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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생각해.
그때 네가 아무 말 없이
내 목덜미를 꽉 쥐었으면 좋았겠다고.
<한강주의>
황인준은 어린 시절 내 지저분한 질투의 대상이었다.
물론 생각 없을 어린 시절에 한하여. 황인준은 흔히 말하는 천재였고 나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재능도 노력도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 피가 이어진 나보다도 아버지는 황인준을 애정했다. 매일 밤이면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촛불 하나를 켜두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선의를 깨우치는 진리, 시를 읊는 방법. 내가 죽어도 배우지 못할 것들.
아버지가 그 애에게 선물해준 너덜너덜한 노트 한 권이 부러웠고 저녁마다 잔잔하게 들리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욕심났다. 그래서 사흘 밤낮을 이불 속에 파묻혀 소리 없이 울어보기도 하고 내게 웃으며 다가오는 황인준을 이유도 말 않고 미워해 보기도 했다. 그건 내 철없는 과거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황인준과 내가 대략 열댓 정도 되었을 무렵, 아버지의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바뀌기 시작했다.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아버지가 매일같이 술을 퍼마셨고 문학과 철학에 대해 논하던 아버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의 지난 과거와 감정의 쓰레기통은 인준이었다. 아프다는 소리 한 번 내뱉지 못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어린 황인준. 그 애는 다음날이 되면 얼굴에 온갖 상처를 달아놓고도 기쁘다는 듯 나를 보고 웃었다. 그때부터 걔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다 찢어진 상처에 대고 아버지와 함께해 부럽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웃는 얼굴에 대고 네가 밉다고 말할 수 없었다.
더는 부럽지 않았고, 밉지 않았으니까.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산수를 배우고 슬기로운 생활을 배웠을 때, 황인준은 집안에 틀어박혀 매시간 노트를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그 애가 학교에 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걔는 아버지의 꿈이니까. 죽기 전에는 아버지의 꿈을 이뤄야 하는 존재니까. 아버지에게는 학교에 가 공부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얻어맞는 황인준을 나도 알고 마을 사람들도 알았다. 저녁이 되면 아버지의 악을 지르는 소리가 파다하게 울렸으니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방관자다. 나도 그렇다.
언제 한 번 물은 적이 있다. 네 꿈은 무어냐고. 그러면 망설임 없이 너무 많아서 고를 수 없다고 대답했다. 제일 이루고 싶은 꿈 두 개만 말해보라고 했다. 황인준이 고개를 두 다리에 파묻고 웃으며 우물쭈물했다. 걔가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나는 그 애가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는 게 소원이라고 말할 거라고 확신했다. 확신한다. 나는 멍청했다. 첫 번째는 강이 너랑 같이 학교 다니는 거, 두 번째는…….
모든 걸 다 관두고 강이 너랑 같이 떠나는 거.
그 애의 소원에는 내가 있었다. 그러니까, 웃기지. 미련하게도 애초에 걔 머릿속에는 내가 없는 선택지 따위 없었다.
전남에서도 한참 구석에 처박힌 학교에 서울 놈이 전학을 왔다는 소식이 파다했다. 목동고 멱살 그러쥐고 까무러칠만한 대사건이었다. 안경 낀 반장의 말에 반에서 짱 먹은 제임스가 멱살을 잡았다. 아야. 시방 거짓부렁이기만 해봐라잉. 눈깔을 뽑아다가 깍두기랑 오독오독 씹어줄라니까. 제임스는 이름 대신 부르는 별명이었다. 제임스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제임스 맥어보이였기 때문이다. 온종일 서울 아가 어느 반에 배정될지에 대한 추측으로 떠들썩했다. 반장이 울먹였다. 진짜라니까…….
내심 전학생이 우리 반으로 와주길 기대했다. 그러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때그때 들은 얘기들은 전부 인준이에게 전해줘야지. 조례를 마치러 온 선생님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따~ 저거 또 저러부러. 앉아라잉. 예이. 제임스가 낄낄대며 자리에 앉자 뒤이어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전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따라 들어왔다.
나재민입니다. 서울에서 왔어요. 말수가 적은 전학생이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반 애들이 환영의 박수를 쳤다.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몇 번 긁는다. 그리고 걔는 자연스럽게 내 옆 빈 책상에 앉았다. 그렇게 내 옆자리는 서울에서 온 전학생이 차지했다.
“……. 안녕. 전학생.”
“그래. 안녕.”
“난 강이야. 한 강.”
“이름이?”
