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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알아보 기☜ 스크랩 지리산 이야기 - 일흔 둘. ( 토끼봉. 24 방위. 주역. 주나라. 강태공. 황하
이제학(백두) 추천 0 조회 34 12.09.12 16: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리산 이야기 - 일흔 둘. ( 토끼봉. 24 방위. 주역. 주나라. 강태공. 황하강. )

 



토끼봉




주능선 상에서 천왕봉이 멀리 바라보이는 1533m봉.
반야봉 불무장등 노고단 촛대봉 삼신봉을 잇는 남부능선
토끼봉의 지명은 토끼와 전혀 관계없이 방위 개념에서 유래.

지리산의 상징적 봉우리 반야봉
그 정동 방향에 있는 봉우리란 뜻.
24 방위 정동에 해당하는 묘방(卯方)

토끼봉, 또는 묘봉은 24방위에서 유래.

토끼봉 화개재에서 남쪽은 칠불사계곡
반야봉 기슭의 고찰 칠불사로 가는 길.
칠불사는 기록 상 지리산 최초의 암자.

불교에서 정동향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인도 불교는 동진하며 전파되어 왔던 탓.
불교는 해가 뜨는 방향으로 전파되어 왔다.

'토끼봉은 불교와 관련이 깊은 듯..'

겨울에 지리산 종주를 하다보면
허리까지 빠지는 토끼봉의 눈길.

인파에 패인 등산로
빗물의 물골이 되어
해마다 더욱 파인 탓.

겨울에는 그 패인 골안에 쌓인 눈
그늘진 곳은 허리까지 눈에 빠진다.

무릎을 높이 든 발로
쌓인 눈을 밀어내는 러쎌
걷다보면 힘이 두 배로 든다.

회색 하늘에 구름이 밀려오고
주위가 컴컴해지면 바람도 매섭다.

산등성이에 쌓인 눈이 바람에 쓸려
쏟아지듯 흘러 내리면 폭포와도 같다.

토끼봉 일대는 조난사고가 많은 곳
탈출로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강물처럼 흐르는 눈밭에 휩쓸리면 급경사 아래로 떠내려 간다.
폭설이 급류처럼 흘러 산죽 숲을 삼킨 등산로에 갇히면, 러셀 苦.
불과, 수백m 폭설 구간을 헤쳐 나가는 정도에도 탈진상태에 빠진다.

핸드폰 불청 지역인 산속에 갇히면, 자력탈출해야만 한다.
칼바람이 불면 산등성이에서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눈바다.
배낭에 짓눌려 넘어지면 두 다리는 허공 속, 머리는 눈밭 속.

잘못 급경사 아래로 미끄러지면, 두더쥐처럼 눈 터널에 빠진다.
머리 위는 얼어붙은 눈얼음 판이고 다리는 허공에 떠서 헛 가위질.
눈밭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릴수록 몸은 더욱 깊은 눈 수렁.

겨울철에 큰배낭을 메고 혼자 산행할때 각별히 유념.
무거운 배낭에 끌려가 계곡 눈수렁에 빠지면 위험천만.
배낭에 짓눌려 팔이라도 부러지면 자력 탈출이 불가능.

혹한 속에서는 밧데리가 빠르게 방전된다.
새 헤드램프조차 쓸모가 없을 정도일 만큼
여벌의 밧데리를 갈아도 불과 5분만에 방전.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폭설에 갇히게 되면
방향감각을 잃고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예전에 화엄사 입구에서 출발한 지리산 종주 산행 일정.
폭설을 헤쳐나가다가 결국 이곳에 갇혀 실패하고 말았다.
토끼봉 허리까지 빠지는 눈밭과 눈보라 속에서 겨우 탈출.

삼도봉에 이르러 칠흙같은 밤에 텐트를 치고 겨우 비박.
다음날 뱀사골 산장으로 탈출해 젖은 옷과 장비를 말렸다.
그곳에서 하루 더 자고 남원을 거쳐 서울로 온 적이 있었다.

러쎌 땀에 흠뻑 젖은 몸.
녹은 눈에 흠뻑 젖은 옷.
눈밭에 빠져 젖은 등산화.

'더 이상 강행군은 무리.'

