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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새
김 란
1
춥다. 끊임없이 머리를 갉아대는 두통을 뚫고 서서히 의식이 돌아온다.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밀어 올린다. 눈앞은 하얀 페인트 벽. 이상하다. 우리 집이 아니다.
톡 톡 톡. 이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린데. 이 싸늘한 분위기는 뭔가 다르다. 엎드린 채로 고개만 돌린다. 사방이 하얀 벽이고 한쪽엔 나무 칸막이가 있다. 그 너머로 살풍경한 분위기를 내뿜는 넓은 사무실이다. 내가 있는 곳만 동굴처럼 움푹 안쪽으로 패여 있다. 낯설지 않은 풍경, 어딜까.
갑자기 정수리가 쪼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드릴로 머리에 구멍이라도 내는 것처럼 왕왕대며 토막 난 기억들이 비로소 되살아난다.
어제 퇴근 무렵 신 부장이 찾아왔었다. 입사동기 중에서 제일 먼저 부장이 된 놈이다. 놈의 잘난 꼴에 배알이 뒤틀린 적이 한두 번 아니다.
“어이, 김과장, 오늘 한 잔하지. 오줌 누고 뭐 볼 시간도 없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네. 자네하고 빡세게 마셔본 게 언젠지도 모르겠어.”
신 부장은 친한 척 내게 와서 얘기하지만 난 이미 녀석의 속셈을 읽고 있다. 놈은 아직까지 과장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날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거다. 부서의 직원들이 힐끔거리며 돌아다 봤다. 그들의 표정엔 부장 친구를 둔 내가 부러운 게 아니라 한심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 말았어야 할 술자리였다. 힐끔거리며 지켜보는 눈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따라간 것이 잘못이었다. 무엇보다도 거절을 하지 못하는 내 성격이 문제다. 그러니 아내가 날 물러터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술자리 내내 신 부장은 딸 자랑을 늘어놨다. 어렵다는 S대 의예과에 합격했다며, 한 턱 쏘는 거라고 했다. 부모덕 보는 놈은 자식복도 있다더니, 그 새끼가 모범답안이다. 놈은 학계에서 알아주는 아버지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장인도 지방의 재력가라고 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놈이 부럽기 그지없다. 실컷 제 얘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놈이 느닷없이 내 아들 윤식이 안부를 물었다. 제법 생각해주는 듯이.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놈이 동갑내기 제 딸과 윤식이를 비교한다는 걸. 난 지방대학을 그나마도 턱걸이로 들어간 윤식이가 못마땅해서 연신 술만 들이켰다.
신 부장과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술이 부족했다. 더러운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술이 더 필요했다. 아담한 카페엔 손님이 나 말고 한 명 더 있었다. 그쪽 탁자에 양주와 과일 안주가 푸짐했다. 그 자리와 엇비슷이 마주보이는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주문했다. 카페 여자는 내 주문 따윈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양주 손님 옆에 붙어서 꼼짝도 않았다. 한 번 두 번 불러도 응답이 없다. 그예 내가 다시 맥주를 달라고 소리를 지른 것 같다. 그러자 양주 손님이 여자에게 말했다.
“문 닫아걸지. 왜 귀찮은 사람들 들어오게 해.”
그 순간, 난 귀찮은 사람이었다. 머리에서 팍팍, 번개 치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 뭐라고 했어. 귀찮은 사람? 야, 너도 손님이고 나도 손님이야. 어디서 개나발 불고 있어?”
가끔씩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지 못한 채 귀가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의 얼굴엔 ‘귀찮아’라는 표정이 역력히 보였었다. 젠장, 오나가나 귀찮으면 난 어디로 가란 말이야. 순간, 오후 내내 참았던 울화가 욱, 하고 치밀어 올랐다. 난 탁자 위에 있던 재떨이를 던졌다.
