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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오컬티즘의 기본
1887년에 블라바츠키 여사가 런던으로 옮겨서 「루시퍼(Lucifer)」 지(誌)를 시작할
무렵, 서구의 분위기는 오컬티즘이 흘러 넘치고 있었다. 심령현상이나 오컬트 이론의 연
구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실천해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급속히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블라바츠키는 이러한 분위기에 부응해서, 「루시퍼」에 〈실천적 오컬티즘(1
부)〉과 〈오컬티즘과 오컬트 기술(2부)〉이라는 논문에서 신성한 과학의 가능성과 조건
을 확실히 제시했다. 여사의 사후(死後)에 앞의 두 논문에 〈일상생활을 위한 실천적 제
안(3부)〉을 추가하여 「실천적 오컬티즘」이라는 단행본을 출판했다. 〈일상생활을 위한
실천적 제안〉은 블라바츠키 여사의 원작이 아니고, "바가바드 기타"나 "루시퍼"등에서
인용문을 뽑은 것이다.
1. 실천적 오컬티즘
오컬티즘의 실천적인 지도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으로 다음 사항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a) 이론적 오컬티즘과 실천적 오컬티즘, 즉 「신지학」과 「오컬트 과학(Occult
Science)」이라고 말하는 것의 본질적인 차이점.
(b) 실천적 오컬티즘 연구에 따른 어려움.
신지학도가 되는 것은 쉽다. 보통 정도의 지적 능력과 철학적 소질이 있어 보이는 사
람이면 누구나 신지학도가 될 수가 있다. 또한 청순하고 비이기적인 생활을 하며, 자신이
도움 받는 것보다 이웃 사람들을 돕는 것에 더 기쁨을 느끼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
해 자신의 즐거움을 희생하려고 하며, 이익을 얻으려고 생각하지 않고, 진리, 선, 지혜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사람은 신지학도이다.
그렇지만 선과 악을 바르게 식별하는 것과 같이, 무엇을 하면 도움이 되는가를 알아
내는 길, 심지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서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선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어내는 실천적 오컬티즘의 길로 들어가는 것은 판이하게 다르다.
게다가 제자가 알아두어야 할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다. 즉 스승은 제자를 위해 거의
무한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혹은 비밀리에 가르
침을 주는 동양의 "구루"에서부터, 신성 과학의 기본을 제자들에게 전하는 서구의 몇 안
되는 "카발리스트"들에 이르기까지--서구의 스승들은 자신들이 불러들이는 위험에 대해
서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스승들은 모두 똑같이 이러한 신성한 법칙에 따르고 있
다.
스승이 진정한 가르침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심령적, 멘탈적, 물리적인 어떤 힘이든지
그 힘을 제자에게 주게 되는 순간부터, 그 제자가 비전(秘傳)을 받아서 대사(大師)가 되
어서 자기 자신의 제자들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게 되기까지, 오컬트 과학에서는 제
자의 모든 죄(罪)--여기서 "죄"라는 것은 나쁜 것을 행한 것뿐만 아니라 해야할 것을 하
지 못한 것도 포함하고 있다.--에 대한 책임을 스승이 맡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정교에
서는 대단히 중요하게 실행되고 있지만 구교(舊敎)에서는 거의 반정도 사라졌고 개신교
에서는 완전히 끊어져 버린 불가사의한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그리스도교 초기에 시작
되었고, 앞서 말한 사제(師弟) 관계의 신성한 법칙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신성한 법칙의
상징이며 표현이기도 하다. 이 법칙에 의하면, 한 아이의 후원자가 되는 교부모(敎父母)
사이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신성하다. 교부모들은 새로이 세례를 받은 아이가 선과 악을
알고 책임질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날까지, 그 아이의 모든 죄의 책임을 떠맡게 된
다.(세례를 받는 아이는 '비전'을 받은 것처럼 기름을 부어 깨끗하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의 신비이다.) 이러한 사유로 스승들이 왜 오컬티즘에 관해서 단단히 침묵을 지키
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제자들이 자신의 적성을 증명하고 대사와 제자 양쪽의 안전에
필요한 특성들을 개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왜 7년이라는 세월의 견습기간을 가지도록 했
는지 분명하게 수긍이 갈 것이다.
오컬티즘은 마술이 아니다. 주술을 배우거나, 보통의 에너지보다는 정묘하지만 여전히
물질적인 자연의 여러 에너지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비교적 쉽다. 인간 속에
있는 "동물혼"의 여러 능력들은 쉽게 일깨워 진다. 사랑, 미움, 정욕 등과 같은 격한 감
정에 의해서 일깨워지는 에너지는 쉽게 개발될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흑마술 혹은
사술(Sorcery)이다. 왜냐하면 힘을 사용하는 것이 해로운 흑마술이 되는가 혹은 유익
한 백마술이 되는가는 순전히 동기에만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 힘을 사용하는 자의 마
음속에 아주 미세한 정도의 이기적인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면, 영적인 힘을 사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의도하는 바가 완전히 순수한 것이 아니면, 영적인 힘은 '심
령적인' 힘으로 바뀌고, 아스트랄계에서 작용하게 되어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
다. 비이기적인 관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나, 이기적이며 복수심이 강한 사람들이나
모두 다 동물혼의 능력과 에너지를 사용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영의 여러 가지 능력과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아주 완전하게 깨끗한 사람들뿐이다.--그리고
이것이 바로 신성한 마술이다.
그렇다면 "신성한 지혜"의 제자가 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은 무엇인가? 다음 조건들을
충실하게 여러 해 동안 엄격하게 지키고 실행해가지 않으면, 실천적 오컬티즘의 가르침
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
다. 깊은 물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구도 수영을 할 수가 없다. 또 날개가 성장하지 않
으면 안되며, 그 앞에 공간이 있어서 자신을 그 공중에 맡길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
지 않으면, 그 어떤 새도 날을 수가 없다. 양날의 검을 사용하려는 사람은 그 검을 처음
사용할 때, 자신이 다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또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다치게 되는
것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칼날이 서있지 않은 무딘 칼의 완전한 숙달자가 되어야만 한다.
신성한 마술이 흑마술로 바뀌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즉 신성한 지혜의 연구를 안
전하게 추구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들에 대해서 개략적인 개념을 전하기 위해서,
동양의 여러 스승들에게 주어진 "비밀의 규칙"들 안에서 몇 가지만 인용해 보겠다. 다음
몇 개의 규칙들은 많은 규칙들에서 발췌한 것으로, 하나씩 그것들 뒤의 괄호 속에 설명
을 붙여 보겠다.
(1) 가르침을 받을 장소는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고, "좋은 영향력(자기(磁氣))"을 방출
하는 물체들이 많은 곳이어야 한다. 다섯 개의 신성한 오색이 하나의 원 속에 모여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 장소는 공중에 떠돌고 있는 어떠한 유해한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라
야 한다.
〔그 장소는 다른 목적으로 써서는 안된다. "신성한 오색"이란 어떤 특정한 형태로
배열되어 있는 무지개의 오색이다. 그 색들의 자력은 대단히 강하다. "유해한 영향"이란
불화, 싸움, 사고, 병, 나쁜 감정 등에 의한 방해를 뜻한다. 싸움이나 격정은 즉각 그 장
소의 분위기, 즉 아스트랄 빛에 인상을 주게 되고, "대기 속에서 떠돌아" 다닌다. 이 첫
번째 조건을 지키기 쉬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지키기 어려운 것들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 것이다.〕
(2) 제자가 "마주 보고" 공부하는 것을 허락 받기 전에, 다른 제자들로 선발된 동료
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력을 체득해야한다. 이 경우 동료들의 수는 반드시 홀수여야 한
다.
〔"마주 보고"라는 것은 이 경우에, 혼자서 즉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라는 뜻으로,
그 때 제자는 자기 자신의 진아(眞我)와 마주보고 또는 자신의 스승(구루)과 마주 보고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 때가 되서야 비로소 자신이 지닌 지식을 어떻게 응용해
왔는가에 따라서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가르침을 받게 된다. 이것은 가르침의 전기간
중에서 끝 무렵에 일어난다.〕
(3) 스승이 "라무린"의 성어(聲語)를 제자에게 전하기 전에 혹은 제자가 "듀부제드
(Dubjed)"를 준비하도록 허락하기 전에, 제자의 마음이 완전히 정화되어 모든 것들, 특히
자신의 「다른 자아들」과 평화로운 사이가 되어 있는지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의 말씀과 선법(善法)의 말씀이 흩어지게 되어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라무린"이란 '쯔온카파'가 지은 실천적인 교훈의 저작으로,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
부는 종교적, 현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교적(秘敎的)인 목적을 위
해서 쓰여졌다. 「"듀부제드"를 준비한다」라는 것은 거울이나 수정같이 투시를 위해 사
용될 수 있는 비품들을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자아들"이란 동료 제자들을 말한다.