응. 특이하구나. 나재민이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첫날부터 교복까지 참하게 갖춰 입은 나재민에게는 책가방 위에 함께 멘 화구 통이 있었다. 몇 번 말을 걸고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음에도 걔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화구 통을 열어 내부를 두어 번 확인하고 다시 닫고 그걸 반복했다. 가방을 뒤지기도 했다. 나는 그냥 말없이 그 애의 행동을 지켜봤다.
2교시가 지날 때까지 나재민은 책 한 번 펴지 않았다. 뭉툭하고 못생기게 깎인 연필 한 자루를 손에 꼭 쥐고 두께가 굵은 드로잉 노트에 무언가를 계속 끄적이고 있었다. 그림을 하는 애 같았다. 서울에서 꽤 잘 사는구나 싶었다. 걔는 지루함을 참을 수 없는지 수십 번씩 하품하고 목을 꺾고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구 통을 챙겼다.
“선생님께 나 미술실 간다고 좀 말해줄래?”
서울에서 온 애라길래 좀 싹싹하고 친절한 애일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투리는 안 써도 여기서 나고 자란 나는 색안경을 끼고 생각하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긴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우리 반에서도 서울 못 가본 애는 나뿐이겠지. 제임스는 미국에도 몇 번 다녀왔다고 했다. 그걸 듣고 나는 부러움에 몸서리치며 그날 밤 잠을 설쳤다. 쓸데없는 외국 땅에 대한 로망이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를 돈 나재민이 반을 나섰다. 그리고 한참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교시가 끝나고 종례를 마칠 때까지 그 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일곱 시간 동안 미동도 없이 책상에 걸린 나재민의 책가방 하나만이 오늘 내 하루의 짝꿍이 되어주었다.
“인준이?”
교문에 익숙한 형체가 서 있었다. 목동 고등학교. 보잘것없이 쓰인 이름이 박힌 대리석 벽 앞에 기대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나는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았다. 여름의 끝 무렵이지만 아직 찜통더위에 하얀 반소매 티를 입는 황인준. 작은 목소리였는데 제 이름을 부르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인준이의 고개가 위로 치솟았다. 지루하게 기다리는 동안 내려가 있던 그 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강아.
“왜 왔어?”
“오늘 수요일이잖아.”
“벌써 그렇게 됐나?”
“응.”
매주 수요일은 인준이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시냇가에 가는 날이었다. 그곳에 단둘이 마주 보고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인준이를 위해 학교에서 있었던 나의 하루를 이야기했다. 맞다. 손을 들어 주먹 쥐고 머리를 툭툭 쳤다. 매번 까먹는 이 되먹지 못한 머리. 그러자 황인준이 웃으며 손을 잡아 내려 깍지를 꼈다.
“맨날 잊어먹네. 미안.”
“괜찮아. 강이 네가 매일 잊어버리면 내가 매일 알려주면 되지.”
자연스럽게 손을 마주 잡았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들어차는 인준이의 손마디가 느껴졌다. 우리는 그 말을 끝으로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따뜻한 손아귀를 느끼며 시냇가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를 걸었다.
“이제 진짜 가을이 오려나 봐. 인준아. 벌써 갈대밭이 있어. 그래도 아직은 좀 덥다. 그치.”
“응.”
“맞다. 오늘 서울에서 전학 온 애가 있는데, 나재민이라고……. 걔랑 짝도 됐어. 사실 걔랑 친해지고 싶었거든. 서울에서 왔으니까 재미있는 경험이 많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되게 싸가지 없는 것 같아. 오늘 수업도 빠졌어.”
“그래?”
조용히 흘러가는 우리의 시간에 보통 말을 잇는 것은 나다. 인준이는 가끔 짧은 대답과 반응을 해주고 만다. 그야 이 시간은 인준이가 나의 하루를 듣는 시간이니까. 그래도 나는 걔가 나 없는 동안 무얼 했는지 듣고 싶은데. 그렇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 이유로 인준이에게 앙탈을 부린 적이 없었다. 왜냐면…. 걔는 매번 내가 말하는 걸 듣는 동안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나는 인준이의 행복을 지켜주기로 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지나면 시냇가에 거의 다 왔다는 걸 알려주는 갈대밭이 있다. 여름엔 그마저도 없었지만, 입추가 다 되어서인지 드문드문 갈대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갈대밭 사이를 가르고 앞지르다 보면 인준이와의 하루를 최고로 즐겁게 만들어주는 우리의 놀이터가 있다. 고작 얼마 안 되는 크기지만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갈대를 가르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그 주변을 메우는 시골의 풍경들이 좋았다. 우리는 거기서 가장 큰 돌 위에 같이 앉았다.
