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숫자의 상경적 해석
(고려사항)
첫째, 성경은 대부분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나아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제로 모든 성경 귀절이 연결되어 있다.
둘째, 숫자의 개념은 창조 칠일, 출애굽 사건, 성전의 개념, 절기의 개념, 언약의 개념 등과 연계되어 있음을 고려해야만 한다.
셋째, 땅과 하나님 나라의 시각에서, 세가지를 전제한다. 땅을 통해서하나님 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땅을 상징하는 애굽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생각하고, 육체를 통해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생각한다.
1.
창세기 1장 1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의 의미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1은 하나라는 의미가 된다. 하나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그런데, 둘이 되는 모습이다. 태초(베레쉬트)는 하나였는데,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분리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1장 1절은 하나의 문단인데, 내용은 두 문단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가 둘이 되는 모습이다.
태초라고 번역된 베레쉬트는 번역의 오류로서 하나님의 집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물질세계가 분리되는 모습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있었던 반역의 결과로서 세상이라는 존재가 하나님 나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물질세계가 분리된 후에 하나님의 칠일 창조가 시작되는 것이다.
태초라고 번역된 בְּרֵאשִׁ֖ית (베레쉬트)는 접두사(בְּ)가 붙어 있는 명사형으로서 영어의 in the beginning이 아니라 lead, head 라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의 집의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베레쉬트는 베와 레쉬트의 합성어 (접두형전치사+여성 단수 명사)이다. 여기서 베(בְּ)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머리이신 하나님이 이빨을 드러내고 손으로 표시하는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우두머리이신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 나라로부터 물질세계를 분리하고, 그리스도인 첫사람 아담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 땅으로 범죄한 천사들을 데리고 와서 마지막 아담이 다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다시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5절에서『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첫째 날은 땅에 대한 설명이다. 흑암에 있던 땅이 빛이 나타난 것이다. 1장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개역개정) 이를 정확히 번역하면, 『땅이 심연의 얼굴 위에 흑암 공허 혼돈으로 존재했고, 하나님의 영은 그 물의 얼굴 위에 운행하시니라』
פְּנֵ֣י 페네(얼굴)이 1장 2절 앞부분의 번역에서 빠져 있다. 『심연의 얼굴 ְּפְּנֵ֣י תְהֹ֑ום 』(페네 태홈)은 『깊은 물의 얼굴』을 의미하며, 얼굴은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연의 얼굴은 깊은 물 속의 얼굴로서 물질세계에 갇혀있는 영을 의미하다. 태홈은 갇혀있는 모습이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타르타로)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타르타로사스(기본형은 타르타로 ταρταρώσας)는 옥에 던진 후에 라는 의미다. 옥을 지옥으로 번역했는데, 사실상 지옥은 이 세상을 의미한다. 영적으로 죽은 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빛이 다가오는 것이다. 빛은 물리적인 빛도 생각할 수 있으며, 나아가 하늘의 생명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장 1-5절에서『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따라서 1의 의미는 구원의 시작점인 것이다. 갇혀있는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과 하나됨이다. 원래 하나였는데, 하나님과 떨어져 있다가 빛으로 인하여 하나됨으로 덜아가는 것이다.
2.
(창조 둘째날)
창세기 1장 6-8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2는 분리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다시 나뉘는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분리는 다시 하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창조 둘째 날은 궁창 위의 물과 아래 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궁창 위의 물은 복음, 궁창 아래 물은 율법을 상징한다. 창세기 2장 22-24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여기에서 분리는 아담으로부터 하와를 끄집어 내는 모습이다. 아담은 첫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범죄한 천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부모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부부관계는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로 표현하기도 한다. 여자로 분리되었으나 다시 신부가 되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누어지는 것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로 설명된다. 이외에도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하갈과 사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나무, 사람의 딸들과 하나님의 아들들, 쓴물과 단물, 미리암과 마리아, 메추라기와 맛나 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출애굽기 15장 22-25절에서『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두 증인도 같은 의미가 된다. 두 증인에 해당되는 것은 반드시 함께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이외에도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다윗과 솔로몬 등을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 3-4절에서『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두 증인에 대한 이야기다. 11장 7-8절에서『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신명기 17장 6절에서『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마태복음 18장 19-20절에서『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3.
