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불공평한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엄청난 부를 축적한 빌게이츠는 인생에 대해 이렇게 논하고 있다.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한 것이라고 그러니 불평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살아남는다는 것. 성공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이 갖고 태어난 능력을 활용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빌 게이츠의 말대로 인생은 역시 불공평 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인생은 어차피 불공평하다. 그러니 역으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많은 것을 가졌다. 다만 그것을 모를 뿐 인생이란 스스로가 몰랐던 자신의 가능성을 활용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있는 것보다 없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가진 것들이 예기치 못한 성공을 가져다주곤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기업가 데이브 롱거버거는 오하이오 주의 촌구석 마을에서 연 매출 7억 달러 규모의 기업을 세웠다. 그의 아이템은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바구니로, 바구니 한 가지만 팔아 거부가 된 사람이다. “열심히 일할 의지만 있다면 아무리 평범하다 해도 탁월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사람의 인생에는 무수히 많은 ‘자원’이 널려 있다. 다만 그것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찾아내려 하지 않을 뿐이다.”‘인생은 공평하다’는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보다는 불공평하다는 말에 공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정말로 이 세상이 공평하다면 빈부의 격차가 왜 더 벌어지고 있는가. 분명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처음에는 불공평한 조건들로 늘 피해의식을 갖고 살았는데 나이가 더 들수록 결국은 평등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40대에는 지식이 평등해지고, 50대에는 외모가, 60대는 성(性)이 평등하고, 70이 되어서는 건강이, 80에는 재물이, 90이 넘으면 생사가 평등하다는 말이있다.
젊을 때는 나와 다른 것이 많은 것 같으나 나이가 들수록 비슷비슷해진다. 결혼한 후 얼마동안은 수준이 어떻고 집안이 어떻고 하면서 싸움도 많이 했는데 살붙이며 살면 살수록 그 기준들이 별 의미가 없게 된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처럼 역할이 다를 뿐 나와 다른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시간(時間)이 공평하기 때문이다.
‘빠삐용’ 은 아홉 번의 탈출한 끝에 성공하여 그 소재를 갖고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의 진면목(眞面目)은 감옥에 수감되어 구타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꿈속에서 저승의 심판자들에게 재판받을 때 드러난다. ‘전 억울합니다. 그건 사실이다. 넌 살인하지 않았다. 그럼 제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 고생을 해야 합니까? 너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죄인 인생을 낭비한 죄다! 그것이 살인보다 더 큰 유죄라고요…’ 그는 잠에서 깨어나 다시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다시 살기로 결심한다.
시간은 모든 생명체에게 공평하다. 조물주는 우리 인간에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 가지씩 소중한 선물을 주셨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균적으로 80년의 수명을 산다면, 25억초의 시간이 들어있는 ‘시간통장’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8만6천400초씩을 통장에서 인출하여 사용한다.
시간(時間)이 평등하다는 것은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고, 기회(機會)의 평등이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죽음(死)의 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죽음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누구에게나 예측 없이 오고, 출생과는 다르게 불현듯 다가오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우리 주위를 배회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악한 인간에게 그런 불청객까지 없었다면 얼마나 더 교만하게 살아갈 것인가?

강민우 교수
(010-2000-3330)
전> 공무원교육원교수
현> 민우성명철학인장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