盤龍寺 문학기행
한용유
영대 지하철 역 앞 택시 정류소에서 이병훈님 차와 대절한 택시에 참가자 7명이 분승 10시15분에 반룡사로 향해 출발을 했다. 반룡사가 있는 용성 면 용전 동은 나의 백형의 처가 곳으로 옛날 이수로 고향 뱀골에서 50리라 했다. 영대 옆을 빠져 나가 자인 읍을 거쳐 용성면 소재지를 지나 반룡사가 있는 용전동 육동(六洞)으로 들어가는 비오재 잿길로 들어섰다. 대낮에도 산적이 나온다는 험한 재였는데 2차선 포장도로는 언제 그랬든가 라는 듯이 수월하게 돌았다. 재를 넘으며 70여 년 전 어릴 때 무서움에 떨며 형님의 손을 꼭 잡고 힘겹게 넘든 추억이 뇌리를 스쳤다. 이수(里數)로 50리 길은 어린 내 걸음으로는 한나절 길이 넘었다. 비오재를 넘어 육동으로 들어섰다. 오지에 여섯 마을이 살고 있다고 육동 이라 일렀다. 맨 처음 마을 용천리를 지나 반룡사가 있는 구룡산 자락 용전 마을을 거쳐 반룡사에 도착하니 10시50분이었다. 영대 택시정류소를 출발한지 35분이 걸렸다.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있어 우산을 준비해 갔는데 빗방울만 잠간 차창을 때리더니 구름이 해를 가려 나들이에 시원해서 오히려 좋았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형님과 형수님 따라 내왕 하고는 처음 가는 길이니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10대의 홍안 소년이 망구(望九)의 백발이 되어 찾는 길은 추억의 감회에 깊숙이 빠져들게 했다. 형님의 처가가 있는 집터가 어디인지 찾지 못했다.
마을도 변했다. 마을 뒤 솔밭 등은 복숭아밭으로 변했고 개울가 우물터는 흔적이 없고 살구나무도 앵두나무도 보이지 않고 절로 올라가는 길 양편에는 복숭아, 포도, 대추나무 밭이 이어졌다. 절 까지 차가 올라가게 길이 포장 되어있어 바로 차로 가느라 마을은 둘러보지 못했다.
일제 말 2차대전 때 지은 농사는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모두 몰수 해갔다. 가을 거둠을 한 벼를 표 나게 두지를 해 놓지 못하고 집 가래나 나무빗가리. 밑에 숨기고 일상 먹는 쌀도 부엌 땔나무 단 밑에 땅을 파서 독에다 묻어놓고 몰래 퍼내어 양도로 했다. 일제의 수탈에 농민들은 초근목피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곳 용전은 워낙 오지라서 그 험한 재가 수탈의 발길을 막게 했고 또한 골이 깊어 항상 맑은 물이 흘러내려 벼농사에 가뭄을 면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사돈댁에 가면 수북하게 담은 쌀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자주 가고 싶었으나 길도 멀고 험해서 항상 부럽기만 했을 뿐이었다. 한번은 춘궁기에 양식이 떨어져 그곳 사돈어른과 이슥한 밤중에 소에다 쌀을 싣고 달밤에 그 무시무시한 비오재를 넘어 용성 파출소 앞길을 피해 둘러 오느라 애를 먹었다. 뱀골 우리 집에 도착하니 희붐하게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 때는 법으로 식량 이동을 금할 때라 들키면 압수는 물론 처벌까지 받아야했다. 그렇게 어렵게 가지고 온 쌀로 그 해 춘궁기를 넘긴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해방 한해 전으로 기억된다. 그 사돈댁도 해방 후 부산으로 이사를 가고 사돈 내외분은 물론 나 보다 한살 아래인 사형도 고인이 되었고 이제 소식도 끊어지고 옛집마저 찾을 수없게 되었다.
반세기가 넘은 세월은 절 모습도 많이 변했다. 입주문, 종각, 대웅전, 석탑. 사적비, 공덕비, 부도암 등을 둘러보며 천년세월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카메라에 담았다. 용성면 용전동 구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반룡사는 신라 문무왕 원년(661)에 元曉大師 가 창건한 것으로 고려 문종 대에 화음천태종의 고승 원응(圓應)국사가 중창을 했으며 임란 소실로 다시중건의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특히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 난 설총이 자란 곳이라 해서 천년고찰에 유명세를 더해 탐방객의 발을 이우고 있단다. 무열왕 내외가 딸인 요석공주와 외손자 설총을 보기위해 경주 왕도에서 산 넘고 물을 건너 반룡사를 찾아 넘었다는 왕재가 절 우편 부일리 쪽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려중기의 석학 李仁老(1152-1220)선생이 이 사찰을 찾아 다음과 같이 감회어린 시를 남겨 적어본다.
山居 : 산중에 사노라면
春去花猶在 : 봄은 갔다지만 꽃은 피어있고
天晴谷自陰 : 하늘은 맑으나 골짝은 그늘이 짙다.
杜鵑啼白晝 : 저 언덕 두견새는 한낮에도 울어대니
始覺卜居深 : 산중에 사는 깊음 비로소 깨달았네.
산사의 고즈넉함을 읊은 아름다운 五言絶句다.
아래와 같이 위 시의 對句를 지어 봤다.
次韻 拙詩
春去花猶落 : 봄은 가고 꽃마저 지니
天曇谷無陰 : 하늘 흐려 골짝 그늘 없다.
杜鵑啼不聞 : 두견새 울음 들리지 않고
松香卜舊深 : 솔향기 옛날을 그립게 하네.
답사를 마치고 대웅전 돌계단에 앉아 기념촬영을 하고 12시에 절을 떠났다. 원효로 네거리를 돌아 영대 앞 온천골 가마솟 한우국밥집에서 한우국밥으로 오식을 했다. 서서 기다릴 정도로 손님이 붐볐다. 오식을 마치고 영대 축구장 클로버 풀밭에 자리를 잡고 스승의 축하 노래를 부르며 손뼉을 치고 나니 배탈로 불편했던 속이 시원하게 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