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여스님(비구니) 들
글/구본갑 사진/김용만, 조광환
콩밭 메는 아낙네여,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이해찬 의원(전 국무총리) 고향은 충남 청양이다. 함양처럼 지명 속에 빛 ‘양(陽)’ 자가 들어있다. 청양고추와 칠갑산으로 유명하다. 이해찬 의원은 전파상집 아들로 태어났다.
“우리 고향에 장곡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장곡사 상대웅전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되어 있지요. 장곡사 아래 신작로 옆에 밭이 있는데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그 신작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데 밭에 수십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땡볕 아래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베적삼이 흠뻑 젖도록 콩밭을 맵디다. 그 장면을 한참 바라보았죠, 그 모습들이 너무나 거룩해 보였습니다….
저 비구니 스님들은 무슨 처절한 사연들이 있었길래 속세를 등지고 산문(山門)에 들어갔을까? 부처님께 귀의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을텐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옛날, 주병선이라는 대중가수가 ‘칠갑산’이라는 노래를 불렀잖아요, 콩밭 메는 아낙네여/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구비 마다 눈물 짓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 가던 날/ 칠갑산 산 마루에 울어주던 산 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가사 속에는 시집 간 아낙네의 설움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은 칠갑산 자락 장곡사 비구니 스님들의 울력을 노래한 것입니다…”
비구니는 불교의 구족계(具足戒)인 348계(戒)를 받고 수행하는 여자 승려를 말한다. 범어로는 비크슈니(bhiksuni)이며, 의역하여 걸사녀(乞士女)라고 한다. 남자 승려의 경우에는 사미에서 바로 비구로 될 수 있지만, 비구니는 사미니에서 식차마나의 과정을 더 거쳐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출가한 여자가 사미니(沙彌尼) 생활을 거쳐 2년 동안의 시험기간인 식차마나(式叉摩那)로 있다가 평생을 출가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인정되면 348계를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 구족계를 받으면 정식으로 비구니가 된다.
우리나라 비구세계에 청담, 만공, 성철 큰스님이 있었다면 비구니 세계에는 일엽, 혜옥, 인홍, 묘엄(청담 스님 속세의 딸), 불필(성철 스님 세속의 딸) 스님 등이 있다.
1896년생인 일엽 스님은 목사의 딸로서 이화학당을 졸업한 재원이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동경 일신(日新)에서 수학하고 귀국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종합잡지 ‘신여자’를 창간했다. 그러다가 질곡 많은 세상사에서 무상을 느껴 산문으로 들어간다. 그 후 일엽은 산문의 청규를 철저히 지키며 깊은 신심으로 장좌불와의 대용맹정진에 나섰다. 특히 30여 년간 산문을 나가지 않고 입승직(立繩職)을 지킨 우리나라 근대사 비구니의 대표적 인물이다.
혜옥 스님은 재소자들의 등불로 한평생을 보냈다. 스님은 일요일만 되면 교도소, 양로원 등을 두루 찾아다니며 법문을 하여 많은 수감자를 교화시키는 등 전법활동을 펼쳤다.
함양군내에도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중증장애인들을 돌보고, 한국동란 때 억울하게 죽은 혼들을 위해 위령제를 여는 등 ‘보현행(普賢行)’을 실천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을 위하여…일여스님
함양읍에서 인월 가는 길에 금선사가 있다. 금선사 주련에 廣大願雲恒不盡 汪洋覺海妙難窮이 적혀져 있다. “중생을 구제하는 광대한 원과 넓디넓디 깨달음은 한량이 없어라” 금선사 부속기관에서, 치매할머니와 중증장애인들이 정양하고 있다. 주지는 일여(一如) 스님. 일여를 풀이하면 ‘진여(眞如)의 이치가 평등하고 차별이 없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이다. 스님께서는 키가 작지만 배포가 당차다. 치매할머니와 함께 대중가요 ‘자옥아’를 멋지게 열창한다. 경북 안동출신이다. 속명은 혜숙. 스님은 고교시절 원인 모를 열병을 앓게 된다. 서양의학으로서는 도저히 치유될 수 없는 병인지라 모친은 안동 고운사 도우 큰스님께 도움을 청한다. “머리 깎고 먹물옷을 입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라!”
이로써, 혜숙은 1979년 해인사 삼선암에 들어가 도우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88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수지함으로써 비구니가 된다. 이어 일여 스님은 면학에 힘을 써 동국대학교 어문계열, 전주대 사범대, 승가대 대교과를 졸업하고 묘엄 스님을 만나 선지식을 전수 받는다. 그 후 일여 스님은 은사 광일 스님과 함양읍 백연리 산75-7에 움막을 짓고 용맹정진했다. 그 움막이 지금 늠름한 금선사가 되었다.
금선사 내에 중증장애인들의 보금자리 ‘연꽃의 집’이 있다. 사회복지법인 연꽃의 집 개관식 때 금선사 주지 일여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불사를 원만회향을 할 수 있었으며, 장애우를 둔 부모의 마음으로 환자를 돌보며 지역 복지발전에도 큰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랬다, 일여 스님은 장애인을 둔 부모의 마음으로 연꽃의 집 거주자들을 돌보고 있다. ‘함양연꽃의 집’ 중증장애인 거주자들은 원장 정흥희 원장과 함께 지난 8월 4일 함양군 서상면에 위치한 부전계곡으로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리고 왔다.