토끼봉 화개재에서 남쪽계곡(칠불사계곡, 연동골) 따라 희미한 길.
범왕리 목통마을에 닿는 이 길은 뱀사골산장 물품을 나르는 지름길.

토끼봉에서 북쪽 뱀사골 계곡 쪽으로 200m 내려가면 뱀사골산장.
화개재에서 토끼봉으로 오르는 길은 점점 경사를 가파르고 힘든 길.
울창한 구상나무, 전나무숲, 진달래 밭의 정상에 오르면 탁트인 전망.

'4월 말 진달래 꽃망울에 물든 토끼봉'

봄꽃 내음이 가득한 토끼봉 정상은 일명 지보등.
정상의 초원에는 지보초 자생지라 붙여진 별칭이다.
토끼봉 남쪽 능선길을 따라 20 리 내려가면, 칠불사.

토끼봉 산행 중 비상탈출 해야 경우.
칠불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이 지름길.

'하늘을 찌를듯 치솟은 구상나무숲 토끼봉.'

잡목숲을 지나 완만한 능선을 거쳐 고목나무 뒹구는 비탈.
돌밭길을 서서히 오르면 남쪽 언덕 큰 얼굴바위 아래 총각샘.

총각샘을 지나 급비탈 바윗길을 기어 오르면 완만해지는 등산로.
<명선봉> 울창한 침엽수림 지나 내리막 흙길 지나면, '연하천 산장'

산행 도중 언제나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습관.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위기탈출에 도움이 된다.
산행 중 항상 탈출로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특히, 악천후 및 조난사고에 대비한 산행습관
언제 겪을지 모를 위기에서 자신에게 도움된다.
지리산 종주할 때 토끼봉 구간은 폭설 위험구간.

'겨울철에 아이젠 스패츠는 필수 등산용품.'


덧 말.

서울에서 정동향에 있는 바닷가 정동진
매년 정월 초하루면 일출 인파가 붐빈다.
한반도 민족이 옛부터 귀하게 여긴 정동향.

정동향은 우리 생활속에 배여있는 좋은 방향.
24방위는 한반도 민족 고유의 방위 개념인듯.




24 방위.



우리나라 민족은 동남향 또는 남향을 선호.
집터 방향에 따라 길흉이 좌우된다고 여긴다.
농작물 품종 선택을 할때에도 방위는 중요하다.

야생동물은 먹이사슬을 따라 서식하게 된다.
나무의 열매는 야생동물에게 중요한 식량이다.
하여, 방위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의 서식 분포도.

식물의 서식 분포도는 야생동물의 서식처를 좌우
식물의 서식지를 보고 수렵을 했을 유목민 조상들.
방위는 수렵과 농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을듯 싶다.

'하여, 우리 민족은 방위에 민감한 편.'

24방위란 주역의 8괘와 10간, 십이지를 사용해
각 방위의 간격을 15°씩 나누어 이름 붙인 것.

남동에 손(巽), 남서에 곤(坤), 북서에 건(乾),
북동에 간(艮)을 배치해 8괘 중 4괘를 사용하고,
12지는 자(子)를 정(正)북에 두고 왼쪽으로 돌며
30° 간격으로 순서대로 배치하며,

10간은 중앙을 나타내는 무기(戊己)를 제외하고
8개를 각각 오행으로 나누어 오행에 배정되는 방향에 배치하여
괘 4, 12지 12, 10간 8, 모두 24개의 방위명이 이루어지게 된다.

일단 특정장소의 좌향이 24방위 중의 방위명으로서 결정되면
그 다음은 주역과 음양오행의 원리로서 시설이나 기능의 성격에 비추어
장소의 조화와 부조화의 여부를 판정한다.

복잡한 자연과 인문현상이 뒤얽힌 실타래를
방위에 음양·오행과 역(易)의 이치를 부여함으로써
그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이 풍수지리의 좌향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친 술법이나 과장,
해석의 어려움이 개입될 수도 있지만
기후현상, 지형현상, 인문적 조건을
음양오행론과 주역의 논리 속에서 검토해
하늘·땅·사람의 조화를 추구하려 하는
사상적 토대로서의 좌향론이 중요시되는 것

일상생활에서 동서남북의 4방위를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한다.
4방위에 각각 북동, 남동, 남서, 북서를 포함하면 8방위이다.
이조 시대에는 12방위와 24방위를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온다.


