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의 관문에 위치해 관광을 목적으로 경주를 방문하는 걸음이라면 처음으로 들러볼 일이다. 특히 역사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경주관광의 백미를 미리 들여다보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에 가장 합당한 공간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의 문화재를 모아둔 경주의 생생한 역사관이다. 경주의 선사시대로부터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의 문화유산들이 집적돼 있다.
특히 1천년의 유구한 신라시대를 조명하는 문화재들이 방대한 분량만큼 이해하기 쉽게 정리돼 오래된 시간을 오늘에 재생시켜 밝게 들여다보게 하며 역사기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국립경주박물관 본관
신라역사관과 신라미술관은 오롯이 신라 건국에서부터 신라 흥망성쇄의 과정과 예술, 삶의 세부적인 모습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월지관은 동궁과 월지를 발굴하면서 3만여 점의 방대한 자료가 출토돼 별도의 전시관으로 마련돼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보게 하면서 당시 신라인들의 삶을 상상하는 재미도 선사한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2만여 점의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연간 140만여 명의 관람객들이 찾는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어 두 번째로 손꼽힐 정도로 익히 알려진 박물관으로 세계적인 박물관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국립중앙박물관의 분소로 출발해 우리나라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자리잡아 지금은 외국인들의 방문도 줄을 잇고 있어 세계 유수의 명문박물관으로 발돋움하는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국립경주박물관 경주분관
국립경주박물관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7일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출발했다. 광복 이전에도 경주고적보존회라는 단체가 1913년 동부동 조선시대 경주부의 관아건물에 박물관 형태의 작은 진열관을 관리했다.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바뀌어 광복 전까지 유지됐다. 지금은 경주문화원으로 자리잡은 곳이 1975년 인왕동 현재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기기 이전까지의 경주박물관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 문화재들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훼손하거나 멸실되게 한 사례는 집계할 수는 없지만 아주 많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1970년대까지만 해도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시기여서 신라 천년의 문화를 고증하는 문화재들이 경주에는 차고 넘쳤다.
도굴로 유출된 문화재도 많거니와 경주의 가정집에서 빨래판으로 쓰이던 돌이 문화재로 재탄생해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엿장수에게 팔려간 문화재도 부지기수다.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을 운영하면서 경주에서 발굴된 문화재가 지금까지 국립경주박물관을 지키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는 것도 많다. 그러나 경주 남산에서 출토된 문화재 중에 서울 중앙박물관과 경주박물관에 이관 소장되고 있는 문화재가 800점을 웃돌고 있다는 것만 헤아려도 얼마나 많은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됐을 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현재 경주문화원에서 박물관경주분관이라는 이름으로 열악한 전시실을 보유하고 있던 박물관이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 자리로 이사를 옮겨가는 과정은 대역사로 경주에서는 요즘도 술자리에서 재미난 이야기 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1975년 ‘성덕대왕신종’을 옮겨가는 일은 경주시민이 대거 참여한 볼거리로 유명하다.
경주문화원에서 현재 박물관까지 5분 거리에 불과하지만 당시 한전직원들과 대한통운의 대형트레일러가 동원돼 축제 퍼레이드로 펼쳐지면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신종의 키가 높아 이동경로의 전신주 전선들을 한전직원들이 자르고 또 이어가면서 진행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종 앞에서는 여고생들의 춤사위가 벌어지고 신종 뒤에는 시민의 행렬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한다.
현재 박물관으로 자리를 잡고 개관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해 거창한 행사로 진행됐다. 개관식을 마친 박 대통령은 영애인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전시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당시 사진물은 흑백으로 곳곳에 기록물로 전해지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둘러보기
경주박물관을 찬찬히 둘러보려면 하루 일정으로는 제대로 보기 어렵다. 박물관의 전시실을 개괄적으로 형식만 소개하고 자세한 내용은 문화재의 특성과 관련된 세부적 역사적 이야기와 함께 따로 천천히 소개하기로 한다.
경주박물관은 12만여 점의 방대한 문화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면서 3천여 점의 문화재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 국보가 13건에 15점, 보물이 32건에 86점으로 국가지정문화재가 101점 소장돼 있다. 국보와 보물급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지 않고 관리되고 있는 문화재도 상당히 많다.
박물관은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등의 상설전시관과 함께 특별전시관, 옥외전시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선 형식으로 둘러보면 입장하기 전에 무료이지만 입장권을 받아야 신라시대를 비롯한 오래된 경주를 만나볼 수 있게 되는 정문이 동북방향으로 나 있다. 경주박물관을 둘러보는 일행이 있다면 “오늘은 내가 쏜다”라고 호기롭게 큰소리로 말해도 주머니에 축은 나지 않는다.
박물관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산 모양의 작은 언덕이 나타난다.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특별전시관, 어린이박물관, 성덕대왕신종 등의 박물관의 전시실과 구조를 안내하는 입간판이 친절하게 서있다. 그 뒤로 신라시대에 조성된 남산에 세워져 있던 키 낮은 탑 2기가 문화재로서 첫 선을 보인다.
오른쪽에는 서적과 음성안내를 받을 수 있는 안내코너가 마련돼 있고, 열 걸음만 옮기면 오른쪽으로 에밀레종이라 불리던 성덕대왕신종을 달고 있는 종각을 볼 수 있다.
큰 길로 바로 돌아보면 최초로 건축된 ‘신라역사관’이 웅장한 2층 한옥으로 방문객과 마주하게 된다. 네 개의 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 석기시대와 청동기, 철기시대를 지나 신라와 삼국시대 등의 경주를 소개하면서 경주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이라 할 수 있는 신라금관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부장품들을 고스란히 실물로 만나볼 수 있다.
신라역사관에서 나와 박물관 내부로 조금 들어가면 ‘신라미술관’이 나온다.
미술관은 2층으로 4개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으면서 로비와 중층에도 불교 조각품들을 전시해 신라시대 불교미술의 극치를 달리는 신라인들의 예술혼에 흠뻑 취할 수도 있다. 문무왕릉비와 심신서기석, 이차돈순교비, 장창골미륵삼존불, 백률사 약사불 등의 2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월지관’은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안압지’로 불리기도 했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동궁에 딸린 연못으로 ‘동궁과 월지’로 밝혀진 곳을 발굴하면서 출토된 3만3천여점의 유물 중 1천200여점의 중요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하나의 유적에 대한 유물의 독립전시관은 우리나라 최초로 손꼽히고 있다.
‘옥외전시관’은 경주가 노천박물관이라는 말을 입증하듯 큼직하게 생긴 유물들을 박물관 내부 전역에 걸쳐 배치해두고 있다.
성덕대왕신종과 석탑, 석등, 석불, 석수조 등의 유물들과 함께 조각난 석재유물들을 넓게 전시해 시원한 광장에서 오래된 역사기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