하, 다른 건 허구한 날 빗나가면서 어제 따라 하필 재떨이가 상대의 가슴팍을 명중시켰다. 그가 벌떡 일어나면서 유리컵을 던졌다. 컵은 내 머리통에 부딪치면서 산산조각 났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뭔가가 눈을 적셨다. 끈적끈적한 느낌. 손으로 닦았다. 피다. 이런, 젠장. 마침 내 눈에 인테리어로 세워둔 작은 우체통이 들어왔다. 달려가서 그 빨간 우체통을 번쩍 들어서 녀석을 내려쳤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달려가는 것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끝으로 기억이 끊겼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이런, 출근도 못하는 거 아냐? 오늘이 목요일쯤 될 텐데. 이러다가 회사에서 알게 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난 연말에 결국 명예퇴직을 신청했던 양 과장이 그랬다. 더는 버틸 힘이 없다고. 양 과장은 나와 입사 동기다. 양 과장이 떠나자 승승장구 잘나가는 신 부장을 제외하면 일곱 명의 동기들 중에서 남은 건 나 혼자다. 나라고 지겹지 않고, 내장이 쓰리고 뒤틀리는 일이 없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윤식이와 고3인 윤서가 있다. 그들이 대학 교육을 마칠 때까지 난 버텨야 한다. 비록 로보트처럼 새벽에 나가면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귀가하는 생활이지만, 이십여 년을 다닌 직장이다. 아무리 지겹고 힘들어도 결근 한 번 안하고 오직 성실 하나로 인정받아 왔는데, 이제 와서 추한 몰골로 그만둬야 하다니.
칸막이 너머 사무실이 시끄러워진다. 경찰의 근무교대 시간인 모양이다. 저쪽 구석에서 점퍼를 입은 채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잠을 자던 형사가 교대 출근한 동료에게 나를 인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 그만 일어나서 나오세요.”
유치장 안엔 나 혼자뿐이다. 온 몸이 심한 몸살을 앓듯 쑤셔댄다. 눈을 뜨고 내 꼴을 내려다본다. 피 묻은 바지 자락이 심하게 구겨져 있다. 쥐색 양복의 상의가 한쪽 어깨를 뜯긴 채 겨우 매달려 있다. 꼬락서니하고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찢겨진 어깨를 비집고 서늘한 한기가 소름을 돋운다. 지금 기차게 망가진 형상이 나란 인간의 참 모습인지. 한심하기 그지없는 형국이다.
“운 좋은 줄 아쇼. 카페 마담이 증인으로 이미 진술을 다했고, 다행히 피해자가 복잡하게 얽히는 상황이 싫다고 처벌을 원치 않으니까 그쪽 병원비나 물어주시면 합의가 될 거요. 나중에 벌금이 청구될 겁니다. 전과가 없으니 망정이지 다음엔 얄짤 없수. 술을 마셔도 적당히 마셔야지 원. 혈기방장한 청년도 아니고.........”
아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젠장, 이 똥 밟은 기분.
2
아내는 술을 끊으라고 한다. 담배도 피우지 말라고 한다. 아내의 입에선 녹음기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늘 같은 말이 반복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몸에 해롭다는 커피를 틈날 때마다 마셔댄다. 자기는 하고픈 대로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못하게 하는 심보라니. 돈 벌어서 먹여 살리는 건 누군데. 숙취로 인해 눈을 뜨기 귀찮을 정도로 머리가 무겁고 기운도 없는데 아내가 옆에서 쟁쟁거리며 바가지를 긁어대면 짜증부터 솟구쳤다. 나도 내 몸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 그러니 어쩌다 술을 마시지 않고 들어오는 날이면 얼른 침대 속에 몸을 눕힐 수밖에. 리모콘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TV채널을 돌리다가 졸음이 오면 그대로 잠드는, 그것이 금쪽같은 내 휴식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십여 개의 납품업체와 한두 번씩만 술자리를 해도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 뿐이랴. 직장생활도 조직인 것을, 그러니 동료들과의 술자리 또한 피할 수 없다. 출근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술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누굴 위해서 이 짓을 하는 건지 스스로가 한심해진다. 언젠가 둘째 윤서가 물어온 적이 있다. 아빤 꿈이 뭐였어? 그 순간 난 아무 말도 못하고 멍청히 앞에 있는 커피 잔만 내려다 봤다. 당황해서가 아니었다. 꿈이 없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바랜 것처럼 도무지 생각해낼 수 없었다. 꿈을 잃은 사내, 미래를 모르는 사내. 난 한심함을 잊기 위해 또 마신다.