제자들 사이에 최고의 조화가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스승은 제자들의 양과 음의 요소
들을 신중하게 조정하면서, 제자들 자기적, 전기적 성질에 따라 구별해서 선별한다.〕
(4) 공부를 하는 동안에 제자들은 한 손에 있는 다섯 손가락처럼 통일을 이루도록 주
의를 기울여야 한다. 동료중의 한 사람이 다치게 되면, 다른 사람 모두가 다치게 된다는
사실을 스승은 제자들이 마음속 깊숙이 간직하도록 인상을 주어야 한다. 만약 한 사람의
기쁜 일이 다른 동료들의 가슴에 반향을 일으키지 않으면, 요구하고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므로, 배움을 계속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자기적(磁氣的)인 조건을 고려하여 제자들을 선택하더라도, 이 같은 일은 좀처럼 잘
일어나지 않는다.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가능성 있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기
질 때문에 혹은 동료들과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
(5) 동료 제자들은 비나의 현(絃)처럼 구루에 의해서 조율되어야 한다. 각 현은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전체적으로 조화의 음을 내지 않으면 안된다. 제자들은 하나가 되어
구루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소리를 낼 수 있는 건반처럼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제자
들의 마음은 지혜의 조화를 향해서 열리게 될 것이고, 신지(神智)는 제자들 모두를 뚫고
나가는 지식으로서 진동하게 되어, 주재(主宰)하고 있는 신들(수호천사, 수호신)에게 즐겁
고, 제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지혜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인상이 찍혀질 것이고, 법칙의 조화가 결코 깨지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6) "시디스"--오컬트 힘--에 이르는 지식을 얻고자 희망하는 자는 이 세상과 인생의
모든 허영을 버려야만 한다.
(7) 「나는 가장 뛰어나다.」라든가 혹은 「나는 동료들보다 더 신성하고, 스승이나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서 더 신임을 받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자는 제자의 길을 그만
두어야 한다. 제자는 어떤 생물에 대해서도 적개심을 가져서는 안되며, 그것을 그의 마음
으로부터 쫓아내고, 자신의 생각들을 계속해서 가슴속에 고정시켜야만 한다. 그래서 자신
과 대자연에 있는 모든 존재들과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마음속에 가득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할 수가 없다.
(8) 제자는 외계(육신 및 생활환경)에 살아있는 것들에서 오는 영향--살아있는 것들
에서 오는 자기적(磁氣的) 방사(放射)--을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내적인 본성에서는 모
든 것들과 하나이지만, 자신의 신체는 모든 외부적 영향으로부터 분리시키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식기(食器)를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이나 동물과의
신체적인 접촉을 해서는 안된다.
「애완 동물도 허락할 수 없다. 심지어 어떤 나무나 식물을 만지는 것도 금하고 있다.
제자는 오컬트 공부의 목적을 위해 자기자신의 분위기를 개별화(個別化)하기 위해서 그
러한 분위기 속에서만 살아가야 한다.」
(9) 제자의 마음은 대자연의 보편적인 진리 외에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마음이 무뎌
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마음의 가르침"이 "눈의 가르침"--즉 텅 빈 현교적 의식--으
로 되고 만다.
(10) 제자는 그 종류가 어떻든 간에 생명을 가지고 있는 동물을 음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또 포도주나 다른 종류의 술 혹은 아편 등을 사용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이 같은
것들은 부주의한 사람에게 달라 붇는 '라마임', 즉 악령(惡靈)과 같기 때문에, 제자의 이
해력을 삼켜버린다.
「포도주 및 다른 여러 가지 술에는 제조 과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기(磁氣)가 쉽
게 포함될 수 있고, 그 자기는 매우 지속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동물의 고기는 그 동물
의 심령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11) 모든 사람들에 대한 호의와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망각, 명상, 금욕, 도덕적
의무의 준수, 고운 생각, 선행, 친절한 말씨 등은 지식을 획득하고 고급의 지혜를 받도록
준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12) 제자는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규칙들을 준수했을 때만, 때가 무르익으면 '아라
한'의 '시디스'를 얻게 되게 되고, 차츰 차츰 "보편적인 전체"와 하나가 되는 성장을 기대
할 수 있다.
여기에 있는 12의 규칙들은 73개의 규칙들에서 발췌한 것이다. 73개 규칙 모두를 여
기에 열거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서구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규칙들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겨우 12개
의 규칙만으로도 제자의 길을 갈 수 있는가를 충분히 보여준다.
서구, 특히 영국의 교육은 경쟁과 투쟁의 원리가 넘치고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빨
리 배우고, 자신의 동료들을 추월해서,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같은 또래들보다 앞설 것을
부추긴다. 그것이 지나쳐서 "친선경쟁"이라고 잘못 표현되고, 일상 생활의 모든 일에서
경쟁심을 기르도록 촉진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생각을 갖도록 교육받은 서구 사람들에게, 자신의 동료들에 대해
서 "한 손에 있는 다섯 손가락처럼" 느끼라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또한 같은 동료들은
자기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동정이나 감사에서 그가 직접 선택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스승에 의해서 아주 다른 근거로 선택되어 진다. 그리고 제자가 되고 싶
은 사람은 먼저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거나 반감을 가지는 것 등의 모든 감정을 마음속에
서 없애 버려야 할 정도로 강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서구인들이 이것을 성실하게 시도
해 볼 준비가 되어 있을까?
게다가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과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가장 소중한 사람의 손
까지도 잡지 말라는 규칙 등이 있다. 이 규칙이 애정이나 호감에 대한 서구인들의 개념
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것이 아닌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하고 지독하다고 생각되지
않을까! 또 자기 자신의 진보를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 말라는 것이 너무 지
나친 정도로 이기적이라고 서구인들은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다음 생까지 미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상상적인 비
이기심 속에서 착각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비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하나의 자기 기만에 불과하고, 정서주의나 감정 혹은 비실재적인 삶의 잡동
사니들--소위 "예의"라는 것--은 진리가 요구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조건들을 "외적"인 요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대
단히 중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들은 별개라 해도, 서구의 제자들이 여기서 요
구하고 있는 조화에 자신들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서구에서는 자기 중심의 개성이
대단히 강하게 자라 있어서, 회원들 서로간에 미워하고 질투하지 않는 예술 학파는 하나
도 없다. "전문적인" 반목과 질투는 이젠 속담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
라도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소위 "예의"같은 것조차도 미움이나 질투의 악마를 감추
어 보려는 가면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동양에서는 "만물 비분리"의 정신이, 서구의 경쟁심처럼,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주입
되어진다. 개인적인 야심, 개인적인 감정 및 욕망을 강하게 자라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원래 마음의 토양(土壤)이 좋으면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해서, 저급아가 고급아에 따르는
습관이 강하게 뿌리를 내린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서구인들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
이나 사물들에 대해서 좋다 싫다하는 것은 행위의 방향을 주는 원리이다. 심지어 그것을
자신들의 생활의 법칙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때에도, 서구인들은
좋다 싫다에 따라서 행동한다.
신지학 협회에서는 별로 배운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1888년 2월호의 「도
(Path)」라는 잡지에 나온 논문을 명심해 주면 좋겠다.--《각 단계에서의 진정한 열쇠
는 구도자 자신이다.》 "지혜의 시작"은 "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지혜 그 자
체인 자아에 대한 지식이다.
위에서 말한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기 시작한 오컬티즘을 공부하는 제자에게, 오컬트
지혜를 구하러 온 모든 사름들에게 '델파이 신탁'에서 준 답이 얼마나 멋지고, 깊은 진실
을 나타내고 있는가! 그 말은 현명한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계속 반복된 말이다.--"인간
이여, 그대 자신을 알라."
2. 오컬티즘과 오컬트의 기술
나 종종 들어왔지만 오늘까지 믿지 않았었다.
힘이 센 마법의 주술에 의해 대자연의 법칙을
부정(不正)한 목적으로 왜곡하는 자 있다고...
--밀턴--
이 달 들어서 온 몇 통의 편지에서 보아도 지난달의 논문인 "실천적 오컬티즘"이 어
떤 사람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편지들은 다음의 두 가지
결론을 충분히 증명해 준다.
(a) 오컬티즘과 마술을 믿는--두 개는 대단히 틀린 것이지만--교양이 있으며 사려
깊은 사람들이 근대 유물론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있다.
(b) 많은 신지학도를 포함해서, 이 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은 오컬티즘의 본질에 대해
서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일반적으로 오컬티즘과 "흑마술"을 포함하는 오
컬트 과학을 혼동하고 있다.
오컬티즘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여러 힘이나 그 힘들을 얻기 위하여 사용하는 여러 가
지 방법들에 관해서 사람들의 설명은 상상만큼이나 다종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오컬티
즘의 대사(大師)만 있으면 얼마후 "자노니(Zanoni)"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수에즈 운하를 건너서 인도로 가기만 하면, "로저 베이
컨"이나 혹은 심지어 "생 제르맹 백작" 처럼 걸출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상상한다. 또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마그래이브(Margrave)'를 그들의 이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그가 그것을 위해 자신의 혼이라는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을 잊어
버리곤 한다. 또 삼도(三途) 강의 엷은 암흑에서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을 통해서
망령을 불러내는 '엔돌'의 무녀(巫女)를 오컬티즘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으며, 또 이런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완전한 '초인'이 된 것으로 알고, 그렇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
이 많다. '엘리파스 레비'가 조롱하듯 만들어낸 규칙에 의하면, "의식적 마술"은 옛날 아
라한들 철학의 상상의 '분신'이다. 간단히 말해서 오컬티즘에서 표출하는 '프리즘'은 그
철학에 정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만큼 다양하며,
여러 가지 색깔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지혜와 힘을 얻으려고 생각하는 지원자들에게 분명한 진실을 알려주면, 그들이 매우
성내지 않을까? 너무 늦기 전에 많은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유용할
뿐만 아니라 이젠 필요하게 되었다. 이 진실을 단지 몇 마디로 말할 수가 있다: 서구에서
자신을 "오컬티스트"라고 말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수백 명이나 있지만, 그들
중에 자신이 통달하려고 노력하는 오컬트 과학의 본질에 대하여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몇 명밖에 안된다. 약간의 예외를 제
외하고는 그들 대부분은 흑마술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 있다. 그들이 이 말에 대해서 항
의하기 전에, 그들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혼돈(混沌)의 상태에서 질서를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먼저 오컬티즘과 오컬트 과학이 갖는 진정한 관계 및 둘 사이의 차이를 배우
게 해야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 때는 화를 내도 좋다.