(창조 셋째날)
창세기 1장 9-13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3은 언약을 의미한다. 창조 셋째날은 보면 세가지가 등장한다.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낸다. 개역개정에는 풀이라고 번역되었으나, 히브리어 원어에는 에세브라고 되어있다. 에세브는 채소이다. 따라서 짐승도 풀 뿐만 아니라 채소인 에세브를 먹는다는 것이다. 짐승이 먹을 수 있는 에세브에는 제라( זֶ֔רַע 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채소(에세 עֵ֚שֶׂב)에 대해서는 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에세브는 풀과 차이가 있는 것이 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며, 곧 약속을 가진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채소는 씨를 가지고 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씨는 곡식으로서 떡으로 표현된다. 가나안에서 먹는 열매는 포도주로 표현된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나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다. 결국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이 마지막 성찬때 등장한다. 떡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살로, 포도주는 죄를 대속하는 피(십자가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새언약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씨와 열매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야 산을 삼일 길을 갔다고 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나와서 삼일길을 도망한 것이다. 요나도 삼일 간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
4.
(창조 넷째날)
창세기 1장 14-17절『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하라 또 그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4는 광야를 의미한다. 광야에서는 시험을 받는 것과 말씀으로 양육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예수님이 사탄으로부터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탄으로부터 수많은 시험을 당했다.
광야에서는 맛나와 메추라기가 양식이 되었다.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니리』 히브리어는 마티르 라켐 레헴(מַמְטִ֥יר לָכֶ֛ם לֶ֖חֶם) 번역하면, 『내가 비를 내리게 하겠다(마티르), 너를 위하여(라켐) 떡(맘티르:기본형은 마타르)을』 개역개정은 떡과 비를 결합하여 하나의 의미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비같이, 또는 떡비 라고 번역했다. 마타르(4305)는 비오다, 비를 내리게 하다 라는 의미다. 비오는 것과 떡을 주는 것을 결합할 것이 아니라, 비와 떡을 분리해야만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래서 비와 떡이 동시에 내리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비는 물을 의미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물고기를 의미하며, 떡은 보리떡 다섯을 의미한다. 위의 말씀은 오병이어의 표적과 닮아있다. 물고기 두마리에서 물고기는 물을 상징하고, 둘은 구약의 십계명과 신약의 두 계명으로서, 두번째 신약을 의미한다.
신약의 두 계명은 죄 사하심을 얻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다.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 오병은 보리떡 다섯개로서, 다섯은 모세오경의 율법을 상징하며, 율법이 완성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율법의 완성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며, 부활이 오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상징은 예수와 핚께 십자가에서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메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맛나는 하늘로부터 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이는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의 표적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광명체가 바로 표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맺을 때 표를 준다.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큰 광명체인 해는 복음을 상징한다. 요한계시록 12장 6절에서는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광야에서 양육받는 기간이다.
작은 광명체는 달을 상징한다. 달은 해의 빛을 받아서 반사한다. 작은 광명체는 빛 자체는 아닌 것이다. 어리다 라는 의미다. 그래서 작은 광명체는 율법을 상징한다. 작은 광명체를 통해서 큰 광명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가라는 말씀이다.
달은 율법을 통해서 고통을 깨닫고 그리스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고통의 기간을 마흔 두달이라고 하였다. 마흔 두달은 1260일과 같은 기간이다. 율법과 복음은 엄밀히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2절『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별은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한다. 민수기 24장 17절에서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서도 새벽별이라는 표현을 한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신약에 와서 별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5.
(창조 다섯째 날)
창세기 1장 20-2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5는 율법 속의 죄인을 상징한다. 궁극적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율법 속에 갇혀있는 자들이며, 하나님께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가 하늘의 복을 얻는 것이다.