업무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들이 술자리에서 양해되고 타협된다. 그런 자리를 피하는 것은 직장생활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료들은 명예퇴직이란 미명하에 하루아침 거리로 내몰렸다. 지치고 힘들어서 나도 그만 쉬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산 속 깊이 숨어들어 남은 생을 물처럼 흘려보내고 싶다. 그때마다 내 발목을 잡는 것은 아내와 아이들이다. 여태껏 집에서 살림만 해온 아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아마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기도 어려울 거다. 나는 윤서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직장을 놓으면 안 된다. 그런 내 마음을 아내도 아이들도 모른다.
얼마 전 지방출장을 갔었다. 굳이 내가 가야할 일은 아니었지만 별다른 놀이거리나 볼거리가 없는 산골 물류창고의 현장답사에 좋다고 나서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 때 동료들의 호의 섞인 위로라도 받으려면 하릴없이 나이만 먹은 고참 과장이 눈치껏 앞장서서 총대를 메야한다. 현장을 찾아가는 길은 드라이어로 잔뜩 멋을 낸 아내의 머리카락처럼 구불구불 이어져서 승용차가 속력을 낼 수가 없었다. 그저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황송해 했다. 그것도 잠시,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 길은 잔소리꾼 아내라도 동행했을 걸 싶은 아쉬움을 안겨줬다.
현장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 공사장의 인부들은 이미 일을 마치고 돌아간 뒤였다. 산허리를 파헤친 붉은 흙더미가 남아있던 노을빛을 받아서 불타고 있었다. 그 빛을 쏘인 내 눈의 망막이 잠시 현기증을 일으켰다. 산 아래쪽으로 멀리 한강의 지류가 보였다. 이렇듯 멀고 불편한 곳에 물류창고라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지금은 물류창고라는 명목으로 산을 깎아서 다지고 있지만 이곳 지목을 임야에서 대지로 변경하고 나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한 숫자로 불어날 것이다. 게다가 현장 인근에 대규모 임야를 사들였다는 풍문은 그저 떠도는 얘기가 아닐 거다. 아마도 골프장이나 대규모 리조트 단지를 조성할 게 뻔한 이치다. 오는 길에 마주쳤던 수많은 공사차량들과 흙먼지가 말하는 이 지역의 미래를 회사의 경영진은 이미 간파했던 것이다. 뒤늦게 심부름하는 나 같은 놈들이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따라갈 수 없는 부의 축적이다. 멀리 보이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공사가 끝나면 서울에서도 제법 다닐만한 거리가 될 테고, 사람의 손길이 덜 탄 산골의 풍경은 그럴듯해 보였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산을 내려가서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푸륵, 푸륵. 어슴해진 숲에서 무슨 소린가 들렸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 그건 저녁이 되어 집을 찾아가는 땅새들의 몸짓이었다. 현장 근로자들은 아랫마을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들었다. 덕분에 저 작은 몸피들이 아직도 숲에서 땅을 치고 나무에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을 게다. 내 기억 속에서도 땅새가 날개 짓을 했다. 손아귀에 잡힌 몸뚱이가 애처롭게 작았다. 명치가 시큰해져서 얼른 손을 놓았다. 녀석은 푸르르 날아오르는 듯싶더니 기껏해야 내 허리쯤밖에 날지 못하고 앞으로 돌진했다. 녀석이 곧 새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렸다. 이미 걸려든 땅새들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물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있었다. 숲은 이미 어둠에 잠겨들고 화톳불 위에선 땅새 꼬치의 익어가는 냄새가 밤을 부르고 있었다. 스무 살이던 내가 인부들 사이에 있었다. 화톳불이 반사된 인부들의 얼굴이 검붉게 이글거렸다. 저만치 공사 중이던 중장비들의 시꺼먼 몸체가 보였다.
그 해 겨울, 나는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겠다고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노가다 생활을 했었다. 공사장 인근 산에 새들이 많았다. 가장 흔한 것이 땅새였다. 땅새는 참새보다도 작은 몸이 땅에서 일 미터 높이 이상을 날아오르지 못했다. 그들은 멀리 가지도 않고 늘 주변에서 맴돌면서 키 작은 나무에 붙어있는 벌레들을 잡아먹었다. 인부들이 땅새가 지나가는 길목에 그물을 치고 몰아대면, 그들은 한결같이 다른 길로 가지 않고 그물을 향해 곤두박질 치다시피 했다. 한번 그물에 걸린 땅새는 허우적대기만 했지 빠져나오는 걸 몰랐다. 그 광경을 보면서 인부들과 함께 새대가리라고 웃었다. 저녁이 되면 땅새 꼬치로 허기는 대충 때웠지만 몰려오는 졸음은 막무가내였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땅에서 일 미터 이상을 날지 못하는 땅새는 훗날 내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내는 항상 아이들을 먼저 챙긴다. 어쩌다 맨 정신으로 집에 들어가도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지방에서 대학에 다니는 윤식이야 어쩌랴마는 윤서도 자정이 다 되어야 학원에서 돌아온다. 그리곤 제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않는다. 관심이라도 보이면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니, 귀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빠가 뭘 알기나 하냐는 표정이다. 밥상에 차려지는 반찬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일색이다.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 같은 건 찾기 힘들다. 지독한 냄새가 옷에 배면 빠지지도 않는다나, 어쩐다나.