한편, 눈부신 태양과 촛불이 다르듯이, 또는 '절대적이며 원인 없는 불가지(不可知)의 일
체'의 반영인 불변불사(不變不死)의 인간의 영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육체와 다른 것처
럼, 그들로 하여금 오컬티즘과 다른 여러 비밀 과학들 사이의 차이를 배우게 해야 한다.
고도의 문명을 이룬 서구 사회에서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사상에 눈을 뜸과 동시에
근대에 맞는 언어와 말들이 만들어졌다. 이런 일은 어느 나라 말이든 다 같은 과정을 겪
는다. 세속적인 재화(財貨)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기주의라는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사
상과 개념들이 물질주의화 되면 될수록, 정신적인 것들에 대해서 토론해 보기도 전에
"미신"이라고 암묵적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들을 만들 필요성
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말들을 마음속에 담아 두어서
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속임수"와 동의어가 되어 버린 "마술", 아주 어리석은 무지를 나타내는 말이 되어버
린 "사술", 중세의 바보 같은 배화 철학자들과 제이콥 보엠 그리고 성 마틴 신자들의 유
감스로운 유물인 "오컬티즘" 등은, 모두가 손기술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표현들이라고
생각되어져 왔다. 이런 말들은 모두가 경멸하는 용어들이며, 암흑의 중세 시대와 그 이전
이교도(異敎徒) 시대의 더러운 찌꺼기를 언급할 때만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졌다. 따라서
그런 평범하지 않은 능력들 사이의 차이나 혹은 그런 능력을 습득하도록 이끄는 제과학
들 사이의 차이를 동양의 언어, 특히 산스크리트어처럼 매끄럽게 정의하거나, 미묘한 뜻
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 서구의 영어에는 없다. "Miracle(기적)"과 "enchantment(마법
혹은 마법에 걸린 상태)"라는 말을 듣거나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전달되는
가? 그리스도 교도는 "자연의 법칙을 깬다" 하더라도 모세를 통해서 신이 하신 일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기적을 굳게 믿고 있지만, 파라호의 마술사들이 행한 마법은 조소하
거나 악마의 짓이라고 말한다.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 교도들은 오컬티즘을 악마와 연결
시키지만, 믿음이 약한 불신자들은 모세나 마술사 및 오컬티스트들을 비웃고, 그런 "미
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 차이를 보여주는 말
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즉, 빛과 그림자를 표현할 말이나, 진실한 것과 터무니없
고 우스꽝스러운 것 사이의 경계선을 그어주는 적절한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하
는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것은 인간, 신 혹은 악마가 "자연의 법칙들을 깨는 것"을
가르친다고 하는 신학적인 해석들이다. 반면에 숭고하고 진실한 것이란, "자연의 법칙들
에 따라" 모세나 마술사들이 행한 과학적인 기적들로, 그들은 그 시대의 "왕립 학술원"
이었던 사원(寺院)에서 그 지혜와 진정한 오컬티즘을 배웠다. "오컬티즘"이라는 말은 분
명히 오해를 일으키는 말이다. 그것은 "비밀의 지식"이라는 "굽타-비디야"라는 복합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에 관한 지식인가? 몇몇 산스크리트 용어를
보면, 그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비전 지식 혹은 비전 과학에 붙여진 많은 명칭들 중에서 네 가지가 있
다. 이것들은 심지어 현교적 성전인 "푸라나"에도 나오는 것이다.
(1) 야즈나-비디야
--어떤 종교적인 의식들을 행함으로서 대자연계에서 깨어난 오컬트적인 힘에 관한 지식.
(2) 마하-비디야
--"위대한 지식"이란 뜻으로, 카발리스트들의 마술이나 탄트라 숭배
의 마술로, 최악의 경우에는 주술을 나타낼 때도 있다.
(3) 구히야-비디야
--'음(音)'(에테르) 속에 있는 신비적인 힘들에 대한 지식이다. 따라
서 만트라--노래를 부르는 기원이나 주문--안에 잠재해 있는 신비한 힘에 관한 지식이
며, 사용되는 리듬이나 멜로디에 따라 다르며, 대자연의 힘과 그 상호 관계의 지식에 근
거한 마법이다.
(4) 아트마-비디야
--동양학자들에 의해서 단순히 "혼에 대한 지식" 혹은 "진정한 지혜"로 번역되 쓰여지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의 아트마-비디야만이 "도의 길잡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현명하고 비이
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신지학도가 추구해야할 오컬티즘이다. 다른 모든 것은 모
두가 "오컬트 과학"의 분야들에 불과하다. 그와 같은 기술은 광물, 식물, 동물과 같은 대
자연의 왕국에 있는 모든 사물의 궁극적인 본질에 대한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기술
로, 비록 그 본질이 보이지는 않더라도, 또는 그것이 과학의 이해를 벗어난 것일지라도,
물질적인 영역에 속해있는 것들에 대한 지식이다. 연금술, 점성학, 오컬트 생리학, 수상술
(手相術) 등은 대자연 속에 존재하며, 근대과학은 이미 위에서 언급한 기술들의 비밀을
많이 발견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쉬바의 눈"이라 상징되고, 그 밖의 나라 등에서는
"천리안" 등으로 불려지는 "투시력"은 메즈머리즘의 사생아인 최면술도 아니며, 그러한
기술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트마-비디야'를 제외한 모든 다른 것들에 통달
하면, 좋든 싫든 결과를 얻어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아트마-비디야'는 그러한 것들을 높
게 평가하지 않는다. '아트마-비디야'는 다른 모든 분야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때로는 그
기술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한 목적을 위해서 불순물을 없애고, 이기적인 동기
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한 후에 그 같은 기술들을 사용한다. 어떤 사람도
사전에 커다란 준비를 하지 않고도, 심지어 금욕적인 생활방식을 따르지 않고도, 위에서
말한 한 두 가지 혹은 모든 "오컬트 기술"들을 배울 수가 있다. 심지어 어떤 고귀한 도
덕적 기준 없이도 배울 수가 있다. 그러나 물론 도덕적인 기준 없이 배울 경우에는 십중
팔구는 상당한 주술사가 되고, 흑마술로 곤두박질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뭐 중
요한가? "부두교"나 "둑파"의 주술사들은 먹고 마시고, 그들의 악마적인 기술에 의해 희
생된 무수한 희생자들에 대해서 즐거워한다. 마찬가지로 온후한 신사들인 생체 해부학자
들과 의학박사의 칭호를 가진 최면술사들도 똑같다. 그들 사이에 유일한 차이는 부두교
와 둑파는 의식적인데 반해, '챠코트-리셋'같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인 주술사라는 것이다.
이처럼 양쪽 모두 흑마술에서의 노력과 성취의 결실을 수확해야만 하기 때문에, 서구의
의사들이 흑마술에서 얻어지는 이익과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다면, 벌이나 명성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시 말해서 이런 학파들에서 실행되고 있는 최면술이나 생
체해부는 순전한 주술이다. 단 부두교나 둑파에서 가지고 있는 지식을 그들은 가지고 있
지 않으며, 챠코트-리셋같은 사람들이 50년 동안 제아무리 열심히 연구하고 실험적인 관
찰을 하더라도 얻어낼 수가 없는 지식이다. 마법의 성질을 이해하건 이해하지 못하건, 마
법을 장난으로 하려고 하며, 제자들에게 주어진 규칙들이 너무나 엄해서 아트마-비디야
혹은 오컬티즘을 단념한 사람들을 아트마-비디야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운명을 맡기
는 수밖에 없다. 비록 그들이 다음 10생 동안 부두교와 둑파의 주술사가 되더라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아마도 오컬트에 왠지 모르게 끌리면서, 그들이 열망하는 것의 진정
한 성질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그렇다고 번뇌를 떨쳐버릴 수도 없고, 진정한 무사무욕
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에 아마도 가장 흥미를 가질 것이다.
이와 같이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상호 모순적인 충동들에 의해 갈팡질팡하는 불행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너무나 자주 말해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지만, 조
금만 관찰해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는 일이다. 일단 사람의 마음속에서 오컬티즘
에 대한 욕망이 눈뜨게 되면,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안식이나 의지할 곳이 없으며, 마음의
평화에 대한 희망이 있을 수가 없다. 그는 억누를 수 없는 끝없는 불안에 휩싸여 거칠고
황량한 공간으로 내몰려진다. 그의 마음은 격정과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
에, 그가 "황금의 문"을 통과하도록 허용치 않는다. 그는 평범한 생활에서 안락 혹은
평안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면 그는 필연적으로 마법이나 흑마술로 빠져서, 수많은 생
(生) 동안 끔찍한 카르마를 쌓아야 하는가? 그가 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없는가?
