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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저는 1977년도인 초등학교 3학년 때 지나가던 주일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전도를 받았습니다. 당시 여섯 살이던 사촌동생과 길에서 놀고 있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교회 다니냐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 다닌다고 했더니, 그러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언덕 위에 있는 교회에 나오라는 겁니다. 그때는 어른이 하는 얘기니까 가야 되나보다 하면서 얼떨결에 약속을 했죠.
사촌동생은 어려서 그런지 저한테만 얘기하셨지요. 그래서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됐습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어 말한다면, "두 사람이 놀고 있으매 한 사람만 데려감을 당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우리 집안에서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건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지만 믿음 같은 건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구원열차', '내 일생 다 가도록' 같은 노래도 부르고 공과공부도 많이 했지만 조금 다니다 흐지부지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5학년 담임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선생님이었고 주일학교 교사였는데, 쉬는 시간에 교회 다니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찬양과 율동을 같이 할 정도로 열심이셨지요. 교육방식도 독특하고 창의적이어서 저는 그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참 존경하기도 하고, 제 재능을 많이 인정해 주셨던 그 선생님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지요. 5학년을 마치는 마지막 날이었는데요,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선생님은 끝으로 한 가지 소원이 있어. 그건 여러분 모두가 교회에 다녀서 구원 받고 천국 가는 거야. 하나님은 살아 계셔."
두 손을 꼭 모으고 간곡한 마음으로 얘기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다른 생각보다도, 존경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니까 '그래야 하는구나. 하나님은 진짜구나' 하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작정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 기도가 이루어지더군요. 얼마 후, 도저히 불가능한 어떤 일이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저는 일단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한 그 이후로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발랄한 중학생에서 암울한 검정고시생으로
그때는 형이 중학 미션스쿨에 들어가고, 집안에 어려움이 닥치면서 어머니도 교회에 다니게 된 시기였습니다. 이후에도 학교 친구들과 교회를 다니다가 중학교에 가서 고등학생 형이 다니는 좀 큰 장로교회에 한 살 위의 누나랑 다같이 나가게 됐습니다. 거기서 찬양대도 하고, 임원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다니고 또 열심히 놀았지요. 저는 고등학교를 안 다니고 검정고시를 해서 고등학교 동창이 없는데, 지금도 제일 친한 친구들은 그때 그 교회 친구들입니다.
꽤 컸던 그 교회는 기도도 많이 시키고, 놀기도 많이 놀고, 적당히 세속화되기도 하고, 적당히 열심도 있는, 꽤 잘나가는 평범한 교회였습니다. 거기서 세례를 받고, 성경공부도 나름 열심히 하고, 전도활동이나 문학의 밤 등등 활동을 많이 했지만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제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됐습니다.
저는 당시에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위가 많이 상하고 몸이 많이 허약한 상태였는데요, 설상가상으로 제가 바로 그 유명한 '머리는 좋은데 공부 안 하는 학생'이었답니다. 어느 집이나 한둘씩 있지요. 그래서 시험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해서 검정고시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검정고시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들 중 1%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공부가 제일 싫었어요."라고 하지요. 공부가 제일 쉬워서 월반하는 극소수의 아이들과 사정상 정상적인 과정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로 나뉩니다. 저도 후자에 속해서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는데, 중학교 때는 교회에서 무척 활발했었지만 사람이 주눅이 들고 성격이 많이 어두워지더군요. 교회도 창피해서 한동안 안 나갔습니다. 거의 혼자 음악만 듣고 다녔지요.
어쩌다 보니 검정고시를 1년 만에 끝내게 됐습니다. 친구들이 고2 올라갈 때 고졸 자격을 땄지요. 하지만 검정고시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서 지식에 깊이가 별로 없었고, 2년 동안 대입 준비를 했지만 그리 좋은 성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수학 같은 것은 전혀 이해를 못했습니다. 지금도 논리적인 과학을 이해하거나 수학적인 계산을 할 때는 남들보다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한데요, 그러다 보니 남들에게 좀 쉽게 전달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하면 남들도 다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중학교 때 포스터 그리기 대회 등에서 상도 좀 타고 했지만 화실에 다니면서 입시미술을 배울 형편이 못 돼서 별다른 꿈이 없었습니다. 소원은 그림을 그리면서 음악을 듣는 것이었는데, 도저히 그걸 이룰 방법이 없었고, 그냥 아무 과나 선택해서 붙으면 다니고, 그때그때 헤쳐 나가야겠다...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디자인과에 들어가 열심히 배우게 되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검정고시 때부터 저는 팝음악을 무척 열심히 들었습니다. 거의 자폐 수준으로 아무도 안 만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지요. 특히 영국의 비틀스에 심취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교 때 작은 책자를 얻었는데, <팝 음악에 나타난 사탄의 영향>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여러 책들을 더 찾아서 알아보니 비틀스가 정말 사악한 그룹이었습니다. 헤비메탈 음악의 원조이기도 하고, 노골적인 반 기독교적 정서를 가진 팀이었지요.
청년시절을 보낸 감리교회
검정고시 때부터 다시 교회를 정해서 다닌 곳이 집 앞의 감리교회였는데 수백 명 규모에서 점점 커 가던 교회였습니다. 거기서 열심히 청년부 활동을 하면서 성경공부도 하고 전도도 했습니다. 이 교회에서 종말론을 무척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문제는 환난 후 휴거설을 배운 것인데, 물론 성경을 근거(?)로 했습니다.
그때도 대세는 환난 전 휴거였지만 저는 제가 배운 것을 믿고 주변에도 열심히 전했습니다. 많이 유행했듯이 찬양 팀을 만들어 거리와 전철역 등지에서 노방전도도 했는데, 그때는 혼자 있을 때도 가방에 전도지가 있으면 지하철에서 나눠주기도 할 정도로 뜨거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전도지에는 종말론 관련 내용이 있고, 천주교가 결국은 적그리스도와 결탁한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종말에 관한 중편소설을 쓰고, 해설까지 담아서 책으로 만들어 나눠줄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그 즈음에 알고 지내던 Y 순복음교회에 다니시던 분이 자기는 환난 전 휴거를 믿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잠시 공방을 벌였는데, 제가 나름대로 성경을 들이대면서 마태복음 24장 29절에 "그날 환난 후에...."라고 되어 있지 않느냐고 따졌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교회로 잘못 배운 결과였지만요. 나는 이렇게 알고 있는데, 환난 전에 재림이 있고 휴거가 된다는 건 어디에 나오느냐고 물으니까, 정확한 근거는 못 대고, 아무튼 성경에 있고, 조 목사님이 그렇다고 했기 때문에 그게 맞는다는 거였습니다. 나중에는 말이 달리니까 짜증을 내면서 그러더군요.
"아무튼 나는 올라갈 거니까, 형제는 남아서 고생 좀 해~."