<12 방위.>

띠를 나타내기도 하는 12마리의 동물을 방위로 사용.
자(子, 쥐), 축(丑, 소), 인(寅, 호랑이), 묘(卯, 토끼),
진(辰, 용),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 해(亥, 돼지)

농본사회 전 유목민은 사냥한 동물 고기가 주식.
동물의 생태적인 습관을 12방위로 분류한듯 하다.
하여, 야생동물을 사냥하기위해 12방위를 만든듯.

음지를 선호하는 자(子, 쥐)는 정북.
해뜨는 동쪽을 선호하는 묘(卯, 토끼)
남향 목초지를 선호하는 가축 소는 오(午)
해뜨는 반대쪽 정서로 나르는 조류 유(酉, 닭),

여기서 자(子) 방위는 정북, 묘(卯) 방위는 정동,
오(午) 방위는 정남, 유(酉) 방위는 정서를 뜻함.

자 - 축 - 인 - 묘 - 진 - 사 - 오 - 미 - 신 - 유 - 술 - 해

북 동 남 서



24방위는 12방위 사이에 방위를 하나씩 더 넣은 것.
여기에 동원된 것은 10간(干)과 태극 8괘(卦)이다.

10간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를 말함.

12지와 10간을 합쳐 12간지라고 하고
이 두 가지를 조합하면 60갑자(甲子).

태극 8괘란 우리 태극기에 있어 알려진
건(乾), 곤(坤), 감(坎), 리(離)의 4괘와
태(兌), 진(震), 손(巽), 간(艮)을 더한 것.

24방위에는 10간 중 8간(무, 기가 빠짐)과
8괘 중 4괘(건, 곤, 간, 손)가 더해진 것

12지를 외우면 24방위도 외우기 쉽다.
먼저 12지를 한 칸씩 띄어서 써보자.

자 - - 축 - - 인 - - 묘 - - 진 - - 사 - -
오 - - 미 - - 신 - - 유 - - 술 - - 해 - -


여기에 10간 중 8간을 넣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정동인 묘를 사이에 두고 갑과 을을 넣어 갑(甲) - 묘(卯) - 을(乙)
정남인 오를 사이에 두고 병과 정을 넣어서 병(丙) - 오(午) - 정(丁)
정서인 유를 사이에 두고 경과 신을 넣어서 경(庚) - 유(酉) - 신(辛)
정북인 자를 사이에 두고 임과 계를 넣어서 임(壬) - 자(子) - 계(癸)

이렇게 8간을 넣은 후의 모습을 보면

자 - 계 - 축 - - 인 - 갑 - 묘 - 을 - 진 - - 사 - 병 -
오 - 정 - 미 - - 신 - 경 - 유 - 신 - 술 - - 해 - 임 .

이번엔 4괘를 넣은 방법을 알아보자.

위와 같이 8간을 넣은 후 12지 중 빈칸이 4칸 있는데
바로 축과 인, 진과 사, 미와 신, 술과 해의 사이이다.
여기에 각각 간(艮), 손(巽), 곤(坤), 건(乾)을 넣는다.

동지 입춘 춘분 입하
자 - 계 - 축 - 간 - 인 - 갑 - 묘 - 을 - 진 - 손 - 사 - 병 -
북 북동 동 남동

하지 입추 추분 입동
오 - 정 - 미 - 곤 - 신 - 경 - 유 - 신 - 술 - 건 - 해 - 임
남 남서 서 북서


이제 24방위가 모두 완성되었다.
참고로 24절후를 적용 한다면

자에서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묘에서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오에서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유에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나열된 순서대로 시계방향으로 돌아간다.




주역.



중국의 유교 경전으로 주역은 역경(易經)이라고도 한다.
경(經) 전(傳) 두 부분을 포함하며 대략 2만 4,000자이다.

주(周)의 문왕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괘(卦) 효(爻) 2가지 부호를 중첩해 이룬
64괘 384효, 괘사(卦辭), 효사(爻辭)로 구성
괘상(卦象)에 따라 길흉화복을 점친 학문이 주역.