또 다른 길이 있다고 우리들은 대답한다. 자신이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이상
의 높은 성취를 바라지 않을 것이며, 자신에게는 너무 무거워서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하트마", "붓다" 혹은 위대한 성인이 되어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철학이나 "혼의 과학"을 연구하면, 어떤 초인적인 힘 없이도 인류에게 도
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아라한이 가지는 힘인 "시디스"는 그런 훈련에 필
요로 하는 무서운 자기 희생을 감수하고, 규칙들을 빈틈없이 엄밀하게 지켜서 완전히 바
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다. 진정한 오컬티즘 혹은 신지학은 생각
이나 행동에서,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자신을 버리는 "위대한 자기부인
(自己否認)"이라는 것을 똑바로 알고, 이것을 항상 마음에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좋
다. 오컬티즘은 애타주의이며, 그것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타산적인 계산은 허용되지 않
는다. 그가 그 일을 하겠다고 스스로 맹세하면,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
계를 위해서 살아가게 된다." 견습기간 초기에는 많은 것들을 용서받는다. 그러나 그가
"받아들여지자마자", 제자의 개성(저급아)은 사라져야 하고, 그는 단지 대자연 속에서 일
하는 선한 힘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그에게는 두 개의 길이 확실하게 나타나며, 중간
에 휴식할 수 있는 길도 없다. 제자는 많은 환생과 데바챤에서의 휴식 없이, 마하트마(아
라한 혹은 보디삿트바)의 상태에 이르는 황금의 사다리를 열심히 한 계단씩 올라가야 한
다. 그렇지 않으면 첫 단을 잘못 내딛어 '둑파'들의 길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이런 모든 것들은 알려지지 않았거나 완전히 도외시되고 있다. 준비 단계에 있는 지
원자들이 바라는 조용한 진화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에게서 기묘한 생각들이 자신의 마
음을 조용히 사로잡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이상한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사고력이 많
이 뒤틀려 버린 지망자들은 자신의 동물적인 욕망을 충분히 승화해 고양시킬 수가 있으
며, 분노, 힘 그리고 불 같이 타오르는 그의 격렬한 힘이 내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상
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그런 에너지가 가슴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는 더 높은 성스
러운 목적으로 향할 때까지, 즉 그들의 확장되지 않고 축적된 힘 덕분에 혼의 지성소(至
聖所)에 들어가서 고급아 앞에 서게 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의 가슴속에 저장해서 닫아
둘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 때문에 지망자들은 그들 자신들이 가지고 있
는 격정 및 번뇌 등과 싸우려고 하지도 않으며, 그것들을 죽여 없애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강력한 의지로 강렬한 불꽃을 누르고, 그들의 본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해서, 그 불꽃이 얇은 재 밑에서 연기가 나도록 한다. 그들은 잡아둔 여우를 풀어주고 싶
지 않아서 오히려 그 여우에게 잡아먹히는 스파르타의 소년처럼, 고통을 선택해서 받는
것과 같다. 오! 환영에 속아서 진실을 분별하지 못하는 가련한 자들이여!
정욕을 죽이지 못하고 마음속에 일시적으로 억제해 두고, 그것을 승화시켜 깨끗해지
기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땀과 기름투성이인 한 무리의 만취한 굴뚝 청소부들이 깨끗한
흰 커튼이 쳐져있는 성소(聖所)에 갇혀서, 그것을 더럽혀서 더러운 누더기로 변화시키는
대신에 그 성소의 지배자로 바뀌어, 그 성소만큼이나 순결하게 되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차라리 수도원의 깨끗한 분위기 속에 갇혀 있는 12 마리의 스컹크가 향냄새
로 가득 찬 것을 방출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어떤가? 인간 정신의 기묘한 착각이
아닐 수가 없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논해 보자.
우리들 인간 혼의 지성소에 있는 대아는 고급아 혹은 영이다. 이런 신성한 영의 의식
은 살아있는 동안은 육체에 유폐(幽閉)되어 있으며, 마나스(마인드)에 기초를 두고 거기
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나스는 인간혼--영의 매체인 '영적인 혼'--이라고 부르
는 것이다. 인간혼은 최고의 형태로는 신성한 사랑, 영적 열망 및 의지력 등의 복합체이
지만, 저급의 형태로는 욕망의 매체와 결합함으로서 생겨난 동물적인 욕망과 세속적인
격정 등의 복합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인간혼은 이성적 고급 성질이 정복하려고 하는
동물적인 본성과 내면의 동물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할 때마다 이끌리는 신성한 본
성 사이의 연결고리이며 매개체이다. 내면의 동물은 본능적인 "동물혼"으로, 무분별한
광신자들에 의하면, 그들의 가슴속에 잡아 가두어 죽이지 않고 누그러뜨릴 수 있는 그런
격정들의 온상이다. 그들은 아직도 동물적인 하수구 속에 있는 흙탕물을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생명의 물로 바꾸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격정들을 인간에게는 영향
을 주지 않은 채 가두어둘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사랑과 정욕이라는 격정적인 감정들
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 감정들이 태어난 곳인 바로 그 동물혼 속에서 그대로 살도록
하고 있다. 비록 옆에 사는 이웃처럼 그러한 격정들에게 오염되더라도, "인간혼"의 고급
및 저급 부분은 다 같이 그러한 격정들을 거부한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듯이, "고급
자아" 혹은 "영"은 그러한 감정을 동화시킬 수가 없다. 따라서 인간의 저급 성질과 고급
자아의 유일한 연결고리이며 매개체인 '마나스'만이 고통을 받는 것이며, 어느 순간 깨어
나서 물질의 심연 속으로 사라질지 모를 그러한 격정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끌려갈 위험
에 쳐해 있는 것도 바로 '마나스'이다. 마음속의 지성소가 준비되어 있더라도, 동물적인
정욕이 지성소에 단지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혼의 조화가 깨지는 데, 하물며 최고의 본질
인 신성한 조화와 어떻게 동조할 수 있을까? 혼이 격정의 혼란과 육체적 감각 속에서 생
겨나는 세속적 욕망들, 심지어 "아스트랄 인간"의 욕망들로 물들어 괴로움을 당할 때, 어
떻게 조화를 이루어 승리를 쟁취해 낼 수 있을까?
왜냐하면 이 "아스트랄 인간"--인간이나 동물 모두에게 있는 그림자 같은 복체--은
신성한 자아의 친구가 아니라, 육체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아스트랄 본질은 마나스의 저
급 의식인 '인격아'와 육체의 연결고리이며, 불사(不死)의 생명의 매개체가 아니라, 일시
적인 생명의 매체이다. 인간에 의해서 투영된 그림자처럼, 아스트랄은 노예처럼 그 사람
의 움직임과 충동을 기계적으로 그리고 맹종적으로 따라 다닌다. 그러므로 영에게로 올
라가려 하지 않고, 물질에게로 기울어진다. 격정의 힘이 완전히 죽고, 불굴의 의지라는
증류기 속에서 완전히 부셔져 절멸되었을 때, 육체의 모든 정욕과 갈망이 다 죽고, 인격
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결과 "아스트랄 본질"이 '영점(零點)'까지 줄어들
때만, "고급아"와의 합일이 일어날 수 있다. 여전히 살아 있지만 더 이상 갈망하는 이기
적인 개성이 아닌 정복당한 저급아 만을 반영할 때, 그때 휘황찬란한 "오고에이데스", 즉
신성한 자아는 인간 실체의 양극(兩極)--정화된 물질의 인간과 원래부터 항상 순수한 영
적 혼--과 의식적인 조화 속에서 진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노시스 파의 신비가들이 말
하는 "크리스토스"인 「스승-대아」 앞에 서서, 원초의 「그것」과 섞여지고, 「그것」
속으로 융합되어 하나가 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일상적인 생각들과 매순간 순간의 생각들이 세속적인 것들, 소유욕
과 권력욕, 갈망, 야망 그리고 아무리 영예스러운 것이라도 여전히 세속적인 임무들에 얽
매여 있다면, 오컬티즘이라는 "좁은 문"을 어떻게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까? 심지어 인간
의 애정 중에서 가장 비이기적인 부인과 가족에 대한 사랑조차도 진정한 오컬티즘의 장
애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신성한 사랑이나 부인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예로 보면, 심지어 이러한 감정들을 가장 밑바닥까지 분석해서 완전히 걸러내면,
거기에는 여전히 이기심이 있으며, 자기 중심적인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한순간의 거리
낌도 없이 자기 자식의 생명을 건지는 대가로 수백, 수천 명의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으
려는 어머니가 있을까? 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보다는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깨지 않으려는 진정한 남편 혹은 연인이 있을까? 이것이 자
연스러운 것이라고 우리들은 똑같이 말을 할 것이다. 인간적인 애정의 방식이라는 관점
에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신성한 보편적 인류애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인류라는 "거대한 고아"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나
관심이 몇 퍼센트나 남아 있을 것인가? 그리고 자기 자신의 특권을 부여받을 것들에 대
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혼 속에서, "조용하고 작은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
는가? 인류 전체의 바램이 혼에 인상을 주거나 혹은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여
유가 어느 정도 남아 있겠는가? 그러나 '보편적인 마음'의 지혜에 의해서 혜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인종, 피부색, 종교, 혹은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인류 전체를 통해서 '우주
마인드'로 가야 한다. 한 사람의 인간이 작은 자신의 아(我)를 "보편적 대아" 속으로
융합하도록 이끌 수 있는 것은 '애타주의'이지, 제아무리 숭고한 생각을 가졌다고 해
도 자기중심주의는 아니다. 진정한 오컬티즘의 제자가 신성한 지혜, 즉 신지(神智)를 얻
고자 한다면, 그 자신을 바로 이러한 인류에 봉사하는 애타적인 일에 헌신시켜야 한다.