그 뒤로 베버 박사 등을 통해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근거들도 알게 됐지만 하나의 견해로 생각했고, 아무튼 저는 몇 년 전까지도 환난 후 휴거로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납득할 만한 성경적 근거가 제 생각을 뒤집을 만큼은 안 됐었거든요.
그 감리교회 목사님은 신학생을 선지 생도로, 기타 청년들은 환난 때 전적으로 사역할 사명자로 세우셨지만 갈수록 청년들은 제 갈 길로 갔습니다. 목사님이 원한 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전파할 사람이 아니라 자기한테 배운 걸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전달할 사람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다른 어떤 견해도 받아들이거나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입대와 이명(귀울림증)이라는 질병
당시 나이가 돼서 학교를 휴학하고 방위로 입대를 했습니다. 방위 하면 흔히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면서 예비군 통지서나 돌리는 동사무소 방위를 떠올리시는데, 저는 나름 전투방위로, 팀 스피리트(한미연합훈련)까지 참가해 보았습니다. 방위가 된 데는 특별한 사유가 없었고, 단지 3급 판정을 받은 이유가 '신체불균형'이었는데, 키 184cm에 신체검사 당시 53kg 밖에 안 나갔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매일 훈련에 교육에 태권도 등등 나름대로 무척 힘들었지만 정말 기쁨으로 매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부대로 출근할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사격 훈련을 나갔는데, 음악을 많이 들어서 고막이 약해졌는지 귀에 큰 충격을 받게 됐습니다. 통신병이라 여군들이 주로 쓴다는 케이원 소총을 쐈는데, 개머리판이 없어서 가볍지만 울림이 큰 총이었습니다. 발사 순간 "땅!" 하는데, 그때부터 머릿속에서 수천 마리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다음날 일어나도 거의 비슷했습니다.
정말 한동안 그 새떼들과 함께 생활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하루에 서너 마리씩 새가 떠나는 것 같더군요. 결국 한두 달 후에는 정각에 나오는 라디오 시보처럼 '삐--' 하는 소리만 남았는데, 지금까지도 그 소리가 납니다. 그게 '이명증'이었습니다. 그것 땜에 무척 예민해지고, 신경질도 많아져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제 성격을 차분하게 보시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무척 다혈질이었습니다. 아무튼 말할 때마다 그 소리가 함께 울리지만 지금은 아예 신경을 끄고 삽니다. 그래야 좀 덜 들리지요.
그런데 그 감리교회 목사님이 마이크를 어찌나 크게 쓰시는지, 동네에서 만날 민원 들어오고, 말할 때마다 진동이 온몸에 올 정도로 모든 교인들이 괴로워했으니 이명증이 생긴 저는 오죽했겠습니까. 나무 의자가 웅웅 하고 울릴 정도로 앰프 소리가 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통해 몇 번 말씀을 드렸는데, 전혀 나아지는 게 없었습니다. 저도 그 목사님을 존경했고, 교회를 옮길 생각까지는 전혀 없었지만 완벽한 무반응에 무척 서운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청년회장이었는데, 철야예배 때 사회를 보게 됐습니다. 목사님의 마이크 소리는 거의 공포증 수준이었는데요, 저는 찬양을 인도하고 묵도 시간에 모두 눈 감은 것을 보고 살짝 다가가 앰프의 소리를 약간 줄이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습니다. 잠시 후 목사님이 기도를 시작하셨는데, 평소보다 한결 낫더군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잠시 후에 다시 소리가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눈을 떠서 보니, 목사님이 기도하시면서... 손수 앰프에 다가가 소리를 키우시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섭섭하고 정말 화가 났습니다.
그때, 나는 대체 저 분에게 어떤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인정해 주고, 박수를 쳐주고, 그대로 전할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가 보다... 내가 성도이고 한 마리 양이라면, 그렇게 여러 번 어머니를 통해 말씀드렸는데도 다른 조치도 없고, 교회 여건상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는 말씀도 없이 이렇게 무시하나 싶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젊은 혈기에 설교가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거기서 나와 버렸습니다. 3~4년 다닌 곳이었지만 그 뒤로 다시는 안 갔습니다. 물론 그분에게 나쁜 마음은 없어서, 제 결혼식 집례도 그 목사님이 해 주셨지만... 이랬다저랬다 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교회는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그 목사님 또한 제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셨겠지만 절대 먼저 아쉬운 소리는 끝까지 안 하셨지요. 일단 배신(?)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나가도 정말 겉으로 눈 하나 깜빡 안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릇이 안 됐다 생각하셨겠지요.
방황 속 교회탐방기
그 뒤로 한동안 방황 아닌 방황을 했지만 주일에는 꼭 어느 교회든 나갔습니다. 그 기간에 동네 교회부터 시내의 큰 교회까지 많은 교회를 가 봤습니다.
어떤 교회는 목사가 자기 이야기만 하고 성경은 안 전하더군요. 거듭남의 복음 같은 건 듣기 어려운 교회가 많았습니다. 또 헌금 낸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던 어떤 목사는 시간에 쫓기자 "시간 관계상 다 소개 못해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주보에 꼭 게재하도록 하겠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약장수 같은 분이었지요.
하루는 동네의 작은 교회를 가 봤는데, 당시에 감신대에서 변모 학장과 함께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다 종교재판을 받기도 했던 홍모 교수가 목회하는 교회였습니다. 홍 교수는 없었고, 부인과 청년들만 있었습니다. 그때 감신대에 가 보면, "이 두 양반을 종교재판에 세우고 정죄하는 것은 신사참배 이후 한국교회의 가장 치욕적인 일이다!!"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을 정도로 이미 그때도 종교다원주의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곳을 찾다가 하루는 갈급한 마음에 무작정 작은 교회의 저녁예배에 갔습니다. 낯선 사람이 혼자서 미리 와 있으니 그곳 목사님이 인사를 건네더군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교회를 결정해야 되는데... 그냥 이러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왜 다니던 교회를 나왔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신앙이나 뭐가 안 맞아서가 아니라 제가 귀가 좀 안 좋습니다, 하면서 사정 얘기를 했습니다. 이명증이라는 게 귀를 막아도 들리는 거라서 자살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사실은 은근히 괴로운 병이고, 치료법도 없습니다. 당시에는 무척 괴로웠고, 특히 생 마이크 소리가 제일 힘들었죠.
이야기를 했더니, "아, 그러시군요." 하면서, 잘 됐다든지 우리 교회 나오라든지 그런 얘기도 없이 "참 힘드셨겠네요...." 정도로만 얘길 하셨습니다. 또 함께 기도하자며 기도를 해 주셨지요.