주나라 사람들은 8괘로 점 치는 책이었으므로 주역
정이 주석서 역전(易傳)은 철학적인 관점을 담고있고
세계관, 윤리학설 및 풍부하고 소박한 변증법을 담고있다.

주역은 중국 철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전〉 계사편(繫辭篇) 등에서는 음양 세력의 교감
그 작용은 세상만물이 통일된 체계로 연계되었다 본다.

진한(秦漢) 시대후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서양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주석본은 매우 많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주역정의 周易正義〉

(위나라 王弼. 진나라 韓康伯, 당나라 孔穎達)
<주역집해 周易集解〉(당나라 李鼎祚의 輯),
현대 가오헝[高亭]의 〈주역고경금주 周易古經今注〉
주역대전금주( 周易大傳今注)가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
....................................

역경(易經)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책.
인류가 문명을 가지고 있지 못하던 원시시대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여 역괘(易卦)를 정한 주역.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또는 희랍 설형문자
역경처럼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인 면은 없다.
역경은 <괘> <효>가 발음이 되는 않는 문자

아라비아 숫자 같은 발음도 없고 의미만 있는 문자
알파벳(Alphabet)처럼 의미는 없고 발음만 가진 문자
역경은 아라비아 숫자와는 정반대로 질적인 문자이다.

아울러, 아라비아 숫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문자.
그 숨은 뜻이 무궁무진하고 상상을 초월한 문자.
역경을 탄생시킨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동이족)

공자가 역을 설명한 '계사전' 속, 태호 복희씨

..................계사전..............
"예전에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
우러러 천체를 관측 엎드려 지형을 관찰,
새와 짐승의 모양과 땅의 모양을 관찰하고,

가깝게는 자신의 몸에서 뜻을 따오고,
멀리 만물 형상을 본딴 팔괘를 만들어
신명에 통하고 만물의 정(情)에 유(類)."
..........<계사하전 제2장>.............

복희씨에 의해 생겨난 <역>은
하나라 시대의 연산역(連山易)과
은나라 시대의 귀장역(歸藏易)을 거쳐
주(周) 나라 시대의 주역(周易)으로 발전

지금까지 전해 지는 것은 주역 뿐.
하여 지금의 역을 주역이라 한다.

주역은 복희, 문왕, 주공, 공자
4대 성인에 의해 완성되었다 한다.

1) 복희 : 팔괘를 만들어 내고, 선천팔괘와 64괘를 그림
2) 문왕 : 후천팔괘를 그리고 64괘의 괘사(卦辭)를 씀
3) 주공 : 384효의 효사(爻辭)를 씀
4) 공자 : 십익(*)을 씀과 동시에 주역을 완성시킴

...........십익(十翼).......................
주역에 십익(열개의 날개)을 달아
공자 자신의 사상과 경륜을 담았다.

공자가 가죽으로 묶은 끈이 세 번 떨어질 정도로
<역>에 심취한 것은 <역>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
<역>은 진리의 학문이지만, 방법론이 어렵기 때문에
공자는 후세사람들이 멀리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① 단사(彖辭) : 괘사를 부연 설명함
② 상사(象辭) : 괘의 상과 효의 상을 설명함
③ 건괘문언(乾卦文言) : 도덕적 해설
④ 곤괘문언(坤卦文言) : "
⑤ 괘사상전(卦辭上傳) : 괘의 해설 및 실천윤리 해설

⑥ 괘사하전(卦辭下傳) : "
⑦ 설괘전(說卦傳) : 팔괘의 성질과 변화작용 해설
⑧ 서괘상전(序卦上傳)
⑨ 서괘하전(序卦下傳)
⑩ 잡괘전(雜卦傳) : 순역(順逆)의 의미를 설명

....술이부작(述而不作)...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말로
전해 내려 오는 것을 정리는 하되
새로 창작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주역이 완벽한 진리 임을 강조한 말.
......................................

주역 또한 한반도 민족 고유의 역경이다.
선사시대 중국과 한반도는 한덩어리 대륙.
같은 한자를 사용했던 뿌리가 같은 민족들.

제 4 빙하기 후 양자강 황하강이 범람.