당뇨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약값도 수월찮다. 아직은 고향집에서 혼자 지내고 계시지만 머지않아 모셔야할 형편이다. 안부 전화라도 하는 날엔 어김없이 병원비 타령이다. 때로 어머니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수화기를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기도 했다.
3
일요일이다. 늦잠을 잤다. 집안이 절간처럼 적막하다. 모두들 어디 갔나. 시원한 해장국이 먹고 싶다. 식탁 위엔 밑반찬이 올려져 있다. 가스렌지 위에 얹혀있는 냄비를 열어보지만 해장국은커녕 국물이 좀 들어있는 김치찌개조차 없다. 빈속에 마른 반찬으로 식사를 하라는 건지.
“당신, 어디야?”
“응, 당신 자고 있어서 안 깨웠어. 지금 고속도로야. 윤식이한테 다녀오려고. 빨래랑 잔뜩 밀렸을 텐데 가서 해 주고 와야지. 식탁에 반찬 있고 밥은 전기밥솥에 있어.”
"윤서는 왜 없어? “
“걔는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갔어. 집에선 공부가 안된대. 당신이 술 마시고 집에 오면 애를 가만 두지 않으니 집에 있고 싶겠어? 나도 당신하고 술이라면 끔찍해.”
윤서…. 어릴 때는 유난히도 나를 따랐다. 어디를 가든지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려 했다. 내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잠도 안자서 아내를 애먹였다. 윤서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나는 잦은 출장과 야근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몇 년이 지나자 나를 보는 윤서의 시선이 서먹해졌다.
휴대폰에서 튕겨져 나온 아내의 목소리는 활기에 차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만 해도 밖에 나가는 걸 두려워했고 집에서 꼼짝도 않던 아내였다. 길도 모른다던 아내가 어느 날 운전면허를 땄다고 했다. 더 이상 당신만 바라보며 기다릴 수 없어서,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차갑게 느껴졌다. 그땐, 솔직히 홀가분했다. 아내가 홀로서기에 성공하면 나 역시 그만큼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내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수채화를 배우고, 스포츠 댄스도 하고, 통기타도 배웠다. 아내의 홀로서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왕이면 경제적 도움이 되는 일을 했으면 싶지만, 그건 자신의 능력 밖이라며 요지부동이다.
입안이 깔깔하다.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찬장을 뒤져서 라면을 찾아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다. 냄비에 물을 붓고 김치와 고춧가루를 듬뿍 넣었다. 물이 끓는다.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면서 파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설마, 애들이 파를 싫어한다고 사다놓지도 않은 건 아닐 테지.
얼큰한 라면 국물이 들어가자 메슥거리던 속도 풀리는 것 같다. 머리가 개운해지자 집안을 둘러본다. 오랫동안 주인이 떠나있던 윤식의 방이 썰렁하다. 녀석은 쓰던 컴퓨터까지 갖고 갔다. 녀석의 야구모자가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 모자를 쓰고 거울에 비춰본다. 거울 속에 나이든 윤식의 얼굴이 있다.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을 꼭 닮은 윤식이가 책상 위 사진틀 속에서 보고 있다. 초췌하게 일그러진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녀석은 웃고 있다.
어려서부터 말이 없던 녀석이다. 내가 일에 치여 정신을 못 차리고 돌아가는 동안, 녀석은 사춘기 열병을 앓았다. 녀석이 지방대학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앞뒤 생각 없이 호통부터 내질렀다. 학교를 다니기는 했냐며. 대체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시켰기에 이 모양이 됐냐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윤식이가 눈을 치뜨고 대들었다. 아빠가 뭘 알아. 우리가 아빠를 필요로 할 때 아빤 어디 있었는데? 아빠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 엄마가 혼자서 우리를 돌보는 동안 아빤 한 달에 한 번 통장에 돈을 넣어준 것 밖에 뭘 했는데….