"하나님 아버지, 이 형제님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또한 육신의 연약함이 있으니 치유해 주시고, 하나님 뜻 안에서 좋은 교회를 찾아 다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만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어서 그분이 예배 준비를 하시는데, 마이크 테스트를 하면서 강대상에 서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괜찮습니까? 이 정도면 될까요?"
저는 오히려 너무 미안해서 "웬만하면 괜찮습니다. 너무 신경쓰시지 마세요." 하고 대답을 했는데, 그분의 인격이나 마음 씀씀이, 또 진지한 설교 등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참 고마운 마음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되려면 말씀양육이 가장 중요하다지만 그 다음은 리더십도 명성도 아니고 긍휼과 배려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다니기로 했는데, 한 달이 못 돼서 다른 교회로 가시고 다른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분은 전혀 스타일도 다른 분이었지만 저는 열심히 다녔고, 두어 달 만에 청년들이 크게 늘어났지만 사택이 교회 안에 있는데 청년들이 너무 북적대니까 사모님도 싫어하시고 해서 점차 흩어지게 됐습니다.
크리스천 레스토랑과 문화선교단체
제 신앙생활은 크리스천 레스토랑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980년대에는 대방동 <가스펠하우스>라든지, 안양의 <새롭게하소서> 같은 크리스천 문화공간들이 있었는데요, 찬양이 나오고 콘서트도 하는 크리스천들의 다방 같은 곳이었지요. 인근 교회에서 와서 구역예배도 드리고 서로 교류도 하는 미니 콘서트장의 역할을 겸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때 제가 살던 은평구 응암동에도 <샬롬>이라는 곳이 있었고, 역촌동에 <카로스>라는 곳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수도권 연합회 같은 게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팝음악의 뉴에이지적 요소를 알고 충격을 받은 저는 이런 크리스천 레스토랑들에서 종말론과 뉴에이지 문화의 위험을 알리는 강의를 했습니다.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찬양과 함께 문화에 나타난 위험 요소를 알려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 교회 청년부나 중고등부에 가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마귀들이 실제로 역사하는 것을 강력하게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또 <들소리신문> 같은 곳에도 영화와 뉴에이지에 대해 글을 연재하기도 했지요.
<카로스>라는 레스토랑에서는 몇몇 형제, 자매들과 매월 소식지를 만들었는데, 이 지면을 통해서도 반 뉴에이지 운동을 꾸준히 했습니다. 또 크리스천 사역자들을 인터뷰해서 소개하는 일도 하면서 다양한 인맥을 쌓게 되었습니다. 잡지사 디자이너라서 CCM 음반을 디자인하는 일을 부업으로 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복음성가와 CCM 음반들을 여러 개 디자인하면서 결혼 직후 프리랜서로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결혼과 동시에 아내와 한 곳으로 합쳐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함께 시작하게 됐는데요, 귀가 안 좋은 저는 일단 소리가 조용한 교회를 원했고, 지금은 원로목사님인 당시 담임목사님은 무척 차분하게 설교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결혼 이후로는 생활환경이 바뀌게 되어, 저는 몇 년 동안 조용히 지내면서 글도 쓰고 디자인과 일러스트 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청년에서 남전도회 회원으로 자신을 바꾸는 과정이 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6~7년 후에 일러스트를 해주던 거래처와 연결이 됐는데, 그곳이 00울타리라는 잡지가 나오던 문화선교 기업이었습니다. 거기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있어서 입사를 했고, 디자인실을 맡아 일하게 됐습니다. 그곳에는 출판 미디어부, 교육부, 음악원, 어학원이 있었고, 심지어 교회까지 생기게 됐는데, 다양한 부서에서 오는 일이라는 것이 아무리 열심히 밤을 새서 해도 안 끝났습니다.
그 회사는 뉴에이지 문화 바로 알리기에 크게 공헌한 적이 있는 단체였는데요, 거기 대표님도 좋은 뜻을 품고 시작하셨고, 입사하는 사람들도 문화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헌신하기 위해 뛰었지만 비즈니스라는 현실은 선교와 공존하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더 많이 팔고, 더 이윤을 남겨서 직원들을 먹여 살리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더 큰 일, 더 효과적인 일을 하자는 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보니 많은 어려움에 닥치게 됐고, 2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제가 한 일은 거의 5~6년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았습니다.
덕분에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게 되는 효과는 있었지만 회사는 이직률이 높았고, 저도 버티다가 그곳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물론 저의 부족함이 그 회사에 득이 안 된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후 회사는 둘로 나뉘게 되었고 지금은 둘 중 한 곳만 고군분투하는 중입니다. 저는 그 뒤로 그 계열사인 웨딩업체에서 한동안 마케팅과 디자인을 하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그 문화선교 기업에 입사했을 때 일이 터졌습니다. 회사에 다닌지 일주일 뒤에, 그때 제 아들이 4살이었는데, 젓가락으로 전기 콘센트를 찌르는 사고가 나서 좀 많이 다치고 말았습니다. 1년쯤 뒤에는 과거의 육아일기와 감전 사고를 치료한 이야기 등을 엮어서 정식 출간으로는 첫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출판사가 없어지면서 지금까지도 재고가 남아 있는 책이지만 일단 보신 분들은 공감을 많이 해 주신 책이었습니다.
그 문화선교 단체에 있을 때부터 저는 또 웨딩 칼럼을 계열사 웨딩업체 사이트에 연재했습니다. 연애와 만남과 사랑과 이별 등을 크리스천의 시각으로 쓰는 것인데요, 이것도 나중에 책으로 내게 됐습니다. 이 책도 판매로는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요. 더구나 지금 보면 아쉬울 정도로 성경적 시각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출간 이후에 계속 쓴 칼럼들은 모 기독교 포털 등에 연재하기도 했는데, 흠정역을 알게 되는 시점부터 쓴 후속편은 기회가 되면 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순 사이에서 불만을 품다
정확히 안다면 좋겠지만, 저는 언제 구원받았는지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확고히 믿은 초등학교 때인지, 열심을 내며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세례를 받던 중학교 때인지, 종말론과 성경공부와 반 뉴에이지에 열심이었던 청년 때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아무리 부족함 가운데 있어도 늘 하나님을 떠날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늘 모호한 것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말씀과 성경지식을 배우고 들은 것 같은데, 모든 것이 뿌옇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기준이 없어서 그랬던 것으로 지금은 파악하지만 항상 의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본 교회들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서는 3부 예배가 제일 많이 모이는데, 2부는 권사님, 3부는 장로님이 대표기도를 하고, 사람이 제일 적은 1부는 안수집사가 기도를 합니다. 안수집사는 감히 3부 예배 기도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월드컵 중계도 중요한 경기는 차범근 해설위원이 하고, 나머지 경기는 다른 위원들이 하는 것처럼, 세상 방식과 똑같은 겁니다.