새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들인데, 성소에서, 또는 성소의 뜰에서 먹고 사는 것이다. 지성소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들이 있다. 성소 뜰은 죄를 지은 천사들로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에 던져진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들은 땅에서 둥지를 틀지만 결국 공중으로 날아가 사는 존재들이라는 말이다.
바다생물을 탄닌으로, 큰 물고기는 하가돌림으로 표현했다. 하늘의 새와 큰 물고기, 땅위의 새는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대비된다. 마찬가지로 큰 물고기는 성막으로 비유하자면 성전이 되고, 물에서 움직이는 바다 생물은 성소 뜰에서 움직이는 자들인 것이다. 큰 물고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바다 생물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를 표현한 것이다. 동물들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들은 마귀의 자식인 것이다.
창세기 1장 21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생육, 번성, 충만하라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영생이 된다. 생육(파라 פְּר֣וּ )하라는 열매(예수 그리스도)를 맺는 것이다.
6.
(창조 여섯째 날)
창세기 1장 24-26절『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6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복음을 상징한다. 땅의 짐승과 가축은 혼적인 존재로 인간과 함께 땅에 사는 존재들이다. 땅의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을 받으면 하늘의 존재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동물과 같은 존재(666)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살아있을 때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은 살아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람은 곧 첫사람 아담을 의미한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마지막 아담의 표상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났고 마지막 아담은 죄의 몸이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부터 태어나는 몸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다.
요한계시록 13장 18절『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데리우)의 수를 세어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세어보라(프세피사토 ψηφισάτω 기본형은 프세피조)는 것이다. 탐구하다, 만지다 라는 의미가 있다. 세어보라는 의미는 잘 살펴보라는 의미다. 고대 시대에는 숫자를 알파벳을 가지고 숫자를 대신했다. 히브리어에도 알파벳에 숫자가 적용된다. 그리고 사람의 이름도 숫자로 이용되었다. 여기에 육백육십육(666)이라는 숫자가 등장하는데, 원래 수용본문에서는 육백, 육십, 육으로 표기되어 있다. 성경에서 육백이나 육십이나 육은 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육(6)이라는 숫자라는 것이다. 육이라는 숫자를 잘 탐구해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또 짐승의 이름이라고 했다.
육은 창세기 1장에서 짐승과 사람이 같은 날 창조되었는데,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돕는 베필이 오지 않은 존재가 바로 짐승이라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만날 때 사람(칠)이 되는 것이다. 육은 만남의 숫자이다. 육은 짐승을 의미하며, 불완전한 숫자인 것이다. 출애굽기 21장 2-3절에서『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도피성도 여섯개이다. 골리앗의 키가 육규빗이다. 골리앗이 가지고 있는 무게가 육백세겔이었다.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이 세로로 육십 규빗이었고 가로는 육 규빗이었다.
육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난 거짓 선지자들이 퍼뜨리는 말인 것이다. 짐승이 주는 변질된 말이 육육육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전할 때, 호 로고스가 아니라 그냥 로고스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종교 장사를 하던 자는 당시 종교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제사장 그룹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상 마귀의 자식인 것이다. 거짓선지자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영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육육육은 짐승들이 주는 표(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말) 인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성경을 통해서 하늘의 생명을 말하지 못할 때 바로 육육육이 되는 것이다.
육육육은 거짓 선지자들이 말하는 비진리의 말이다. 이 비진리의 말이 이마와 손에 표를 주는 것은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왜곡해서 거짓 교리, 전통, 유전을 만들어 주는 것을 육육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7.