민족 대이동으로 중국 고대국가가 형성.
역사적으로 문명은 큰강 하류에서 발생.
한반도는 중국보다 훨씬 앞선 고대문명.

한반도로 분리되며 왕래가 차츰 멀어진듯.
그러나, 항해술의 발달로 무역은 성행한듯
은(상 : 商)나라는 상업이 발달한 고대 중국.

한반도는 고대사회부터 상업과 항해술이 발달
고대사회 한반도 문화는 중국 중원으로도 전파.
24방위, 주역은 한반도 민족 고유의 문명 같다.



주나라.



하 - 은 - 주 - 춘추전국시대 - 진 - 한 -
수 - 당 - 송 - 원 - 명 - 청 - 중화민국

은나라 다음 왕조이며, 요순 시대를 잇는 태평 시대.
주나라는 왕실과 공신을 요지에 둔 봉건제도로 치세.
봉건이란 말의 원래 뜻은 곧 주나라 국가체제를 지칭

BC 11세기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호경(西安 부근)에 정해 주왕조를 건설했을 때
나라의 기초를 굳히기 위하여 실시한 제도가 봉건제도.

주족(周族) 시조 후직(后稷),
어릴 적 이름은 버릴 기(棄)

어머니는 <제곡 고신> 원비(元妃)가 된 유태씨 딸, 강원
강원은 어느날 들에 나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뜨끔
얼마후 아들을 낳았는데 아비없이 태어나 길가에 내버렸다.

그러나, 소나 말이 밟지않고 피해갔다.
이번에는 인적이 드문 숲 속에 버렸더니,
갑자기 사숲속에 람들의 왕래가 잦아졌다.

다시 얼어붙은 도랑위에 버렸더니
새들이 날개로 아기를 돌봐주었다.

강원은 신령스럽게 여겨 다시 궁궐로 데려가 키웠는데,
버렸던 아이였으므로, 이름을 <버릴 기(棄)>라고 지었다.

기(棄)는 어릴때부터 삼이나 콩 따위를 심고 즐겼다.
자라서 <제요 도당씨>때 농사(農師)관직을 맡아보고,
<제순 유우씨>때 후직(后稷) 관직명을 이름으로 사용.

후직의 농사기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니
순임금은 후직을 태에 봉하고 성씨를 하사.

후직은 당요, 우순, 하우 때까지 살다가
아들인 <불줄>이 대를 이었으나 하후씨가
농사를 돌보지 않자 불줄은 일자리를 잃고
유랑하다 융적(戎狄)들 땅에 흘러 들어가고,

아들 국이 대를 잇고,
국의 아들 공유(公劉)때
종족과 함께 하북성 자현
(河北省 磁縣)으로 이동한다.

비록 융적들 속에 살았으나
후직의 업을 본받아 농사 지으니
혜택이 커 따르는 무리가 많아졌다.

당시 북부중국은 만리장성이 없었으므로
흉노의 일종인 적족(狄族)이 창궐하였는데
공유가 죽고 아들 경절 때부터 300년간 전쟁.

12세손 주태왕 고공단보 때 이르러
섬서성 빈이라는 곳에 터를 잡고 다시
후직과 공유의 법을 이으니 백성들이 호응.

이때 그 재물을 탐내던 훈육이라는 종족이 침범하자
다시 기산(岐山) 밑 주원(周原)이라는 곳에 정착하여
이목생활을 청산하고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고공단보의 손자 창(昌)때 이르러서는
은(상 : 商)나라 신흥서부세력으로 부상
주나라 창건 후 창은 서백에 책봉되었다.

<서백 창>이 훗날 주문왕(周文王)이다.

<맹자>왈

"순임금은 동이(東夷)이고
주문왕은 서이(西夷)로서
산 곳과 산 해는 차이 나지만
중국에서 왕이 된 것은 같다."

동이계 여러 종족들의 시조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기를 삼키고
아이를 잉태한 전설과 구분하여

주족 시조는 땅에서 솟은
양기를 느끼고 후직을 잉태.





강태공.




주지육림(酒池肉林) 은나라를 무너뜨린 강태공.
강태공(姜太公)은 주나라 문왕(서백)에 의해 등용
주나라 기틀을 다졌고 문왕의 둘째 아들 무왕을 도와
은(B.C 1,600~1,046)나라 주지육림 주왕을 멸망시킨다.