윤식이는 여전히 사진 속에서 웃고 있지만, 말마디 마디는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상처는 시시때때로 욱신거리며 나를 괴롭힌다. 이후로 난 아이들 문제에 더욱 할 말을 잃었다. 그럴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담배를 들고 라이터를 찾는다. 습관처럼 베란다로 나간다. 아파트 광장엔 평소보다 차들이 많지 않다. 날씨가 좋아서 가족동반으로 나들이하기 좋을 거다. 광장 복판에 세워져 있어야할 내 차가 보이지 않는다. 어젯밤 늦은 시간에 귀가했더니 차들이 양쪽 주차선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지 않은 채 다른 차의 뒤꽁무니에 세웠다. 대체 어디까지 밀려났기에 보이지 않는 걸까. 광장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울컥 솟구치는 위액을 쓸어내린다. 아내는 전화에서 ‘고속도로야’하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던 것이다. 젠장, 이젠 내 차까지 제멋대로 몰고 다니는군.
4
퇴근 무렵, 회사의 e공지란에 부고를 알리는 공지가 떴다. 총무부장인 이 선배가 부친상을 당한 것이다. 나랑 같은 고등학교와 같은 대학을 다닌 선배는 내가 어려울 때마다 많은 힘이 되어주곤 했다. 평소의 친분으로 보아 아내와 함께 문상을 가야 한다.
“응, 난데 이 선배 아버님이 돌아가셨대. 지금 문상가야 하니까 얼른 준비하고 나와.”
“…….”
“알았지?”
“…….”
아내는 아무 말도 없다. 도대체 요즘 왜 그러는지, 내가 하는 말에 얼른얼른 대답하지 않는 그녀였다. 전화기 저편에서 아내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저녁 기타연주회가 있다고 했잖아요.”
한 달 전이던가. 아침 식탁에서 아내가 통기타 연주회를 열게 되었다고, 당신도 올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 같다. 아내의 말이 비로소 가물가물 되살아난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남편의 사회생활보다 당신 취미생활이 더 중요한 거야?”
“당신은 한 달 전부터 얘기한 걸 잊었잖아? 그러고도 나한테 문상을 같이 가자고? 나도 당신한테 기대하지 않을 테니 당신도 알아서 가면 되잖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해도 들은 척조차 안하는 당신을 누가 말려. 당신에겐 당신 생활이 중요하고, 그런 당신을 포기한 내겐 내 생활이 더 중요해.”
속사포처럼 한바탕 쏘아댄 아내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내가 달라졌다. 변했다는 건 느끼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확실하게 날 당황시킨 적은 없었다.
이건 너무 뜻밖이다. 내 생활이 바로 우리 가족의 생활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신 생활, 내 생활이 따로 있다니.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다.
아내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당신 생활 내 생활. 당신 생활 내 생활. 왜 그렇게 된 거지? 나를 포기하다니, 무슨 말인가. 요즘 들어 아내가 혼자 다닌 것은 날 포기했다는 의미였나? 아이들도 집을 비우는 게 아빠인 나를 포기했다는 것? 그럼 난 뭐지?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기계란 말인가.
이 선배는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사인은 패혈증이라고 했다. 평생 동안 병원에 입원해 본 적도 없는 분이 골반 뼈가 아파서 처음 입원한 거였다.
“뼈가 곪아서 그게 혈액을 통해 온몸으로 번졌대. 어제 입원할 때도 엉덩이만 아프다고 했는데, 오늘 갑자기 돌아가신 거야.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
하루 사이에 이 선배의 얼굴이 형편없이 초췌해졌다.
“진즉 모실 것을 그랬어. 그렇게 두는 게 아니었는데…… 특별히 아픈 곳도 없고 고향에서 친구들과 지내는 게 좋다기에…… 나도 내 식구들 챙기기 바빠서 그만……. 자네도 어머니 혼자 지내시지? 잘 해.”