목사님은 넉넉한 연봉에 기사까지 부리고 좋은 차를 타는데, 차비가 없어서 교회에 못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전도회 회장이라도 하려면 가끔 식사대접을 해야 하고, 돈도 내놔야 해서 아무나 회장도 못합니다. 한 마디로 돈 없는 사람은 큰 교회 못 나갑니다. 또 무슨 일이 주어졌을 때 순종하며 봉사했더니 아파트 몇 평을 주시더라, 이런 간증이 난무합니다.
어떤 교회는 연말이면 예산이 남는 부서마다 돈을 남기지 않으려고 거하게 회식을 여러 번 한답니다. 남기면 위에서 그 부서는 돈이 남는구나 하며 다음 해 예산을 깎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엎는 지자체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그 여성잡지사 사장이었던 장로님은 직원 교육 때 조용기 목사와 법정의 강연을 함께 보여 주는 분이었고, 일요일에도 필요하면 일하고, 종교와 사업은 다른 것이라는 지론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사업상 만난 직원들은 종교에 따라 지옥 가도 된다는 것인지, 각자 극락왕생하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한 번은 신문을 창간하는데, 새로 입주하는 건물이 몇 년 전에 큰 나무를 뽑아낸 적이 있어서 입주한 업체들마다 화재나 각종 사고를 당했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입주하자마자 몇몇 직원들이 크게 교통사고를 당한 겁니다. 액운이 끼었다며 소문이 점점 불어나고, 다들 일하기를 두려워하니까 사장님이 "그런 걸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이제 신우회를 만들어서 그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세요." 그러더군요. 몇 번 모이다 흐지부지됐지만 예배가 무슨 살풀이굿도 아닌데, 참 불만이 많았지요.
그렇게 늘 저는 불만이 많은 반골기질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편이지요. 직장 다닐 때도, 아무리 높은 자리에 가도 늘 반기를 들고, 사장 입장에서는 분위기 파악 못하고 직원들 편에 서는 이상한 스타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비판정신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뭔가 남을 지적하고 남의 문제점을 찾는 동안에 더 중요한 것을 잊고 말았습니다. 저는 점점 하나님을 편리하게 가지고 다니다가 필요 없으면 버리고 아쉬우면 챙겨 넣는 사람이 되었고, 영적으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은 자세히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저는 교회에 멀쩡히 다니는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교만하고 부족하고 어리석은 저는 다 알면서도 끝까지 버텼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못 배길 때까지 간 후에야 너무나 무서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일상생활은 남들 보기에 똑같았겠지만 새벽마다 40일 동안 나가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가슴을 쥐어짜는 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벼랑 끝에서 살려만 달라고 애원하는 심정보다 더했습니다. 어떤 날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잊었던 잘못들이 다 다시 떠오르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후회와 회개의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저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주고, 또 기다려 주었습니다. 아내가 아니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징계와 회개의 과정에서 건강이 많이 악화돼 허리 병을 크게 앓게 됐습니다. 하지만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는 말씀을 듣고 그것도 기뻐했습니다. 조금 지나서 정신을 차리게 되자 저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나는 구원을 받은 것인가. 하나님은 내게 어떤 분이며 나는 하나님에게 무엇인가....
내 안의 하나님
제 아버님은 96년에 제가 큰 아이를 낳고 이틀 후에 돌아가셔서, 30분 차이로 택시를 타고 퇴원해서 오는 제 딸을 못 보셨습니다. 아버지는 유언으로 우리 모두에게 신앙생활 잘하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집안에 가장이자 어른이 안 계시니까 많은 것이 흐트러졌습니다. 불신자와 결혼한 형님과 누님은 점점 신앙에서 멀어져 가고, 한 마디로 집안에 기강이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유쾌한 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도 무시 못할 권위와 무서운 한 방(?)이 있었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그분의 영향력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마치 율법이라는 전 남편이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더 이상 내게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그렇게 실패한 원인을 돌아볼 때, 제 안에 계시던 하나님을 마치 죽은 분으로 여겼기 때문에 진지함이 없었고, 죄에 대해 민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내 속의 하나님이 죽으니 그분의 말씀이 내게 들리지 않고, 그로 인해 점점 더 그분으로부터 멀어져서, 병든 지체가 되어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다른 책은 성경을 다 읽을 때까지 손에 대지 않고, 틈틈이 몇 달이 걸려 전체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신앙서적들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나를 바로 세우는 일에 무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예전의 저처럼 살아가는 많은 크리스천들과 그보다도 못한 불신자들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구원의 도리에 대해 쉽게 알리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비매품으로라도 인쇄해 나눠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의 글은 매우 부족한 것이었지만 후에 흠정역을 알고 난 뒤에 내용을 보완해서 <내가 왜 믿어야 하죠?(생명의말씀사)>라는 제목으로 2010년 9월에 출간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 안의 하나님이 조금씩 살아나고, 그분을 실제적인 분으로 여기게 되자 제 궁금증이나 염려는 더욱 커져갔고, 어찌 된 게 더 자유가 없어졌습니다. 구원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부터, 과거에 성령을 모독했거나 소자 하나라도 실족시켰다면 아무리 앞으로 잘해도 나는 말짱 끝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좀 더 알고 싶었고, 하나님이 정말 그런 분인지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고 싶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겁니다.
워치만 니와 성경의 현주소
그런 신앙적 진지함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준 책이 있었는데, 교회에서 공공연하게 빌려주거나 권하기에는 좀 민감한 저자였습니다. 바로 '워치만 니'였지요.
그때 받은 책은 <혼의 잠재력>이라는 소책자였는데요, 워치만 니는 일반 교회에서 잘 언급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메이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보니 정말 놀라운 내용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영, 혼, 육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고, 혼의 힘이 엄청나며, 마귀가 사람의 '혼의 힘'을 이용해 일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는데, 매우 일리가 있고 설득력이 있었죠.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거기 나오는 단어들이었습니다. 워치만 니는 영, 혼, 육을 이야기하면서 성경을 제시하는데, 구절이 하나도 안 맞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개역성경, 여기서 '산 영'은 개역개정에서 '생령'으로 같은 뜻에 말만 바뀜.)
아무튼 아담이 '산 영'이 됐다고 하는데, 괄호 열고 living soul이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고 하는데 그건 괄호 열고 life-giving spirit이라는 겁니다(킹제임스 성경에서는 quickening spirit임.) 아무튼 둘 다 영인데 왜 하나는 '소울'이고 하나는 '스피릿'이냐는 겁니다.
그때까지 영어 단어로는 둘 다 '영혼'으로 이해했는데 서로 다른 것이라니,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페이지 밑에 붙은 주석이었습니다.