“있잖아, 인준아.”
“응.”
“서울에는 여기 시냇가랑은 비교도 안 되게 큰 강이 있대.”
나는 다리를 모아 팔로 감싸고 고개를 처박는다. 황인준이 시냇가를 바라보며 꼬박꼬박 대답했다.
“그 강 이름이 한강이래.”
“그럼 강이 너의 강이네.”
킥킥. 내가 웃었다. 인준아 그렇게 내 이름으로 개그 하면 재밌어? 황인준도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난 강이 네가 웃는 게 제일 좋으니까.
아니, 뭐. 별건 아니구.
“황인준, 약속해. 처음의 한강은 꼭 둘이 가기로.”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시야가 암전된 와중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무릎에 박았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냇가를 향해있던 황인준의 눈동자가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먼저 어기면 안 돼. 강아.”
황인준이 웃었다. 그러면 나도 따라 웃었다. 알겠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 애는 아버지를 따라 시를 읊어서 긍정을 말하는 게 남달랐다. 그때 내 세계엔 너밖에 없었고, 네 세계에도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게 꼭 함께 도망치자는 것 같아서.
나재민이 수업도 빠지고 미술실에 틀어박혀 산지만 일주일이 넘었다. 나는 짝꿍임에도 불구하고 나재민의 머리카락 한 올도 볼 수 없었다. 걔는 나보다 훨씬 일찍 등교하고 조례도 종례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종례 시간에 나누어준 유인물은 석식 신청 여부 조사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볼펜을 들어 망설임 없이 아니오 부분에 동그라미를 쳤다. 짝꿍 것까지 가져다 내라. 그 말에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매일 비어있는 그 자리.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수요일도 아니니 인준이가 교문에서 기다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배우지 않아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미술실 문을 열었다.
관심이 없어 이게 어떤 종류의 냄새인지는 몰라도 물감의 냄새라는 건 확실했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안을 둘러보니 캔버스 앞에 앉아있는 나재민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조심히 발을 밀어 넣었다.
이젤 위에 놓인 캔버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그려져 있었다. 여러 색깔이 섞여 다채롭게 보이기도 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우와. 이거 네가 그린 거야?”
“아, 깜짝이야.”
“미안. 열려있길래.”
소리에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린 나재민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애의 표정이 이상했다. 꼭 마음에 들지 않는 걸 보는 것 마냥.
“진짜 잘 그린다. 이 정도면 서울에서도 상 많이 받았겠는데.”
“온갖 청소년 상이란 상은 다 쓸었지.”
“엑. 자랑하는 거야?”
“농담.”
얼굴을 찌푸리며 장난식의 어조로 물었다. 나재민이 농담이라며 입꼬리를 올렸다. 걔가 웃는 건 난생 처음 봤다.
“정말 잘 그린 것 같아?”
“이게 잘 그린 게 아니면 뭐가 잘 그린 건데?”
“최소한의 노력은 보였다는 뜻이네.”
나재민이 왼손 엄지에 껴둔 나무 팔레트를 책상 위에 집어 던졌다. 의도치 않게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서울에서도 계속 미술을 했었어. 열심히 했지. 그래도 안 되는 건 있더라. 그 많은 트로피도 나한테는 의미 없어. 물감이 번져 엉터리가 된 앞치마를 두른 채 멍하니 제 그림을 바라보며 말하던 나재민이 죽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 천재 아냐. 그래서 도피해 온 거야, 여기.”
그런 애랑 친구 해봤자 좋을 거 없을 텐데. 끝을 흐린 나재민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나재민.
“창작은 뼈를 깎는 고통이래. 내 친구가 시를 써서 잘 알아. 근데, 나는 시 한 번 제대로 써본 적 없어. 마찬가지로 그림 한 번 그려본 적 없고. 너 대단한 거야. 너처럼 마음만 먹으면 그릴 수 있는 애가 또 어디 있어.”
“…….”
“나재민 너 몰라서 그래. 우리 아버지가 시인인데, 난 울 아버지 하나두 안 닮았어. 나 국어 점수도 안 높아. 대박이지. 그리고 말이야. 세상에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지. 내가 도망쟁이인 너랑 친구 한다고 세상이 무너지고 그래? 웃겨. 서울에서 왔다더니만 이거 완전 헛똑똑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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