이 선배는 그 와중에도 내 어깨를 두드려준다. 선배의 충혈된 눈을 보면서 내 눈시울도 뜨겁게 차오른다. 선배의 어머니처럼 건강하지도 못하고 늘 당뇨로 인한 합병증에 시달리는 내 어머니. 그 외로움과 병증의 하소연에도 나는 늘 귀찮아했다.
자정이 넘어서 병원 영안실을 나왔다. 거실에 등이 켜져 있다. 안방 문을 열었다. 캄캄한 방안에 거실의 불빛이 성큼 들어간다. 아내가 없다. 설마, 안 들어온 것은 아닐 테지. 전등불을 켜고 시계를 들여다본다. 새벽 두시. 사람이 누웠던 흔적이 없는 침대.
윤서 방에 가서 전등불을 켠다.
“윤서야, 윤서야.”
딸애는 귀찮다고 고개를 돌리며 모로 눕는다.
“윤서야, 엄마 어디 갔니? 엄마가 없어.”
“아이 참, 졸려 죽겠는데 자꾸 깨우고 그래. 엄만 오늘 기타연주회 끝나고 나서 뒤풀이 하고 온다고 했어. 좀 늦을 거래.”
“그래도 그렇지. 지금 새벽 두시야. 도대체 이 여편네가 지금까지 어디서 뭣하고 있는 거야? 야, 일어나서 엄마한테 전화해봐.”
윤서가 발딱 몸을 일으킨다.
“아빤 맨날 새벽에 들어오면서 뭘 그래? 엄만 오늘이 처음인데.”
나는 아이의 반응에 할 말을 잃었다. 나야 술 먹는 일 역시 업무의 연장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아내가 늦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 나처럼 생활비를 벌어오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 게다가 윤서의 말하는 태도가 영 거슬린다. 언제부턴가 나랑은 얘기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제 엄마랑 둘이서 속닥거렸다. 아내가 애들의 버르장머리를 잘못 가르친 게 분명하다.
“누가 아빠한테 그 따위로 말하라고 가르친 거야?”
“어휴, 술 냄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냐? 나 고3이라구. 내일 모의고사가 있단 말이야. 제발, 몇 시간이라도 나 좀 그냥 내버려 둬. 겨우 잠들었는데."
눈을 부비며 제 할말을 마친 윤서가 내 눈앞에서 방문을 닫고는 아예 잠가 버린다. 이런 젠장, 아무래도 술이 부족하다. 속이 답답해진 나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어 들고 베란다로 나간다. 아파트 광장엔 가로등 불빛만 환하게 비출 뿐, 어쩌다 들어오는 택시는 아파트 입구에서 돌아나간다.
5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휴게실 옆에 있는 화장실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을 때였다.
“자네도 그 얘기 들었지?”
“그러게. 근데 정말 그 상대가 신 부장님 부인 맞을까?”
“그 자식 말대로라면 그냥 학원도 아니고 음악원이라고 불릴 만큼 큰 데가 그쪽 동네에 또 있겠어? 게다가 나이도 엇비슷하잖아.”
“햐! 기막힌 일이군. 이거야 원, 자고 있는 마누라를 깨워서 다시 볼 수도 없고…… 그나저나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닌 건 확실한 모양이던데 부장님은 모르고 있겠지?”
“그럴 테지. 돈 잘 버는 마누라가 부럽긴 한데, 그런 식으로 콧구멍에 바람 들면 곤란해.”
“도대체 요지경 세상이라니까. 그 자식은 대학 다닐 때도 워낙 카사노바로 소문났던 녀석이야. 그래도 그렇지 나이 차이도 꽤 될 텐데.”
“신 부장님이 알게 되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 아무튼 안됐다 안됐어.”
문 밖에서 들리던 대화는 멀어져 갔지만 한동안 나는 변기에 쭈그려 앉은 채 놀라서 멈춰버린 대변과 씨름하면서 혼란스러워 했다.
퇴근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하필 신 부장이다. 납품업체들과 업무 협의차 회식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나오라고 했다. 나쁜 자식, 아무리 상사지만 이건 아니잖아.
서둘러 회식자리를 끝내고 신 부장이 기다리는 술집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화장실에서 들은 소문이 궁금했다. 신 부장은 스탠드바의 어두컴컴한 구석에 앉아서 붉은 조명을 배경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발렌타인 12년산이 거의 비워져 있다. 그 술을 혼자서 마셨는가. 언제나 그가 부러웠다. 동기생이면서도 나보다 앞서 나가는 놈. 잘난 부모와 잘난 아내, 그리고 더 잘난 딸을 둔. 그냥 부러운 것이 아니라 항상 질투가 앞섰다는 게 신 부장에 대한 솔직한 내 감정이었다.