그 공으로 제(산동성)나라에 봉함
강태공은 제(齊)나라 시조가 된다.

강태공은 처음에 가난한 사람이었으나,
위수(황하강 상류)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문왕을 만나 훗날 한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경제적 수완과 병법가 재능이 널리 회자된다.

문왕의 큰 아들은 은나라 주(紂)왕에 의해 살해.
은나라 마지막 왕 주(紂)왕은 미녀 달기에 빠져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호화궁전을 짓고 향락.

연못같은 욕조에 술을 가득 채우고,
나무마다 고기를 매달아 숲을 만들고,
거기서 벌거벗은 남녀끼리 쫓아 다니면서
뛰어 놀게하는 유희를 즐겼고, 밤낮으로 연회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여기에서 유래.'

또한, 신하들을 숯불 위 구리철판을 맨발로 걷게 해
죽게 만드는 포락지형(?烙之形)으로 처형한다.

한편 서백은 덕을 쌓고 인망을 얻었기에
귀순하는 자가 많아 날로 세력이 강해지자,
은(殷)나라 주(紂)왕은 서백을 유리에 감금.

그것도 모자라 서백의 큰 아들을 죽여 포를 뜬 다음,
국을 끊여 서백 창에게 갖다 주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서백을 소위 성인이라고 하는데,
그가 이 국을 먹으면 제 자식의 살점을 먹는 것이니
성인도 아닐 것이요, 먹지 않으면 성인이므로 죽여라.”

서백은 눈물을 머금고 국을 먹는 시늉을 했다.
이 때, 서백의 심복부하들은 서백을 구하기 위해
주(紂)왕에게 낙서 땅과 미녀와 명마를 뇌물로 바쳤다.

주왕은 크게 기뻐하며 서백을 석방하고,
활을 하사, 천자인 주(紂)왕을 대신하여
서쪽 제후들을 서백에게 다스리게 하였다.

서쪽으로 간 서백(문왕)은 강태공을 책사로 기용하여
서쪽 세력을 확장하여 주(B.C1,046~771)나라를 세웠고,
국력에 힘쓰다가 강태공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운명한다.

그뒤를 이어 둘째 아들인 무왕(武王)이 왕위를 계승
은(殷)나라 주(紂)왕이 원정나간 사이에 공격을 개시
향락과 사치를 일삼는 은나라 주(紂)왕을 무너뜨렸다.


덧 말.

강태공에 관한 역사 역시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것은 한반도 민족의 고대 역사이기 때문인듯.
공자 맹자 논어 주지육림 또한 익숙한 말들이다.

중국의 고대 역사가 한반도 민족에게는 익숙
중국의 근대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낯설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하게 여겨진다.

고대 중국역사는 한반도 역사와 일치한다.
양자강 황하강 하류 민족으로서의 동질성.
특히, 산동반도와 한반도는 더욱 더 일치.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황하강.




중국 문명의 요람이자 중국에서 2번째로 긴 강.

5,464km를 흘러 황해 보하이[渤海]로 유입된다.
황하강은 상당 부분이 굽이치고 물길이 사나우며
종종 제방을 넘어 화베이(華北) 평원을 범람한다.

'중국의 우환' '다스릴 수 없는 강'이라는 별칭

황(黃)이란 말은 강물이 운반하는 황토를 뜻한다.
중국문명의 발상지로 상류 분지, 하류는 평원구역
황토층은 티베트 고원에서 동쪽의 화베이 평원까지.


[자연지리]

티베트 고원 바옌카라 산맥에서 발원하여,
2개의 호수를 건너 깊은 협곡으로 들어간다.
황하강 하류는 700km길이에 대홍수 지역이다.

[수문학(水文學)]

지난 4,000년간 황하강 수로는 몇 차례 급격한 변화
800km나 떨어진 지점에서 황해로 흘러들기도 했었다.

BC 3000~602년 황허 강이 최북단의 수로를 지났을 때
톈진시(天津市)를 가로질러서 인근 보하이로 들어갔다.
BC 602~AD 70년에 산둥 반도의 남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70~1048년 다시 북쪽으로 바꿔 현재 하상과 근접
1048~1194년 내륙 안쪽, 화베이 평원으로 흘렀다.
1194년 하구는 삼각주 남쪽 가장자리로 옮겨졌다.