구도자는 세속적인 생활과 오컬티즘의 생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두 가지
생활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 보았자 소용없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두 명의 주인을 섬길
수 없으며, 동시에 두 명의 주인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육체와 고급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으며, 어느 쪽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의무와 보편적 의무를 동시에 행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작고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자식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흘려버리거나, 혹은
자식들의 바램에만 귀를 기울이고 인류의 울부짖음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한다. 이
론적 오컬티즘이 아닌 실천적 오컬티즘을 추구하고자 하는 결혼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
의 생활은 끊임없는 격렬한 투쟁의 연속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사람은 언제나 인류에
대한 초월적인 신성한 사랑의 목소리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개인 중심의 세속적인 사랑
의 목소리에 따를 것인가, 망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 때문
에 자신은 두 가지 의무 중 어느 것 하나에 실패하거나, 아니면 두 가지 의무에 다 실패
할지도 모른다. 이것보다 더 악화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컬티즘의 길을 가겠다고
맹세한 후에 세속적인 사랑이나 색욕에 깊이 빠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즉각적
인 결과를 느끼게 된다.--즉 불가항력적으로 초월적인 신성한 상태에서 저급의 물질
계로 끌려 내려질 것이다. 육체적인 자기 만족 혹은 심지어 정신적인 자기 만족은 영적
인 통찰력을 그 즉시 잃어버리게 만든다. 대아(大我)의 목소리와 욕정의 목소리, 혹은 심
지어 '둑파'의 목소리를 더 이상 구별조차 할 수 없게 되며, 정도(正道)와 사도(邪道)를
구별할 수 없게 되고, 건전한 도덕과 단순한 궤변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사해(死海)의
열매"는 가장 신비적이며 찬란한 모습을 띄지만, 입술에 대면 재로 변하고, 마음속에서
고통으로 변한다.
"깊이는 점점 더 깊어지고, 어둠은 더욱더 어두워지고
지혜는 우매함으로, 순결은 죄로,
환희는 고통으로, 희망은 절망으로"
한번 잘못된 생각에서 저지른 실수를 하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
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더 깊은 수렁 속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비록 흑마술인가
백마술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실천자의 의도에 달려있지만,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행한
흑마술의 결과들은 반드시 나쁜 카르마를 만들어 내게 된다. 흑마술이란 다른 사람에게
끼친 악한 영향력으로 그 결과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게 하는
것이다. 카르마는 잔잔한 생명의 물 속으로 던져진 무거운 돌이다. 그것은 거의 무한대로
퍼져 나가며, 점점 더 넓어져 가는 파문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인들은 필연적
으로 결과를 불러내며, 그리고 이 결과들은 「응보의 법칙」에 의해서 나타나게 된다.
사람들은 어떤 행위들의 성질이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러한 행위들을 저
지르는 것을 억제만 한다면, 많은 나쁜 카르마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힘이나 능력 이상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길 기대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마술사
들"이 있는데, 그들은 일련의 환생 및 장구한 세월 동안 고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경험
을 쌓아서, 선천적인 권리를 획득한 신비가들과 오컬티스트들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말하자면 욕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세속적인 그 어떤 불(火)도 그들의
감각이나 욕망에 불을 지필 수는 없다. 인류의 거대한 절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인간
의 소리도 그들 혼 속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만이 성공을 확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아주 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개인 중심의
덧없는 정서라는 수화물을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오컬티즘이라는 좁은 문을 지나
갈 수가 있다. 그들은 저급의 개성이라는 느낌을 없앴으며, 따라서 "아스트랄" 동물을 마
비시킴으로서, "좁은 황금의 문"이 그들 앞에 활짝 열린다. 전생과 현생에서 범한 죄의
짐을 여러 생 동안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약 그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나아가지 않으면, 지혜의 황금의 문은 "파멸로 이르는" 넓
은 문과 길로 변할 것이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저급 성질을 억제하는 "아트마-비디야"의 자비로운 영향력없이 이기적인 동기에
서 행한 오컬트 기술의 문이다. 우리는 "칼리-유가"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 치명적인
영향력은 동양에서 보다 서양에서 수 천 배나 강하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투쟁에서 많
은 사람들은 암흑시대의 세력에 의해 쉽게 먹이가 되고 있으며, 이 세계는 많은 망상 속
에서 고통받고 있다. 이런 망상들 중에 하나가 어떤 큰 희생을 지불하지 않고 "황금의
문"에 도달해서, 오컬티즘의 입구를 비교적 쉽게 넘어설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
것은 권력욕과 개인적인 이기심에 의해 고무된 대부분의 신지학도들이 꾸는 꿈이지만,
그들이 부러워하는 목표로 그들을 이끌 수 있는 것은 권력욕이나 자기 본위의 그런 감정
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다고 믿어지고 있는 사람이 말한 것처
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그 길은 가시밭길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
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문은 진실로 좁기 때문에 예비적인 곤란에 대해서 몇 마디만
듣고서도 서구의 구도자들은 놀라서 주춤하고 몸을 떨며 움추린다.
그들이 여기서 멈춰 서서 약한 상태에서 더 이상은 시도를 하지 않도록 체념케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좁은 문에서 등을 돌렸는데도 오컬트에 대한 욕망에 이끌려 환영의
빛이 빛나고 있는 넓고 더욱 더 매혹적인 불가사의한 황금의 문 쪽으로 한 발짝이라도
발을 들여놓는다면, 아 가련하도다! 그것은 흑마술인 '둑파'들 상태로 이르는 길이다. 그
들은 얼마 후 길을 잃고 지옥에 내려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 숙명의 길 입구에
서 '단테'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읖조렸다: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영원의 고뇌를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파멸한 사람들 사이에 끼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3. 일상 생활을 위한 실천적 제안
서 문
다음 논문에 인용된 글들은 원래는 출판을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허술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좋다고 생각한 것들을 발췌해서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그들이 읽은 책들에
대한 인상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으므로 실질적인 가치를 갖게 되리라는 기대에서 처
음에는 "신지학 탐구"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그 중에서 독자들 마음에 호소하는 본
질적인 내용을 작은 공간에 모아 보았다.
매일 아침 읽고, 하루 동안 그 읽은 내용에 따라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여유 시간에
그것에 대해서 명상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I
일찍 일어나라. 깨어나자마자 침대 속에서 반 정도는 깨어있는 채로, 반 정도는
꿈꾸면서 게으르게 누워있지 말고 바로 일어나라. 그리고 나서 모든 인류가 영적으
로 재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라. 진리로 향하는 길 위에서 힘겹게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대의 기원에 의해서 용기를 갖고, 더욱더 열심히 성공적으로 잘할 수 있
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라. 그리고 그대가 힘을 얻어 감각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기를
기원하라. 그대의 마음 앞에 삼매 속에 있는 그대의 대아(스승)의 모습을 그려라. 그
모습을 그대 앞에 고정시키고, 모든 세밀한 점까지 다 그려내라. 존경심을 가지고 대
아에 관해 생각하라. 그리고 부작위(不作爲)적인 실수와 작위(作爲)적인 실수들을 모
두 용서하여 주도록 기원하라. 이것은 마음의 집중을 촉진하고 그대의 마음을 정화
하고 그리고 더욱더 많은 것들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는 그대의 성격의 단
점들에 대해서 반성해라: 그 단점들과 단점들이 그대에게 주는 일시적인 향락들을
완전하게 깨달아라. 그런 다음 그 결점들에게 굴복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굳게 결의하라. 이러한 자기분석과 그대 자신의 양심이라는 심판 앞에 자신을 내놓
는 것은,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대의 영적인 진보를 촉진시킨다. 그
대가 목욕을 할 때나, 운동을 할 때, 항상 그대의 도덕적인 부정(不淨)과 육체적인
부정(不淨)들 모두가 씻겨져 내려가도록 그대의 의지를 발휘하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음의 규칙들을 준수하라.
1) 그대의 의무로서 해야만 할 일을 하라. 즉, 불필요한 일은 어떤 것이든 하지
말아라.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것이 그대가 해야할 의무인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
라.
2) 불필요한 말은 결코 하지 마라. 그대가 입에 담기 전에 그대의 말이 가져다
줄 결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라. 친구 때문에 그대의 신조를 깨뜨려서는 결코 안
된다.
3) 불필요한 생각이나 잡념이 그대의 정신을 사로잡도록 해서는 결코 안된다. 말
하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어렵다. 그대의 마음을 처음부터 공허 상태로 만들어 내는
것을 행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자신의 결점을 분석하거나 "완전한 분들"에
대한 생각으로 그대의 마음을 채움으로서 악념(惡念)이나 잡념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써라.
4)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그대의 의지를 활용해서 먹는 음식이 잘 소화되어 그대
의 영적인 열망과 조화를 이루는 몸을 만들어 사악한 욕망이나 생각들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대의 의지로 훈련하라.
배가 고플 때만 식사를 하고, 갈증이 날 때만 마시며, 그렇지 않을 때는 결코 마
시거나 먹지 마라. 어떤 특별한 요리가 그대의 미각을 당기게 했다면, 그 갈망을 만
족시키려고 쉽게 유혹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대가 그 음식에서 얻는 쾌락은 먹기 전
이나 먹은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리고 그것은 당장의 일시적
인 쾌락을 주지만, 많이 먹으면 고통으로 변하며, 음식은 혀에만 즐거움을 준다는 것
을 명심하라. 만약 그대가 그것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거나, 그것의 유혹에
그대 자신이 넘어가도록 놓아둔다면, 그대는 그것을 얻으려고 야비스러운 일등 그
어떤 것이든 하게 되어, 수치를 모르는 인간으로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라.