이날 중증장애인 27명, 직원19명, 공익근무요원 2명, 자원봉사자 1명으로 구성되어 시원한 계곡물 안에서 물장구도 치고, 시원한 수박도 먹고, 여름의 별미 백숙을 점심으로 먹으면서 피서를 즐겼다.
◆사회적 약자들의 대모, 보덕 스님
견불사에서 주최하는 한국동란 영혼 추모제
지난해 12월, (필자) 이메일을 열었더니 동지팥죽 새알을 빚는 사진이 있었다. 함양군청기획감사실 김용만 주무관이 찍은 사진이다. 비구니 스님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새알을 빚고 있는데 그 새알이 마치 보석처럼 보였다. 김용만 사진을 본 후 함께 송고된 함양군청 보도자료를 읽었다.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견불사(見佛寺) 주지 보덕(普德) 스님이 군내 20개 마을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팥죽 나눔을 10년째 이어오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보덕 스님은 고령화가 심한 농촌지역의 특성으로 겨울이면 외롭고 영양섭취가 고르지 못한 어르신들이 많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지난 1995년부터 매년 거르지 않고 휴천면 지역 20개 마을의 독거노인에게 팥죽 나눔을 해오고 있다.
예로부터 팥죽은 한 해의 묵은 기운을 버리고 온갖 병고와 액을 소멸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영양학적으로는 겨울철 결핍되기 쉬운 비타민 B1의 섭취와 노폐물 배출을 용이하게 하는 제철음식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12월 17일 가마솥에 팥죽을 쑤어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2014년 12월에는 함양 제8962부대 3대대를 찾아 군복무에 노고가 많은 장병들에게까지 팥죽과 전통유과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견불사는 매년 6월이 되면 호국영령 및 민간인희생자 합동위령제를 봉행한다.
주지 보덕 스님은 행사 추모사를 통해 “이번 위령제를 계기로 부처님의 가피 속에 지리산의 지난 아픈 기억이 하루 빨리 회복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발원했다. 견불사는 함양군 휴천면 송전길 524에 위치해 있다. 멀리 부처님이 누워 계신 와불산 정기를 머금은 천연와불성지로 고즈넉한 산사의 풍광을 자랑한다.
보덕 스님은 사회적 약자들의 대모와 같은 존재이다.
주요약력으로는 스리랑카 쓰나미 피해자 돕기 의료지원단 단장, (사)행복한사회 부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봉사단체 ‘따뜻한 마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인이기도 한 스님은 신춘문예 '시와 창작' 시 부문에서 신인상을 받아 등단, 저서로 에
세이집 <백연잎에 청개구리>, <관세음보살 사십이수진언 사경집> 등을 펴냈다. ◆산삼축제와 운영 스님
지리산 독바위 아래 웅크린 범(虎距)이 굽어보고 있는 형국에 영험도량 적조암(寂照庵)이 있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560. 요사채 처마 끝에 달린 풍경(風磬)이 맑은 소리를 낸다. 적조암 운영(雲榮) 비구니 스님이 부처님 전에 삼배 절을 올린후 ‘산왕경(山王經)’을 암송한다. “大山小山山王大神 大岳小岳山王大神 대산소산산왕대신 대악소악산왕대신 大覺小覺山王대神 大丑小丑山王大神 대각소각산왕대신 대축소축산왕대신 尾山在處山王大神 二十六丁山王大神” 2012년 여름, 운영 스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군청에 아는 사람 계세요? 함양산삼축제때, 축제를 빛내기 위해 우리 적조암이 도우미 역할을 하고 싶은데, 응, 적조암 여신도들중에 음식의 달인들이 수두룩해요, 이 분들이 말이예요. 축제장에서 산삼을 주재료한 김밥, 셀러드, 튀김 등을 만들면 축제가 더욱 즐겁지 않겠습니까?” 해서, 필자는 정태양(당시) 산림녹지과장에게 스님의 뜻을 전했다. “취지는 너무너무 좋은데, 타 종교가 뭐라고 한다 말이야, 스님의 마음은 너무나 거룩한데, 어쩌나?” 필자는 정 과장의 말을 듣고 분통을 터트렸다. “줘도 못 먹는 바보들 같으니라구!”
스님께 군청의 생각을 전했다. 스님은 포근한 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죠. 그럼, 말이죠. 군청 관계자들을 우리 절로 모셔올 수는 있나요? 적조암 명 요리사(신도)들이 만든 산삼요리를 선보이고 싶은데?”
그해 모월모일, 당시 최완식 군수(당시), 한경택 휴천면장을 비롯한 군 요직인사 수십 명이 적조암을 찾았다. 최 군수가 산삼요리를 지켜보고, “햐, 이것은 요리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입니다, 대단합니다.”