그해 제방이 무너져 산둥 반도 남쪽에 2번째 하구 형성.
1289~1324년 이전 하상으로 돌아가 500년 이상 안정된다.
1854년 이후 산둥 반도 북쪽으로 전진해 현재 위치로 정착.

[황허 문명]

황하강 중 하류에서 발생한 문명이 황하문명
잦은 홍수로 처음 문명이 일어난 곳은 구릉지.
신석기시대 초기에는 허난 성의 페이리강 문화

신석기 후기에는 중류 중심으로 양사오(仰韶) 문화
BC 2500~1700년에는 용산문화가 번성한 하(夏)나라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면서 은(殷)나라가 이어받는다.

뒤이어 주(周),진(秦),한(漢) 등으로 이어지며
황하 유역은 중국문명의 주요 활동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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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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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 4대 문명.
B.C 3500년경 문명이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4대 문명 발생지는 모두 북반구 큰 강을 끼고 있었다.

대부분이 기후가 온화하고 기름진 토지를 지닌 지역들.

지금 중동 지방은 주로 사막으로 덮혀 있지만,
그당시의 기후나 토양은 오늘날과 매우 달랐다.

6, 7쳔년 전 중동은 강수량도 많아 울창한 숲.
인더스강 유역도 사막 지역이 아닌 살기 좋은 곳.
4대 문명 발생지 큰 강 유역은 농사가 잘 되었다.

홍수 때 농사짓기 적당한 흙이 내려 와
식량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대규모 수리 사업을 필요로 했고,
이를 위해 서로 간 협동, 단결해야만 했다.
대규모 수리사업을 이끌 권력자도 필요했다.

하여, 도시가 형성되고. 문명(문자)이 발생.
신석기시대 농업 생산력은 크게 증대하였다.
큰강 유역은 토지가 비옥해 큰 촌락이 형성

청동기가 제작되고 바퀴, 쟁기, 돛단배 등이 발명
교통도 발달해 촌락들이 뭉쳐 도시가 형성되었는데,
각 도시는 성을 쌓고, 제각기 독립하여 국가의 모습

도시국가 중심에서 지배자가 거주하는 곳이 왕궁

국왕은 정치와 더불어 제사장 기능을 동시에 수행.
왕궁 안팎으로 수만 병사들이 국왕을 호위하였으며,
국왕의 주변에는 수많은 신하들이 국왕을 보좌하였다.

왕궁 주변 지배층이 거주하는 도시에는 호화 주택
다양한 시설물들이 이들 생활에 편리하게 이용된다.
그러나, 그 밑에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가혹한 수탈

이들은 소유 토지 경작에 수많은 노예를 혹사시켰으며,
자신이 지배하는 백성으로부터 조세와 공물을 거두었다.

지배층은 더 많은 노예와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그 관리들은 막대한 공물을 징수.
지배층에 도전하는 세력을 처벌하기 위해 법률 제정.
저항할 경우 곧바로 군대를 파견하여 무자비하게 진압.

지배자의 권위를 과시하는 사업이 활발하였다.
궁전과 무덤의 크기는 국왕의 권위에 비례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누어진 사회가 형성된다.

지배층은 피지배층이 순순히 복종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지배층은 위대해 보이려 온갖 장신구를 사용.

죽고나서도 거대한 무덤에 들어가
지위의 영속성을 보장받으려 했다.

왕이 죽으면 수십명을 강제로 묻는 은나라 순장제
거대한 피라미드가 만들어 무덤을 치장했던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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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허 문명은 양자강이 아닌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
양자강은 신석기시대 저습지이고 삼림이 무성한 곳.
이에 반해 황하강은 대륙성기후로 건조한 비옥한 황토

신석기시대 황허강은 우기에 화북(華北)에서 큰비.
대홍수를 피해 산속 구릉지 개울가에 농경을 시작.
이와 같이 형성된 농경취락은 황허문명 최초의 양상.

양사오 문화는 BC 4000∼BC 2000년경이고,
룽산문화는 BC 2500∼BC 1500년경을 추정.
황허강 중하류에 많은 농경취락들이 운영.