반면에 그대에게 영원한 지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다른 것이 있는 데도, 그대가 모
든 애착을 일시적인 것에 집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대는 육체도 아니고
감각도 아니며, 이런 것들이 지탱하는 쾌락이나 고통은 그대에게 결코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모든 다른 유혹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추론으로 계속 실습하
라. 그리고 그대가 종종 실패하더라도, 그대는 더 확실한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너무 많이 책을 읽지 마라. 만약 그대가 10분 동안 책을 읽었다면, 그 내용을 10
시간 동안 깊이 숙고하라. 그대 자신이 고독 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습관화하라. 그리
고 그대 자신의 생각에만 잠겨있는 것을 또한 습관이 되도록 하라.
그대 자신 주위에 있는 그 누구도 그대를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야 한다. 모든 것들에 대한 그대의 애착을 서서히 떨쳐 버려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행했던 기원을 되풀이하여라. 하루 동안의 행동들을 돌이켜 반성
해보아라. 그래서 어느 면에서 실패했는가를 알아내 내일 또다시 실패하지 않도록
단단히 결심하라.
II
자기 지식을 추구하려는 올바른 동기란 지식과 관계된 것이지, 자아와 관계된 것
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각이란 지식이기 때문에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지, 자아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지식을 획득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은 순수한 사랑이다. 순수한 사랑을 위하여 지식을 추구하라. 그러면
결국에는 그 노력 덕택에 자기 지식을 획득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학도(學徒)가 점
점 조바심을 낸다는 사실은 그가 순수한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상을 위해서 일
한다는 명확한 증거로, 진실로 순수한 사랑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다
리고 있는 대승리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우리들 각자에 내재하고 있는 "신"--즉 사랑과 진리, 정의와 지혜, 선과 힘의 대
령(大靈)--만이 우리들의 진실 되고 영원하며 유일한 사랑이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의지처이며, 반석처럼 확고하게 서 있기 때문에 영원히 신뢰할 수 있는
우리들의 유일한 믿음이고, 비록 모든 다른 것들이 사라져 없어진다 해도 최후까지
힘이 되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우리들의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우리의 나쁜 카
르마가 모두 소진해서 없어지고, 신성한 "구세주"가 우리의 혼 속에서 그 자신의 실
재를 나타내 보일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불평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획득해야만 하
는 유일한 목표인 것이다.
학도가 통과해서 들어가는 문은 "만족"이라는 문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서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만든 그 법칙에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신' 그 자신은 그 '법칙' 자체이기 때문에, 신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
는 사람들에게 신은 오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진화의 흐름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러면 우리들의 환경은 우리들에게 아주 적절하다는 것이 틀림없
다. 그리고 어떤 행위를 하다가 실패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크리슈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 "침착함"을 어떤 다
른 방법으로는 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들의 모든 계획들이 성공했다면,
그러면 성공과 실패의 어떤 대조를 우리들이 알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
이 무지하게 짠 계획들이 모두 잘못 세워졌을지도 모르지만, 친절하게도 대자연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계획들을 이루어내도록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계
획에 대해서 어떤 힐책을 받지는 않지만, 성취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음
으로써 카르마적인 과실을 얻게 될 것이다. 혹시 그대가 실패한 것에 대해 낙담이라
도 했다면, 그러면 바로 그 만큼 그대의 상념의 힘은 약화되는 것이다. 인간은 감옥
에 갇혀 있으면서도 여전히 대의명분을 위해 일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환경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어떤 혐오감을 그대의 마음으로부터 없애버리길 그대
에게 바란다. 만약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모두가 그대의 고급아가 진실로 바라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러면 그것은 그대의 상념을 강하게 만들뿐만 아
니라, 반사적으로 그대의 몸에도 영향을 줄 것이고, 그대의 몸은 더욱 더 강해질 것
이다.
행동해야 할 때가 왔을 때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 휴식해야 할 때는 인내 있게
기다리는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인생사의 고해(苦海)와 조화를 이루게 만든다. 그의
배후에는 대자연과 우주의 법칙이 있고, 진리와 자비를 가르치는 길을 알리는 빛으
로서, 그는 회천(回天)의 위업(偉業)을 달성할 수가 있다. 이런 법칙에 무지하면, 한
편으로는 극단적으로 내달아 열광할 때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우울함과 절망의 때
가 온다. 이와 같이 인간은 인생의 부침(浮沈)에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희생자가 되고 만다.
길을 가고자 하는 자들이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성공하지 못하듯이, 인
내를 가져라.
축적된 에너지가 소진해 버리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다른 형태로
전환되거나 또는 다른 운동 방식으로 변환되어야 한다. 그것은 영원히 정지 상태로
있으면서 존속할 수는 없다. 우리가 자제할 수 없는 욕망에 대항해서 저항하는 것
은 무익한 것이다. 축적된 에너지가 다른 통로로 인도되지 않으면, 그 에너지는 강
해져서 의지보다도 이성보다도 더 강해지게 될 것이다. 그 에너지를 통제하기 위해
서 그대는 보다 높은 고급의 방향으로 그 에너지를 인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저
속한 것에 대한 애착을 보다 높은 고귀한 어떤 것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변화시킬 수가 있다. 그리고 악덕은 그 목적을 바꿈으로서 미덕으로 변화될 수 있
다. 격정은 맹목적이지만, 그것은 이끌리는 대로 간다. 그리고 본능보다는 이성이 그
것을 이끄는데는 더 안전한 안내자이다. 쌓여있던 노여움(혹은 애욕)은 그 격정을 쏟
아 부을 대상을 찾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에너지를 품고 있는 사람은 파멸
적인 폭발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후에는 고요가 찾아온다. 옛사람
들에 의하면, "자연은 공허를 싫어한다."고 했다. 우리는 격정을 파괴하거나 절멸시
킬 수도 없다. 그것을 쫓아버리면 또 다른 엘리멘탈의 영향력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어떤 것과 바꾸어 놓지 않고서는 저급의 것들을 파괴하려
고 노력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저급의 영향력들을 고급의 것으로, 악덕을 미덕으로,
미신을 지식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III
자신의 시력과 청력을 '보이지 않고 소리가 없는 것'에 집중하는 것만이 욕망과
보상에 대한 애착 및 갈망의 비참함 등을 고치는 치료제라는 것을 배워라.
인간은 자신에게 내재하고 있는 진보를 향한 잠재능력을 믿어야만 한다. 인간은
자신보다 위대한 성질을 무서워 말아야 하며, 또 자신보다 저급의 물질적인 성질에
의해서 주춤거리거나 이끌려 가서는 안된다.
고난으로 의기소침해서는 안되며, 게다가 자포자기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모든 과
거사가 보여준다. 고난이 없었다면, 이 세계에 있는 많은 경이로운 문명들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길을 선택한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한발 앞으로 내딛으
려는 힘이다. 어디서 이런 힘을 찾을 수 있을까? 주위를 돌아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힘을 어디서 발견하는 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힘의 근원은
충심에서 우러나온 확신이다.
절제하라. 왜냐하면 그대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절제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절제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싸우고 그리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인식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악에 저항하지 마라." 즉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불유쾌한 것들에 대해서 불평을
하거나 성을 내지 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동안에 그대 자신을 잊어
버려라. 사람들이 그대에게 욕설을 퍼붓고, 박해하고, 학대한다 해도, 왜 저항하는가?
저항하면 그 보다 더 큰 악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일이던지 목전에 당면한 과제는 추상적인 의미에서 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
일이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를 생각해 보아서는 안된다.
악을 고치는 최선의 치료법은 억압이 아니고, 욕망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
고 정신을 끊임없이 신성한 것들에 몰두하게 함으로써 이것을 가장 잘 성취할 수 있
는 것이다. 자제하기 어려운 감각의 대상들에 대해서 상상하거나 정신을 몰두하게
되면, 고급아에 대한 지식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 자신의 본능의 기질은 너무나 야비하고, 교만하고, 의기 양양하며, 자기
자신의 욕구들이나 판단, 의견들로 가득 차 있어서, 만약 유혹들을 자제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을 알고 겸허해지도록 유혹
당하고 시험받는다. 가장 위험한 유혹은 유혹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라. 그러
므로 유혹이 그대에게 급습해 오면 기뻐해라.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시험하는 것으
로 알고, 인내와 끈기와 충실을 가지고 그것을 참아내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지만, 그대가 성취해야만 하는 어떤
책임이 신에 의해서 그대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느껴라. 신 자체를 원해야지, 신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원해서는 안된다. 그 어떤 일이든 해야할 일이 있다면 그것
을 해야 하지만, 그 행위의 열매를 즐기기 위해서 그 일을 해서는 안된다. 만약 모
든 행위들이 행위자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 행위들을
단지 해야만 하기 때문에--즉, 행위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에--행한다면,
우리들 속에 있는 '자기 본위의 저급아'의 개성은 점점 더 약해져서 끝내는 정지해
버릴 것이다. 그러면 진아를 나타내는 지식이 찬란하게 그 광채를 발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정한 목표가 즐거움이나 고통 때문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대사(大師)가 그대를 선택해서 그 분 옆으로 오라고 부르실 때까지, 인류와 함께
있어라.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서 사심 없이 일해라. 이것만이 진정한 만족을 가
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은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즉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더욱 더 많이 배우게 된
다. 그러므로 진리의 탐구자여, 어린 아이 같은 믿음과 '입문한 자'와 같은 굳은 의지
를 가지고, 인생항로에서 자기 자신을 위로할 방법이 없는 자에게 그대가 지니고 있
는 축적된 지식을 주어라.