이 말에 필자는 한경택 면장에게 귓속말로, “전남 승주에 선암사 있잖소, 정호승 시인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라고 노래한 바로 그 절! 이 시를 패러디, ‘산삼김밥을 먹고 싶다면 지리산 함양고속을 타고 적조암에 가라, 운영 비구니 스님이 만든 산삼김밥을 먹고 장수(長壽)를 해라!’
적조암 산삼김밥이 특화되면 얼마나 많은 힐링족들이 함양을 찾겠습니까? 아니, 함양군민이 산삼축제를 더욱 빛내주기 위해 위대한 아이템을 제출했으면 아이고 복 덩어리 들어온다 하고 어깨춤을 춰야 할 터인데, 타종교가 어떻고, 구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나 하고, 쩝쩝!” 필자의 호통에 한경택 면장, 비시시 웃으며 “구 형(필자), 기회가 되면 함양군수에 한번 출마해보게나 허허”
운영 스님은 우리나라 불교 대들보 경봉, 향곡, 춘성 큰스님을 시봉했던 선승이다.
운영 스님은 경남 창원산이다. 여고시절, 그는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는 어디서 왔나? 그리고 어디로 가나? 이 문제가 어찌 소녀의 생각머리로 풀릴 수 있겠는가? 한편 산돼지가 칡넝쿨을 탐하는 것 같은 세상사에 회의를 느껴 출가를 결심한다. 마침 속가 외삼촌께서 봉암사에 스님으로 계셔 출가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봉암사가 어떤 도량인가. 성철큰스님의 매서운 공주규약(共住規約)이 도사리고 있는 절이다.
봉암사 선원 공주규약은 이렇다. ①보청을 중히 여겨야 한다. ②보살대계를 초하루 보름마다 외운다. ③매일 아침 능엄대주를 독송한다. ④저녁에는 참회한다. ⑤좌차는 법납에 따른다. ⑥방사 내에서는 잡담을 금한다.
운영 스님은 이 엄숙한 도량에서 순일한 마음으로 참선했다. 매일 새벽예불 전에 일어나 좌선과 간경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이어, 운영 스님은 전국 각지 선원에서 수선안거 용맹정진했다. 운영 스님의 수행가풍을 요약한다면 철저한 신심, 기도 참선의 일치이다. 포교보다는 참선에 매진한다.
◆불교계의 양희은…주석 스님
“주석 스님의 커피 향처럼 은은한 목소리와 감미로운 음악이 새벽아침이면 행복하게 하루를 만들어주는 에너지입니다. 이틀 만에 1~4회까지 다 들었네요.^^ 자전거를 따라 목감천~안양천을 다리다 보니 4회 ~2부에서 나오는 음악이 넘 아름다워서 잠시 멈추고 하늘을 보았지요. 오늘따라 하늘은 새털구름처럼 청명하고 파아란 물감을 뿌리다 만 듯 아름답습니다. 부처님의 행복을 나누어 주는 하루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래를 입가에 흐르는데~ 제목은 기억이 안 납니다. ㅎㅎㅎ” 함양 대운사 주지 주석 스님은 불교계의 양희은(라디오 MC)이다. 스님은 불교방송(BTN) ‘세상만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는 수(오전 11시 20분), 목(밤 11시), 토요일 오후 8시 30분에 방송된다. 함양 대운사는 함양읍에서 인월 가는 길…구룡리에 있다. 이 마을 주산이 구룡산이다. 아홉 마리 용이 굼틀거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구룡리에 계곡이 흐르는데 그 물소리를 새겨들어 저절로 단속(斷俗)이 되어 버릴 것 같다. 구룡산 계곡 한 켠에 원력의 결실. 대운사가 있다.
구슬 주(珠). 옛 석(昔) 법명을 가진 주석 스님이 이 절에서 용맹정진하고 있다. 주석 스님은 속리산 법주사 수정암 혜욱 스님 불제자가 된다. 이어 승가대. 동국대 불교학과. 영남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5년 전 함양읍 구룡리 대운사로 내려왔다. 당시 대운사는 혜봉 큰스님이 주석했는데. 큰스님 열반 후 주석 스님이 중창했다.
대운사 극락전에 새를 타고 피리 부는 동자상이 있다. 악기 중에서도 향피리는 메마른 심성에 습기를 주는 효과가 매우 큰 악기이다. 주석 스님은 뛰어난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최근 스님이 쓴 칼럼을 소개한다.
“밥을 누구와 함께 먹는다는 것은 서로 영혼을 나누는 일과 같다. 아침저녁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요즘 따뜻한 음식을 볼 때면 누구든 그 따뜻함을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마음도 조금은 서늘해지는 때 마음 녹이는 음식 하나쯤 만들어서 서늘한 그 마음 녹여줄 사람 앞에 놓아준다면 내 마음이 먼저 따뜻해질 것 같다” 한편, 주석 스님은 신도들과 힘을 모아 부산 대운사 불교학당에서 북카페 쿠무다(kumuda)를 운영한다. 쿠무다는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연꽃’을 뜻한다. 이곳에서 시인 이호걸, 안도현, 동요작가 이춘호, 소설가 김연수, 혜민 스님이 북콘서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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