"저자 워치만 니는 본서에서 영과 혼을 다룸에 있어서, 영과 혼을 전혀 다른 것으로 보는 영·혼·육의 삼분설을 채택하고 있다. 삼분설은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일부 신학자들에 의해서 주장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일부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복음주의 계열 신학자들은 영과 혼을 분리시키지 않고 인간이 영혼과 몸으로 구성돼 있다는 이분설을 지지하고 있다. 본 출판사는 본서를 출간하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삼분설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바이다."
잠깐만요, 신학자들이 뭘 지지한다고요? 그게 다 뭐란 말입니까. 이건 마치 '삼세판'이 가위 바위 보를 두 번 하는 건지, 세 번 하는 건지를 놓고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답은 이미 있는데 뭘 믿고 뭘 지지하고, 무슨 입장을 밝힌다는 겁니까. 성경에 어떻게 나오는지만 확인하면 끝나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이거 뭔가 잘못됐구나'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성경이 뒤죽박죽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워치만 니가 여러 역본을 참조하고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그에게 약간 신비적 요소가 있다는 사실 외에도) 이 사람조차 기준점을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워치만 니는 제가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는 과도기를 채워주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습니다. 더 심오한 진리를 알고 싶은데 아무도 안 가르쳐 줄 때 찾게 된 것이 바로 워치만 니였습니다. 솔직히 교회 20년 정도 다니면 설교 제목만 봐도 다 알지 않습니까. <설교제목, 뽕나무로 올라간 삭개오> 하면 '그거 내가 얘기할게!' 이럴 수 있지 않습니까. <여호수아와 정탐꾼> 하면, 미안하지만 안 들어 봐도 비디오 아닙니까.
이런 상황, 아직 배가 고픈 상황에서 마침 만난 것이 성경을 깊이 탐구한 워치만 니였던 것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만의 생각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이겠지만 이런 말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늘 내가 무슨 일을 얼마나 하느냐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나의 어떠함이다."
잘 실천이 되지는 않지만 반드시 평생 새길 말인 것 같습니다. 그 뒤로 그의 일생을 다룬 강연도 들어보고, 에베소서 강해인 <좌 행 잠>, <영에 속한 사람 1, 2, 3>,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등등 책도 읽어 보았습니다. 아무튼 <영에 속한 사람> 같은 책에도 '혼'이라는 말이 나오면 '원문에는 영임' 등등의 주석이 나왔지요. 이런 것이 도저히 용납이 안 되었고, 수십만 부 팔렸다는 책인데 왜 아무도 원문을 궁금해 하지 않는가 하고 답답해했습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당시 준비하고 있던 개역개정이 바로 저작권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았습니다. 공개를 앞둔 개역개정은 오히려 더 많은 오류가 있다는 공방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지요. 물론 대한성서공회가 나쁜 일만 했겠습니까. 하지만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했듯이 모든 것은 돈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사용하는 성경 장사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아니 다이아몬드를 낳는 타조입니다. 손도 안 대고 코푸는 일입니다.
그런데 2011년 말이면 저작권이 만료되고 누구나 텍스트를 가져가서 성경을 인쇄해서 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널리 퍼지길 바란다면 누구나 찍어서 인쇄하는 게 좋은 것 아닙니까. 물론 그것을 가져다가 바꾸거나 가공하는 일은 판권을 통해 막아야겠지만, 변개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인쇄를 허용하는, 지금의 흠정역과 같은 방침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말씀을 다루는 사람들의 자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성서공회는 2012년이 오기 전에 논란 속에서 급조한, 약간 바뀐 성경을 내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새 성경을 적극 보급해야만 사용 교회가 늘어나고 모두가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방송 설교에서도 새 성경을 쓰고, 옆 교회도 쓰고, 부흥강사도 그걸 쓰는데 안 바꾸고 버틸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떼돈입니다. 찬송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성서공회는 앞으로 소송을 통해 다른 곳에서는 아예 인쇄와 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합니다. 나눠먹기도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을 대표하는 목사들이 이 개역개정판의 보급에 앞장서고 광고까지 참여해서 이제 성서공회의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착착 진행 중입니다.
'흠정역'이라는 한마디
이런 현실을 알아가면서 저는 계속 신앙서적들을 읽고, 방송 설교를 자주 들으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그 몇 년 전 일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선교단체를 그만 두고 프리랜서로 일 할 때, 낮은울타리 월간지에 새로운 필자가 등장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분은 바로 차한 박사님이었습니다. 그때 게재된 글들이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같은 분석의 글이었습니다. 그곳 대표님도 아주 만족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후 그분이 <성경으로 세상보기>라는 책을 내게 됐는데, 디자이너를 찾는다면서 같은 회사 월간지 편집 책임자였던 후배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저는 흔쾌히 일을 하기로 하고, 가격도 일반 출판의 절반 정도에 해 드리기로 하고 만나게 되었지요. 그때 <건강과생명>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편집부장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는 이승훈 형제와 기자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만날수록 참 좋은 분들이더군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분들은 모두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분들이었습니다. 물론 저와는 업무상 통화할 일밖에 없었고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성경 이슈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 여러 이유로 미루셨거나 많은 분들의 시큰둥한 반응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전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말씀에 관심만 있다면 언젠가 만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그렇게 일을 하고 아주 가끔씩 교류가 있었습니다. 저는 얼마 후부터 건강과 생명에 매달 '생각하는 유머'라는 카툰과 격월로 '일러스트 수필'을 연재하게 되기도 했지요. 그래서 매월 말이면 집에 <건강과생명> 책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차한 박사님의 글을 보는데, 성경인용문이 나와 있고 뒤에 괄호 열고 '(흠정역)'이라는 단어가 보였습니다. 저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흠정역?"
우연인지 몰라도 청년 때부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워낙 좋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왔던 터였고, 그것이 문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나 아주 훌륭한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걸 한자로 흠정역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한글로 성경구절이 나오고 이게 흠정역에서 발췌한 거라면 한글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이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더욱이 차한 박사님이 인용한 거라면 믿을 만한 것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동안은 장중한 문체나 고풍스러운 표현 등 개역성경이 당연히 킹제임스 성경을 기본으로 번역되었다고 생각했었지요.
아무튼 그 다음날 출근해서 바로 인터파크에 들어가서 '흠정역'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없었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을 찾아보니까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게 그건가 하고 들여다봤지만 흠정역은 구경한 적도 없고 킹제임스라고는 딱 그거 하나뿐인데다 마음은 급하고, 인터파크에 없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바로 구매를 했습니다.