개인의 권리들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생각은 개성이라 말하는 독사(毒蛇)의 독성
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자들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제자는 절
대로 다른 사람을 비판 혹은 비난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결코 안되며, 자기 변호나
자기 변명을 하기 위해서 목청을 높여서도 안된다.
그 어떤 사람도 그대의 적이 아니며, 그대의 친구도 아니다. 모두가 그대의 스승
들이다. 이제는 세속적이든 영적이든,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서 일해서는 안된다.
정의로운 신의 의지인 우주의 존재 법칙을 성취하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
IV
현재 속에서도 살지 말고, 미래 속에서도 살지 마라. 영원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
악이라는 거대한 잡초는 영원 속에서는 꽃을 피울 수가 없다. 존재에 묻은 얼룩은
영원한 생각의 바로 그 공기 속에서 씻겨진다. 마음의 순결은 "영지(靈智)"를 얻어
내는 필요조건이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주요한 방법이 있다. 첫
째, 모든 나쁜 악념(惡念)을 끊임없이 쫓아버려라. 둘째, 어떠한 경우에도 평정한 마
음을 유지해서, 그 어떤 일이 생겨도 동요하거나 짜증을 내지 마라. 이러한 두 가지
정화법은 헌신(獻身)과 자비(慈悲)에 의해서 가장 잘 고무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깨끗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게으르게 가만히 앉아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으면 안된다. 모든 사람들이 큰 뜻을 품고, 바르고 열심히
일하도록 해라.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일해야만
한다. 바로 그 올바른 방법의 첫 걸음은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분노를 느끼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불필요하게 꾸짖을
때마다, 마음은 정화를 필요로 한다. 아첨을 목적으로 어떤 일이나 말을 했을 경우나
불성실한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를 속였을 때도 마음을 정화해야 한다.
구제를 원하는 사람들은 욕정, 분노, 탐욕을 피해야 하며, 용감하게 성전에 순종
하고, 영적인 철학의 연구와 실제 생활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인내를 길러
야 한다.
이기적인 생각에 이끌리는 사람은 개인적인 생각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천국
에 들어갈 수가 없다. 천국을 바라지 않고 현재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만족
하는 사람은 이미 천국에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욕망이 없다는 것은 자유스럽고 행
복하다는 것이며, "천국"이란 다름 아닌 자유와 행복이 존재하는 상태이외의 아무 것
도 아니다. 보상을 바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선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 보상을 획
득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못하며, 그리고 비록 그가 기대하는 보상을 획득했을지라도,
보상을 획득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복은 거기서 끝나 버리고 만다. 해야 할 미완
성의 일이 있는 한, 영원한 행복과 평안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의무의 완수는 그
자체로 보상이 따르게 되어 있다.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자, 악덕이나 어리석은 짓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자만하는 자, 자기 자신을 현명하다고 믿고 어느 면에서도 자기
동료들보다 우수하다고 믿고 있는 자는, 제자의 자리에 오르게 될 수 없다. 천국의
왕국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어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미덕과
지혜는 숭고한 것들이나, 그것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분리의식과 교만
을 가지게 되면, 그 미덕과 지혜는 더 정묘한 형태로 재현해 나온 저급아의 뱀들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감정들을 희생하는 것이 여려 규칙들 중에서 제일
첫째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서는 흔들릴 수가 없는 평정을 얻는 것"이
다. 지금 곧 바로 그대의 선한 의지들을 실행에 옮겨라. 그리고 단 하나라도 실행하
지 않은 채 단지 의도로서만 남겨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들의 유일의 진실한 행로는
행위에서 얻어진 보상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의 가치를 위해 행위 하는 것이다. 결
과를 바라는 마음에 자극 받아 행동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또한 태만에 빠져서도
안된다.
믿음을 통해서 마음은 격정과 어리석음으로부터 정화된다. 바로 그것에서 육체
에 대한 지배가 오게 되며, 최후에는 감각들을 정복하게 된다.
깨달음을 성취한 성인들의 특징은, 첫째 그는 모든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으
며, "진아(眞我)" 혹은 "지고(至高)의 영"만이 지복이며 다른 모든 것은 고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둘째 그에게 일어나는 것이 그 어떤 일이든 그것에 대해서 집착
이나 반감을 갖고 있지 않으며, 속 좁은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는다. 끝으로 오
관(五官)을 정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두 번째의 특성을 몸에 지니지
못하면 위선과 영적인 자만을 생기게 하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으며 유해(有害)한
것이다. 또한 첫 번째 특성을 체득하지 못하면 두 번째 특성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타주의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 자신보다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과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빵까지도 나누어 먹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 인종이나 국적 혹은 종
교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형제를 도와주지 않으며 인간의 고통의 외침에 귀를 기울
이지 않는 사람, 무고한 사람이 비난받는 것을 듣고도 마치 자신을 변호하듯이 그를
변호하지 않는 사람, 이런 모든 사람들은 '신지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V
신의 명령에 기초를 둔 명백한 삶의 의무들을 포기하는 사람은 올바르게 행동하
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런 의무들을 다하지 않으면 무슨 나쁜 일이 그에게 생기지
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나, 그 의무를 달성하면 그가 가는 길에서 어려움들이 없
어지지 않나 생각하면서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도 결국에는 결과를 바라고 행하고 있
는 사람인 것이다. 의무는 그저 신에 의해서 명령된 것이기 때문에 행해야 한다. 언
제인가 신은 그 의무를 버릴 것을 명령할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침착하지 못한 성질
이 평온해지지 않는 동안의 행위의 모든 열매들을 신에게 바치고 일을 하며, 올바르
게 일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신의 덕분이라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 인간의 진
실한 생명은 지고의 영과 하나로 융합하여 휴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은 우리가 행한 어떤 행위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며, 또한
전적으로 우리와는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재이며 "진리"이다. 이와 같
이 진리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의 비존재를 깨닫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의식이며, 인간의 자유(해탈)는 인간의 행위와는 관계가 없다. 우리가 하는
행위에 따라 우리들 자신이 제한된 존재라는 한계를 무기력하나마 뛰어넘을 수 있다
는 이해를 증진시킬 때만이 행위들은 유용한 것이다. 이 깨달음의 단계를 지나고 나
면, 그 다음부터 행위들은 도움이라기 보다는 장애가 된다.
신의 명령에 복종하며 일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일할 수 있는 힘은 신의 선물이지
인간의 자의식적인 본성의 한 부분이 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행위의
필요성에서 해방된다. 그러면 순수한 마음은 진리로 채워지고 스스로가 신과의 동일
성임을 인식하게 된다. 모든 행위들은 "자연(본성)의 세 가지 특질들"에서 일어나
는 것이지, 혼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어떤 행동을 자신이 진정으로
행위하고 있다는 생각을 먼저 없애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의 모든 행위를 '헌
신'에 두고 행해야 한다. 즉, 모든 행위를 자기 자신이 아닌, "지고자(至高者)"에
게 바쳐야 한다. 자기 자신을 신격화해서 희생을 받는 신으로 하든가, 아니면 다른
진정한 신--이쉬바라--에게 헌신하던가 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모든 행위와 대망
(大望)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행할 것인가 아니면 "일체자"인 신을 위해서 행할 것인
가 선택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동기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놀랄만한 용
감한 행위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거나,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영적
인 지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것이 단순히 자신이 구원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행한
것이라면, 그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위 하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에게 희생
을 바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그는 행위들을 하는 행위자가 아니라, 단지 행위의 목
격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일체자에게 헌신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
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어야 할 육체 속에 있기 때문에 의심들이 솟아오르고, 그 의
심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의심들이 떠오르는 것은 그가 무엇인가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지식의 검(劍)에 의하여" 의심을 쫓아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어떤 의심에 대하여 적절한 해답을 얻으면, 그는 그 만큼 의심
을 쫓아버리는 것이 된다. 모든 의심은 저급의 성질에서 오는 것이며, 결코 고급의
성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가 점점 더 헌신적으로 되어 갈수록 자
신의 "삿트바(Sattva)" 즉, 선한 본성 속에 내재하는 지식을 한층 더 분명하게 알
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완전한 헌신을
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지속적으로 헌신을 수양하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그 자신
속에서 저절로 솟구쳐 나오는 영적인 지식을 발견하게 된다." 또 "의혹에 차있는 마
음을 가진 자는 이승에서든 저승(데바 세계)에서든 즐거움을 맛볼 수가 없으며, 궁극
의 아름다움도 즐길 수가 없다." 이 말의 의미는 만약 우리들 속에 고급자아가 있다
면, 비록 우리들이 태만하고 의심이 깊어도, 그 고급자아는 지식의 부족함을 이겨내
고 인류전체라는 시냇물과 같이 우리들을 궁극의 지복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는 생각
을 버리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기원이란 모든 성스러운 것들에 대한 명상이고, 성스러운 것들의 영향력
이 더욱 더 강해져서 우리의 삶이 한층 더 고상해지기를 명상하는 것이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성스러운 것들을 우리들 자신과 일상 생활 및 행
위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명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스러운 것에 관한 어떤 지
식이 우리들에게 틀림없이 주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더욱더 강해지도록
생활을 보다 고상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강한 소원을 간직하면서 행하여야 한다. 이
런 모든 생각들이 모든 만물이 생겨나게 한 "지고의 신성한 본질"에 대한 의식과 밀
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영적인 수양은 일심 집중을 통해서 이루어져 간다. 일심 집중은 매일 매일 그리
고 매 순간에 집중을 흩어지게 하는 일없이 계속하지 못하면 헛수고하는 것이다. 명
상이란 "활동적이며 외향적인 생각의 정지"라고 정의되어 진다. 일심 집중은 어떤 특
정의 목적을 향해서 모든 삶을 기울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헌신적인 어머니는 무엇
보다도 자신의 아이의 관심사들과 그 관심사들에서 파생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살피
는 사람이지, 하루종일 앉아서 아이들의 관심사들 중의 한 가지 면만을 생각하는 사
람은 아니다. 생각(상념)이란 것은 자생력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에 하나의 생각을
꾸준히 품고 있으면, 그 생각에 의해서 채색되고, 그 생각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 마
음속에서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신비가는 일심 집중된 명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
각하는 것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 여기에 이것을 말해주는 크리슈나의 말이 있다.