신석기시대가 끝날 무렵 청동기 문화가 열린다.
우수한 무기를 만든 쪽이 다른 부족을 제압하여
왕조를 건설하고 국가체제를 정비하기에 이른 것.

중국에 실존했던 최초의 왕조는 은나라이다.
그 수도에는 궁전이 있었고 다수의 묘가 구축
귀갑 수골문자에 점친 내용 문구가 새겨져 있다.

정교한 청동기 용기, 무게 1t 네모난 세발솥 등

청동은 상당히 귀한 것이었으므로 무기제작에 충당되고,
농구(農具) 등의 생산 용구는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졌다.
이같은 상태는 서주시대(西周時代)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동주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누어지는데,
춘추시대 초기에 철제 농구와 공구가 쓰이게된다.
우경(牛耕)이 시작되고, 대규모 수리공사(水利工事)

그 결과 농경은 능률적으로 발달, 경지면적은 확대,
수확량이 급격히 증대하며 화폐경제의 발달을 촉진
도(刀)나 포(布)라고 불리우는 청동화폐가 발생한다.

상공업 융성으로 도시가 커지고 국가도 강해진다.
한때 정체했던 중국의 고대문화는 비약적인 발전
춘추전국시대 광대한 도성이나 분묘, 호화 유물들

은 주 시대를 통해 중국문화의 중심은 황하유역
진나라 통일시대 거쳐 전한(前漢)시대에도 지속.

전한 무제(BC 171∼BC 87) 무렵에 철기가 거의 보급
생산력 지역차가 줄어들자 문화도 전국적으로 평균화.
황하문명은 확산되고 한문화(漢文化) 속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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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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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과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 5행
자연 현상이나 인간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사상.

음양설과 5행설은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했으나,
전국시대 중엽에 하나의 사상체계로 통합되었다.

원래 음양은 산의 북쪽(응달)과 남쪽(양달)
만물을 형성하는 에너지적 원소로서의 개념

춘추시대 음양설은 풍(風) 우(雨) 회(晦) 명(明)과 함께
천(天)의 6기(六氣) 중 하나로 인식되면서부터 발전했다.

BC 3세기 전반 천지만물 기(氣)의 모임과 흩어짐
음양에 따라 동식물 생명체 성질이 상반된다는 설

5행이란 수·화·목·금·토를 가리키며,
BC 4세기 초부터 그 개념이 보이기 시작
음양설과 결합하여 우주 에너지적로 간주.

음양오행설을 체계적으로 성립시킨 학자는 추연(鄒衍).
모든 왕조는 5덕에 따라 흥망성쇄가 결정된다는 학설.
토 - 목 - 금 - 화 - 수 순서로 왕조가 생성한다는 설

한대에는 음양오행설이 유가와 도가를 포함한
모든 사상에 공통적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음양오행설은 유교사상에 영향을 끼쳤다.

군주의 통치는 '천'(天)에 순종하는 것이어야 하며
만약 민생을 해치면 음양오행의 부조화를 초래하여
가뭄 장마 또는 지진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가 반성하지 않을 때는
천명을 거역했기에 그 국가를 멸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군주의 통치가 민생을 잘 보호할 때는
보랏빛 구름, 진기한 짐승이 출현하는 상서로움.

외모, 언어,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
군주는 '5사'(五事)에 근신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음양오행설은 자연과학의 영역,
특히 의학 이론에 절대 영향을 미쳤다.

인체는 자연계의 음양오행에 적용된다는 의학 이론.
비장은 목, 폐는 화, 심장은 토, 간은 금, 신장은 수

사계절이 인간의 생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
음양오행설은 송대 성리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돈이는 음양오행을 태극과 관련지어 설명했다.

〈태극도설 太極圖說〉에 따르면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5행을 낳는
구도로 음양오행설을 이해했던..주돈이.

그는 5행을 5기로 파악
5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태극이라고 설명

음양과 5행의 결합에 의하여
만물이 형성되는 것으로 설명.

<태극도설>은 훗날 성리학에서
태극이 이(理)로, 음양오행은 기(氣)로
만물의 생성과 운동을 설명하는 기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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