수님을 통한 구속의 의미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인간의 범죄로 왜곡된 피조세계 전체의 회복을 의미함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하셨다)
※ 막 16장 15절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preach the gospel to the whole creation)"에서 만민은 피조세계 전체를 말한다 즉 가시적 세계 뿐만 아니라 비가시적인 영적세계, 사회구조, 논리의 세계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학문의 세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인정될 때, 좀 더 온전한 피조세계의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 성경에서 사용한 구속을 설명하는 단어들
○ redemption : 살아서 자유케 함. 다시 산다는 의미 (=salvation 구원, 구세)
○ reconciliation : 화해, 조화, 일치, (복종, 체념 - ?)
○ renewal : 부흥, 소생, 새롭게 함
○ salvation : 소테리아 - 질병후의 건강, 위험후의 안전 등
○ regeneration : 제건, 부흥, 거듭남
다. 하나님 나라의 이중적 특성
○ 피조세계 회복의 의미 :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 또는 도래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공간적, 시간적 개념보다 하나님의 통치권과 관련있다.
- 외형적으로 어떻게 보이느냐 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백성이 있고, 하나님의 명령이 집행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 한국교회의 문제는, 너무 개인적인 구원에 치중하므로 인하여 이 땅(사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하여는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교회와 정치의 철저한 분리)
이는, 1938년 신사참배 반대 이후, 신앙적 굴절을 겪었고, 해방 이후에도 이에 대한 고백과 회개가 없었던 한국교회의 역사적 배경들로 인하여,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 영향력을 거의 잃게 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하나님 나라 성취의 이중적 특성
※ 2차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하던 d-day와 실제 독일이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 연합군이 승리한 1945년의 v-day와가 다른 점을 들 수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사단과의 전쟁에서 대세는 결정되었고, 사단의 패배는 분명해졌다. 지금 우리는 D-DAY와 V-DAY 사이에 살고 있다. 국부적으로 사단이 이기는 것 같고 잠깐동안 전세가 사단에게 유리한 듯이 보여도 궁극적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 이미 우리들 가운데 임하고 계시고 (완료 또는 진행형)
- 또한 장차 도래하기를 고대 (소망형)
【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 3가지 - lens 】
창조
모든 존재와 인식의 기원 (회복의 원형)
세계관 논의의
출발점
타락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세계의 '상태'에 대한 근원적인 진단 근거 제공
올바른
세계관 평가의 기준
구속
사단이 왕노릇하는 타락한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가 왕 노릇하는 '상태'로의 회복
기독교세계관의
궁극적 지향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