(창조 일곱째 날)
창세기 2장 1-3절에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의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7은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의미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와이쿨루(이루니라) 하사마임(하늘) 워하아렛츠(땅과) 워칼(만) 차밤(물)](וַיְכֻלּ֛וּ הַשָּׁמַ֥יִם וְהָאָ֖רֶץ וְכָל־צְבָאָֽם)이 개역개정의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과 차이가 있다. 차밤(기본형은 차바)은 군대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 모든 군대가 다 이루어지니라 라고 번역했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늘과 땅에 있는 각종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드셨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군대라는 것이다. 일곱째 날에 하늘의 군대와 땅에 있는 군대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영)과 이 땅에서의 군대(범죄한 영)가 다 배치가 완료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떠나 어둠 속에 있는 영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둠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일곱째 날에 하늘과 땅, 모든 군대가 다 이루어지니라 라는 말은 하늘의 하나님 나라와 이 땅의 하나님 나라가 다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에덴동산을 의미한다. 즉 사람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는 말씀이다. 일곱째 날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하나님 나라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그날 안식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안식이 된다는 말이다. 육일 창조를 생각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숫자 7은 완전수이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절기는 일곱으로 되어 있다. 레위기 23장 6-8절에서 무교절에 대한 설명에서 7이 등장한다. 히브리서 4장 4절에서는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칠 년째 되는 해는 땅에 안식을 주지 않으면 안됐다. "그러나 일곱째 해는 안식년으로, 땅을 위한 안식의 해, 곧 주님의 안식년이다. 너희는 밭에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포도원을 가꾸어서도 안 된다"(레위 25,4). 따라서 칠 년마다 농사짓던 밭을 묵히는 규칙이 있었다.
성전의 기물에서도 일곱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일곱 등잔대 등이다. 요한계시록 1장 4절에서『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보좌는 성전에 있다. 요한계시록 4장 5절에서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일곱 등불(등잔대)이 일곱 영이다. 보좌는 일곱 등잔대 뒤에 있으므로 지성소에 있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성전이나, 성막의 지성소나 같은 개념이다.
마태복음 18장 21-23절에서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신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았다. 그래서 완전한 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여인이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가 있다. 요한계시록 1장 4절『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하나님이 언약을 주셨는데, 언약은 아들이 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언약은 창세기 1장에서 일곱째 날로 등장한다. 칠은 엘로힘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이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이며, 사랑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자를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아시아는 아침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새로운 시대를 나타낸다. 에클레시아(~강권하여 밖으로 불러냄)는 오늘날 교회라고 부른다. 세상 밖으로 불러내진 자들이다. 교회는 엑스도스된 자들이다. 모세가 바로의 왕궁으로부터 나오는 것,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신도들이 모이는 것을 교회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심령 속에 세워진 교회가 된 성도들이 모이는 것을 교회라고 할 수 있지만, 참 성도가 없다면 교회라고 볼 수 없으며, 마치 동아리 모임과도 같은 그런 곳이 된다.
일곱 교회의 의미는 언약을 가지고 있는 성도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에서 일곱째 날이 계시록에서 일곱 교회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언약은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세상에 온 자들을 마지막 아담이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서『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예수님의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이 있었는데,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로서, 세상에 있는 모든 주의 종들(사역자)을 말한다. 다니엘 12장 3절에서『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창세기 1장 에서 넷째 날 해와 달과 별이 등장한다. 해와 달과 별은 성소에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 달은 해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으로 율법을 상징한다. 율법을 통하서 복음(그리스도)를 깨달았을 때, 그 사람을 별이라고 한다. 이를 소금언약이라고 한다.
소금 언약이 된 사람은 빛으로 나가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복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별이라 하는데, 그 별을 사자(앙겔로스)라고 말을 한다. 즉 등잔대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별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자들을 오른쪽에 두고, 진리를 선포하고 보호하고 권능을 주겠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서『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호이)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양에게 일곱 영이 있는데, 일곱 영은 일곱 교회를 수호하는 일곱 천사들(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뿔은 왕권을 나타내고, 눈은 영이고 말씀을 의미한다. 결국 어린양은 능력의 말씀이다.
창세기 24장 3-4절에서『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을 의미한다. 이는 약속의 씨에 대한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맹세(샤바שְׁבִּ֣יעֲ)는 일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일곱번 말을 해서 말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곱번 말(율법)을 해서 완성되는 것이 생명이 된다. 즉 그리스도(이삭)인 것이다. 아브라함의 환도뼈에 손을 넣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이삭)가 율법의 완성(생명)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나타내는 것이다.