그동안 성경 문제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킹제임스 한글판이 여러 개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책이 배송돼서 올 때까지 하루 동안 인터넷을 뒤져 보면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알게 됐는데, 그리스도 예수안에 사이트도 찾고, 내가 산 한글 킹제임스를 번역한 말씀보존학회 등도 대강 파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저는 완전히 잘못 산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흠정역 한영대역을 주문하고, 다음날 받은 한글 킹제임스는 포장만 구경하고 말씀보존학회 직원과 통화한 뒤에 다시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킹제임스 성경 시대가 열렸는데요, 예전 그리스도 예수안에 사이트에 가서 거의 모든 자료를 다 읽고, 듣고 하는 일이 시작됐지요. 경험해 보신 분들은 제 기분을 아실 겁니다. 그야말로, 어, 이거 말 되네~ 무리가 없네~ 모순이 없네~ 내가 궁금해 하던 게 여기 다 있네~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뒤늦게 창조과학에 눈 뜨다
그런데 거기서 존 휴스의 <진화론의 붕괴> 텍스트와 창조과학 만화, 창조과학 강의 같은 걸 봤는데요, 깜짝 놀라게 됐습니다. 창조과학은 이미 제가 청년 때부터 많이 알려지고 있었지만, 저는 뉴에이지의 심각성만 주목했지 창조과학은 노아의 홍수 정도만 조금 아는 수준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내용들이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창세기도 잘 모르고 창조를 실제적인 것으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을 믿는데 과학이 대수냐 하고 지내왔던 것이었습니다. 말로는 창조를 믿는다고 했지만 세상 과학과 혼동하고, 과연 그게 진짜 창조이며 진짜 6일인지 등등 이슈와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수렁에 빠진 이유를 조금 더 알았습니다. 제 안에 하나님이 죽으면서 제 양심은 뜨거운 인두로 지진 상태가 되었고, 하나님은 실제로 내 안에 살아 계신 분이 아니라 먼 곳에 있는 하나님, 뿌연 안개 너머에 존재하며 침묵하는 막연한 하나님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하나님을 제 안에 계신 분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진짜 만드신 분, 내 원소, 세포 하나까지 다 알고 세어보신 분... 이렇게 믿기 시작하자 삶은 부족하나마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창조과학을 통해 죽은 하나님에 기대어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됐습니다. 창조과학은 바른 성경을 그대로 믿는 이들에게는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바른 성경도 없고 하나님과 신앙의 개념도 모호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난 때였는데, <건강과생명> 소개로 정동수 목사님이 그림을 의뢰할 것이 있다고 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클라렌스 라킨의 그림을 옮기는 것과 세대주의 책자에 들어갈 삽화였는데, 제 그림 스타일이 좀 안 어울리기는 했지만 작업을 했습니다. <성경 바로 보기>의 세대주의 부분에 있는 그림입니다. 그때 정 목사님이 자금이 많지 않아서 일부 현금으로 지불을 하고 나머지는 책으로 주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해 그렇게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목사님이 연신내 쪽 제 작업실에 책을 한 박스 가져오셨는데, 지금은 대부분 개정된 킹제임스 성경 안내 책자들과 천주교 관련 서적, 알 레이시의 책들, <진화론은 새빨간 거짓말>, <성경은 해답을 가지고 있다> 등등이었지요. 이미 그때는 제 스스로 <UFO는 있다> 같은 책을 사서 무척 흥미롭게 읽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 책들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야말로 돈 대신 받은 값어치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책들이었는데, 절판으로 구하기 어려웠던 <지옥은 있다>, <어린아이들의 천국> 같은 책들은 온 인터넷에 재고를 뒤져서 사 보기도 했습니다. 이 책들은 지금도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책들입니다. 거의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절판된 부분들이 모두 수록됐는데요, 디자인을 직접 하게 돼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흠정역을 알게 되니까 눈이 열리고 머리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대로 보존된 말씀을 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뻐서 주변에도 큰 기대를 가지고 신나게 알렸습니다. 반응은... 저와 비슷한 입장이면 잘 알 수 있듯이 맥이 빠질 정도로 미지근했습니다.
그 즈음 개역성경분석이라는 책을 지하철에서 보고 있었는데, 그게 표지가 뻘건 게 좀 수상한 책으로 오해를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그때 옆 자리의 중년 신사가 흘긋거리며 보았습니다. 저는 관심 있어서 그러는 줄 알고 일부러 더 펼쳐놓고 보았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책을 드리려고 했지요. 그런데 몇 정류장 지나자 그분이 그러더군요.
"그 책 잘 봐야 돼요."
그래서 저는 "이거 아세요?" 이렇게 물었는데, 마침 차가 멈춰 섰고, 그분은 대꾸도 않고 벌떡 일어나더니 화난 사람처럼 저한테 그러는 겁니다.
"그 책 조심해야 돼요. 괜히 이단에 빠지지 말고."
그러면서 그냥 내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거 참, 쫓아 내릴 수도 없고, 말문이 막혀 그냥 앉아 있는데 그때부터 거기 있던 사람들이 저를 다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겁니다. 그 사람들 표정이 마치 "아, 이단은 저렇게 생겼구나~." 하는 표정이었는데, 정말 진땀이 나더군요. 내가 순진했구나... 하면서 점점 현실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교회에서 편집을 맡고 있는 월간지에 창조과학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좀 더 쉽게 쓰고 삽화를 그려서 연재를 하기 위해 정 목사님께 사이트의 내용 일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다른 책들도 보면서 자료를 만들어갔습니다. 창조과학은 물론 성경적 이야기를 하면서 기존 교회에서는 잘 모르는 거인족 이야기, 광우병, 포도즙, 피, 인종 문제 등등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흠정역을 인용했습니다. '흠정역'이라는 한 마디에 저처럼 뒤집어질 사람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1년 정도 연재를 했는데, 반응이 극명하게 나뉘더군요. 흠정역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일부는 내용이 아주 좋다고 했고, 나머지는 무반응이었죠. 그 연재를 좀 안 했으면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생명의말씀사와 그림과 디자인 등 일을 해오고 있었는데, 당시에 저는 <1318 다이어리>라는 책에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했었습니다. 거기 4명의 청소년 아이들을 등장시켰었지요. 하루는 담당자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말씀사에는 창조과학 책이 없는데, 어떤 형태로든 이 아이들을 등장시켜서 창조과학 도서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제가 과학자가 아니라서 좀 문제가 됐지만 청소년 도서니까 한 번 해보자는 반응이 왔고,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끈기를 가지고 크고 작은 그림이 250개나 되는 책을 만들어 갔고,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해냈는지 모를 정도로 틈틈이 진행을 했습니다.