“오늘은 어쩐 일로 나한테까지 시간을 내어 주시나그려?”
신 부장과 대화를 나누는 게 나는 늘 불편했다. 상사라고 꼬박 존대할 수도 없고, 동기라고 말을 놓을 수도 없는 상대. 그래도 술자리에서만큼은 적당히 말을 놓고 지낼 수 있다.
“이 사람이…… 그래도 입사동기라고 생각해서 불렀더니만. 거 쓸데없는 소린 집어치우고 굳세게 남아있는 동기끼리 허심탄회하게 마셔보세.”
그는 여전히 강철 사내다.
“그래,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부인 사업은 잘되지? 부럽다는 말도 한두 번이지 원, 암튼 자넨 복도 많아.”
“그래봤자 내 사업도 아닌데 뭘 그러나. 어차피 각자 벌어서 각자 쓰고 사니까 얼마나 버는지도 알 수가 없거든. 그저 젊어서는 귀찮게나 안하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요즘엔 사업한답시고 너무 싸돌아다니는 것 같아. 나한텐 관심조차 없는 거 같다니까. 이번엔 딸애가 다닐 학교를 알아본다는 핑계로 두어 달 미국에 다녀오겠다는 거야. 음악원은 벌써부터 선생들한테 업무를 분담시켜 놓고 아내는 행정실장의 보고만 받는 모양이야. 제길, 이번 참에 나도 연애나 한번 해볼까? 하하.”
부인에 대한 소문을 모르고 하는 소릴까? 그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네 아들은 유학이니 어학연수 같은 거 보내달라고 안하는 모양이지? 우리 딸은 대학이나 마치고 가라고 해도 영 말을 듣질 않아. 입학하자마자 유학 준비한다고 내내 쏘다니는 거 같더니만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휴학했다나봐. 엄마가 보내준다고 했대나? 돈 잘 벌면 남편의 허락은 필요 없다는 건지 통 기분이 나쁘단 말야. 그렇잖아도 시간 많아서 나돌아 다니는 우리 마누라만 더욱 살판나는 자유부인이 되는 거지 뭐야.”
자유부인이라니. 신 부장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녀석은 전혀 아쉬울 거 없다는 듯이 말을 하면서도 소태 씹은 듯한 얼굴을 억지로 펴려는 것처럼 자꾸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술잔을 들어서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가족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가족은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한결같은 존재라고 나는 믿어왔다. 언제 어디서든 가족을 생각하면 든든했다. 치사하고 힘든 일도 그들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신 부장 딸은 정말 유학을 가는 걸까. 평소의 신 부장이라면 미국동부 아이비리그의 학교 이름까지 들먹이며 자랑할 텐데. 낮에 들은 소문 때문인지 그의 말이 공허하게 느껴져서 자꾸 술만 들이켰다.
내 아내는 괜찮은가. 며칠 전, 연주회를 마치고 새벽에 귀가했던 아내는 금세라도 터질 듯한 생기를 품고 있었다. 아내를 새벽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살아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신 부장과 헤어져서 택시에 오르자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아파트 입구에서 택시를 내렸다. 발밑이 자꾸 꺼져 내리는 것만 같다. 현관 앞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갈 걸, 괜히 내렸다고 후회한다. 꽤 늦은 시간일 텐데도 우리 집엔 불이 켜져 있다. 가장인 내가 귀가하지 않아서 켜놓은 불일 게다. 아니, 아직 윤서가 잠들지 않고 공부하는 걸까. 집에 들어가면 공부를 방해한다고, 아빠답지 못하다고 상대조차 안 해줄 테지. 올려다본 아파트의 불빛이 공중그네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대로는 들어갈 수 없다. 늦은 밤의 놀이터 벤치는 텅 비어있다. 잠시 쉬면서 술 좀 깨야겠다. 우리 집처럼 환하게 불 켜진 집이 몇 군데. 가끔씩 작은 불꽃이 깜박거리는 베란다들도 있다. 거기, 어둠속에 쪼그리고 않아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가슴을 띄워 보내는 땅새가 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오늘 밤도 멀리서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단편소설 원고지 7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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