"끊임없이 나에 대해서 생각하라. 나에게만 의지하라. 그러면 그대는 틀림없이 나에
게 오게 될 것이다."
인생은 위대한 스승이다. 인생은 혼의 대현현이다. 그리고 혼은 "지고자"가 현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방법들은 선한 것이고, 모든 것들은 "헌신"이라고 말하는
대목표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헌신이란 행동 속에 있는 성공이다."라고 바가
바드 기타에서는 말한다. 심령적 능력들은 법칙을 명백하게 해주는 것임으로 얻어
지면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의 가치를 과대평가해서도 안되며, 그 위험을 무
시해서도 안된다. 그 능력에 의지하는 자는 마치 자만과 승리에 취한 사람과 같다.
왜냐하면 그는 정상을 향해서 오르기 시작한 산기슭의 한 모퉁이에 도달한 것이기
때문이다.
VI
인간은 자기 자신의 외부에 있는 힘에 의해서는 구제될 수 없다는 것은 영원
한 법칙이다. 이것이 가능했다면 벌써 오래 전에 대사(大使)가 지구를 방문해서 천
상의 진리를 설명해주고, 영적인 성질의 능력들을 나타냄으로써 무지한 인간의 의식
에 수많은 사실들을 증명했었을 것이다.
죄에는 육체로서 범한 죄가 있듯이,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범한 죄도 있다. 어떤
연유에서든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자, 앙갚음을 좋아하는 자, 모욕당하면 용서하지
않으려는 자는 비록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살인적인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거짓된 교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어떤 조직에서 명하는 대로 자신의 양심을
눌러 부셔버리는 자는 자기 자신의 신성한 혼을 모독하는 것이며, 비록 어떤 서약(誓
約)을 한 적이 없다해도 쓸데없이 신의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혼을 하였든 하
지 않았든, 감각의 쾌락을 바라고 그것에 동조하는 자가 진짜 간음자(姦淫者)이다.
그의 동료들로부터 그가 현명하게 줄 수 있는 것인 빛, 선, 도움 등을 빼앗고, 자신
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 그리고 물질적인 것들을 쌓기 위해서 사는 자가 진짜 도
적(盜賊)이다. 그리고 그의 동료들로부터 비방이나 다른 허위 진술 등에 의해서 평판
(評判)이라는 소유물을 훔치는 자 역시 도둑놈이며, 가장 악질적인 것 중에 하나이
다.
만약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호의를 가지게 된다면, 삶
의 가치와 이 삶 속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대단히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사고력(상념)을 개발하라. 그대 혼의 전력을 집중하여 모든 잡념에 대해서 마음
의 문을 닫아 버려라. 감각적 생활의 비현실성과 "내면 세계의 평화"를 나타내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낯이나 밤이나 자신의
주위와 자기 자신의 비현실성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나쁜 생각이 떠오른
다는 것은 태만하고 무관심한 생각보다는 해(害)가 덜된다. 왜냐하면 나쁜 생각에 대
해서 그대는 항상 경계하고 있고 그것들과 싸워서 정복하겠다고 굳게 결심했기 때문
에, 이 굳은 결심이 의지력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쓸데없
는 생각은 단지 주의력을 산만하게 하고 에너지를 낭비시키기만 한다. 그대가 싸워
서 넘어야 할 첫 번째 근본적인 대망상(大妄想)은 '그대 자신이 육체다.'라는 착
각이다. 이 육체를 그대가 잠시동안 머물러 있어야 할 집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
기 시작해라. 그러면 그대들의 육체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격정(激情)을 하나씩 없애는 방향으로 사고력을 개발하면서 자신의 본성 속에서 눈
에 띄게 나타나는 결점들을 정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라. 첫 번째 노력 후에 그대
는 그대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공허감과 허탈감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라. 이것을 영적인 지복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알리는 부드러운 서
광으로 여겨라. 슬픔은 악이 아니다. 불평하지 마라. 고통이나 장애처럼 보이는 것
은 실제로 그대가 그것들을 잘 다룰 수만 있다면 그대의 일을 도와주는 자연의
신비적인 노력이다. 제자다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든 상황들을 관찰하
라.
모든 불평은 진보의 법칙에 대한 반란이다. 피해야 할 것은 아직 오지 않은 고
통이다. 과거는 바꿀 수도, 수정할 수도 없다. 현재의 경험에 속한 것은 회피할 수도
없으며, 또한 회피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회피해야 할 것은 미래에 대한 공포 혹은
불안한 예감들이며, 자기 자신과 타인들에게 현재 혹은 미래에 고통을 줄 수 있는
모든 행위나 충동 등도 피해야 한다.
VII
자신이 끊임없이 열망하고 있는 높은 이상과 그 이상을 본받아서 자신의 생각,
감정 및 삶을 형성하겠다는 그런 이상만큼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더 가치 있
는 것은 없다. 만약 그가 방만하지 않은 채 그 높은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자신의 목표에 점점 더 가까워 질 것이다. 그러나 노력 없이 이 정도
까지 도달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그가 진정한 진보를 이루고 있다고 의식한다면, 자
기 자신을 자만이나 독선으로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의 이상이 높
고, 그 이상을 향한 진보가 진실이라면, 그는 거만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겸손
하고 공손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한층 더 깊은 진보의 가능성과 그 사람 앞에 열려있
는 더욱 높은 세계에 대한 생각은 그의 열성을 꺾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의 자만은
틀림없이 죽여 없앨 것이다. 권태를 없애고 무관심을 열의로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인간의 삶의 드넓은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다. 인생의 사명이 명백해지고,
인생의 놀라운 기회들이 있다는 것을 일단 인식하게 되면, 인생은 인생 자체를 위해
서 살아갈 가치가 있게 된다. 이런 고급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
며 확실한 방법은 생각 속에서든 생활 속에서든 애타주의의 원리를 기르는 것이
다. 저급아에 제한을 받고, 이기주의의 원리에 따라 모든 것을 재는 그런 시야의 폭
은 실제로 좁다. 왜냐하면 혼이 스스로 이런 것을 제한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높
은 이상에 대한 생각이나 혹은 생명의 고급계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러한 진보의 조건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으며 다행이 인생의 환경
이나 조건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한 고지에서 다른 더 높은 고
지로 진보할 수 있는 기회와 인생의 분명한 목적 완수를 위해 자연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다.
만약 인생의 목적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 대해 자기 만족을 하고 안락하게 지내
는 것에 있으며, 또한 그 물질적인 위안이 가능한 최고의 행복한 상태를 준다고 믿
는다면, 우리는 '저차원의 것'들을 '고차원의 것'들이라고 혼동하는 것이며, 환영을 진
리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물질적인 생활방식은 우리들 신체의 물질적인 구
성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는 "지구 위에서 기어다니는 구더기"들이다. 왜냐
하면 우리들의 모든 열망들은 땅(세속)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진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면, 바로 그것에 의해서 우리는 덜 물질적이 되고, 더욱더 정묘
해져 아주 다른 문명의 질서가 확립될 것이다. 필수 불가결한 필수품처럼 보이는 것
들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의식을 생각의 속도로 지구
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보낼 수 있다면, 현재와 같은 통신 방법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물질 속으로 더욱더 깊이 빠져 들어갈수록, 안락을 위
해서 더욱더 많은 물질적인 것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인간 속에 내재하고 있는
본질적이며 강력한 신은 비물질적이며, 물질들이 가지고 있는 제한과는 관계가 없다.
인생에서 진실한 필수품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순전히 우리들이 필요
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다르다. 철도, 선박 등은 현재의 우리에게 필수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것들에 대해 전혀 모른 채 행복하게 살아왔다. 어
떤 사람에게는 많은 궁전들이 필수 불가결한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
동차가, 한편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담배 파이프가 필수품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모든 필수품들은 단지 인간 자신이 만들어낸 것들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들은
인간을 기분 좋은 상태로 만들었으며, 그들을 계속해서 그 상태에 있도록 유혹해서,
더 높은 고급세계를 바라지 않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
을 막고 있다. 만약 우리가 진실로 영적 진보를 원한다면, 모든 물질적인 것들은
필수품이 되지 말아야 한다. 다름 아닌 저급의 삶의 쾌락을 확대하고자 하는 갈망
과 그런 생각에 사고력을 낭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 보다 높은 고급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