기획 단계에서도 하나님은 지혜를 많이 주셨습니다. 어떻게 쉽게 전할까 고민하면서 일목요연하게 논리를 전개할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알파벳 A부터 Z까지 단어 이니셜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알파벳이 26개고, 1년이 52주니까 매주 하나씩 공부를 하면 정확히 6개월이 걸리니 교재로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지금은 많은 교회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고, 이어서 <어린이를 위한 창조과학 이야기>도 출간하게 되었는데 이 책도 꾸준히 읽히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2009, 2010년에 각각 기독교출판문화상 청소년 부문과 어린이 부문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상 받아서 생기는 것은 없지만 책의 신뢰성을 인정받은 것이고, 킹제임스 흠정역으로 쓴 책들인데 기존 교계에서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증거라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리를 양보할 필요는 없지만 교계와 따로 놀 필요도 없고, 흠정역을 널리 알려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성경에 대해 심각성을 깨닫고 여러 사람에게 전달을 했지만 그 반응은 미미했습니다. 때로 좌절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면서 저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춘기 때, 이성친구들에게 관심이 생기면 시시콜콜한 것을 가지고도 고민하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습니까.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 아무개가 나한테 관심이 있나, 등등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던 여학생이 나에 대해 뭐라고 얘기를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친구가 그 여학생 이야기를 전하면서, "걔가 너한테 관심 있나 보더라." 이럽니다. 그러면 크게 관심을 보이면서 "뭐라고 했는데?" 하고 묻겠지요. 그런데 친구가 대강 말끝을 흐립니다. "뭐, 그냥 이런저런 얘기, 아무튼 잘 해 봐라~." 그러면 대개 뭐라고 합니까?
"그러니까, 뭐라고 했는데? 뭘 알아야 잘 해 보든지 할 거 아냐~."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걔가 뭐랬는데? 똑같이 한 번 얘기해 봐."
그런데 친구가 "야, 그런 의도만 알면 되지, 뭘 그리 따지냐?" 이러면 궁금하고 화가 나겠죠? 왜 한 마디도 다르지 않게 듣고 싶어 합니까? 좋아하기 때문이겠지요.
요한복음 14장 23~2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들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우리의 거처가 그와 함께 있게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들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것이니라."
여기서 지킨다는 것은 keep입니다. 먼저 잘 보존하고 그대로 잘 간직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여학생이 편지를 줬는데, 친구가 대충 뜻만 전달하고 원본을 안 준다면 답답하고 궁금할 겁니다. 만일 그 편지를 잃어버렸어도 똑같은 내용이 있다면 될 겁니다. 그 종잇조각 자체보다도 똑같은 내용이 더 문제니까요. 하지만 그걸 대충 고쳐서 보여주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그 내용이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똑같이 알려주겠다는데도 "그냥 대충 내용만 말해봐." 한다면 절대로 그 사람은 그녀를 사랑하거나 관심이 있는 게 아니겠지요.
keep은 실천하고 준수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인데, 말씀을 보존하고 또 실천하는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나님을 믿고 존중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정확히 알아야 실천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경의 보존된 내용은 궁금하지 않다면서 존중하고 지키겠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원뜻에만 집착하고 행하지 않는 것도 불균형이겠지요.
성경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숨이 불어넣어져 있다는 것을, 그 단어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저도 과거에는 몰랐습니다. 아직 킹제임스 성경과 흠정역을 모르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사랑한다면서 그분의 진짜 말씀에 관심이 없다면 모순입니다. 행위로 우리의 믿음을 알 수 있듯이, 말씀을 지키는 자세를 보아 주님을 향한 사랑을 알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 말씀을 실천하고 삶에 적용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이 따를 때 말입니다. 말씀만 알고 행하지 않으면 비만이 됩니다. 먹은 것도 없이 뛰기만 하면 영양실조로 쓰러지지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저는 오래 신앙생활하면서도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도 성경에 나오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들을 지키리니" 이것이 정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씀의 보존과 변개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이 책을 냈습니다. 이 분의 인품이나 설교의 진정성, 바르게 목회하려는 열정은 높이 사고 싶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책에 이런 대목이 있더라구요. 성경의 단어나 개념들이 시대가 바뀌면서 자꾸 바뀌어서 요즘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를 왜곡하여 이상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분은, 북한과 우리가 같은 단어지만 다른 의미로 쓰는 것처럼, 어른들과 아이들이 '당근'의 의미를 다르게 쓰는 것처럼 의사소통이 어려워졌다고 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하물며 2천 년 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될 때 어찌 그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겠습니까."
이 얘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야 한다는 취지로 쓰였지만 그분의 빗나간 성경관을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신 분이고 그분이 바로 처음에 계셨던 그분인데 계속 변신합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옛 모습을 찾기 위해 뭘 해야 할까요.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맞아!" 그러면서 2천 년 전 말씀과 2천 년 전 하나님을 상상해 보다가 안 되니까 무작정 믿으면서 기도만 세게 합니다. 그래도 느낌이 없으면 은사주의 집회 등으로 전기충격기를 찾아서 다니는 거죠.
교계에서 늘 하는 설문이 있습니다. 2006년 월간 <목회와 신학>에서도 신학생 대상으로 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성경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까?"
'그렇다'는 응답이 약 28% 나왔는데요, 질문의 특성상 솔직히 답하기 어려운 면도 있으니 좀 더 적은 수치라고 보지만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나머지 72%는 다 어디에 있겠습니까. 물론 다 목회자가 되지 않았다 해도 대부분 교회에 있겠지요. 이런 분들이 목회지가 정해지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말씀도 안 믿어, 하나님을 본 적도 없어, 골수 신자들보다 할 줄 아는 신통한 것도 없어... 그러면 그때부터 기도원 가서 하나님한테 씨름하자고 담판 짓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 보존을 안 믿습니까. 그것도 못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는데, 그것은 보존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류는 없는데 보존은 안 됐다. 지금은 정확한 걸 알 수 없다... 그러면서 어떻게 성경에 대해 글을 씁니까. 저도 과거에 그랬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뭘 안다고 함부로 성경을 들먹이며 글을 쓰겠습니까. 바른 성경을 가지고도 제대로 글쓰기가 쉽지 않고 실수도 많이 하는데요. 이처럼 마귀는 성경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립니다.
"너희는 그것을 다 알 수 없다, 보존은 안 됐다, 바꿔야 된다, 말씀도 시대 정서에 맞춰야 된다...."
10여 년 전에 남산의 경관을 크게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된 외국인 아파트를 아실 겁니다. 아마 큰 건물로는 국내최초로 폭파 방식으로 해체된 건물일 겁니다. 그래서 관심이 컸는데, 이 아파트의 철거를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잘나가는 기업이 불과 10명이 안 되는 직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왜냐하면 폭파는 폭발물이 하는 거죠?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고, 어느 곳에 어느 만큼의 폭발물을 설치해야 건물이 흩어지지 않고 먼지도 최소화하면서 그대로 주저앉을지를 알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전지전능하거나 편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마귀는 우리처럼 3차원 장애물의 제약을 받는 존재는 아니지만 천사도 마귀도 시간을 초월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은 모든 공간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곧 전지전능을 뜻하는 것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역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귀를 편재하는 존재로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무 일에나 '마귀가 역사했다'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물론 마귀의 졸개들이 일을 하지만 사탄 마귀는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기보다는 더욱 효과적으로 일합니다. 마귀는 폭파 전문가입니다. 어느 곳에 폭발물을 설치하면 되는지 너무나 잘 안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나쁜 의도로 해킹하는 사람들을 크래커라고 부릅니다. 그 사람들이 모든 개인 PC에 침투해서 파일을 망가뜨리고 바이러스를 심습니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악성코드를 한 곳에서 퍼뜨리면 사용자들이 주고받는 파일을 통해서 바이러스가 옮겨 다니고, 이메일과 메신저, 파일 다운로드 등을 통해서 자동으로 번집니다.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마귀가 만든 시스템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지, 늘 사탄 마귀와 씨름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는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욥의 경우처럼 마귀는 개인도 시험하겠지요. 저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영리한 마귀라면 좀 더 중요한 인물, 좀 더 영향력이 큰 일에 손을 대며 효율적으로 일할 것임을 강조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가장 효율적인 것이 무엇일까요?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면 자기들끼리 망가지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요?
어떤 빌딩이 있습니다. 이곳은 66개의 방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방은 창세기이고, 마지막 방은 계시록입니다. 이 건물에 들어가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입구에 진화론이라는 연막탄을 터뜨리고 첫째 방인 창세기가 신화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미 들어간 사람들이라도 아무도 나오지 못하도록 출구인 요한계시록을 위험한 책이며 유대인들의 판타지요, 묵시 문학이니 건드리면 다친다고 속삭입니다.
그렇게 아무도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건물의 기둥과 기준점들에 폭발물을 설치해 스스로 내려앉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건물은 영원히 설 것입니다. 그러나 건물을 뒤흔들 때 많은 이들이 우왕좌왕하고 출구를 찾지 못하며 중심을 잡지 못하다가 스스로 떨어져 버립니다.
성경이 변개됨으로 해서 얼마나 많은 교리가 바뀌었습니까. 우리는 도로 위를 달리는 가치와 철로 위를 달리는 가치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도로는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지만 철로는 1센티만 벗어나도 완전히 탈선하고 맙니다. 도로 위만 달리면 차선을 좀 넘나들어도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배 순서나 형식이나 회수, 헌금 방법, 교회생활, 사회생활,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 등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철로 위에 두어야 하는 것은 말씀과 교리와 창조, 경륜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이것을 뒤바꿔버렸습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예배 형식과 헌금과 갖가지 전통들은 레일 위에 놓고 철두철미하게 지키면서 말씀이나 교리에는 띄엄띄엄 흰 점선을 그어놓고 넘나드는 융통성을 발휘합니다. 이런 시스템 위에서 사람들은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조금 탈선했을 때는 저만치에 레일이라도 보였지만,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교회와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넓디넓은 대로에서 길을 잃은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이유
저는 물론 성경을 믿습니다. 왜 믿는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안티 기독인들이 성경을 믿느니 마늘 먹고 사람이 됐다는 단군신화를 믿으라고, 어떻게 그런 걸 믿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일단 알고 나면 어떻게 이런 걸 안 믿을 수 있는지 의아해지는 것이지요.
초등학교 때 귓속말 게임을 하면 마지막에 엉뚱한 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귓속말이 아니어도 사람이 전달하면 항상 한 가지 보태고 한 가지 빼서 이상하게 전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수천 년 동안 서로 다른 사람이 썼지만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습니다. 이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지요. 외부 증거와도 다름이 없지만, 다 떠나서 이 성경전서 한 권 안에서 서로 들어맞기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한 사람이 쓴 것도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고 서로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말을 썼었는지 안 썼는지 기억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어떤 역본의 성경도 전체 한 권 안에서 오류 없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없습니다. 단어의 용법 변경이나 자의적 번역, 삭제 등으로 인해 모두 흐트러졌습니다. 오직 번역자들 자신이 정확히 몰라도 단어와 단어를 대입시켜 그대로 정확히 옮긴 킹제임스 성경만이 모순 없이 완전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셀 수 없는 증거들로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 성경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서 무엇 하나를 빼면 모두 뒤틀리고 맙니다. 이것은 마치 카드로 만든 집 같습니다. 삼각형으로 쌓은 카드들은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어느 곳에서 빼든지 모두 허물어집니다. 성경도 한 가지를 양보하면 모두 양보하게 됩니다. "성경의 무오함은 믿지 않지만 구원에 관한 부분은 틀림이 없다, 하나님은 믿는다, 그래도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말은 다 거짓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돌프 사피어는 <성경의 신적 통일성>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 역사의 명확한 정확성에 대한 증거는 날마다 축적되고 있으며, 독자적이고 공평한 자료와 때로 적대적인 자료에서 나온 모든 자료까지 우리에게 있다. 나는 그것이 모두 실제적인 역사라고 믿는다. 동시에 나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그것을 깨닫기는 어렵다고 고백해야만 한다. 성경의 역사는 단순히 신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성경은 믿음을 요구한다."
성경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성경은 매우 명확하면서도 늘 100%를 말씀하지 않습니다. 늘 균형을 가지고 잘 판단하되 가장 중요한 것 '믿음'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A는 항상 B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은 것 때문에 답답할 때가 있지만 그것은 나의 믿음으로 채워야 완전해지는 것임을 늘 깨닫습니다.
지금 노아의 방주가 성경에 언급된 크기와 상태 그대로 발견된다면 세상 사람들이, "아, 성경은 진실이었군요. 하나님, 회개합니다." 하겠습니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절대 아닐 것입니다. 자기 틀에 맞게 해석하겠지요. "홍수 전설은 사실이었으며 이 방주를 바탕으로 성경과 여러 전설이 후대에 쓰여졌다."는 식으로 저명한 신학자가 말하겠지요.
저는 흠정역을 알고 성경을 더욱 믿고 바른 지식을 알게 되었으며 그 말씀을 통해 자유를 얻어 구원의 확신을 뿌리 뽑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가졌던 궁금증... 실족에 관한 것, 연자 맷돌, 성령모독죄, 아기들은 천국에 가는지 못 가는지, 너무 엄청나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내 죄가 처리됐는지 안 됐는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이 어떤 기준을 가진 분이시고 내가 어떻게 구원 받았으며 그 구원은 취소될 수 있는 것인지, 영원한 것인지 등등에 대한 해답을 얻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진리를 통한 자유함이라는 것을 그제야 맛본 것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에서 저는 나름 놀라운 체험을 통해 오늘 이곳까지 인도되었지만 그런 체험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공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보다 훨씬 놀라운 것은, 함정도 어둠도 폭파된 곳도 없는 바른 말씀이 모든 두려움에서 저를 건지셨다는 것입니다. 부디 저의 작은 간증을 읽으시는 분들 중 아직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꼭 킹제임스 성경, 흠정역 성경을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연구하고, 배워서 그분의 경륜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이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